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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시에서의 자연주의에 대한 고찰
이성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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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에서 자연주의는 주로 소설과 희곡 장르에 국한되어 논의되어 왔다. 한국 시 장르에 대한 논의에서는 상징주의나 낭만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프로시’, ‘노동시’, ‘순수시’ 등의 개념이 사용되었지 자연주의 개념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양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자연주의는 소설과 희곡에서 왕성한 활동이 이루어졌지 시에서는 하나의 문학 운동으로서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독일에서만은 자연주의 서정시가 창작되었다고 한다. 자연주의에 대한 개론서에 따르면, “독일은 또한, 자연주의의 기치 아래 서정시가 시도되었던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자연주의는 시보다는 희곡에서 가장 활발한 전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편 자연주의의 원류인 프랑스에서는 졸라와 모파상, 위스망스 등에 의해 소설 장르에서 가장 활발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연주의’라는 기치를 내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느 나라건 자연주의 성향의 시는 많이 창작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한 독일 문학 연구자는 독일 자연주의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는데, 그 특성은 시가 근대성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보편적인 양상이라고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시인들은 창업시대의 의고전주의와 아류에 반대하여 새로운 어조의 시를 창작하였다. 이들은 시의 주제를 확대하고 변형하여 현실의 단면을 서술하고자 하였다. 시의 주제는 대도시에서 영위되는 현대적인 삶, 정치 투쟁, 가난과 일에 시달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모습에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주제 선택으로 자연주의 시에는 사회 비판적 경향이 강화되었고, 서술적 요소가 도입되었으며, 시와 산문의 결합도 시도되었다. 일상어나 노동자의 언어가 시에 도입되었으나, 언어 실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와 같은 독일 자연주의 시의 특성은, 적어도 1920년대 초중반에 발표된 일군의 한국시에도 거의 들어맞는다. 김억, 주요한, 백조의 시인들, 김소월 등의 낭만적인 서정시가 초창기 한국 근대시를 이끌었지만, 곧 당대 한국 현실을 정면으로 조명하고 비판하는 시들이 주로 개벽 지를 통해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 시들은 주로 비통과 분노의 정서의 표출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했다. 시의 형식은 선배들의 그것보다 산문적인 성격이 짙었고, 그 시들에서 아방가르드적인 언어 실험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1920년대 초중반의 식민지 조선에서 19세기 후반에 주로 창작된 독일 자연주의 시와 유사한 경향이 등장한 것은, 소설에서처럼 자연주의를 수입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19세기 말의 독일과 20세기 초의 한국이 어떤 동질적인 시대 전환기를 맞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통일 이후 독일에서는 산업화의 진전과 동시에 대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920년대 초중반의 조선에서도, 독일의 규모보다는 훨씬 그 정도가 작겠지만, 산업 경제로의 재편과 경성의 근대도시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진행되면서 도시 규모는 팽창한다. 동시에 도시 빈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도시 공간에서 섞이게 되며 언어생활도 혼종적인 성격을 더하게 된다. 대도시 공간엔 정치적인 긴장이 가로지르게 되고 산문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독일의 대도시에서도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도시의 양면적인 성격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1920년대 초중반에 도시의 그러한 성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대의 편차가 있지만, 독일과 조선에서는 자본주의적 도시화에 따른 동질적인 폐해가 등장했으며 그래서 이 폐해에 대한 특정한 문학적 반응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어떤 특정한 반응을 자연주의(‘자연주의’를 기치로 내걸었건 내걸지 않았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연주의의 그 ‘특정한’ 반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일 자연주의 시인인 아르노 홀츠가 “예술은 환경 속의 인간을 가능한 그대로 정확히 재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주의는 근대적 환경-특히 빈궁과 환락이 교차하고 사회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대도시-에서의 삶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가감 없이 문학을 통해 재생하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를 근대의 복합성에 대한 자연주의의 ‘특정한’ 반응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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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연주의 작가들은 대도시의 진면모는 화려한 중심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가에 대비되는 빈민가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주로 도시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재생하려고 했다. 1920년대 중반 일군의 한국 시인들도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한 삶을 시의 주제로 삼았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에서도 자연주의를 기치로 내걸지 않았지만 자연주의적인 시가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시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한국 근대시 탐구에서 ‘자연주의’ 개념 도입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연주의 개념을 어디까지 한정시킬 것인가가 문제로 제기된다. 모순으로 뒤엉킨 근대적 삶에 대한 문학적 반응이 자연주의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박찬일은 독일 대도시시 연구에서 자연주의뿐만 아니라 표현주의, 사실주의, 브레히트의 리얼리즘 시에서 ‘대도시시’의 특성을 탐색하고 있다. 한국 문학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리얼리즘뿐만 아니라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에서 도시적 삶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의 차이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 표현주의 등은 방법적으로 언어 실험이나 언어의 변형을 중시했다면,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에서는 언어 실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두 조류 모두 현실의 객관적인 재현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자연주의 연구자들은 “여러가지 점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한 강화된 형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조류가 인식론 상으로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사회를 체계System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환경Milieu으로 인식하였다. 구조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피상적으로 인식하였다.”라는 지적은 그러한 의견과 연관된다.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의 인식론 상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한 것은 알다시피 루카치다. 루카치는 “생성되고 있는 세계를 함께 체험하고 나서 자신이 체험한 삶의 경험 및 투쟁 경험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리얼리즘, 가령 “모든 서사적 사건 및 인물의 행동들이 인물들에게 의미심장한 상황 속에 있”는 톨스토이의 리얼리즘과는 달리, 졸라의 ‘과학적’ 방법은 “그 객관주의를 통해 사회적 세계상의 빈곤화 및 모순 속에 있는 사회적 추동력들의 빈곤화를 단지 피상적으로만 은폐할 뿐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편, 정명환은 자연주의에 대한 루카치의 비판적 평가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주의(졸라)와 리얼리즘(톨스토이, 발자크)의 차이에 대한 루카치의 입론과 비슷하게 “발자크의 소설에 있어서는 사회의 움직임이 인물에 대해서 종속적이며 그 의미 역시 인물을 통해서 현시되는 반면에 졸라의 경우에는 그 주종관계가 뒤집혀진다”고 말하고 있다. 정명환도 발자크로 대표되는 리얼리즘에서는 ‘사회의 움직임’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인물의 행동으로 소설의 서사가 구성된다면, 자연주의의 경우에는 ‘사회의 움직임’에 종속된 개인의 묘사가 주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움직임’에 인물을 종속시킨다는 생각은, 졸라의 첫 자연주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즈 라켕 제2판 서문(1868)에서의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는 진술과 연관된다. 성격은 개인이 사회와 부딪치면서 형성된다고 한다면 기질은 그 개인에게 주어진 유전적 환경과 같다. 그래서 자연주의에서 인물은 더욱 환경에 종속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정명환은 “유전과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졸라의 결정론적 명제는 인간의 주체성의 부정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물이 환경에 종속된 양상을 탐구하는 졸라의 자연주의는 인물의 전형적 성격과 능동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과 차별성이 있다고 하겠다.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의 차별성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은 소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시에서도 그러한 논의가 적용될 수 있을까? 시인의 태도가 자연주의 소설가의 태도와 비슷하다면, 그리고 특정한 환경에 마주친 서정적 주체의 반응이 자연주의 소설의 인물의 반응과 비슷하다면, 이러한 논의를 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어떤 시가 비참한 환경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거나, 시의 서정적 주체가 환경에 ‘기질’적인 반응-무작정 분노를 표출한다거나 대책 없는 파괴성을 드러낸다거나 하는-을 보여줄 때, 그 시를 자연주의 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자연주의 시는 근대적인 환경이 설립되면서 생겨난 사회적 삶의 비참을 묘사하거나, 서정적 주체가 그 비참에 대해 기질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시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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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연주의를 처음으로 제창한 이는 염상섭이다. 그는 「개성과 예술」(1922)에서 “자연주의 사상은, 결국 자아각성에 의한 권위의 부정, 우상의 타파로 인하야 유기誘起된 환멸의 비애를 수소愁訴함에, 그 대부분의 의의가 있다”고 하면서 자연주의는 “현실폭로의 비애, 환멸의 애수, 또는 인생의 암흑추악한 일반면一反面으로 여실히 묘사함으로써, 인생의 진상은 이리하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폐색된 환경과 부딪치는 자아의 ‘환멸’과 ‘비애’에 중점을 두는 이러한 자연주의관은, 정명환에 의하면 염상섭을 결국 “강렬한 자기 주장을 시도하는 낭만주의자로서의 길”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서 졸라가 「실험소설론」에서 제출한 관찰과 실험을 중시한 자연주의관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임화는, 졸라와는 달리 개성을 강조하는 자연주의가 ‘조선적 자연주의’를 낳았다고 논하고 있다. 임화는 ‘조선 자연주의’를 “개성의 자율이란 것이 당면의 과제가 된 시대의 양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하고, “반봉건성의 두터운 잔재가 침전되어 있는” 사회생활 가운데에서 “정말로 근대적이요 인간적인 요구는 우선 사회를 떠나서 순개인의 입장에 돌아온 다음에 제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조선 자연주의’의 문학사적 의의를 평가한다.
그런데 개성의 자율을 내세우는 문학이 어떻게 자연주의적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임화는 프리체의 견해를 빌어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대상의 철저한 묘사로 작가를 인도한다”고 하여 해명한다. “즉 악한 것으로 시민 사회를 제시하기 위하여 그것의 정치한 묘사로 들어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자연주의’ 소설은 객관적 묘사와 더불어 환멸과 비애의 정서가 짙게 드러나게 된다. 임화의 입론을 수용하고 있는 박상준에 따르면, 1920년대 초기 소설이 현실의 객관적 묘사보다는 환멸과 비애의 정서 표현에 더 치중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면, 1922-3년경의 한국 소설은 환멸과 비애를 일으키는 현실에 대한 핍진한 묘사 쪽으로 나아간다. 박상준은 이러한 경향이 신경향파 소설에까지 지속된다고 보고, 1920년대 중반의 소설계(1923-1927년)의 주된 경향에 대해 자연주의라고 지칭한다. 임화나 박상준의 입론을 시에 대입해본다면, 한국 시에서의 ‘조선 자연주의’ 역시 1920년대 중반에 나타난다고 예상해볼 수 있다. 시와 소설의 장르적인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 초기에는 하나의 문학적 노선이 들불같이 문단을 휩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예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 테다. 사실 비참한 현실에 대해 묘사하는 시는 1920년대 초반부처 조금씩 발표되고 있었다.
썩어가는 얼굴에
분을 케케히 바르고
동물원 살창 속 같은
창루에 나앉은
웃음 파는 계집아이
너는 실망치 마라
세상 사람은 모다
너를 비방하나
그들은 은근히
너를 부러워한다
너는 다만 돈을 원하나
그들은 너보다도 더
복잡한 소망을 가진
형형색색의 창부이다
- 김석송, 「웃음파는 계집」(개벽 1922년 3월호) 전문
무거운 바람 흔들리는 황혼에
우는 듯 찬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이름 없는 가난한 마을에--.
오막살이들 찌그러진 대문 안고서
겉으로 찬비를 맞아
안으로 누렁물 흘리는 저 속에
때 맞춰 일어나는 기아의 무도舞蹈를
누구라 알리오 아는 이 없어--
그러나 집집이 숨은 촉루髑髏는 알련마는
「빈궁은 비밀이라」고.
(중 략)
빈궁은
이 마을 사람의 알파요 오메가다.
빈궁의 촉루는
뱃속부터 한 평생을 두고두고
일터로 일터에 뒤를 좇다가
허리가 꼬부라지면 앞장을 서서는
아사를 최후의 선사로 싸들고
내던지는 자선을 주어 먹인다.
아아 천당 처분도 돈이라는 이 시절이여!
이제 어디선지 교당의 쇠북이 운다.
비에 닫힌 저자거리를 숨어서 넘어서는
통곡의 이 동구洞口로 흘러온다.
(후 략)
- 노초생路草生, 「비오는 빈촌」(신생활6호, 1922년 6월 5일) 일부
1920년대 초까지 한국 근대시가 시인의 정서 표현에 주력했던 반면, 여기 인용한 석송 김형원의 시와 노초생의 시는 어떤 비참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김형원의 위의 시는 창부를 묘사한다. 창부는 “썩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이는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1920년대 당시 매독 같은 성병은 난치병이었고 상당히 퍼져 있었다. 매독에 걸리면 살이 썩어 들어가고 코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창부의 얼굴이 썩어간다는 것은 비유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시인은 그 시구를 통해 창부의 삶이 부패했다는 것을, 그리고 창부가 그 부패를 분으로 가리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시인은 그 삶이 창부의 잘못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창부는 동물원 창살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창살을 만든 이는 근대 사회 자체일 것이다. 그 사회는, 저 실제의 창부가 단순히 돈을 원하는 것과는 달리 더욱 부패하고 “복잡한 소망을 가진” 또 다른 창부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창부들이 득시글대는 사회가 근대인 것이며, 근대 사회가 저 창부를 동물원 창살 안에 가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을 전달하는 이 시는 매우 단순하긴 하지만, 시인은 이 이 시에서 예전 시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창부와 같은 대상을 조명하면서 사회의 ‘암흑면’을 폭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비오는 빈촌」에서도 사회의 ‘비밀’로 존재하는 빈궁을 폭로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찬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 가난한 마을의 오막살이를 묘사한다. 찌그러진 대문이 서 있는 오막살이 속엔 해골(촉루)이 기아의 무도를 벌이고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죽음의 무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지만 말이다. 기아의 무도는 빈궁한 삶을 의미한다. 빈궁은 이 마을 사람이 한 평생 일터의 뒤를 쫓게 만들고 결국 허리가 꼬부라져서 아사하도록 만든다. 이 고통스러운 삶에는 죽음의 해골만이 자선처럼 최후의 선물로 주어진다. 그래서 빈궁은 이 마을 사람들 삶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러한 빈궁이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천당처분도 돈이라는 이 시절”이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구절이 말해주듯이 화폐가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시장이 사회에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사회의 비참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현실을 묘사하고자 하는 경향은 다음과 같이 상징주의적인 분위기를 창출하려고 한 시에도 관통되기 시작한다.
저자 바닥에 박혀 있으면서
연못아! 얼마나 오래
너는 말없이 지내어 왔느냐
오오 얼마나 오래
너는 색색色色이 것을
긁어모으며 지내어 왔느냐!
--나온지 며칠 안되는
피투성이의 간난아이를
몇 개나 몇 개나
먹고 왔느냐
--가난한 젊은 수줍은 계집애를
너는 몇 번이나 네 속으로 뛰어들게 하였다!
그러고 그 계집애의 늙은 어머니의
설어서 슬어서 독毒먹고 죽은 모양을
너는 네 가슴에다 박아가지고 왔다!
--네 위에 걸친 다리 위에서
몸을 굽히고 속살거리던
사내와 계집의 그림자도
너는 마시어가면서 지내어 왔다.
--계집과 껴안고 정사情史한 사내
--눈보라 치는 어느날 밤에 빠져 죽은 불쌍한 거지,
--主人에게 쫓기어난 젊은이, 그러구는
스트라이크가 화禍가 되어서 집없이 된 사람들의 눈물,
--주권자에게 반항한 용사의 부르짖음
--그러구는 나 같은 밥버러지의
고금古今을 생각하고 내뱉는 한숨--
이것들의 형상과 그림자들을 너는 똑같이 가지고 왔다
그러고 그 위를 흐르는 달빛은
아아 몇 백년이나 오래인 동안을
밟고 넘어서 지내어 갔느냐
- 김기진, 「한 개의 불빛」 일부(백조 1923년 9월호)
백조 파의 시에서 연못은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소재이다. 이 시에서 김기진이 연못을 소재로 선택한 것은 이 시를 쓸 당시에도 그가 백조 파의 낭만주의적인 기질을 벗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연못 위에 드리운 달빛에 대해 운운하는 구절도 그러한 낭만주의적 기질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낭만주의적인 소재는 위 시에서 몽롱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고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저 연못은 사람들의 비통한 죽음을 말없이 증언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 연못에 빠져 자살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연못은 비참하게 살다가 죽은 모든 조선인들을 비추어주는 무엇으로 상징화된다. 궁핍한 집안 사정 때문에 저 연못에 빠져 죽어야 했을 간난아이들, 가난 때문에 팔려나가야 했기에 자살 했을 수줍은 소녀들, 그 소녀를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다는 설움으로 독약을 먹고 자살한 늙은 어머니, 집 주인에게 쫓겨난 사람들, 폐색된 반봉건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들, 스트라이크에 참여했다가 직장도 잃고 집도 잃은 사람들 등, 조선 사회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야 했던 모든 삶, “용사의 부르짖음”과 ‘밥버러지’ 지식인-‘나’-의 한숨도 저 연못은 마셔 왔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 연못은 자기가 마셔 왔던 그 모든 비통한 삶들과 사람들의 열망, 한숨 등의 “형상과 그림자들을” 이제 “똑같이 싸가지고” 온다. 그렇다면 저 연못은 조선인들의 한을 상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김기진이 생각하는 문학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겠다. 즉 위의 시는, 문학은 저 연못처럼 비참한 조선 현실의 “형상과 그림자들을” “똑같이” 비추어내야 한다는 김기진의 문학관을 표명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위의 시는 그러한 문학관이 표명만 되어 있지 “형상과 그림자들을” “똑같이” 정치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백조의 같은 호에 실린 「연못에 서서」에서의 “초저녁 고요히 잠들은 연못에/전기불의 광고 글자가/깊흐게 깊흐게 빠져버린다”와 같은 구절이나 “그러고 두 번째 가을의 계집은/그의 가벼운 치맛자락을, 연못 우으로/치렁치렁하게 끌며 지내가--”와 같은 다소 상징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구절에서 연못에 나타나는 “형상과 그림자들을” “똑같이” 묘사하고자 하는 시인의 자연주의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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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연주의 소설은 1920년대 ‘신경향파’ 소설이 등장하면서 제2기로 들어선다. 알다시피 박영희가 개념화 한 ‘신경향파’란, 염상섭, 김동인, 현진건, 나도향 등의 자연주의 소설과는 다른 경향의 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한 일군의 작가들을 지칭한다. 1925년 말 박영희는, 일군의 새로 등장한 작가들-김기진, 조명희, 이익상, 주요섭, 최서해, 박영희, 송영, 최승일 등-이 1924년 말에서 1925년에 걸쳐 발표한 소설들이 “부르조아 문학의 전통과 전형에서 벗어나와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고, 그 새로운 경향이란 “일반으로 그 창작의 내면을 보면 유탕遊蕩을 떠나고 정서지상을 떠나고 압박과 착취적 기분을 떠나 생활에, 사색에, 해방에 민중으로 나아오려고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신경향파 소설의 작법상 특징으로 “자연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의 묘사법이 많이” 보이나 “주인공의 최종은 파괴, 살인, 조소, 선전……등의 답변”을 내놓는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에 그는 신경향파 소설의 대두에서 “우리는 고민기에서 환멸기로 환멸기에서 활동기에 이르렀”다는 문학사적 전망을 도출했다.
하지만 박영희도 자연주의의 묘사법이 많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듯이, 신경향파 소설은 이전의 자연주의 소설과 본질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임화는 신경향파를 낭만적 주관주의와 관계되는 박영희 ‧ 김기진 등의 소설 경향과 조선 자연주의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은 최서해 ‧ 이기영 등의 소설 경향으로 나누고 있다. 물론 ‘프로 문학자’인 임화도 신경향파 문학이 “자연주의의 몰관념성에도 대립하고 이상주의나 ‘데카당스’의 주관주의에도 대립한 문학”이라고 하여 신경향파의 자연주의 극복을 강조하고 있으나, 신경향파의 한 조류가 자연주의의 연장이기도 하다는 면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임화의 소설사론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는 박상준은 신경향파 문학을 루카치가 개념화 한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라고 지칭한다. 루카치에 따르면 자연주의의 여러 형태의 공통점은 “이념적 원리와 개별적 사실 사이의 관계가 약화된다는 점”에 있으며 “프라그마티즘과 경험주의가 자연주의적 경향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는 “교조주의와 프라그마티즘으로의 양극화가 중요한 이념적 요인이” 되는데 “마르크스주의를 너무 직접적으로 실천적 일상적 문제들에 적용하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고 루카치는 논한다.
박상준은 루카치의 그러한 논의를 끌어들여 신경향파 소설이 “막연하게나마 작품 외부로부터 주어진 틀에 따라 작품이 주조되”며 “외부적인 틀의 존재는 대체로 서사 진행상의 급작스런 단절의 형식을 통해 확인”되기에, 신경향파의 핵심은 ‘사회주의적 자연주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 단절은 급작스러운 ‘살인 ‧ 방화 ‧ 광기’ 등으로 서사를 비약적으로 종결짓거나 작가 서술자가 이질적인 담화를 끌어들여 서사를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임화의 분류에 따르면 전자는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객관적 경향이고 후자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주관적 경향이라고 하겠다. 한편 루카치의 입론에 따르면, 임화가 말한 주관적인 경향 역시도 자연주의로 보게 되는데, 필자로서는 주관적 이상주의의 경향까지 자연주의에 포함시킨다면 자연주의의 외연이 너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즉 신경향파의 두 경향 중 최서해적인 소설 경향만이 ‘자연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자연주의’에 포함된다고 판단한다. 허나 최서해적인 신경향파 소설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드러난다거나 작가가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계급 대립이 격렬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최서해적인 경향’의 신경향파 소설을 ‘제2기 자연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적 자연주의’라고 개념화하면 어떨까 생각된다.
‘최서해적인 경향’의 자연주의도 감추어진 현실의 비참한 면을 폭로하는데, 그 경향은 주로 극히 빈궁한 삶을 조명하고 그 삶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부자의 추악한 면모를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는 박영희도 지적했듯이 그 갈등을 빈궁한 자의 부자에 대한 살인과 방화 등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로 해결한다. 얼핏 보면 살인과 방화는 주체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행하게 되는 것으로서 자연주의의 객관주의와 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살인과 방화는 주체가 극한 환경에서 그 환경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환경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파괴적인 기질이 폭발하면서 미친 듯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도 현실 환경의 암울한 면과 부르주아의 추악한 면이 폭로되면서 이에 대해 서정적 주체가 기질적으로 반항하는 방식-이 역시 수동적인 반동적 반응일 뿐이라고 할 수 있는데-으로 대응한다면, 이를 ‘최서해적인 자연주의 시’ 혹은 ‘제2기 자연주의 시’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시는 카프가 결성된 1925년 이후, 특히 1926년에 발표된 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봄은 되었다면서도 아직도 겨울과 작별을 짓지 못한 채
--낡은 민족의 잠들어 있는 저자 우에
새벽을 알리는 공장의 첫 고동소리가
그래도 세차게 검푸른 하늘을 치받으며
삼천만 백성의 귓 곁에 울어나기 시작할 때
목도 메다 치여 죽은 남편의 상식상을
미처 치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달려온
애젊은 아낙네의 가쁜 숨소리야말로……
악마의 굴속 같은 작업물作業物 안에서
무릎을 굽힌 채 고개 한번 돌리지 못하고
열두 시간이란 그 동안을 보내는 것만 하여도--오히려 진저리나거든
징글징글한 감독 놈의 음침한 눈짓이라니……
그래도 그놈의 뜻을 받아야 한다는 이놈의 세상--
오오 조상이여! 남의 남편이여!
왜 당신은 이놈의 세상을 그대로 두고 가셨습니까?
--아내를 달리고 자식을 애태우는--
-적구赤驅, 「여직공」(개벽 1926년 4월호) 전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면서도 성적으로도 희롱당해야 하는 여직공의 삶을 묘사하는 적구 유완희의 이 시는, 본격적으로 식민지 근대화가 진행되어 공장이 설립되고 노동자가 그 공간속에서 착취당하기 시작하는 당대의 가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겨울과 작별하지 못한 세월의 새벽을 깨우는 것은 공장의 고동소리다. 그 소리는 노동을 독촉하기 위해 노동자의 잠을 깨우는 소리다. 이 소리가 울리는 하늘은 노동자의 암울한 삶과 같이 검푸르다. 1연은 이러한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지옥 같은 삶을 일반화해서 드러낸다. 2연부터는 어떤 여직공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남편은 목도(무거운 물건을 두 사람이 짝이 되어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일)메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상에 차려놓은 식상(食床)도 다 치우지 못하고 공장에 가야 했다. 공장은 남편 상을 치룰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3연에서는 공장에서의 노동과정이 제법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 노동은 열두 시간 동안 “무릎을 굽힌 채 고개 한번 돌리지 못하”는, 인권이 무시당하는 노예노동이다. 노동 과정 자체에서 인권이 무시되니 감독 역시 여직공의 인권을 존중할 리 없다. 그가 음침한 눈짓을 그녀에게 계속 보내는 것은 그녀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 삼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공장 내의 노동 상황에 대한 제법 정치한 묘사는 곧장 서정적 주체의 탄식으로 이어진다. 3절에서 언급한 시들에서는 서정적 주체의 개입이 자제되고 있다면 이 시에서는 서정적 주체의 감정이 담긴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놈’, ‘이놈’과 같은 비속어라든지 “악마의 굴속” 같은 표현이 그렇고 마지막 연에서의 탄식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최서해식의 신경향파 소설과 같은 극단성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이후에 서정적 주체의 감정적인 반응-깊은 탄식-이 나오는 것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극단적인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과 구성상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래의 시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감정적 반응만을 전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쇠잔한 저자거리에 모여 선
불퉁스런 무리의 얼굴 위에
맨 끝의 공론이 맺어질 때
잿빛 어스름이 땅을 휩쓸려 어르광진다
전선戰線으로…………
동무여!
북을 내어던지자
바지를 찢어버리자
한 올이나마
한 자이나마
그리고 공장 바닥을 뒤집어 놓자
배가 주리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이 남는 순간까지
전선으로…………
한 사람이 부르짖었다
으악… 으악… 군중은 흥분되어
사장실을 에워쌀 때
문고리에 쇠나리는 그의 마음…
해쓱한 그의 얼굴… 눈……
창을 깨트리고
죽이자! 저 비겁한 녀석을
군중은 더욱 흥분되었다
그대들이여
될 수 없노라! 이 공장을 쉬어도
한번 내린 삯을 올릴 수는 없다
가거라! 가거라! 하기 싫거든………
떨리는 전무專務의 선언宣言
한 시간이 지난 뒤
부서진 의자의 유해遺骸의
비린내 떠도는 방속에
넘어진 두 생명의 민절悶絶이여!
가난한 무리의 내친 설움!
전선으로…………
파괴………… 광光…………
- 김창술, 「전선戰線으로」(조선일보 1926년 1월 1일) 전문
김창술의 이 시 역시 배경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이 시도 앞의 시에서처럼 ‘저자거리’가 공간적 배경이다. 시간적 배경은 저녁 어스름이다. 공간적 배경은 ‘쇠잔’해 있고 시간적 배경은 ‘잿빛’이다. 이 역시 이 시에 등장하는 ‘불퉁스러운’ 노동자 군중의 삶을 상징한다. 이러한 시공간 속에서 사장단이 임금 삭감을 결정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분노하여 노동복을 찢어버리고 공장 바닥을 뒤집어놓자고 외친다. 분노가 파괴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들 노동자들의 행동은 집단적이라는 면에서 신경향파 소설에서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반항과는 다르지만, 한편으로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이라는 면에서는 신경향파 소설에서의 반항과 그 성격이 같다. 노동자들은 분노 속에서 “창을 깨트리고”“죽이자!”며 회사 임원들에게 달려들고 물품을 파괴한다. 이러한 행동은 기질적인 흥분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환경에 수동적인, 그래서 자연주의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행동은 격렬하긴 하지만 환경에 대응하여 미래를 구축하는 능동성은 없다.
한편 이 시에서 이러한 자연주의적인 반응은 서정적 주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묘사하는 군중들이 행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행동을 묘사하면서 “전선으로”라는 구호를 반복하거나, ‘파괴’ ‘광’과 같은 말로 행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능만 한다. 그는 묘사와 더불어 추임새만 넣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아래의 시에서는 시적 화자가 흥분에 휩싸여 다음과 같이 격렬한 진술을 하고 있다.
곰의 돗바늘 같은 혓바닥!
이리의 송곳 같은 날카로운 이빨
무지한 자의 피를 빨고 약한 자의 살을 찢어 먹던
흉녕凶獰하게 생긴 저 악독한 입술!
오 - 보느냐?
저 단말마斷末魔를?!
혀를 깨물어 늘어트리고
흰 이빨을 들어내 놓은 채
컥컥- 넘어가는 마지막 숨을 내뿜으며
갖가지로 부대끼며 괴로워하는
저 횡포橫暴한 자의 단말마의 꼴?!
오 - 약한 무리들이여!
다 - 같이 팔을 크게 멀려
높은 소리로 개선가를 부르자
- 김해강, 「단말마斷末魔」(조선일보 1926년 3월 14일) 부분
위의 인용부분은 3절로 이루어진 이 시의 1절이다. 다른 두 절도 위의 시와 대동소이하다. 이 시에서 서정적 주체는 흥분 상태에서 “약한 무리들”을 피 빨아 먹어온 지배계급의 횡포와 그 계급이 현재 빠져 있는 ‘단말마’의 상태를 묘사한다. 지배 계급은 최대한 흉악하게, 곰이나 이리와 같은 악독한 짐승에 비유된다. 그리고 피지배 계급에 대한 착취 행태는 “무지한 자의 피를 빨고 약한 자의 살을 찢어 먹던”과 같이 극단적인 표현으로 묘사된다. 한편 사건과 그 사건이 벌어진 환경에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 극단적인 묘사가 급작스럽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정적 주체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이 구절들을 표현주의적이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흥분 상태이긴 하지만 시적 화자는 지배 계급의 흉포함과 그 몰락을 묘사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가 환경과 그에 종속된 인물의 기질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한다고 할 때, 이 시는 서정적 주체가 자연주의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기질적인 흥분을 드러내고, 그 흥분을 유발시킨 악독한 상대방-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 역시 변형된 자연주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서정적 주체의 이러한 격심한 분노의 표현은 신경향파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흥분에 휩싸여 행하는 파괴와 대응된다. 그래서 이 시 역시 ‘최서해적인 자연주의 시’ 혹은 ‘제2기 자연주의 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5
지금까지 1922년에서 1926년까지 발표된 ‘조선 자연주의 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조선 자연주의 시’가 문학사적 추진력을 상실하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카프의 목적의식론이 제기되고 시에서 주체의 능동성이 중시되는 1927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절망에 휩싸여 무작정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서 끝나는 신경향파 소설은, 목적의식론에 의해 비판되기 시작한다. 그러한 출구 없는 행동은 유산자에 대한 증오는 보여줄 수 있지만 전망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파괴적 행동은 인물이 환경을 만들어가는 주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인물이 환경에 더욱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에 신경향파 소설은 자연주의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인데, 카프의 목적의식 논자들은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환경에 좀 더 주체적으로 대응하며 행동하는 인물을 소설에 요구했다. 즉 리얼리즘을 요구한 것인데, 이러한 요구가 도식적으로 강요되고 ‘프래그머티즘’적으로 흐르면 루카치가 개념화한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로 빠지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필자는 그러한 도식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에 종속된 문학 작품을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한다면 자연주의 개념의 외연이 너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문학 작품은 리얼리즘도 자연주의도 아닌 도식적인 목적문학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소설 장르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 요구되었듯이, 시에서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시적 화자가 요구되었다. 현실을 폭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현실을 능동적으로 변형시켜 시화하고, 또한 시적 화자가 그 현실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1927년 당시 이러한 요구에 성공적으로 응답한 시인이 임화였다. 임화는 1927년 초부터 다다이즘과 같은 아방가르드적인 시를 선보였으며, 자신이 추구한 그 미적 전위성을 1927년 후반기에는 정치적 전위성으로 돌려 「담曇-1927」과 같은 성공적인 선전선동시를 발표했다. 현실을 어떻게 하면 진실 그대로 문학화 할 수 있을까 고심한 자연주의는 현실 재현적인 형식 자체를 문제시삼지 않았다. 하지만 아방가르드는 그 재현 형식을 파괴하여 대중에게 충격을 주고 대중의 습성을 뒤흔들고자 했다. 그렇기에 아방가르드적인 시 쓰기의 등장은 자연주의와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른 조류가 출연한 것이었다.
또한 선전 선동시를 쓰는 시인은 서정적 주체가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독자의 감응을 유발하면서 제시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선전선동시에서의 시인은 어떤 사건이나 환경에 이끌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고 그 사건과 환경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주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리얼리즘 소설에서 환경에 대응하는 인물이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려고 시도하듯이 선전선동시에서의 서정적 주체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전선동시는, 서정적 주체가 현실의 추악상을 폭로하고 그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자연주의 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다. 그래서 임화의 성공적인 선전선동시 창작은 ‘프롤레타리아 자연주의 시’와는 다른 차원의 ‘프로시’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전선동시란 ‘좋은’ 선전선동시를 가리킨다. 미리 정해진 도식과 ‘위’에서 정한 내용으로 쓰는 선전선동시는 임화가 비판한 바 있는 ‘뼈다귀 시’에 불과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선전선동시는 그런 류의 시와는 상관이 없다. ‘좋은’ 선전선동시와 자연주의 시와의 차이를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시인 임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초기 프롤레타리아 시가의 모범작”이라고 평가받은 「담-1927」의 전반부를 여기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기로 한다.
뿌르죠아지의 ××
1918
이백만의 프롤레타리아를 ‘웰탄’ 요새에서 ××한
그놈들의 ××행위는 악학惡虐한 수단은
‘스파르타키스트’의 용감한 투사
우리들의 ‘칼’, ‘로-자’를 빼앗었다.
세계의 가장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동무를
혁명가의 묘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강철 같은 우리의 전열戰列은
×인자人者──그들의 폭학暴虐도 궤멸케 하지를 못하
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놈들은 완강하다
그놈들의 허구虛構수단手段과
××행위는 아직도 지구의 도처에서 범행되어간다
1917──태양이 도망간 해
세계의 우리들은 8월 20일 지구발地球發전보電報를 작성하였다
제1의 동지는 뉴욕 사크라멘트 등등지에서 수십 층 사탑死塔에 폭탄 세례를 주었으며
제2의 동지는 핀란드에서 살인자 미국의 상품에 대한 비매동맹非買同盟을 조직하였고
제3의 동지는 코-펜하겐에 아메리카 범죄자의 대사관을 습격하였으며
제4의 동지는 암스테르담 궁전을 파괴하고 군대의 총 끝에 목숨을 던졌고
제5의 동지는 파리에서 수백 명 경관을 ××하고 다 달아났으며
제6의 동지는 모스크바에서 치열한 제3인터내셔널의 명령 하에서 대시위운동을 일으키었고
제7의 동지는 도-쿄에서 ××자의 대사관에 협박장을 던지고 갔으며
제8의 동지는 스위스에서 지구의 강도 국제연맹본부를 습격하였다
(그때의 그놈들은 한 장에 200냥짜리 유리창이 깨여진 것을 탄식하였다──눈물은 염가다)
오오 지금 세계의 도처에서 우리들의 동지는 그놈들의 폭압과 ××에 얼마나 장렬히 싸워가고 있는가
이성혁(李城赫)
-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외대, 세명대, 중앙대, 추계예대 출강.
2003년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