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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明>十九年壬寅,春正月,以<類利>太子為正胤.上,召<乙音>密詔曰“吾疾不可須叟,欲以汝妹妻<類利>而傳囯,可速召来.”<乙音>,乃與<溫>公主,如<牛壤>告其意.<召>后曰“吾非<王嬙>,安肯與<莫車>相通邪.”<乙音>曰“天下事宜從大勢.今,<類利>已定,名分而英勇不下於聖上.背之則敗,順之則成.况,上,以奇症,朝不慮夕,欲以汝妻之而傳位,機不可失也.汝,若不肯,必敀於<旃>與<大房>,<大房>執政則吾輩魚肉矣,何不思之.”<召>后乃悟而還都謁上.上曰“吾疾似非尋常,可如東宮好為之.吾已許汝于東宮矣.”<召>后抱帝而哭曰“汝何言邪.死則同死,生則同生.”上,命召東宮来,使抱<召>后而去.后謂東宮曰“妾非敢逆命也,奈聖候如此何.”東宮曰“謹當如命矣.”自是,囯之大事,東宮與<召>后决之.后,務從東宮之意而不自執,己唯以美服濃粧送眼挑情.東宮,徃徃有難時,抱后腰而埋頭.后撫之從容曰“妾不敢不知,時猶未至也,願東宮自重.”乃命<溫>主扶東宮而去.東宮顧后而欲倒,后亦怳惚自倒亦数矣.自是,后慕東宮之心頓加.上,見后愛東宮之狀則喜,不然則怒.一夜,東宮與后侍上而困,東宮頹臥而睡,后引東宮之首枕后股而侍,上覺而見之喜而歌曰“此股本我股,今為東宮股,東宮則我身,彼股亦我股.”后,乃低首,面上而又面東宮,東宮乃覺.
[二]月,<鵲>夫人生<鵲>太子,<陜父>妻<柴花>乳之.
三月,以<斗切>太子,為<溫祚>太子,為<桓那>沛者.上命以<斗切>太子為<類利>太子之故,改名<溫祚>者也.
<동명>19년임인{BCE19}, 춘정월, <유리類利>태자를 정윤正胤{東宮}으로 삼았다. 상께서 <을음乙音>을 부르시어 은밀히 조칙詔勅하시길 “내 병이 나이 먹기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네. 자네 여동생{召西奴}을 <유리>에게 처로 주어서 나라를 물려주고자하니 속히 불러오게나.”라 하셨다. <을음>이 이에 <온溫>공주와 함께 <우양牛壤>으로 찾아가서 그 뜻을 알렸더니, <소召>후가 이르길 “내가 <왕장王嬙>이 아닌데, 어찌 <막거莫車>와 더불어 상통할 수 있겠소?”라 하기에, <을음>이 “천하天下의 일이란 마땅히 대세大勢를 따라야 하는 것이야. 지금 <유리>로 이미 정해졌으며, 명분이 분명하고{評判이 確實하고} 용맹勇猛하기도 성상聖上보다 못하지 않음이니, 불복不服하고 배척排斥하면 패敗할 것이며 순응順應하면 이룰 것이야. 상의 환후患候가 위급하여 아침에 밤일을 걱정할 수 없음이니, 자네가 그의 처가 되어서 보위를 물려받으면 잃는 것이 없을 것이네. 자네가 응하지 않으면 필시 <전旃>후나 <대방大房>후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고, <대방>이 집정執政하면 우리 무리들은 어육魚肉이 될 것인데, 어찌 그 것은 생각지 아니하는가?‟라 하였더니, <소>후가 마침내 깨닫고서 도성都城{西都}으로 돌아와서 상을 배알하였다. 상께서 “내 병이 심상치 않은 듯하니, 그대가 동궁에게로 가서 그와 잘 지냈으면 하오. 나는 이미 그대를 동궁에게 허락하였소.”라고 이르셨더니, <소>후는 제를 껴안고 곡哭하며 아뢰길 “당신께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라 하였으나, 상께서 명을 내려 동궁을 불러오게 하셔서 <소>후를 안아 가게 하셨더니, <소>후가 동궁에게 말하길 “첩은 감히 명을 거스를 수 없겠습니다. 성상께옵서 안위安危가 이러하시니 어쩌겠습니까?”라 하였고, 동궁도 “삼가 하명하신 대로 할 뿐입니다.”라 하였다. 이때부터 나라의 큰 정사는 동궁과 <소>후가 처결하였다. <소>후는, 동궁의 의중을 따르고 자신이 집정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예쁜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하여 눈길을 보내서 정감情感을 돋웠더니, 동궁이 왕왕 참기 어려워서 <소>후의 허리를 껴안고 머리를 파묻으면, <소>후는 그를 어루만지면서 나직이 말하길 “첩이 감히 모르는 것이 아니고 때가 아직 아니옵니다. 원컨대 동궁께서는 자중自重하세요.”라 하고는 <온溫>공주에게 명하여 동궁을 데려가게 하였다. 동궁이 <소>후를 찾아가서 넘어지려하면 <소>후 역시 황홀恍惚해하였으며 스스로 넘어진 것도 여러 번이었더니, 이로부터 <소>후는 동궁을 그리는 마음에 넘어지는 일이 늘어났으며, 상께서는 <소>후가 동궁과 친밀親密한 모습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노하셨다. 하루 밤에는, 동궁이 <소>후와 더불어 상의 곁을 지키다가 피곤하여서 동궁이 모로 누워 잠이 들었고, <소>후가 동궁의 머리를 끌어다가 <소>후의 허벅다리를 베게하고서 지켰더니, 상께서 깨어나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며 읊조리시길 “이 허벅다리는 본시 내 허벅다리로 지금은 동궁의 허벅다리이니, 동궁이 내 몸이며 저 넓적다리 또한 내 넓적다리로고.”라 하셨고, <소>후가 이에 고개를 숙여 상을 바라보고 다시 동궁을 바라보았더니, 동궁도 마침내 깨어났더라.
[2]월, <작鵲>부인{樂浪王柴吉女}이 <작鵲>태자를 낳았고, <협보陜父>의 처 <시화柴花{樂浪王柴吉女}>가 젖을 먹였다.
3월, <두절斗切>태자를 <온조溫祚>태자{天子位를 溫和하게 하는 太子?}로 하여서 「환나패자桓那沛者」로 삼았다. 상께서 명을 내려서, <두절>태자가 <유리>태자를 위하였던{正胤자리를 양보하였던} 까닭에, <온조溫祚>로 개명하신 것이었다.
四月,<西河>人<高星>等七十五人献猉獜,五彩具備丹角而碧蹄.上,與<召>后,詣<鸞庭>観之曰“<巨娄>去而猉獜来.吾其上天者歟.”<召>后怒曰“汝,年尙少,統業未盡,何為此言.”上曰“万事如浮雲而已.”遂臥而不言一晝一夜,命<召>后傳神釼金璽于正胤,<召>后乃抱釼璽而泣.上曰“善事新主,可也.何乃泣為.”后乃如東宮傳宝.東宮不受曰“父皇無恙,何作此事.”后曰“無何之症不可測矣.權,受之,何如.”東宮乃與后謁上.上,已不能言,只抱后手加于東宮之手而崩.上弦之月将落而光.后乃掩面而抱新上曰“妾之一生,從此,在于陛下.”新上曰“母邪.妻邪.囯之宝欤.汝,無我,則何以為后.我,無汝,何以為帝.”遂登床而歓好.月色皝皝,<召>后以臂蔽目曰“何,月之皝皝.”新上曰“<女楇>之夕,白日昭昭.今,卿之夕,紅月皝皝.皝皝昭昭,皆天之賜也.何,羞之有.”后,乃歛容而起,陪上而出.<烏伊>等俯伏山呼,遂卽位於新宮「鸞坮」. <旃>后‧<大房>后‧<鵲>氏‧<平>氏等欲殉,先帝以遺詔禁殉之.
4월, <서하西河>사람 <고성高星> 등 75인이 기린猉獜{죽음을 암시하는 짐승?}을 바쳤더니, 5색五色을 모두 갖추고 붉은 뿔과 푸른 발굽을 지녔었다. 상께서 <소召>후와 더불어 <란정鸞庭{西都鸞臺의 뜰}>으로 가시어 그 것을 보시고는 이르시길 “<거루巨婁>가 가더니 기린猉獜이 왔구먼. 내가 아마도 죽으려나 보지?”라 하셨더니, <소>후가 화를 내며 아뢰길 “당신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천하} 모두를 아우르시는 일을 끝내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 하였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만사萬事가 뜬구름 같을 뿐이오.”라 하시고는, 자리에 누우시어 하루 낮과 하루 밤을 아무런 말이 없으시다가, <소>후에게 명하시어 정윤正胤{東宮,類利}에게 신검神劍과 황금옥새黃金玉璽를 전하게 하셨더니, <소召>후가 신검과 옥새를 부여안고 울고만 있기에, 상께서 “새 임금을 잘 섬겨야 할 것이거늘, 어찌 울고만 있단 말이오.”라 하셨다. 이에 <소>후는 마침내 동궁으로 가서 보물寶物들을 전했더니, 동궁이 받지 않으면서 “부황父皇께서는 몸에 병病도 없으신데 어찌 이런 일을 하신단 말이오?”라고 일렀고, 이에 <소>후는 “까닭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신지라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음이니, 헤아리시고서 받으심이 어떠시겠습니까?”라 일렀더라. 동궁이 <소>후와 더불어 상을 찾아뵈었더니, 상께서는 이미 말을 하실 수 없으신지라 다만 <소>후의 손을 쥐어다가 동궁의 손에 포개놓으시고 숨을 거두셨고, 상현上弦달도 곧 떨어지려 어른어른하여져 있었다. <소>후가 이윽고 얼굴을 가려드리고 새 임금을 품에 안고서 아뢰길 “첩의 일생이 이리하여 폐하의 손에 남게 되었습니다.”라 하였더니, 새 임금{類利}이 “어머니인지? 처인지? 나라의 보배이시오. 그대는 나 없이 후가 될 수 없었음이고, 나는 그대 없이 어찌 임금이 되었겠소?”라 말하고는 침상에 올라서 기뻐하며 정을 나누었다. 달빛月色이 황황遑遑{뿌옇다}하여 <소>후가 팔로 눈을 가리고서 “왜, 달이 황황하지요?”라 하였더니, 새 임금은 “<여왜女媧>의 밤일에는 흰 태양이 소소昭昭{밝게 빛나다}하였다지만, 지금 경의 밤일에는 붉은 달이 황황하오. 황황하건 소소하건 모두 하늘이 내린 것이니, 어찌 겁낼 일이겠소.”라 하였다. <소>후가 이에 얼굴빛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더니, <오이烏伊> 등이 부복俯伏하여 임금의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길 외쳤으며, 이윽고 새로 지은 궁{西都}의 「란대鸞臺」에서 즉위하였다. <전旃>후・<대방大房>후・<작鵲>씨・<평平>씨 등이 순사殉死{따라죽기}하려 하였으나, 선제{芻牟}께서 조칙詔勅을 남기시어 순사를 금하셨다.
新上,與<烏伊>等議,曰“朕,以年少蔑識,專賴父皇之力而帝臨此位.然,囯家大事,多不知其所以成.今,邊方多事.外國若聞大行之丧則必有變動矣.秘不發丧,以行攝政之治,何如.”<烏伊>等俯伏奏曰“陛下聖明至此,臣等不勝欣賀.” 上,以軍事委於<烏伊>,政事委於<召>后. 上,以諒闇停後宮當夕,唯命<召>后‧<阿>‧<溫>二主侍側而已,<大房良>諫曰“天子之孝,以廣嗣為一,當立<溫>主為皇后而更選「公卿」女為妃嬪以廣嗣.”上以其汚濶不用,<良>又請三年之丧,上曰“此皆太平無事之事,秘不發丧者何以掛孝.”上聞<召>后之言每違<良>奏,<良>乃辞「太輔」而敀.<大房>后,亦以父故,請退.上不許曰“大行以卿等遺我,卿乃吾妻也.安敢以私親之故,請退乎.”乃命<旃>后‧<大房>后五日一夕,又召<貫貝>妃入宮受幸,<召>后不敢妬.
새 임금{類利}이 <오이烏伊> 등과 더불어 의론하고 이르길 “짐은 나이가 어려서 아는 것이 없고, 부황父皇{芻牟}의 힘에 기대어 천제天帝의 소임所任인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큰일들을 어찌 이루어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 변방엔 일들이 많아서, 외국들이 대행{芻牟}께서 돌아가셨음을 알게 되면 필시 달리 움직임이 있을 것이니, 상喪이 났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면서 섭정攝政을 두어서 다스렸으면 하는데, 어찌 생각들 하시오?”라고 하였더니, <오이> 등이 부복俯伏하여 상주하길 “폐하의 훌륭하심과 밝으심이 이와 같으시니, 신 등은 기쁜 마음으로 하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군사軍事는 <오이烏伊>에게 위임하고 정사政事는 <소召>후에게 위임하였다. 상은 상중喪中인지라 후궁들의 밤일 감당을 멈추게 하고 오직 <소召>후와 <아이阿爾>・<온溫> 두 공주들만을 곁에 두었더니, <대방량大房良>이 “천자天子의 효도孝道로는 많은 후사後嗣를 두시는 것을 제일로 삼는 것이오니, 마땅히 <온>공주를 황후로 삼으시고, 다시금 「공경」들의 딸들을 골라서 비빈妃嬪들로 삼으시어 많은 후사를 두십시오.”라고 간언하였다. 이에 상은 이를 욕스럽게 하는 것으로 보아 멀리하며 용납하지 않았다. <대방량>이 또 간언하여서 3년을 복상服喪하시길 청하였더니, 상은 “그것은 모두 태평무사太平無事한 시절의 일들이오. 상喪을 당하였음을 숨기고 있는 터에, 어찌 상복을 입을 수 있겠소?”라 하였다. 상이 <소>후의 말에는 기를 기울이면서도 매번 <대방량>의 주청에는 어깃장을 놓았더니, <대방량>은 「태보」자리를 사직하고 돌아갔다. <대방>후 또한 아비의 일로 물러나길 청하였으나, 상이 허락지 않으며 이르길 “대행께서 경卿을 내게 남기셨으니, 경은 내 처인데, 어찌 감히 사사로이 아비의 일로 물러나겠다고 청하는 것이오?”라 하고, 명을 내려서 <을전>후와 <대방>후는 닷새에 하루씩 밤일을 감당하게 하였고, 또한 <관패>비를 궁으로 불러서 성총을 내렸다. <소>후가 감히 투기하지 않았다.
五月,營大行陵于<龍山>. <萱>公主生<屛>太子子,以為<都祖>子,名以<都彦>.上,慮<屛>太子背囯,賜其年穀奴婢如故. 上,以<木>公‧<鴌孫>有功於立儲,命<召>后叙爵,<召>后曰“此等人優遊而不喜拘束,雖賜爵不為榮,只可敬而遠之.”上曰“不然,天子之政莫重於賞罰,有功不賞,何以獎人.汝為吾妻,當以吾意為意,何以汝意為意乎.”乃以<木>公為「太輔」以代<大房良>,<鴌孫>為「長岺侯」‧「主神大加」,二人皆辞而不赴.上以<榶>公主妻<木>公,<木>公辞曰“臣,本仙人,不妻.况諒闇乎.”上,不許,命婚於宮中.初夜,<木>公,不知去処,四索不得.「長岺侯」<鴌孫>請得<榶>公主為妻,上以<鴌孫>年老疑之,<孫>曰“<木>公比臣尤老而猶生子.况臣比<木>公則兒孫行耳.”上乃使<榶>公主為<鴌孫>妻.時,年十七,未幾生<鴌孫>之子.是為<長岺><鴌>氏之祖,云.
5월, 대행{추모대제}의 릉을 <룡산龍山>에다가 지었다{짓기를 시작하였다}.
<훤萱>공주가 <병屛>태자{이미 庶人으로 되었음}의 아들을 낳았더니, <도조都祖>의 아들로 삼아주고 이름을 <도언都彦>이라 하였다. 상이 <병>태자가 나라를 등지고 있음을 걱정하며 그에게 년곡과 노비를 이전과 같게 하여주었다. 상이 <목木>공과 <궉손鴌孫>이 동궁을 세우는 일에 공이 있었다 하여 <소召>후에게 명하여 작위를 내리게 하였더니, <소>후가 아뢰길 “이 같은 이들은 일없이 편하고 한가로움을 좋아하며 구속되길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사 작위를 하사하셔도 영예롭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경의敬意를 표하시고 멀리 두십시오.”라 하였더니, 상은 “그렇지 않소이다. 천자의 다스림에 있어서 상賞을 주고 벌罰을 주는 것보다 중重한 것이 없소이다. 공功이 있음에도 상을 주지 않으면 어찌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겠소이까. 그대는 내 처가 되었으니 응당 내 뜻을 그대의 뜻으로 하여야 할 것이거늘, 어찌 그대의 뜻을 짐의 뜻으로 삼는 것이오?”라 이르고서 <목>공을 「태보」로 삼아서 <대방량>을 대신하게 하고 <궉손>을 「장령후長岺侯」・「주신대가主神大加」로 삼았으나{☞長岺侯가 主神大加를 兼할 수 있음은 長岺이 都城에서 아주 먼 곳이 아님인가?}, 두 사람 모두 고사固辭하며 부임赴任하지 않았다. 이에 상이 <당榶>공주를 <목>공에게 처로 주었더니, <목>공은 고사하며 아뢰길 “신은 본시 선인仙人이어서 처를 두지 않습니다. 하물며 임금께서도 상중喪中에 계시잖습니까?”라 하였으나, 상이 허락하지 않고 궁중에서 혼인婚姻하라고 명하였더니, 첫날밤에 <목>공은 거처居處를 몰라서 사방을 헤매다가 이루지 못하였고, 이에 「장령후」<궉손>이 <당>공주를 취하여 처를 삼겠다고 청하자, 상이 <궉손>이 나이가 많았음에 괴이하다 여겼더니, <궉손>이 아뢰길 “<목>공은 신에 비하면 훨씬 늙었음에도 오히려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물며, 신은 <목>공에 비하면 아들이나 손자쯤이어서 팔팔합니다.”라 하였다. 상이 이에 <당>공주를 처로 삼아주었더니, 이때 나이 열일곱이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궉손>의 아들을 낳았다. 이 이가 <장령長岺><궉鴌>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九月,葬大行于<竜山>,春秋四十.葬<巨婁>‧猉獜之骨于陵下.<平>氏‧<鵲>氏欲自焚以殉,上大怒命幽於「琳府」之獄. 以上母<禮>皇后為天宮太皇后,以<召>后‧<旃>后‧<大房>后為三天后,<阿爾>‧<溫>主為左‧右小后,<羊花>‧<蓼花>等為「瓊宮」太后,依<禮>太后命择日當夕. <阿爾>小后生上子<都切>. <禮>太后生大行女<再思>公主. 還<安平宮>夫人<晉>氏于「安平王」<鍾离>. 命停公卿妻當夕. <胡>王<且麋胥>‧<烏桓>王<廣>公‧<鮮卑>王<涉臣>等,遣使来吊献賻. 「安平王」<鍾离>‧「紫蒙王」<西川>‧「盖馬王」<燕宜>入朝.上,賜其袞‧冕‧金印,妻以先帝後宮而還.
9월, 대행을 <룡산龍山>에 장사하였다. 춘추 40이었다. <거루巨婁>와 기린猉獜의 유골은 릉 아래에다 장사하였다. <평平>씨와 <작鵲>씨가 몸에 불을 질러서 순사殉死하려 하였더니, 상이 대노하여 「림부琳府」의 옥獄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상의 모친 <예禮>황후를 천궁태황후天宮太皇后로 삼고, <소召>후・<전旃>후・<대방大房>후를 세 천후天后로 삼았으며, <아이阿爾>와 <온溫>공주를 좌・우 소후小后로 삼았고 <양화羊花>・<삼화蔘花> 등을 「경궁瓊宮」태후로 삼아서 <예>태후의 명에 따라 날을 잡아서 밤일을 감당하게 하였다. <아이>소후가 상{類利}의 아들 <도절都切>을 낳았다. <예>태후가 대행의 딸 <재사再思>공주를 낳았다. <안평궁安平宮>부인 <진晉>씨를 「안평왕安平王」<종리鍾离>에게 돌려보냈다. 명을 내려서 공경들의 처들이 밤일을 감당하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호胡{匈奴}>왕<저미서且麋胥>・<오환烏桓>왕<광廣>공・<선비鮮卑>왕<섭신涉臣> 등이 사신을 보내와서 조상弔喪하고 부의賻儀를 바쳤다. 「안평왕」<종리>・「자몽왕」<서천>・「개마왕」<연의>가 입조하였더니, 상이 그들에게 곤룡포袞龍袍・면류관冕旒冠・금인金印을 하사하고, 선제의 후궁들을 처로 삼아주어서 돌려보냈다.
十月,上巡<西河>至<南口>,與<召>后入溫泉. <祖天>母<蘭>氏薨,年七十八,以大妃禮葬于<龍山陵>下,盖其所願也. 以<扶芬奴>為「鎭西大将軍」‧「南蘇州太守」. 以<溫祚>為上子封「汗南王」命都<牛壤>,<召>后不悅欲敀<牛壤>,<溫祚>諫止之. 上如<蓼花宮>‧<旃后宮>‧<大房后宮>.
10월, 상이 <서하西河{桑乾河中上流支流 西洋河? 山西省서변南流黃河?}>를 순시하고 <남구南口>에 이르러 <소召>후와 함께 온천에 들르셨다. <조천祖天>의 어미 <란蘭>씨가 나이 일흔여덟에 죽어, 대비大妃의 예법으로 <룡산릉龍山陵> 아래에 장사하였다. 대략 그녀가 그리하여 주길 원하였음이었다. <부분노扶芬奴>를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남소주태수南蘇州太守」로 삼았다{☞南蘇는 山西省東中部之境?}. <온조溫祚>를 상의 아들로 삼아서 「한남왕汗南王」을 봉하고 <우양牛壤{현금北京北部牛欄山之境?}>에 도읍하라고 명하였다{☞所謂 溫祚百濟의 始作!}. 이에 <소召>후가 기뻐하지 않으며 <우양>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더니, <온조>가 간하여 말렸다. 상이 <삼화궁蔘花宮>과 <전후궁旃后宮> 및 <대방궁大房宮>으로 발길을 놓았다.
十一月,上,幸<不而城>,謁<檀林宮>天帝象. 命<摩离>為「鎭北大将軍」‧<卑离州>「太守」,以「卑离王」<素奴>女妻<摩离>. 上,與<召>后如<牛壤>謁<陀勃>陵,與<溫祚>議南進之計. 以<烏干>‧<馬黎>為其左‧右輔.
11월, 상이 <불이성不而城{北夫余都城}>으로 거둥하여 <단림궁檀林宮>의 천제상天帝象을 참배하고, 명을 내려서 <마리摩離>를 「진북대장군進北大將軍」・「비리주태수卑离州太守」로 삼고 「비리왕卑离王」<소노素奴>의 딸을 <마리摩離>에게 처로 주었다. 상이 <소召>후와 더불어 <우양牛壤>으로 가서 <연타발延佗勃>의 릉을 참배하고 <온조溫祚>와 더불어 남진南進할{☞溫祚의 나라를 만들어 줄} 계획을 논의하였다. <오간烏干>과 <마려馬黎>를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로 삼았다.
十二月,「黃竜王」<于仁>薨,年四十三.以<烏伊>為「黃竜王」. 改元<光明>. 「盖馬王」<燕宜>,諒闇以来,累侵<卑离>界. 上,陞<摩离>為「卑离王」,而使鎭<荇人>‧<盖馬>‧<肅愼>‧<磧東>之地. 行<東明大祭>于「東都」,尊大行為<東明聖王>.<長夀帝>十六年尊為<芻牟大帝>. 命先帝後宮次苐當夕,納<于仁>妻為後宮. 封先帝諸子為「列王」,<漱帝>諸子為「列公」,<德帝>諸子為「列侯」,<孝帝>諸子為「大夫」,<法皇>庻子亦為「大夫」.公主亦如之.以「瓊府」為「瓊天宮」‧「瓊叢宮」.「天」乃諸主入侍之宮,而「叢」乃諸王入侍之宮也.
12월, 「황룡왕」<우인于仁>이 나이 마흔셋에 죽어, <오이>를 「황룡왕」으로 삼았다. 년호年號를 <광명光明>으로 바꿨다. 「개마왕」<연의燕宜>가 상께서 상喪을 당한 이래로 여러 번 <비리>의 경계를 침범하였더니, 상이 <마리摩離>를 승차시켜 「비리왕卑离王」을 삼아서 <행인荇人>・<개마盖馬>・<숙신肅愼>・<적동磧東{甘肅西北部凉州武威北方鎭番의 周邊일 것}>땅들을 지키게 하였다{☞遠北方인 肅愼과 遠西方인 磧東도 初期 高勾麗의 疆域이었다}. <동명대제東明大祭>를 「동도東都」에서 치르고, 대행을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높였다. <장수제長壽帝> 16년에는 <추모대제芻牟大帝>로 높여졌다. 선제先帝{芻牟帝}의 후궁들에게 명하시어 질품과 차서대로 밤일을 감당케 하였으며, <우인>의 처를 거두어 후궁을 삼았다. 선제의 여러 아들들을 「열왕列王」으로, <수제漱帝{芻牟帝父皇}>의 여러 아들들을 「열공列公」으로, <덕제德帝{慕漱帝父皇}>의 여러 아들들을 「열후列侯」로, <효제孝帝{德帝父皇}>의 여러 아들들을 「대부大夫」로, <법황法皇{慕漱帝叔皇}>의 여러 아들들 역시 「대부大夫」로 봉하였다. 공주들 또한 그리 하였다. 「경부瓊府{龍骨族 사람들이 居處하는 官府 또는 그 宮人}」를 <경천궁瓊天宮>과 <경총궁瓊叢宮>으로 나누었다. <경천궁>은 모든 공주{龍骨族 女人}들이 입시하는 궁이고, <경총궁>은 모든 왕{龍骨 및 雜色의 皇子와 王들}들이 입시하는 궁이다.
丑 <都祖>太子 母<都>皇后,妃<萱>公主,封「汗濱王」
卯 <原贊>太子 母<再贊>妃,妃<加菽>公女<韋>氏,封「曷思王」
巳 <耳公>太子 母<烏伊>妻<都>氏,<都>皇后妹,妃<蘭巴>女, 封「湯東王」
午 <國>太子 母<仲室>妃,妃<奧春>公女<晨>氏,封「毛屯王」
午 <陵>太子 母<好陵>太后,妃<丹>公女<丹>氏,封「靑河王」
申 <晨>太子 母<奧春>公妃<觧晨>后,妃<桓茵>公主, 封「河南王」
酉 <沸流>太子 母<召>皇后,妃<元昜>公主,封「淹淲王」
酉 <晉>太子 母<羊>太后,妃<暖>公主,封「檀山王」, 子<焄>公為<觧德>公嗣
戌 <高娄>太子 母<桂>皇后,妃<高昜>公主,封「桂林王」
戌 <屛>太子 母<張>皇后,妃<玉>氏,封「梁㹮侯」
亥 <貝倫>太子 母<貫貝>后,妃<肫>公主,封「湯南王」
亥 <豆智>太子 母<英>皇后,妃<葦>公主,封「箕東王」
亥 <蘋>太子 母<蘋>太后,妃<羯>氏,封「西河王」
子 <溫祚>太子 母<召>皇后,妃<烏>氏,封「汗南王」
子 <豆信>太子 母<旒>太后,妃<乙耕>女<乙>氏,封「箕西王」
子 <菽>太子 母<葦花>太后,妃<仇都>女<仇>氏,封「汗東王」
丑 <房>太子 母<房>皇后,封「河濱王」
丑 <菤>太子 母<萱>皇后,封「奄利侯」
丑 <旃>太子 母<旃>皇后,封「九如侯」
丑 <蔓>太子 母<仲室>妃,封「竜山侯」
丑 <桓>太子 母<孟>皇后,封「桂南侯」
丑 <蘭>太子 母<蘭>妃,封「荇東侯」
丑 <胡>太子 母<胡括>太后,封「磧東侯」
寅 <若>太子 母<蘋>太后,封「東池侯」
寅 <達倫>太子 母<貫貝>后,封「湯西侯」
寅 <素>太子 母<小括>妃,封「紫蒙侯」
卯 <蒜>太子 母<孟>皇后,封「中川侯」
卯 <豆容>太子 母<旒>太后,封「胡盧侯」
辰 <薏>太子 母<萱>皇后,封「普述侯」
辰 <帳>太子 母<張>皇后,封「河上侯」
辰 <高离>太子 母<桂媛>妃,封「質山侯」
辰 <英>太子 母<桓英>妃,封「黃山侯」
巳 <鸞>太子 母<蔘>太后,封「中川侯」
午 <葱>太子 母<孟>皇后,封「獸林侯」
未 <羊>太子 母<英>皇后,封「豊城侯」
未 <黔象>太子 母<奧坤>妃,封「馬山侯」
申 <藻>太子 母<蘋>太后,封「平山侯」
未 <嘉抑>太子 母<蔘>太后,未封
酉 <莘>太子 母<孟>皇后,未封
酉 <鶩>太子 母<蔘>太后,未封
酉 <德>太子 母<奧>皇后,未封
戌 <穀>太子 母<英>皇后,未封
戌 <羔>太子 母<禾>皇后,未封
戌 <黔乙>太子 母<奧坤>妃,未封
戌 <柒>太子 母<柒>妃,未封
戌 <宋>太子 母<旃>皇后,未封
亥 <杞>太子 母<張緋>,未封
子 <鵞>太子 母<蔘>太后,未封
丑 <彦>太子 母<張紈>,未封
丑 <孝>太子 母<房>皇后,未封
寅 <鵲>太子 母<鵲>夫人,未封
<萱>太子 母<萱>皇后,妃<阿爾>妃,子<萶>,己亥薨年二十, 追封「順奴太王」,庚辰生.
<芳>太子 母<奧芳>后,妃<元昜>妃,子<德芳>,戊戌薨年十七, 追封「松江王」
其餘,母・妃・次序未詳太子十七人,母・妃未詳・已卒太子亦五人.公主幷載后妃列傳.
정축{BCE44} <도조>태자, 모<도>황후, 비<훤>공주, 봉「한빈왕」
기묘{BCE42} <원찬>태자, 모<재찬>비, 비<가숙>공녀<위>씨, 봉「갈사왕」
신사{BCE40} <이공>태자, 모<오이>처<도>씨,<도>황후매, 비<란파>녀, 봉「탕동왕」
임오{BCE39} <국>태자, 모<중실>비, 비<오춘>공녀<신>씨, 봉「모둔왕」
임오{BCE39} <릉>태자, 모<호릉>태후, 비<단>공녀<단>씨, 봉「청하왕」
갑신{BCE37} <신>태자, 모<오춘>공비<해신>후, 비<환인>공주, 봉「하남왕」
을유{BCE36} <비류>태자, 모<소>황후, 비<원양>공주, 봉「엄표왕」
을유{BCE36} <진>태자, 모<간>태후, 비<난>공주, 봉「단산왕」, 자<훈>공은 <해덕>공 후사
병술{BCE35} <고루>태자, 모<계>황후, 비<고양>공주, 봉「계림왕」
병술{BCE35} <병>태자, 모<장>황후, 비<옥>씨, 봉「양맥후」
정해{BCE34} <패륜>태자, 모<관패>후, 비<순>공주, 봉「탕남왕」
정해{BCE34} <두지>태자, 모<영>황후, 비<위>공주, 봉「기동왕」
정해{BCE34} <빈>태자, 모<빈>태후, 비<갈>씨, 봉「서하왕」
무자{BCE33} <온조>태자, 모<소>황후, 비<오>씨, 봉「한남왕」
무자{BCE33} <두신>태자, 모<류>태후, 비<을경>녀<을>씨, 봉「기서왕」
무자{BCE33} <숙>태자, 모<위화>태후, 비<구도>녀<구>씨, 봉「한동왕」
기축{BCE32} <방>태자, 모<방>황후, 봉「하빈왕」
기축{BCE32} <권>태자, 모<훤>황후, 봉「엄리후」
기축{BCE32} <전>태자, 모<전>황후, 봉「구여후」
기축{BCE32} <만>태자, 모<중실>비, 봉「룡산후」
기축{BCE32} <환>태자, 모<맹>황후, 봉「계남후」
기축{BCE32} <란>태자, 모<란>비, 봉「행동후」
기축{BCE32} <호>태자, 모<호괄>태후, 봉「적동후」
경인{BCE31} <약>태자, 모<빈>태후, 봉「동지후」
경인{BCE31} <달륜>태자, 모<관패>후, 봉「탕서후」
경인{BCE31} <소>태자, 모<소괄>비, 봉「자몽후」
신묘{BCE30} <산>태자, 모<맹>황후, 봉「중천후」
신묘{BCE30} <두용>태자, 모<류>태후, 봉「호로후」
임진{BCE29} <억{의}>태자, 모<훤>황후, 봉「보술후」
임진{BCE29} <장>태자, 모<장>황후, 봉「하상후」
임진{BCE29} <고리>태자, 모<계원>비, 봉「질산후」
임진{BCE29} <영>태자, 모<환영>비, 봉「황산후」
계사{BCE28} <난>태자, 모<삼>태후, 봉「중천후」
갑오{BCE27} <총>태자, 모<맹>황후, 봉「수림후」
을미{BCE26} <양>태자, 모<영>황후, 봉「풍성후」
을미{BCE26} <검상>태자, 모<오곤>비, 봉「마산후」
병신{BCE25} <조>태자, 모<빈>태후, 봉「평산후」
을미{BCE26} <가억>태자, 모<삼>태후, 미봉
정유{BCE24} <신>태자, 모<맹>황후, 미봉
정유{BCE24} <목>태자, 모<삼>태후, 미봉
정유{BCE24} <덕>태자, 모<오>황후, 미봉
무술{BCE23} <곡>태자, 모<영>황후, 미봉
무술{BCE23} <고>태자, 모<화>황후, 미봉
무술{BCE23} <검을>태자, 모<오곤>비, 미봉
무술{BCE23} <칠>태자, 모<칠>비, 미봉
무술{BCE23} <송>태자, 모<전>황후, 미봉
기해{BCE22} <기>태자, 모<장비>, 미봉
경자{BCE21} <아>태자, 모<삼>태후, 미봉
신축{BCE20} <언>태자, 모<장환>, 미봉
신축{BCE20} <효>태자, 모<방>황후, 미봉
임인{BCE19} <작>태자, 모<작>부인, 미봉
<훤>태자, 모<훤>황후,비<아이>비,자<춘>,기해{BCE22}훙,년20,추봉「순노태왕」,경진{BCE41}생.
<방>태자, 모<오방>후,비<원양>비,자<덕방>,무술{BCE23}훙,년17,추봉「송강왕」
그 나머지로 모・비・차서 미상인 태자 17인, 모・비 미상으로 이미 죽은 태자 역시 5인이 있다.
공주들은 <후비열전>에 함께 싣는다..
--끝--
지금까지로 하여서 <추모경> 또는 <유기추모경>의 전문을 초벌 번역하고 약간의 해설성 각주를
번역글 중에 달아보았습니다.
상해 즉 추모 즉 주몽 단대에 복구된 북부여 즉 고구리의 모습이 대략 아래의 그림과 같았음을
알 수 있었읍니다.
아래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의 도움으로
아마도 최초의 번역자일 제가 우리들의 고대사를 복원함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희망하며
초벌번역한 추모경을 밝디밝은 세상으로 내보낸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