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고즈넉한 겨울이면 비구니스님은 늘 수수조청을 만들었다. 수행에 정진하듯 수수의 눈들을 한 알 한 알 모았다. 긴 겨울밤을 지새우며 수수조청을 만들고 있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이 엄마처럼 온화해 보였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관음사는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아늑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수수조청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스님을 도우면서 관음사에서 몇 날을 보냈다. 몸이 허약한 나는 늘 자신감이 없고 불안증에 시달렸다. 몇 밤을 지새우면서 또 몇 날을 지나면서 수행을 하여 엄마 같은 온화함이 풍기는 비구니스님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수수는 생긴 모습이 붉은색으로 불에 타는 형상이다. 한여름 태양의 열기를 기억하듯 수수의 눈은 뜨거운 성분을 가지고 있다. 수수조청을 먹으면 아랫배가 따뜻해진다. 아랫배가 냉하면 순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순환에 좋은 식품이 열기를 지닌 수수조청이다.
수수조청은 수수의 수수한 향기를 잊지 않는 섬세함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물에 불려서 먼저 거친 가루를 낸 다음 그 가루로 죽을 쑨다. 인진쑥이나 오가피를 끓여서 만든 물에 엿기름과 수수죽를 한데 섞어서 은근한 불에 삭힌다. 다 삭힌 수수를 거르면 단맛만 남는다. 그것이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수수 눈이다. 맑은 마음으로 잡념이 없어야 수수조청의 눈이 많이 나온다.
새까만 색의 반들거리는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자칫 졸거나 방심하면 수수조청 가마솥에 빠질 수 있을 정도였다. 수수를 삭힐 때는 짬짬이 잠을 잘 수 있지만, 졸이는 날은 긴 주걱으로 계속 저어 주면서 밤새 지켜야 한다. 처음에는 장작을 많이 집어넣어 센 불에 수수 삭힌 물을 끓인다. 절 한쪽에 있는 황토 방에 걸려있는 가마솥은 지붕만 쳐져 있을 뿐 완전 밖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절 마당이 조청의 달콤한 냄새로 가득해졌다.
한밤중이 되어서 눈이 내렸다. 불 앞이어서 춥지도 않았고, 눈이 오니 더 포근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겪었던 많은 행복한 일들 중 으뜸이 그날이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양을 잡았다고 야단하시던 스님도 수수조청 고우는 일에 푹 빠져서 내가 이쪽에서 젓고 스님은 반대편에서 같이 저었다. 새벽녘이 다 되어 갈 쯤, 조청이 조금씩 걸쭉해지면 큰 장작불을 다 꺼내고 남아 있는 잔불로 은근히 졸인다. 주걱으로 조청을 떠서 흘려내려 보아 그 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 다 된 것이다.
가마솥 속 수수조청이 검붉다. 이틀 낮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끓이고 또 끓였다. 마지막 열기를 잠재우고 있는 수수조청은 눈들만 남아서 반짝인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서 한입 먹어보았다. 달면서 달지 않는 맛, 수수 눈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수수의 향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스런 단맛이다.
수십만 수백만 번을 저어서 드디어 완성된 수수조청, 수수조청을 만들면서 스님은 수수조청의 눈이 되었다. 수수조청의 뜨거운 눈이 된 스님은 보살 같은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수수조청을 나누어 줄 것이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수수조청 단지를 포근히 감싸 안으니 실웃음이 나온다. 고단함 끝에 얻은 행복이다. 몇 날 몇 밤, 수수를 고우면서 그 맛과 향이 내 몸에 배어들었다. 수수조청을 고우는 그 순간순간마다 수수의 눈은 만들어졌다. 그 순간들이 모여서 나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수수 눈이 뜰 때마다 나의 마음이 열렸다.
태어난 아이가 시일이 지나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듯 며칠의 힘듦 뒤에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수조청 눈들이 담긴 단지를 품에 안고 자신 있는 걸음으로 산문을 나섰다.
비구니스님은 늘 수수조청을 만들었다. 수행에 정진하듯 수수의 눈들을 한 알 한 알 모으고 있었다. 찬바람 부는 고즈넉한 겨울이다. 수수조청을 만들면서 겨울의 긴 밤을 지새우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이 자식을 위하여 수수조청을 만드는 엄마 같은 온화한 모습이기도 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관음사는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아늑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수수조청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스님을 도우면서 관음사에서 몇 날을 보냈다. 몸이 허약한 나는 마음도 자신감이 없고 늘 불안증에 시달렸다. 몇 밤을 지새우면서 또 몇 날을 지나면서 수행을 하여 온화함이 풍기는 비구니스님 같은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수수는 생긴 모습이 붉은색으로 수수자체가 불에 타는 형상이다. 한여름의 태양에 열기를 기억하듯 수수의 눈은 뜨거운 성분을 가지고 있다. 수수조청을 먹으면 아랫배가 따뜻해진다. 아랫배가 냉하면 순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순환에 좋은 식품이 열기를 지닌 수수조청이다. 아랫배가 따뜻해지면 뜨거운 여자가 된다.
수수조청은 수수의 수수한 향기를 잊지 않는 섬세함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물에 불려서 거칠게 가루를 낸다. 한번 갈은 수수로 죽을 쑨다, 인진쑥이나 오가피를 끓여서 물을 만들어 놓는다. 그 물과 엿기름과 죽을 쑨 수수를 한데 섞어서 은근한 불에 삭힌다, 다 삭인 수수를 거른다. 그러면 수수에 있는 단 성분만이 남는다. 그것이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수수 눈이다. 맑은 마음으로 잡념이 없어야 수수조청의 눈이 많이 나온다.
새까만 색의 반들거리는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태양을 담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졸거나 방심하면 수수조청 가마솥에 빠진다. 수수를 삭힐 때는 짬짬이 잠을 잘 수 있지만, 오늘밤은 긴 주걱으로 저어 주면서 밤새 지켜야 한다. 처음에는 장작을 많이 집어넣어 센 불에 수수 삭힌 물을 끓였다. 절 한쪽에 있는 황토 방에 걸려있는 가마솥은 지붕만 쳐져 있을 뿐 완전 밖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절 마당은 조청의 단맛이 전체를 흐르는 것 같았다.
수수조청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겨울이 되어야 만들 수 있다. 한밤중이 되어서 눈이 내렸다. 불 앞이어서 춥지도 않았고, 눈이오니 더 포근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겪었던 많은 행복한 일들 중에서 그날이 당연 으뜸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시작 했다고 야단하시던 스님도 수수조청 고우는 일에 푹 빠져서 내가 이쪽에서 젓고 스님은 반대편에서 같이 젓고 하였다. 새벽녘이 다 되어 갈 쯤, 조금씩 걸쭉해지면서 큰 장작불은 다 꺼내고 남아있는 잔불로 은근히 조린다. 다 달여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주걱으로 수수조청을 떠서 흘려내려 보면 그 줄이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지는 것이다.
가마솥에 수수조청이 검붉다. 이틀 낮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끓이고 또 끓였다. 마지막 열기를 잠재우고 있는 수수조청은 눈들만 남아서 반짝인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서 한입 먹어보았다. 어째서 수수조청이 이리 달지 않단 말인가. 달면서 달지 않는 맛, 수수 눈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수수조청은 수수의 향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스런 단맛이다.
수십만 수백만 번을 저어서 드디어 완성된 수수조청, 그 붉은 수수를 젓는 손. 수수조청을 만들면서 스님은 수수조청의 눈이 되었다. 수수조청의 뜨거운 눈이 된 스님은 자식을 키우는 보살 같은 마음으로 순환이 잘되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수수조청을 나누어 줄 것이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수수조청 단지를 포근히 감싸 안으니 너무 힘듦 뒤의 실 웃음이 나온다. 몇 날 몇 밤, 수수를 고우면서 그 맛의 향이 내 몸에 베여 들었다. 수수조청을 고우는 그 순간순간마다 수수의 눈은 만들어졌다. 그 순간들이 모여서 나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수수 눈이 눈 뜰 때 마다 나의 마음이 열렸다.
갓 태어난 아이가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 하듯 며칠의 힘듦 뒤의 나는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수조청 눈들이 담긴 단지를 안고 있는 나는 태양을 닮은 뜨거운 여자가 되어 있는 듯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포근한, 때로는 내 생각을 말 할 수 있는 강렬한 엄마가 되었다.
첫댓글 인간과 문학 등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