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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로렐라이의 진돗개 복구 (1) 독일 전성준
추레한 몰골에 양 어깨가 축 처진 사내 하나가 지친 듯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그를 향해 다가 온다.
점점 가까워 질수록 얼굴이며 모습이 뚜렷치 않고 윤곽만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자동차 충돌 사고로 죽은 동생 선규의 백지장 같은 창백한 얼굴 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잘 익은 딸기마냥 땀구멍이 송송 뚫린 주먹코에 그 위로 누리끼리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줄을 그은 듯 흡사 서양 배를 닮은 그리스 식당 주인 마리오 같기도 했다.
한 손에는 피투성이가 다 되어 축 늘어진 복구(福狗)의 등 가죽을 거며 쥐고 또 다른 손에는 번뜩번뜩 새 파랗게 날이 선 칼에 붉은 핏자국이 진득하니 남아 방울방울 떨어지는 칼을 앞으로 향한 채 다가 왔다.
양 볼을 실룩거리며 흉측한 실 날 같은 웃음을 입가에 흘린 채 코 앞가지 씩씩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 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밀쳐 내기에 안간힘을 다하며 그는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팔 다리와 온 몸을 결박 당한 것 마냥 손가락 하나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모아 몸부림을 쳐 보았으나 좀처럼 다가 오는 그 사내를 밀쳐 낼 힘도 없고 두 발이 땅 바닥에 얼어 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를 악 물고 발악을 했다. 엎치락뒤치락 겨우 신체의 일부분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힘주어 눈을 떴다. 꿈이었다.
등골이 축축하니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싸늘한 한기가 스며 왔다.
악몽에 시달린 것이다.
대규(崔大圭)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전광 시계가 새벽 3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막 구름을 빠져 나온 둥근 보름 달빛이 벽에 걸린 눈 덮인 백두산 천지의 색깔 없는 그림에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꿈이 현실 같고 지금 이 순간도 꿈 속을 헤매듯 몽롱한 기분에 웬일인지 불안한 마음이 온 몸을 감싸 왔다.
몇 시간 후면 복구의 운명을 가름하는 결전을 약속한 날이 밝아 올 것이다. 그리고 대규의 발 걸음도 바빠 질 것이다. 순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 졌다. 흥분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흥분은 금물이다.
<….싸움(鬪犬)하기 몇 시간 전에는 절대 먹이를 주지 말게. 배가 부르면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되며 행동반경이 좁아져 자칫하면 패 할 수 있으니 명심하게. 최대한 야성의 기질을 끌어 내야 하네.....> 수화기를 타고 들려 오는 형님의 당부가 다시 떠 올랐다. 어쩌면 복구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오늘
복구를 위해 쇠고기 한 덩어리를 살짝 익혀 허기만을 채워 주기로 대규는 작정했다. 이어 결연한 마음으로 복구를 데리고 로렐라이 강변을 산책 겸 준비 운동을 위해 한차례 다녀 오고 나서 약속한 캠핑 장으로 향해 가면 마리오가 정한 10시에 때맞춰 도착할 것이다.
ㅡ10시, 이 시간에는 캠핑 장에 별로 인적이 없고 개 싸움에는 적합한 시각이니
이 때로 정하자.ㅡ 마리오는 시간과 장소까지 미리 마음 속으로 정하고 넌지시 대규의 의사를 묻는 척 했으나 대규는 너무나 흥분한 탓에 그만 말 문이 막혀 말 한마디 건네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복구가 로렐라이에 도착한 이후 하루도 편하게 쉴 틈도 주지 않고 매일 식당 앞을 오락가락 거리며 약을 박박 올리는 바람에 복구는 철책을 뛰어 넘을 듯이 사납게 짖었다. 그 때문에 목청이 쉬어 끙끙거리는 복구를 볼 때마다 대규는 분통이 머리 끝까지 치솟아 분별을 잊을 정도였다. 그래서 홧김에 앞 뒤 분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전을 받아 들였다. 그 후 흥분을 가라 앉히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 무모한 결정을 쉽게 내린 것이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큼 후회를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 진 물,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번복하는 굴욕은 죽음보다 싫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삼손을 깨 부셔버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 가닥 실오라기만한 희망이 있었다.
제아무리 전국 투견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맹견 복구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정규 훈련을 받은 진돗개 2세라 할 망정 마리오의 셰퍼드 삼손과 승부를 겨눈다는 것은 누구를 잡고 물어 보아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삼손의 승부를 당연시 보는 것이 정상이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처럼 홧김이라지만 한 가지 믿는 곳이 있어
대규는 마리오의 제의를 주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복구는 아직 젊고 행동이 날렵하고 판단이 빠른 진돗 개라는 믿는 점이 있고 상대 편 삼손은 개 나이로 치면 회갑 진갑을 지나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명색이 셰퍼드이지 운동 부족과 영양 과잉 섭취로 온통 비계 덩어리로 뭉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앞 가슴이 파도처럼 이쪽 저쪽으로 밀려 다니는 노구(老狗)라는 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본 것이다.
옛날의 화려한 명성과 외모에 미리 겁을 먹고 수모만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대규가 삼손에 대한 정보는 귀가 따가울 만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복구가 한국에서 오기 전부터 마리오는 삼손을 앞 세우고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대규를 붙들고 녹음 테이프를 재생하듯 삼손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다.
삼손이 한때는 경찰견으로 활약하면서, 임산부와 그녀의 어린 딸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하던 마약 밀매 범의 흉기 든 손을 날쌔게 물고 늘어져 인질을 구하고 범인을 잡아 들인 무용담을 자랑 삼아 늘어 놓을 때 마다 맞 장구를 치듯 삼손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삼손의 무용담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고 유채 밭을 쑥 밭으로 만든 멧 돼지 떼를 쫓아 기어코 두 마리를 물어 죽인 영광의 훈장이라면서 등 쪽에 멧 돼지 이빨에 찧긴 상처를 털 사이에서 찾아 보여 주는 무용담을 싫증이 날 지경으로 들어 왔다. 지금도 그 용맹스러운 기질이 염려되어 입 마개를 채워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묻지도 아니한 부언 설명까지 늘어 놓았다.
비록 삼손을 앞세워 무용담을 자랑 삼아 이죽거리는 마리오의 속 마음은 자신을 과시하고픈 졸부 근성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대규는 흔연스레 그의 너스레를 들어 주었다.
그 후 복구가 춘자 손에 이끌려 비행기를 타고 독일 땅 로렐라이에 도착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투박한 소가죽으로 된 입 마개를 하고 위풍 당당하게 식당 앞을 휘젓고 다니는 마리오와 삼손을 복구가 그냥 지나치게 놓아 두지를 아니 했다.
복구는 마치 마땅한 사냥감을 발견한 듯 불 같은 두 눈알을 부라리며 베란다 철책을 뛰어 넘을 듯 앞 발을 철책 사이에 끼고 으르렁 됐다.
이런 복구를 처음 본 마리오는 흔히 있는 개들의 습성이려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 발치에서 그가 나타났다 하면은 두 눈알에 불을 키고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 낸 채 으르렁거리는 생쥐만한 개가 얄밉고 건방지게 보였다. 거기다 사랑스런 삼손의 털 속을 파고 들어 피를 빠는 진드기처럼 혐오스런 코리언이 기르는 개였기 때문에 더욱 싫었다.
그래서 마리오는 베란다 철책 안에 갇혀 있는 복구를 괴롭히는 것에 야릇한 쾌감과 만족을 느꼈다.
그러던 마리오가 짐짓 복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마리오 ! 너 우리 개를 괴롭히지 마라. 네 눈에는 보통 개로 보일지 몰라도 한국에서 싸움 잘 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맹견 진돗개다.“
대규의 볼멘 퉁명스러운 말에 호기심이 발동 했다.
마리오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쓴 웃음을 짓고 넘기려다 한국에서 데리고 온 투견이라는 대규의 자랑스런 말에 짐짓 관심 있는 척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 걸어 왔다.
„저런 덩치에 투견이라니 놀라운 일인데. 당신을 닮은 데가 너무 많다.“ 하며 자기 배꼽 근처를 가리키며 키가 작은 대규를 향해 이죽거릴 때, 대규는 땀구멍이 송송 돋은 마리오의 딸기 코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헤르 초이(미스터 최)!”
그는 화가 나서 안절부절하는 대규의 행동이 고소했던지 한 술 더 떠서 복구를 가리키며, 손으로 먹는 시늉을 했을 때 대규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ㅇ새끼,ㅇㅇㅇ새끼……”하는 욕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왔다.
말 뜻을 모르는 그도 대규의 거친 숨소리와 일그러진 얼굴에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챘는지 농담이라며 슬슬 자리를 피하려 했다.
“아우겐부릭(잠깐), 너에게 보여 줄게 있어.”
그를 못 가게 세워 놓고 대규는 부리나케 응접실로 달려가 서류 함 속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야! 임마,이 서류를 봐 우리 복구가 이름도 없는 흔해 빠진 보통 개로 아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라. 싸움 잘하는 투견으로 혈통이 있는 명견이란 것을 명심해라, 건방진 자식…”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대규는 서류 봉투를 마리오의 코 앞에 들이 밀었다.
봉투 속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되어 있는 맹견 진돗개를 소개하는 두툼한 책자와 빨간 리본으로 겉을 장식하고 금색 증지에 한국 진도명견협회의 요철 철인이 뚜렷하게 보이는 품위 있는 명견 족보와공인증서였다.
그리고 투견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복구를 앞 세우고 황금 빛 트로피를 든 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대규 형님의 사진도 들어 있었다.
내용을 확실히 이해를 못하는 마리오 눈에도 사진이 예사롭지 않은 듯 화려한 서류를 훑어보자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저 깡 말라 비틀어 생쥐 같은 개가 한국에서 유명한 투견이라…….”
믿기 지 않은 듯 복구를 번갈아 바라 본 마리오는 비웃는 듯 코 웃음을 쳤다.
„깔 보지마라. 너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못 들었나?”
두툼하니 거창한 서류를 코 밑에 들이 대며 빈정거리는 건방 진 코리언을 그냥 놔 두고 자리를 떠나기에는 마리오의 자존심이 여간 상한 것이 아니었다.
„내 분신처럼 사랑하는 삼손을 깔보고 빈정거리다니....”
관자놀이를 실룩거리며 마리오는 삼손을 앞 세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틈만 나면 마리오는 매일 삼손을 이끌고 편한 산책 길을 제쳐 두고 식당 앞을 활보하며 복구를 약 오르게 했다.
다른 개들 같으면 지금 쯤 서로 낯이 익어 친해 질만도 했으나 마리오와 삼손은 예외였다. 그림자만 얼씬거려도 복구의 성난 기세는 날이 갈수록 꺾일 줄 모르고 베란다의 철책은 복구의 사나운 발톱에 칠이 벗겨져 흉물로 변해 갔다.
로렐라이의 거센 물결을 헤치고 힘겹게 상류를 향해 거슬러 가는 화물선의 거친 기관 소리와 여울 목 파도소리가 어쩌면 귀에 익은 먼 조상이 살던 진도 바닷가의 아늑한 고향소리, 그 속으로 빨려 가듯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망중한에 빠져 있는 복구의 귀에 느릿느릿 투박한 삼손의 발자국 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조용한 정적을 깨고 복구의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마리오의 광채가 나는 머리가 눈에 들어 오고 그 뒤를 뒤뚱거리며 삼손이 따랐다.
대규의 마음을 훤히 궤 뚫어 보는 듯 마리오가 나타났다 하면 살기를 띠고 요란하니 으르렁거리며 사납게 짖던 복구가 한국 사람을 보면 신기하게도 언제 짖었는가 싶게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반기었다.
그 뿐만 아니다. 한국 관광객을 가득 실은 Touring관광버스가 로렐라이 골짜기 커브 길을 돌아 모습을 보이면 „커엉컹...“ 하고 우렁찬 복구의 포효가 로렐라이 골짜기를 흔들었다. 서재에서 장부정리를 하고 있던 대규는 복구의 짖는 소리에 부리나케 한국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했다. 복구의 취각과 청각은 고향의 냄새를 맡고 한국 말을 알아 들었다.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복구의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대규의 눈시울은 언제나 뜨겁게 적셔 왔다.
일 주일 전, 미운 놈은 미운 짓만 골라 하듯이 대규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홀 일을 돕고 있는 폴란드계 여인 로자의 의아스러운 눈 길을 받으며 수화기를 받아 들자. 대뜸 목이 쉰 듯한 귀에 익은 마리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한 술꾼들의 잡담 속에 섞여 들려 왔다.
„헤르 초이! 너의 고양이 새끼 같은 개가 우리 삼손을 무시하는 불손한 태도에 내 자존심이 너무 상해 그냥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우리 한판 승부를 겨루어 보자. 만일 네 개가 이기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들어 주겠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너한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 어떠냐? 삼손한테 도전장을 받았다는 것을 너의 나라 코리아의 영광으로 생각하라”
“미친 놈! 병신 육갑하네.”
독일 말로 적절한 낱말이 떠 오르지 않아 전화기를 내 던지듯 찰칵 끊고 나니 분한 마음이 도를 넘어 온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복구를 무시하는 것은 대규 자신을 무시하고 좀더 나아가서는 대규가 태어난 한국을 무시하는 오만 불손한 마리오의 도전에 피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듯 심한 울분을 느꼈다. 그런 탓인지 대규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잔 경련까지 일었다.
복구가 삼손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이미 승부가
정해진 것이나 진배없는 싸움을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고 요구 해 왔다.
어떤 수로 그 놈의 딸기 코를 박살 낼 방법은 없을까.
그들은 마침 시내 술 집에서 주정뱅이 건달들과 어울려 코리아 식당에서 기르는 개 복구를 술꾼들의 화제로 삼았고 그 이야기를 듣던 주정뱅이 건달들은 한국에서 가져 온 개라 하니 무조건 얼굴도 못 내 밀게 기를 꺾어 단번에 작살을 내라, 부추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보신탕 음식 문화를 문제 삼는 텔레비전 방송이 공중파를 타고 전 독일에 알려 진 뒤, 동물 보호단체와 극우세력의 횡포로 심한 몸살을 겪은 지 채 일년도 못되어, 그 악몽을 되새기게 하는 마리오의 극단적인 행동에 대규는 이성을 잃을 만큼 모멸감을 느꼈다.
<그래 어디 해 보자. 복구는 독일인이 싫어하는 맵고 독한 마늘과 고추를 먹고, 심한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의지를 지켜 온 불굴의 한국인 기질을 받은 독종이다. 삼손을 이기는 것은 바로 마리오의 높은 콧대를 꺾는 것이며 내가 로렐라이 바닥에서 외세에 굴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복구야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라.< 대규는 힘차게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상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용맹스러운 셰퍼드가 아니던가….
어둠이 밀려 오듯 불안과 두려움이 덮쳐 왔다. 바늘 귀만큼의 확률에 자신을 걸고 용기와 희망을 걸자.
마리오, 그는 세계 2차대전 독일이 패전의 상처를 벗어나 라인 강의 경제 기적을 일으킬 당시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귀화한 이민 1.5세였다.
인력난에 부닥친 독일이 인근 나라에서 인력을 충당할 때 그리스에서 건너와 시 청소부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온 것이다.
그는 직업학교를 나온 후 식당 웨이터로부터 시작하여 제법 규모가 큰 자신의 그리스 식당의 주인이 되기까지 모진 고생을 하며 어렵게 성공한 이권에 민감한 졸부형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로렐라이에서 터줏대감으로 행세를 하는 측에 속해 있었다.
마흔 다섯 나이에 비하여 이마가 훌렁 벗어진 대머리에 욕심이 많고 심술과 오기로 가득 찬 독일형 놀부였다.
대규 동생인 선규가 1983년도 5월 처음 이곳 로렐라이에 식당 문을 열 때부터 무슨 약점만 발견하면 곧 바로 독일 담당 관청에 신고하여 선규를 궁지로 몰아 붙이는 고약한 인물이었다.
유독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못 된 짓을 골라 했다. 로렐라이 관광지에 이색인종 동양인이 오래 버티어 나지 못하게 현지 주민보다 더 심하게 매사에 보이지 않는 심술을 부렸다. 이에 견디다 못해 제풀에 지쳐 로렐라이를 떠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못된 사람이었다.
제 아무리 고약한 심술을 부리고 고통을 주어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머리 같은 코리언이 이제는 한 술 더 떠 자기 나라에서 개까지 데리고 와서 자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자 파격적인 조건을 내 세우고 개 싸움에 도전장을 보내 온 것이다.
복구를 상대로 도전장을 보내 온 그의 음흉한 속셈을 거울을 보듯 훤히 알고 있는 대규는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1프로 확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능성에 승복 도전장을 받아 들고 고심 했다. 대규는 복구의 사나운 야성의 기질로 자신의 분노와 울분을 통쾌히 풀어 주기를 내심 바랬다. 1프로의 희망사항이지만 지렁이도 밟으며 꿈틀거린다는 의지를 그들한테 보여 주고 싶었다..
알프스에서 만년 설이 녹아 흘러 나오는 물이 모여 장장 500여Km를 별 장애물 없이 내려 오다가 90도 급 회전을 하는 지점이 로렐라이다.
수심이 30여m 가까운 지역으로 작은 배는 소용돌이 치는 급류에 한번 휩쓸리면 순식 간에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물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사고가 잦은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강둑에는 24시간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선박을 통제 운행 방향을 지시하는 관제소가 있다.
옛날에는 물결 따라 내려 오던 배가 로렐라이 부근에 도달하는 순간 소용 돌이 치는 급류에 휩쓸려 침몰하곤 했는데 이는 요염한 미녀가 유혹하는 피리 소리에 뱃 사공들이 키를 놓은 채 넋을 잃은 탓이라 했다.
그 때 수중 고혼이 된 뱃 사공들이 그 미녀를 잊지 못해 서린 한이 지금은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이 되었다.
특히 하이네의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시는 애절한 민요로 전 세계인에 의해 애창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이곳은 사실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미텔라인(라인 강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산티 고하우젠이라는 작은 도시이다.
암울했던 6,7십년대 우리나라는 당시 서독에 많은 인력을 수출했다.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원동력이 되었던 독일 차관은 광부 간호사의 파독에 대한 반대 급부였다.
3년 취업을 마친 광부 간호사는 대부분 총각 처녀가 많아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여 독일에 정착했거나 제3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광부에 광자도 모르는 학부 출신들이 강원도 도계 탄광에서 짧은 기간에 실습 과정을 거쳐 독일 광산으로 투입, 수백 미터의 지하 막장, 지열이 70도가 넘는 열악한 작업 장에서 3년 계약 기간을 마치고 현지 대학에 입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자도 있었고 계약을 연장하여 광산에 계속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휴가까지 반납하고 죽기 살기로 일을 하여 받는 급여 전액을 고국에 송금하여 집과 농토를 장만한 실속파가 있는가 하면 카지노와 도박으로 무일푼 신세가 되어 귀국도 못하고 동료를 찾아 다니며 빌 붙어 사는 한심한 사람도 있었다.
3년이라는 짧은 독일 생활로 현지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마땅한 직업을 손 쉽게 구 할 수 없어 자영업이 교민들의 주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중에도 요식업이 손 쉬웠다.
주로 저장 식품으로 통 조림이나 훈제, 소금에 저린 고기와 감자 푹 삶은 채소 등이 주종을 이루는 독일 음식에 비해 즉석에서 싱싱한 각종 야채를 기름에 살짝 볶아 새큼달큼하게 만들어 내는 중국 요리가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이 틈새를 뚫고 들어 간 한국인은 중국 요리를 우리 입에 맞게 개발을 했다.
기름기를 없애고 약간 매콤한 자극적인 맛으로 우리 한국인이 개발한 국적 불명의 음식에 맛 들인 유럽 사람들의 발길이 잦자, 어지간한 도시에는 한국 사람이 하나 둘 한국 식당 간판을 내 걸게 되었다.
한국 식당은 한국 음식은 물론 중국 일본 음식까지 통틀어 취급하는 광범위한 아시아 식당으로 규모를 잡아 갔다.
일주일 전에 주문을 해야 맛 볼 수 있는 북경 오리를 즉석에서 주문하여 먹을 수 있도록 오리요리를 개발하여 북경 오리라는 아성을 무너트리고 한국 지명을 붙여 개발한 신종 퓨젼 요리기 등장 성공한 사례가 동포 사회에 알려져 너도 나도 자영업에 뛰어 들기 시작 했다.
88서울 올림픽이 열린 후 불고기와 김치가 널리 알려지게 되어 김치 불고기는 한국 음식을 대표로 유럽 전역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대규 동생 선규도 광부 생활을 청산하고 로렐라이에 김치 냄새를 풍기며 ‘한국의 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게 되었다.
많은 현지 주민들이 호기심이 가득 찬 시선으로 주시를 했다.
일부 현지인들은 코리아라는 나라가 지구 어느 구석을 차지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들이었다.
최근 들어 ‘88년도 올림픽을 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 서울에서 거행키로 바덴바덴 올림픽 위원회에서 가결되었다.’는 보도가 방송과 TV를 통해 알려 지고 코리아 한국이 소개 되었다.
방송 사회자는 독일과 동병상련의 분단 국가로 라인 강의 기적이 한국에서도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열을 올렸다.
한국을 보는 그들의 눈이 긍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을 무렵 로렐라이 관문이라는 19세기에 축조 된 전통을 지닌 건물에 한글 간판을 달아 놓고 김치 냄새를 솔솔 풍기는 한국 식당을 개업했으니 오고 가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남달리 친절한 눈 길을 주며, ‘남쪽 한국이냐? 북쪽이냐?’고 묻는 우호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마리오 같은 인물은 노골적으로 눈엣가시처럼 적의와 경외 심의 눈초리를 보내 왔다.
로렐라이에 한국 식당이 들어 오기 전에는 대체로 한국인의 식성에 비슷한 그리스 음식을 찾아 한국 관광객이 마리오 식당을 찾았다.
마늘 향이 풍기고 매운 고추 맛이 나는 그리스 음식이 한국 사람의 식성에 맞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국 식당이 로렐라이에 자리를 잡고 문을 연 뒤로 마리오 식당을 찾는 동양인의 발 길이 뚝 끊기고 관광 객을 잔뜩 실은 버스들이 자기 식당 앞에 정차할 듯 잠깐 주춤거리다 부우웅.... 뿌연 매연만 내 뿜으며 한국 식당으로 향해 달려가자, 이를 바라 보던 마리오의 가슴에 부글부글 심통이 끓어 올랐다.
<동양 사람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수중에 어느 만큼 자본이 모아지면 큰 도시를 찾아 옮겨 가는 습성이 있다.> 라는 말을 식당 주인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듣고 마리오는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참아 왔었다.
식당을 개업하고 일년쯤 지나 젊은 주인이 자동차 사고로 죽고 금방 문을 닫을 것 같더니, 독일 말도 신통치 않은 죽은 주인의 형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별 탈없이 식당을 꾸려 나갈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개까지 데리고 와서 자기의 비위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자 그만 심사가 뒤 틀린 것이다.
작년 개고기 사건으로 눈에 가시로 여기던 한국 식당이 사방 팔방에서 공격을 받고 또한 폭주 족들의 등살에 <이번만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동안 문을 닫는가 싶더니 다시 원상으로 돌아 와 식당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늘자, <한국인들은 정말 끈질긴 독종들이구나,> 하고 마리오는 혀를 찼다.
그뿐인가 한국에서 데려 왔다는 이름도 전혀 듣지 못한 생판 볼품 없는 깡마른 개가 개중에 왕이라는 셰퍼트 삼손을 안중에 두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입에 거품을 물자 마리오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망가트려 졌다.
처음에는 설마 몇 차례 삼손을 보고 짖다 그만 두려니 생각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기가 죽기는커녕 기세가 등등하자 더욱 화가 치솟은 마리오는 도전장을 보내게 된 것이다.
도전장을 받아 든 대규는 심한 고민에 빠져 지내다 며칠 전부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마음을 고쳐 먹고 도전을 계획했고 너무 골몰한 탓인지 악몽까지 꾸어 가며 복구와 삼손의 결전에 집착했던 것이다.
대규는 나른하니 젖어 있는 몸을 간신히 추슬러 가며 침대에서 일어 났다.
악몽에 시달린 탓인지 뒷골이 띵하니 가벼운 두통이 덮쳐 왔다..
경황 중에도 옆에서 지금쯤 크리스트 보석상에 진열 된 다이야몬드 진주 루비 싸파이어 반지를 이 손 저 손에 번갈아 끼어 가며 행복한 단 꿈에 빠져 있는 아내 춘자가 행여 잠에서 깰세라 발 소리를 죽여 가며 조심스러이 밖으로 빠져 나왔다.
잔잔히 흐르는 라인 강 물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달 빛이 은 백색의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끈적끈적 흡반처럼 달려 붙는 미루나무의 꽃가루가 코 속의 점막을 간지럽게 했는지 그는 연거푸 재치기를 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복구가 양 쪽 다리 사이에 고개를 쳐 밀고 꼬리를 흔들며 낑낑거렸다.
언제나 촉촉하니 물기에 젖어 있는 콧 잔등이 달 빛을 받아 더욱 윤택하니 빛을 냈다.
군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이 딱 벌어 진 앞 가슴에 근육으로 뭉쳐 진 윤기 나는 털을 쓰다듬어 주며 대규는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꿈은 반대라 하던데…..그래 너도 잠이 아니 오겠지. 망할 놈의 삼손한테 하나도 겁 먹을 것 없어. 세퍼드도 나름이지. 이제 늙어 제 몸둥이도 가누지 못하는 이빨 빠진 늙은 세퍼드야… 너는 분명히 해 낼 수 있어. 너는 젊고 그리고 독하고 강인한 근성이 있지, 나는 너를 믿는다. 일격에 목덜미 급소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 마리오 못 된 놈! 그 동안 받은 설음을 통쾌하게 갚아 주는 거야. 로렐라이에 진돗개 복구의 신화를 남겨 보는 거야 알았지 복구야…”
흡사 실성한 사람처럼 대규는 혼자 중얼거렸다.
순간이나마 그는 현실을 벗어나 승리의 환상 속을 헤매고 있었다.
로렐라이 급 커브 길에서 교통 사고로 동생을 잃고 사고 소식을 고국의 칠순 노모에게 5년여 동안 숨겨 오면서 명절 때나 선규의 생일날 한국으로 전화를 할 때마다 한쪽 코를 틀어 막고 선규 행세를 하며 긴 세월을 보냈다.
이제 마음 속에서 동생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고 가족이 원하는 큰 도시로 옮겨 갈 때도 되었으나 로렐라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동생이 이루지 못한 꿈을 기필코 이루어 보겠다는 우직하리만큼 고집스러운 마음에서다.. 이런 대규의 굳은 결심을 마리오는 처참하게 짓 밟아 오고 결국 대적할 상대도 아닌 개 싸움을 걸어 왔고 대규는 무모하리만큼 그 도전을 받아 드렸다.
늘 보이지 않게 마리오의 심술이 계속되어 오고 지난번 폭주족의 횡포가 마리오의 심술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한 언젠가 한번쯤 그와 부닥쳐야 될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오늘 속 시원하니 마음 속에 맺힌 울분을 한꺼번에 날려 보낼 통쾌한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걸어 보았으나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복구야! 기필코 삼손을 꺾어 그 동안 받은 설음과 잃은 자존심을 꼭 찾고 싶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복구의 머리를 자신의 뺨에 문지르며 대규의 한 숨은 길게 이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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