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중심적 신앙과 하나님 중심적 신앙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이는 자기인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이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때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기인식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다는것이란 무엇을 뜻하는것일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것을 바라보는것 즉 자기 중심적인 믿음에서 하나님 중심적 믿음으로 변화되는것인데 이를 성화라 말한다.
제자훈련, 말씀묵상 훈련 과정을 지나고도 하나님의 관점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프로그램을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반복되나 실 생활에서 교육과는 달리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엇박자가 나기 때문이다. 신앙의 성숙이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을때 비로서 신앙의 성숙이라 일컷는다.
그럼 어떻게해야 그리스도인다운 정체성을 소유할 수 있게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향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어야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그 방향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영원한 천국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것이다. 그런데 천국에 소속되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왜 눈 앞에 펼쳐져있는 것들만 따라가려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목표지점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표지점이란 또 어디인가?
기본적으로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천국에서 주시는 상에 있다.(사도바울의 고백 빌3:13-14)
결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 목표 지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다. 그러므로 이 상을 받기위해 세상에서 힘써 싸워나가야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우리의 참된 삶이 필요하다.
하늘의 보물은 어떻게 쌓일까?
우리가 상을 받을 수있는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말씀에서 최소의 기준을 제시하셨다. 바로 누군가에 냉수 한 그릇의 제공이라는 최소의 기준을 말씀하셨다.(막9:41)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냉수 한 그릇의 제공에 대해 어던 상을 준비하시는 것일까. 이는 곧 단순한 물 한 그릇의 제공이 아닌 베품에 대한 마음 가짐을 보시는 것으로 상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상대에게 긍휼한 마음인지 귀찮치만 그냥 주는 마음인지 또한 먹고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등의 그 마음가짐을 보시며 상을 준비하는것이다.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하늘의 상을 살펴보고있는 가운데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당연히 이 땅의 보화가 아닌 하늘의 상을 쫓아가야 하는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상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장에서 얘기한 낸수 한 그릇의 대접으로 그것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이유로 베풀때 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속한자의 베품이란 베풀때의 마음 곧 예수님의 마음을 얘기하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배품에 아무 보상도 생각지 않고 투자하는 베품도 아니고 자랑을 위한 베품도 아닌 순수한 사랑의 그리스도인의 베품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내 이웃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섬기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 기쁨으로 그리고 아무 보상 없는 마음으로 대접하고 베푸는것이 곧 예수님께 한것이라 말한다. 이는 우물가에서 예수님께 물 한 그릇 대접한 사마리아 여인의 말씀(요4:9, 39)으로 누군가를 긍휼이 여기고 순수한 마음의 베품이 곧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며 이러한 일이 결론적으로 하늘의 상으로 쌓이게 된다는 말씀이다.
4월 21일 주일예배 말씀중 주님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고 지금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이기도하다.
불쌍히 여기시어 긍휼의 베푸시는 예수님, 오병이어 칠명이어의 기적의 예로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풍성한 베품의 사랑의 예수님 그리고 변함없고 아낌없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우리는 이 같이 모든 일을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행하는 건겅한 정체성의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저야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예수의 이름으로
한가지 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것이다. 따라서 물 한 그릇의 베품도 주의 이름으로 베푼다면 하늘의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막9:37)
그러면 주님의 이름이 빠져있는 행함에서는 어떤 문제점이 생기는지 살펴본다면 '자기 의'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어떠한 일에 대한 성취뒤에 따르는 영광이란것과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은 보상적인 부문이 자칫하면 '자기 의'에 빠빠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잘못에 바질 수있는 위험성이 있다는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바리새인을 들 수 있다(마6:5, 6:16)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실하고 최선을 다해 행하는 것에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며 이에 주께서 칭찬하시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회복하려 할때 교회가 살고 이 사회가 살아날 수 있슴을 잊지말아야 하겠다.
작은것의 힘
이번 장에서는 과연 물 한 그릇의 가치가 어느정도되는지 살펴보자.
과연 물 한 그릇의 상은 어느 정도의 규모일까? 그리고 왜 겨우 물 한 그릇을 주께서 주시는 상의 최소단위로 말씀하셨을까?
주님은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는 이유때문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을 제공할때 상을 주신다 하셨다. 이는 하나님은 보상의 규모를 말씀하시는 것이 하니라 최소한의 단위를 사용하시어 베푸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한 가지 말씀의 예로 가난한 한 과부가 드리는 가장 작은 헌금을 보시고 예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말씀에서 볼 수 있다(막12:42-44) 이와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최소단위, 작은것의 원리에 대한 말씀은 겨자씨 비유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것에 대한 말씀이 있다(마13:31-32, 마25:40)
이 작은것의 핵심은 바로 '생명'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지 아니면 품는 척하느냐가 생명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되고 이것이 곧 하늘의 상으로 갚아지는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을 지향하신다. 내적인 심령이 맞춰지길 바라시는 것이다. 성공이나 크기가 규모가 하나님의 복이라 하는 착각에 빠지면 작은것의 소중함을 잃게된다. 작아도 생명을 가진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된다. 이 생명을 놓치지 않는 믿음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핵심이 들어있다.
작은것에 대한 충성은 바로 주님께 대한 충성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충만해지는 곧 예수로 충만한 삶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천국소망은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상에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목적지는 바로 하늘에서의 면류관이요 상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