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한 조각(a piece of my emotion) (brunch.co.kr)
감정 한 조각(a piece of my emotion)!
순지(화선지)!
구기고 펴고 또 찢기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 과정은 누구의 삶을 대변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울고 화내고 지치고 분노에 찬 상태에서 나를 구해내려고...
<새로운 나>로 재구성하고 싶던 거예요."
작가에게 순지는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데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순지는 반복되는 구김을 통해 부드러워졌다.
화난 마음이 순지처럼 부드럽게 치유되는 것 같았다.
다시!
부드러워진 순지를 뭉친 뒤 온 힘을 다해 찢어가며 가슴 깊은 곳에 숨은 시기와 질투의 화신을 찾았다.
"더 잔인하게!
찢는 거야."
살이 찢기고 심장이 터지는 아픔을 느끼며 작가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작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새로운 나>를 생성시키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순지는 구김과 찢김을 통해 한 조각 감정으로 완성되었다.
그 찢긴 감정이 없다면 온전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봉틀 앞에 앉아 의사가 봉합 수술을 하듯 바늘과 실을 움직였다.
"한쪽은 얇은 순지를 먹으로 염색해서 찢고 재봉틀로 엉겨 붙이게 이어가고 다른 한쪽은 순지 그대로 찢고 붙이고 다시 찢고 붙여서 형태는 무너졌지만 남기고 싶은 부분이었어요."
작가의 말처럼 한 조각 감정을 남겨야 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하지 않던가!
순지를 구기고 찢고 다시 재봉틀로 이어가는 과정을 통해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다.
<원래의 나>를 죽이기 위해 염색하고 구기고 찢기를 또 반복하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여정은 녹녹지 않았다.
"한 조각!
감정 한 조각만 남겨야지.
이것으로 충분해.
살아야 하니까.
아니!
살아가야 하니까.
행복은 햇살 한 스푼이면 충분하지 않던가!"
작가의 한 조각 감정은 생성과 소멸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갔다.
지탱할 수 있는 힘
적과 싸워야 할 힘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워 이겨야 할 힘
한 조각 감정은 피를 토하며 <새로운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무너지고 또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새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어나면
또 다른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넘어뜨리고 사라졌다.
"오뚝이!
내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작가는 넘어진 <새로운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남은 숨쉬기라도 하듯 일어섰다.
또
넘어지면 쉬었다 일어나는 것을 반복했다.
순지가 구겨지듯 작가의 삶은 구겨졌지만 숨 쉬며 순지는 조금씩 펴지며 작가에게 희망을 주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구겨진 순지도 살기 위해 몸부린 치는 것이 보였다.
재봉틀 바늘과 실이 지나간 틈새에서도 순지는 숨 쉬며 당당하게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살아있어!
순지의 살결이 미세한 바람에 움직이잖아.
봐!
구겨지고 찢겨진 녀석이 숨 쉬고 있잖아.
재봉틀 바늘이 지나갈 때마다 아팠을 텐데 살아있다고 꼼지락거리잖아.
아!
나도 살아있구나.
<새로운 나>로 탄생한 거구나."
작가는 작품(a piece of my emotion)을 완성하며 <새로운 나>를 찾아갔다.
a piece of my emotion/최재영
<새로운 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순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새로운 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었다.
순지는 구겨지고 찢겼다.
재봉틀로 박고 염색도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순지의 살결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살겠다고!
더 잔인하게 구기고 찢겨도 살겠다고.
아니!
재봉틀로 빈틈없이 박박 바느질해도 살아날 거라고."
순지의 생명력은 강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순지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작가도 <새로운 나>로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데는 심장도 피와 살도 아니었다.
작가의 영혼을 지배하는 감정 한 조각이면 충분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원래의 나>에 길들여진 감정은 <새로운 나>로 이동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것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 말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원래의 나>에 익숙한 감정은 도전과 모험을 강하게 거부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예리한 칼로 도려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원래 감정을 도려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정이란!
관계가 형성되며 진화를 거듭했다.
<원래의 나>가 기억하는 관계 속에서 감정은 성장하고 길들여졌다.
그런데 많은 시간 동안 길들여진 감정이
<새로운 나>를 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 조각!
감정 한 조각이 가능할까.
전부가 아닌 한 조각!
왜일까.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이라면 전부를 도려내고 싶었을 텐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생각났다.
주인공 샤일록이 살 한 조각 욕심내다 생명줄 끊어야 할 상황을 맞이하듯 작가가 <새로운 나>를 위해 한 조각 감정을 선택한 것이 깊은 상처와 화를 치유하지 못하는 늪에 빠지지는 않을까 싶었다.
감정!
다스리지 못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이 그렇다.
시기와 질투가 또한 그렇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내 안에 존재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감정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어떤 방향으로 길들이는 가도 각자의 몫이다.
<원래의 나>에 길들여진 감정을 도려내고 <새로운 나>를 위한 한 조각 감정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a piece of my emotion)을 통해 모두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