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읽기(22)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7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엡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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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그들의 실체에 대해 말합니다.
“너희는 본래 죄인이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었다.
그때 너희는 세상 풍조대로 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였다.
이미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일어나게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으니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2장 1-6절을 요약한 것이다. 그렇다. 예수를 알기 전 자신이 분명 저런 사람이었다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는 것을 듣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전에는 세상 풍조대로 살면서,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저렇게 이미 죽은 자를 무엇 때문에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까지 앉도록 하시는지, 오늘 7절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본문 살피기
1) 구원의 목적
7절은, “그것은”이라는 말로 시작이 된다. 헬라어의 히나(ἵνα)인데, NIV는 ‘in order that’이라 하여 ‘① …하기 위해 ② …할 목적으로’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이미 죽은 우리를 살리신 것, 하늘에 앉히신 것의 목적을 이야기하기 위한 접속사이다. 앞에서 말한 신자에게 베푸신 은혜들, 살리시고-일으키시고-하늘에 앉게 하신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진노의 자녀였던 내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여, 나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고, 이미 하늘에 앉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목적을 알려주려고(히나(ἵνα)와 ‘in order that’을 써서 다음 내용을 전개해가는 바울 사도의 의중을 짐작해 보자.
‘그것은’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나 영어 성경에서는 어떤 목적을 암시하는 접속사라 하였으나,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συνεζωοποιησεν), 함께 일으키시고(συνηγειρεν), 또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συνεκαθισεν)는 사실이다. ‘함께(συν, 순)’라는 접두어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바울 사도는 예수와 우리가 하나되었음을 강조하였다. 영어 성경에서도 with Christ(그리스도와 함께)를 연속하여 쓰고 있다.
그런데 살리시고-일으키시고-하늘에 앉히셨다는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한 듯하지 않는가? 인간으로 오셔서 생을 마치고 부활하고 승천하심을 나타낸 구절이라 할 수 있다. 구로사키 선생은 신약주해에서 이를 아예 부활, 승천으로 바꿔 말하고 있어 흥미롭다. 즉 우리도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 그러한 은혜를 받으리라는 것이다.
2) 우리에게 온 은혜의 풍성함
7a,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피력한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세상 풍속을 좇아 그저 물결 흔들리는 대로 생각 없이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까지 앉히셨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을 몰아넣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여, 여러분처럼 주 예수를 믿고 그 은혜의 풍성하심을 같이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이를 독일 신학자 벵겔의 풀이로 더 들어 보자.
“신자들은 몸으로 하늘에 진정 현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권리의 관점에서 이미 하늘에 있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실질로 하늘에 앉아 있는 것이다. 각 신자들은 적절한 때에 차지하게 될, 그들에게 분명 할당받은 자리를 개인 개인 다 가지고 있다.”
저 하늘에 내가 할당받은 자리 하나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실제로 하늘에 앉아 있다’는 벵겔의 풀이에 더 이상의 조건이나 단서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 세대에 걸쳐, 현세에서부터 앞으로 영원히 진행하리라는 말씀이니, 하나님께서 에클레시아와 신자 개인들에게 베푸시는 무궁한 은혜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와 성품을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찬란히 드러내셨다. 무능하게 죽어 있던 내 속에 영적인 생명의 씨를 집어넣으셨고, 하나님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켜서, 하늘에 함께 앉도록 하셨다고 바울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계신다.
이 은혜의 풍성함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로이드 존스라는 분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은혜의 풍성함을 이미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삶에서는 너무나 자주 ‘슬픔과 좌절’에 빠진다. 여러분의 삶은 성서에서 말하는 가르침과 얼마나 다른가? 승리의 찬가와 기쁨과 감사는 어디 있는가? 우리의 마음에는 과연 감동과 감격이 있는가?”
또 칼빈은 종교개혁자답게 격한 말로 우리를 자극한다.
“단지 한 마디 말로써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온다고 고백하고, 또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을 배우자. 우리는 불행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험과 맞서 싸우자!”
이 두 분은 우리가 값싼 은혜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사실 우리도 평안할 때는 은혜와 감사를 노래하다가도 고통스런 상황이 오면 금세 태도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과연 믿음이 있는가 하며 더욱 좌절하기도 한다. 서머나 교회의 김성수 목사가 에베소서를 강해한 설교에서 위의 질문에 위로의 답을 주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그저 죄만 짓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신실하심, 의로우심, 은혜로우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우심, 신실하심을 나타내며 살아야 하는 신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저런 인간이 구원을 받다니….’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것도 좋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반문하실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꼴인데 어떻게 합니까?’ 안심하시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도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설교였다. 내가 아무리 잘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그 은혜를 보여줄 위인이 못되지만,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리라는 위로이다. 그야말로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3) 미래 세대에게
7b,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벌써 먼 미래를 보는 듯하다. 지금 이 편지를 받아볼 에베소 신자 여러분이야말로 미래 세대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긍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을 미래의 모든 세대가 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바울의 시점에서 본다면, 2,000년 후의 우리는 ‘장차 올 모든 세대’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렇게 에베소서를 공부하며, 바울과 에베소 신자들이 예수와 하나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초기의 박해를 이겨내고 복음을 지켰다는 사실을 믿으며, 본보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대는 또 우리 세대를 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산 사람들이었구나 하고 배울 것이다.
구로사키 선생은 ‘장차 올 세대’를 ‘장차 올 세상’으로 확장하여 첨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도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부활, 승천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인생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어 장차 올 세상에서도, 즉 예수의 재림 후 세상에서도 이 은혜를 보여주시리라.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죄에서의 구원은 결코 개개인의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심은 영원까지 영향이 미치는 위대한 사실이다.”
3. 맺으며
오늘의 본문에서 나는 ‘장차 올 여러 세대’라는 말에 특히 생각이 많아졌는데, 최근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난 6월초, 아들 내외가 미국 출장을 가는 동안 부산에서 보름동안 남은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었다. 그때 조규철 선생과 한정주 선생이 일부러 오셔서, 같이 1박2일을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류동집회에서 굳이 분리를 결심한 데 대해 허심탄회한 말씀이 있었다. 오류동집회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이제 손 선생이 오셨으니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유산을 물려주는 일에 전념하고 싶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멘 하고, 더 이상 부담을 드리지 않고 응원하기로 하였다.
그렇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말한 ‘장차 올 세대’를 훗날의 인류로만 생각하는가. 지금 당장 우리 곁에 있는 미래 세대로 눈을 돌리자. 그들은 나의 아들, 딸, 손자, 손녀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만나도록 하신 소중한 미래 세대가 바로 곁에 있다. 이 자녀들에게 내가 받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전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귀한 의무이다. 조 선생 내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어떻게 그 의무를 다할 것인가. 요즘은 김교신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김 선생의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100년 후에 동지를 구한다. 했던 선생이야말로 ‘장차 올 세대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가셨구나’ 놀라는 중이다.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남겨 주었기에,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세세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진구 선생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송두용 선생 전집을 비롯하여, 박석현 선생과 노연태 선생, 김애은 선생의 글, 그분들을 추억하는 다른 분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아니다. 김교신 선생과 이진구 선생은 특별한 사례가 아닐까. 저 에베소교회의 신자들처럼 어떤 책이나 업적을, 하물며 이름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들을 돌보셨던 하나님의 은혜만은 남는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좋다. 여기서 믿음의 식구들과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도 영원까지 이어지는 소중한 신앙 유산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