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물건들이 어렴풋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길로 오래 더듬으면 덩어리에 날이 생기죠. 나는 물건들과의 이러한 친교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벽에 붙은 선반에 대하여,
나에게 선반은 평평하지만 선반 입장에서는
필사의 직립(直立)이 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점점 높아지는 담에 대하여,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 적어 놓는 이름에 대하여.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이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피부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나가는 마중이라면
나는 이 마중에 실패하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이 습기에 순응합니다.
하지만 만약 손에 닿지도 않은 컵이 미끄러진다면
컵을 믿겠습니까? 미끄러짐을 믿겠습니까?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 비밀을 어떻게 옮겨 놓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습기는 누구의 이름입니까.
눈꺼풀을 닫아도 닫아지지 않는 눈이
내가 사라지고도 내 곁을 지키는 잠이
오래 나를 지켜봅니다.
신춘문예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이시영(왼쪽), 최정례 시인이 지난달 19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본심에 오른 응모자 11명의 시를 최종 검토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전체 응모자 1025명 중 예심을 통과해 본심의 대상이 된 열한 분의 작품들은 대체로 기존의 시적 관습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그 이상으로 말을 정확하게 운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족한 듯했다. 예심 통과작 중에서 몇 편은 구체적 정황을 나타내는 단어의 앞뒤에 모호한 관념어나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용어를 결합하여 그 정황을 애매하게 뭉개버리는 시들이 있었다. 또는 이제는 사라져 버려 우리의 현재 생활과는 동떨어진 시골 전경이나 자연을 낭만적으로 그리며 이상화하여 사실감을 뭉개버리는 시들도 있었다. 박다래의 ‘토끼의 밤’과 김나래의 ‘넙치’는 생생한 말로 시작했으나 시의 마무리 부분까지 그 생기를 끌고 가지 못하고 긴장을 풀어버리는 허약함을 보였다. 주민현의 시들은 구문과 구문 혹은 연과 연을 긴밀하게 조직하는 힘이 부족해 보였다.
이들 중에서 돌올하게 신선하고, 침착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펼쳐내고 있는 작품이 이다희의 ‘백색소음’이었다. 심사위원 둘이 서로 다른 감식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마음으로 단번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흔쾌하게 이 작품을 올해의 당선작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 작품에 함께 호감을 표한 이유는 아마도 시적 화자인 ‘나’와 대상과의 관계, 즉 우리가 담겨있는 이 세계 속에서 ‘나’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고, 말의 꼬리를 붙잡고 조근조근 할 말을 밟아나가는 말의 운용 방식 또한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당선작과 함께 응모한 나머지 작품들도 당선작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차분하고 여유 있는 목소리로 끈기있게 밀고 나가는 자세에서 저력이 느껴졌다. 시는 원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어서, 앞으로 시 쓰다 어려운 고비를 만나더라도 오늘의 기쁨을 원천으로 삼아 지치지 말고 정진하기를 바라며, 2017년 신춘의 새 시인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꽃게- 최병철
기사입력 : 2017-01-02 07:00:00
장손은 섬이었다 할아버지가 펼쳐놓은 바다에 담겨 있던 당신
잠시 뭍에서 맡은 쇠 냄새만 해안선을 따라 옆으로 옆으로 맴돌고 있었다 바다의 모퉁이에 헐렁하게 용접되어 있었지만 기운 기둥을 일으켜 촘촘하게 그물을 걸고 부력으로 집안을 밀어 올렸다 뱃머리가 바다를 가를 때마다 철공소에서 대문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솟구쳐 올랐다 가풍의 출입을 철대문으로 막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배를 저어갈 때 방향을 잡아 주던 어머니가 물 밑으로 가라앉고 철의 껍질에서 탈피했다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쯤 딱딱해진 가슴 위로 그물을 펼치고 휑한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물때를 기다렸던 밤 팽팽한 수면을 찢고 그렁그렁 달빛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바다가 심심해지면 안부가 궁금해지는 법 기다림만 키우다 통발에 자신을 가두던 당신 절단기로 섬을 해체하고 배를 수평선 바깥으로 몰아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지만 집게발이 파도를 물고 놓지 않는다
[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심사평] 삶의 경험에 녹여낸 시적 절실함 뛰어나
기사입력 : 2017-01-02 07:00:00
성선경 배한봉
올해 응모된 작품은 1000여 편이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큰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심사에 임했다. 이번 응모작들은 실험시 계열보다 대체로 서정적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서정적 상상력을 통해 팍팍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참신한 개성과 강렬한 상상력의 촉수를 내뻗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자기만의 세계 창조는 언어와 형식의 실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자기만의 언어로 패기 있게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편두통’ 외, ‘꽃게’ 외, ‘쾌종시계’ 외, ‘네모난 집’ 외, ‘편강’ 외, ‘롤러코스트’ 외, ‘은행’ 외, ‘주방론’ 외, ‘음각의 시간’ 외, ‘장마’ 외, ‘자일리톨’ 외 등의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서 이수미의 ‘편두통’ 외 3편, 최병철의 ‘꽃게’ 외 2편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의 손에 남았다.
이 가운데 당선작으로 결정된 최병철의 ‘꽃게’는 제목이 갖는 상징성과 장손의 삶을 바다와 연계한 구성력이 뛰어나며 뭍과 물의 관계를 쇠를 통해 형상화한 새로운 인식이 뛰어났다. 특히 자기 생각과 세계를 삶의 경험에 녹여내면서 끌고 나가는 힘은 시적 절실함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다소 거친 표현도 있지만 상상력의 질감이 잘 살아 있고, 시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진지성은 자기만의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여 신뢰감을 갖게 했다.
치열하게 마지막까지 논의됐던 이수미의 ‘편두통’은 이명(耳鳴)에 의한 편두통 증상을 객관적 상관물인 딱따구리를 통해 표현해냈다. 팍팍한 현실 앞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무력감이나 괴로움은 ‘편향(偏向)을 버리지 못한’ 화자의 통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섬세한 시선과 차분한 어조로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기량이 돋보였지만, 동시에 신인으로서의 강렬한 패기 구축이라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 드리고,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특용작물을 심은 노총각의 이야기, 젊은 며느리와 늙은 시어머니와 다국적 갈등, 파리 한 마리와 한나절을 놀았다는 과부댁, 허리가 점점 늦가을 풀포기처럼 구부러지는 재 너머 노인, 합죽의 입 꼬리에서 뛰어오는 손자들 부러운 마음 감추고 듣는 독거노인들 이야기가 점심 물린 마을회관에 가득하다. 토지수용 소문에 동네가 술렁이고 쇠약한 용돈을 먹고 약장사가 지나가고 나면 촌에는 보일러 공기구멍에 집을 짓는 새와 부엌이 놀이터인 쥐가 퍼트리는 소문이 있다
시문학이 지닌 제일의 가치는 문학적 진실에 있다. 문학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읽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파열음을 내는 사색적 자극, 물신의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도 격조 높은 심미적 쾌감을 주는 표현의 아름다움이 결합하여 시를 시답게 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적 진실이다.
이런 시문학의 진리를 외면한 채 시류에 편승하거나 소위 ‘신춘문예형’ 시 쓰기로 독자를 현혹하려는 자세를 경계한다. 그런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문학 지망생들이라면 반드시 화자의 체험이 깊이 육화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체험적 진실이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말을 갈고 다듬는 일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제1사명이 바로 모국어의 지킴이가 아니겠는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여덟 응모자 33편의 작품을 정독했다. 제목이 곧 제재라면 김정숙 씨의 ‘새우가 쓴 고래의 자서전’은 ‘새우가 쓴 고래의 전기’여야 마땅할 것이며, 한문수 씨의 ‘폭우를 만나다’에서는 중심 제재인 ‘폭우’를 형상화하려는 진술들에서 폭우의 원관념이 실종되고 말았다. 체험적 진실이 깊이를 이루지 못한 점, 표현의 언어 감각이 의욕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런 작품들을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김진희 씨의 ‘허공’과 최인순 씨의 ‘불을 자르는 사내’와 정연희 씨의 ‘귀촌’이었다. 세 응모자들이 함께 묶어 응모한 다른 작품들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허공’은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체험의 내면화 정도에서 섬세함이 모자라다 보았으며, ‘불을 자르는 사내’에서는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으려는 의장(意匠)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파란 불꽃만 피워 올린 한 그루 불꽃, 정원사가 다듬어 놓은 불은 몇 백 년을 활활 타오를 것이다” 등의 표현의 참신성에서 끝까지 당선작과 겨루었다. 그러나 ‘귀촌’의 장점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아쉽게 여긴다.
당선작 ‘귀촌’의 미덕은 많다. 사소한 듯이 보이는 소재들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지켜내려는 시심(詩心), 모국어의 지킴이로서 올바른 시인의 사명에 대한 자각, 체험이 육화되어 스스로 우러나온 ‘태어난 시’이지 ‘만들어진 시’가 아니라는 점,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몸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려 이를 형상화해 내는 시안(詩眼)의 참신함 등에서 당선작으로 밀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았다. ‘귀촌’이 함축하는 세계가 오늘의 농촌-시골마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막연한 ‘소문’으로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의장은 뜻있게 보였다. 다른 응모작들 ‘까끄라기’ ‘바람수습’ ‘씀바귀’에서도 고른 밀도를 보여, 이 당선자가 펼쳐 보일 시문학의 장래를 안심할 수 있겠다는 것도 당선작으로 미는데 힘이 되었다.
좋은 시를 만난 느낌이 소중하다. 아깝게 선에 들지 못한 시문학 지망생들의 분투를 빌며, 당선자의 문운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 진단-신동혁 · 막사발을 읽다-송가영(본명 송정자) 입력 : 2017-01-01 18:32 ㅣ 수정 : 2017-01-02 00:32
진단/신동혁
머리를 자르면 물고기가 된 기분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고 마지막엔 바다가 온다는 말을, 소금기가 남은 꼬리뼈를 믿습니다 훔쳐온 것들만이 반짝입니다 지상의 명단에는 내가 없기에 나는 나의 줄거리가 됩니다 나는 맨발과 어울립니다 액자를 훔치면 여름이 되고 비둘기를 훔치면 횡단보도가 되는 낯선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멀리서 보면 선인장 더미 같습니다 서로를 껴안자 모래가 흐릅니다 모래가 나의 모국어가 아니듯 빈 침대는 바다에 대한 추문입니다 나는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습니다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는 가장 뜨겁습니다 지도를 꺼내어 펼쳐봅니다 처방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가 깊어집니다
[심사위원 : 정끝별 황현산]
막사발을 읽다/송가영(본명 송정자)
너만 한 너른 품새 세상천지 또 있을까 먼 대륙 날고 날아 난바다도 건너갈 때 태산도 품안에 드는 은유를 되새긴다 털리고 짓밟히고 쓸리기도 했을 게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친구가 되지 못해 바람에 말갛게 씻긴 꽁무니가 하얗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가벼운 너의 행보 새처럼 구름처럼 허공을 떠돌다가 양지 뜸 아늑한 땅에 부르튼 생을 뉜다 그리하여 정화수에 묵은 앙금 갈앉히고 눈빛 맑은 옛 도공의 손길을 되짚으면 가슴에 불꽃을 묻은 큰 그릇이 되느니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입력 : 2017-01-01 18:32 ㅣ 수정 : 2017-01-02 11:47
‘신예(新銳)’란 새롭게 등장해 만만찮은 실력이나 기세를 떨치는 대상을 향해 쓰는 말이다. 신예가 될 신인시인에게 기대하는 우선적 요건을 ‘얼마나 오래 쓸 것인가’에서 찾고자 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일 것이다.
▲ 심사위원 정끝별(왼쪽)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본심에 오른 열 분의 작품들은 언어 구사력과 시적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문화적 지표에 기댄 채 포즈화되곤 했다. 시의 세련된 문화화는 모험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상 수프’와 ‘10월 삽화’의 시적 가능성은 녹록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어휘와 문장은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나 그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에 대해 응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일상에 대한 섬세한 천착이 믿음직했으나 자기가 감각한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설명적 묘사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타자화된 세계를 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동혁의 ‘진단’을 당선작으로 내보낸다. 보들레르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젊은 시인은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가 가장 뜨거워지는” 부재의 역설을,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는” 시의 비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막 탄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의문의 창문들을 열게끔 설계된 그의 시편들이, 끊임없는 자기갱신으로 시간의 수압을 잘 견뎌내기 바란다.
[심사평]시 예심에 의해 선택된 작품들 중 5명의 시를 집중 검토했다. ‘아마이드 밤 골목’ 등 5편의 시는 작은 행위들을 모아 하나의 이국적이고 신화적인 공간을 축조해가는 시들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문장들을 주어, 서술어만으로 짧게 분절하자 오히려 행위들이 표현되지 않고 설명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재의 형태’ 등 5편의 시는 같은 제목의 시를 쓴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와는 달리 사다리를 오르는 동작과 묘사를 통해 시공간의 안팎에서 부재의 형태를 발견해 나가는 시적 전개가 있었다. 그러나 같이 응모한 다른 시들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여름 자매’ 등 5편의 시는 소꿉놀이, 유년기의 자매애 같은 이야기들이 스며들어 있는 환한 시들이었다. 마치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은 깊이 묻어 버린’ 세계, ‘계속해서 실종되는’ 세계를 불러오는 듯했지만 시적 국면이 조금 단순했다.
‘창문’ 등 5편의 시는 얼핏 보면 내부의 어둠, 검정을 성찰하는 시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것들을 뭉개는 도형을 시가 그리려 한다고 느껴졌다.
응모된 시들이 고루 안정적이고, 스스로 발명한 문장들이 빛났다. ‘손의 에세이’ 등 5편의 시는 우선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이 있었다. 이를테면 손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손을 없애 보고, 손과 함께 머문 곳을 생각하고, 얼굴을 없앨 수 있는 손을 그려내고, 손의 얼개를 떠올리고, 손에 의해 부서지면서 손의 통치를 생각해 보는 전개가 돋보였다. 작은 지점들을 통과해 나가면서 큰 무늬를 그려내는 확장이 좋았다. 최종적으로 ‘창문’과 ‘손의 에세이’ 중에서 ‘손의 에세이’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