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군 전곡읍 양연로 1510 (전곡리 515)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을 대표하는 이 유적은 1977년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 왔던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지표에서 석기가 발견되면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렉보웬이라고 하는 이 병사는 채집한 석기를 서울대학교 고 김원룡 교수에게 가져갔고 김원룡 교수와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에 의해 아슐리안계 구석기 유물로 밝혀지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구석기 유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렉 보웬(Greg L.Bowen) 상병.
미국 대학(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고고학을 2학년까지 마친경력이 주먹도끼를 발견.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김원룡 교수에게 보내 구석기들의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hand axe)임을 확인.
구석기시대 동안 고인류들은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으며 이동성생활을 하였던 시기이다.
인류사의 거의 99.8%가 구석기시대이다.
그런데, 인류는 약 7백만 년 전에 나타났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는 약 250만년 전의 것이다. 인류의 발생 직후에도 자연석이나 나무 등을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석기를 제작한 흔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대의 침팬지들도 도구의 사용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결국 석기시대라고 하는 시기는 250만년 전에서 홍적세에 정착생활이 시작되는 1만 2천년 전의 시기까지를 포함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도 적어도 150만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하였으며 중국의 전 지역에서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른 시기의 고인류의 화석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석기유적들이 한반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어서 홍적세 이른 시기에 고인류가 유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슐 문화(Acheulean culture)는 인류의 선사시대인 전기 구석기 시대 석기를 제작하는 고고학적인 공법이며, 아프리카, 서아시아, 유럽, 그리고 일부 동아시아 등지에 걸쳐있다.
1백만년 전의 인류의 주요한 석기 제작 기술이었으며,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건너온 인류가 최초의 이 석기를 사용하는 인류였다.]
신석기시대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 The Neolithic Age)는 석기 시대 후기로,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질그릇(토기)을 도구로 사용하여 식량 생산 단계에 이른 시대를 말한다. 지구 온난화가 시작된 간빙기 초인 약 15,000년전부터로 본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전곡 시가지 남쪽, 한탄강이 감싸고 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임진강과 한탄강의 강바닥에 형성된 현무암이 넓게 덮고 있습니다. 구석기 문화층으로 석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1977년 주먹도끼와 가로날 도끼 등 아슐리안형 석기의 발견이후 현재까지 11차에 걸친 발굴을 통하여 유적지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문적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3000여점 이상의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석기의 발견은 1970년대 말까지도 이들 석기의 존재 유무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구석기 문화를 양분하던 모비우스의 학설을 바꾸는 계기로서 세계구석기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구석기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많은 시도들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한국의 구석기 연구뿐만 아니라 전세계 구석기 연구를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한탄강 임진강 유역에 대한 제 4기 지질학 연구가 이루어졌고 아직도 지질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고고학계뿐만 아니라 지질학계에도 중요한 연구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사체험마을은 인류 문화가 처음 태동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를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전곡리 유적만의 체험프로그램입니다. 구석기체험존, 구석기바비큐체험, 연천으로 떠나는 선사체험여행, 구석기활쏘기, 구석기고고학아카데미, 구석기 만들기 체험 등 6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천군 미산면(嵋山面)은 마전군(麻田郡) 지역으로 마전의 읍내가 되어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월곡(月谷), 중부(中部), 동부(東部), 이동(梨洞), 삼화(三和), 아미(峨嵋), 장양(長楊), 냉정(冷井),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마전군이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마전군 동면(東面) 지역이었던 백촌(栢村), 분석(盆石), 가정(柯亭), 유촌(柳村), 우정(牛井) 등 5개리와 서면(西面)의 송현(松峴), 광동(廣洞), 석장(石墻), 월곶(月串) 등 4개리(서면에 속해 있던 작동리는 1914년에 왕징면으로 편입됨)를 병합했다. 아미산의 이름을 따 미산면이라 하고 마전, 동이(東梨), 아미.백석(栢石), 유촌, 우정, 광동, 석장의 8개리로 개편하여 관할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산면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해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고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하여 적성면에 편입되었던 삼화리를 다시 미산면에 편입시켜 9개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
북쪽에 있는 산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릉지대이며, 임진강이 동부에서 남류 하다가 곡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르고 그 유역에 평지가 발달했다. 전체면적 중 농경지가 30% 정도이며,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우세한 지역이며, 1987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007호에 의해 석장리가 백학면으로 편입되면서 다시 8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