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친정 형제들이 모여 진보에서 영양으로 옮긴 외가를 찾아 가을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모두 바쁜 관계로 일정조정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잡은, 11월 1일(금요일)에 출발하여 이장희가 자주 올리는 두들마을로 갔다가 석계고택에서 자고 11월 2일에 영양 나라골에 있는 외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창원에 있는 큰새언니와 해원이는 평일에 가는 관계로 함께 가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어느 가을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마는 이번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길을 떠나는 일행이 사랑하는 오빠네와 동생네 가족이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1일 오전에 서울을 떠나 봉화달실의 청암정에 들렀습니다. 권벌 어른의 정자였는데 풍광에 취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운 단풍과 연못 위로 걸쳐진 다리를 지나 정자로 오르니 들판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여기서 시 한 수 짓지 않으면 그 시대에는 선비라 할 수가 없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작은오빠 내외와 인옥 내외, 그리고 인각이
그 다음에 봉화에 있는 청량사에 들렀습니다.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청량사는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 굽이굽이 아름다워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번 가을은 처음이자 제대로 단풍놀이를 떠난 것 같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컷 찍지 않을 수 없는 우리 형제들
내려와서 두들마을로 향했습니다.
큰 길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동네 안쪽에 어디 그런 음전한 마을이 있었나 싶게 양반 가옥이 잘 모르는 우리가 보아도 느낄 수 있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마을이 컸고 안정되어 있었으며 양반스러웠습니다. 진작에 왜 와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장희가 미리 예약해 주어서 석계고택에서 머무르기로 하고 저녁은 디미방에서 정부인상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가격은 센 편이었지만 감향주,어만두에 대구껍질누르미. 수증계, 가제육,.등..맛은 깔끔했고 새로웠습니다. 말로만 듣던 장씨 부인의 레서피에 적힌 음식을 맛보면서 기록의 중요성과 재현해 내려는 노력에 감탄했습니다. 석계종손의 설명을 들으며 큰 어른이 남기신 발자취가 후손을 자랑스럽게도 하며 살리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석계종손과 함께 한 작은오빠
아침에 장희네 집에 들렀더니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집 앞 풍경이 한 눈에 들어노는 것이 마음에 썩 들었습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집을 아직 지키고 있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금당실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에 다시 가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금 아렸습니다. 그 후에 들린 곳은 이문열문학관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답게 문학관은 상당히 넓었고 두들마을이 단지 양반동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스토리를 안고 있어서 -선비정신과 음식문화와 문학작가의 세계-까지 있어서 앞으로 지방문화 발전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규모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 커진다고 하니 먹는 것에 치우치던 우리들이 이제 정신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 시점에 있어서, 두들마을은 제대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광산문학관-이문열문학관에서 정문현과 권인각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들른 곳이 서석지였습니다.
작은 연못을 앞으로 하고 사군단과 보호수인 은행나무는 정말로 혼자서 보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전혀 모르는 곳에 관광을 간 것이 아니라 장희의 소개도 받고 알만한 곳을 간 것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의미가 있었고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책으로만 접하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오감으로 접하고 들으니 굉장히 가까운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래서 장희가 그토록 두들마을을 노래하고 올리고 애정을 갖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습니다.
드디어 영해를 향했습니다. 방학이면 찾던 진보 광덕의 외가. 가 본 지가 어언 사십 년이 넘었습니다. 영해로 옮긴 뒤 가보고 싶었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살림에 매이느라 그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곳에 가보게 된 것입니다. 나라골에 찾아드니 갈암종손인 원흥이오빠내외가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같은 사람인데도 서울에서 어쩌다가 볼 때는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는데 영해에서 보니 종손의 포스가 살아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저 옛날 총각시절에 장난치던 오빠 같은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마루를 닦으라고 하실 때 너무나 넓던 그 마루가 지금은 생각보다 좁아보였고 그토록 넓던 사랑도 한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습니다. 어렵던 시절에 철없이 외할머니 따라다니며 먹을 것 내놓으라고 조르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하였습니다.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책처럼 마음은 이렇게 성큼 왔으나 몸은 오래 돌아오느라고 그 시절의 할머니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신한댁, 엄마가 그리워져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살아 계실 때 같이 한 번도 이곳을 오지 못하여 너무나 안타깝고 그러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형제들이 함께 와 감회에 젖는 것을 보고 좋아하시리라 생각해 봅니다.

갈암종손-원흥오빠 내외와 함께 한 형제들
이번 여행은 단풍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여행이라기보다 뿌리를 찾아보는 의미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 넓은들 국제대회가 열린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마당이 펼쳐져 있어 자주 소식도 접하고 마음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이틀 동안 마음 따뜻한 과거로 갔다가 서울에 돌아오니 다시 정신없는 21세기의 도회지 삶이 펼져집니다. 잠시 행복했던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충전된 몸과 마음으로 발 디딘 곳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즐겁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