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정에 맞지 않는 브라질이 최강이란 환상이나 밥샵의 존재에 정신을 빼앗겨 시배리아의 대지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잊어선 안된다. 러시아는 소련으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아마츄어 격투기계에서 항상 세계의 톱으로 군림하고 있던 나라였던 것을. 유도, 레슬링, 복싱, 어떤 종목에서도 소련 대표는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에서 우수한 전적을 거두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면, 유소년 무렵의 재능이 있는 아이를 꼽아내어 그 방면의 엘리트 코스를 걷게 했기 때문에 그런것이라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얘기로 유도에 뛰어난 아이는 유도만을, 레슬링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레슬링만을 하면 되는 환경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국제 대회에서 실적을 남기면, 집이나 차가 지급되기도 하고, 직장에서도 우대되는 등, 너무도 맛있는 '단 것'이 준비되어 있다. 이른바 '스테이트 아마추어' 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국명이 소련에서 러시아로 바뀌었을 때, 국가관리에 의한 스포츠 엘리트 양성 코스는 붕괴되어 버렸다. 국가로부터의 원조는 전액 혹은 대부분이 중지되면서 유망선수들은 잇달아 국외로의 활로를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효도르는 사회주의 체제 시대의 혜택을 받지 않은 다음 세대였지만, 그가 태어나 자란 베르고로드 주의 스타 리오스콜 시에 유도나 삼보를 가르치는 클럽이 남아있던 것은 불행중의 다행이었다. (여담이지만 현재 효도르가 소속된 러시안 탑팁은 본거지인 에카테린브르그 시에서 무료로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삼보 교실을 열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강한 격투가를 길러 낼 수 없다는 위기감을 그들은 안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유도와 삼보의 관계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올림픽 종목이 유도이고 국기가 삼보라는 위치 설정이 되어 있고, 룰도 닮았기 때문에, 두 종목을 병행하여 활동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11살때부터 유도를 시작한 효도르도 그런 셈이었다.
"유도복을 입은 나를 본 유도선수가 내 어머니께 '아드님은 반드시 삼보의 연습도 해야 합니다' 라고 추천을 해주었던 것이 삼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보다 훨씬 살이 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걸지도 모르겠다.(쓴웃음) 체중이 계속하여 줄어든 것은, 95년에서 97년까지 2년에 걸쳐 대륙군에 들어가 있던 탓이다. 배속은 전차사단이었지만, 결국 전장엔 가지 않았다."
정보 전달의 미스인지,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사칭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발표된 효돌의 경력엔 분명히 잘못된 점이 있다. 프로의 세계에선 자주 있는 일이라,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지만,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이 된 지금, 이젠 잘못된 경력을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97년에 전 러시아 삼보선수권에선 3위, 4년 연속으로 같은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또 유도도 97년에 처음으로 시니어 러시아 선수권에서 3위에 올랐다. 계속하여 98년에는 U23의 러시아 챔피언에 올랐다. 이것이 효도르 본인에게서 직접들은 프로로 입문하기 전의 올바른 전적이다. (※작년, 그는 삼보의 세계 선수권에서 떳떳이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어쨌든,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표를 정하는 강화선수(선수육성을 목적으로 골라낸 장래성있는 선수를 뜻함)로 선택되기엔 지나치리만큼 충분한 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2월 전 러시아의 삼보 선수권에 출장했을 때, 효도르는 자신이 우승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걸 눈치챘다.
"난 준결승에서 모스크바의 대표에게 졌다. 패인은 레퍼리의 판단미스였다. 유도가 됬건, 삼보가 됬건, 유명한 클럽에 소속된 선수가 우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클럽의 선수만 챔피언이 되는 시스템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게다가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기에, 효도르는 올림픽의 길을 접고, 프로 격투가로서 활동하려는 결심을 굳혔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횡행하는 유명클럽만을 우대하는 시스템에 감사 할 수 밖에 없다. 안 그랬다면, 프로의 링에서 효도르의 활약을 볼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효도르의 프로선수로서의 활동은 일본이 중심이다. 데뷔도 2000년 9월 5일 링스 코라쿠엔 홀 대회였다. 그리고 데뷔한지 2번째 시합때, 브라질리언 유술의 호프 히카르도 아로나를 꺾고, 빠르게 두각을 나타낸다. 당시엔 아로나가 훨씬 지명도가 높았던건 당연지사다. 시합전 예상에서도 이 브라질리언 전사가 유리할 거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효도르는 연장전 끝에 아로나를 꺾어버린다. 주위사람들은 모두 놀랐지만, 승자만이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은 좀 더 간단히 이길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연장전까지 간것도, 아로나의 힘을 업신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브라질 대 러시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하여 링스의 4번째 시합에선 브라질의 발리투도 왕자 레너드 바발도를 격파하였다. 결코 프라이드 26에서 효도르 vs 안토니오 노게이라 전에서 양국의 탑팀끼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프로로 전향한 직후부터 효도르는 브라질리안 킬러였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효도르의 격투기 베이스는 삼보와 유도이다. 브라질쪽의 유술과 함께 이 3 격투기는 "친척"이라 해도 좋은 관계지만, 차이점도 있다. 삼보는 유도에선 금지되있는 다리관절을 꺾는 기술이 발달되있고, 유술의 기술적인 스킬의 특징은 유도에서 확연히 제한시 하는 그라운드 기술에 있다. 그런 가운데, 발리투도에 잽싸게 연결된 것은 유술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UFC가 나타날 때까지, 이 격투기는 브라질에서 태어나서 자란 로컬 격투기에 지나지 않았던 거니까.
역사적인 경위를 생각해보면, 유술가가 발리투도의 여명기에 활약했던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러시아세력이 발리투도의 세계에서 활약하는 데 시간이 필요 했던 것은, 승리를 위한 방정식을 좀처럼 작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링스에서 활약한 볼크 한이나 안드레이 코피로프는 훌륭한 관절꺾기를 구사하는 선수지만, 세계의 종합격투기의 흐름이 완전히 발리투도가 되었을 때, 그들은 너무 나이를 먹은 상태였다. 프라이드에서 효도르 이외의 러시아 세력이 활약할 수 없던 이유는 그 탓도 있다. 프라이드 26에서 퀸튼 람페이지 잭슨에게 패배의 고배를 마신 이류힌 미샤도 벌써 37세이다. 한이나 코피로프를 제 1세대라 한다면, 미샤는 제 2세대, 효도르는 제 3 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발리투도의 존재가 알려진지 10년째, 가까스로 러시아는 강력한 세대를 배출하는 것으로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았다. 원래 그라운드 상태에서의 기술은 삼보와 유도, 타격은 복싱으로 기술적인 스킬수준이 높은 나라인 만큼, 이를 응용할 방법을 알아내면, 얘긴 간단해 진다. 효도르에 이어, 삼보나 유도로부터 전향하는 선수들이 나온다면, 이 나라는 브라질을 능가하는 격투기 대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무리 삼보나 유도가 강해도 종합격투기계에서도 똑같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라운드 상태에선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도, 타격상태가 되면, 맹물이 되버리는 그래플러도 의외로 많다. 그런 의미로 효도르는 희귀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삼보, 유도선수 출신이면서도 스트라이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닐까? 특히 파운딩은 강렬하여 노게이를 쓰러뜨린 것도 이 공격이었다.
"나는 레슬러나 복서가 아니고, 무엇에도 대응 할 수 있는 토탈 파이터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는 복싱이나 레슬링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연구에만 열심인 것이 아니다. 실은 정신적으로도 효도르는 진정한 프로이다. 밥샵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고 있을 무렵, 만약 샵과 싸운다면 좋겠다는 질문을 하자, 이 러시안 파이터는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오퍼를 받는다면 누구와도 싸운다. 나는 내 격투가로서의 힘을 신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큰 상대와 싸워도 상관없다. 프로 격투가로서 제일 필요한 것은 근육이 아니라 머리이다. 그러니까 난 시합중에 공포심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다. 개인적으로 무서운 것은...으음 모기정도.. 내 고향 스타리오스콜 시에 있는 모기는 작지만, 한번 물리면 매우 아프다."
세미 슐트나 노게이라를 이긴 남자의 유일한 강적이 모기라니....벌의 침만도 못한 모기의 물림. 현재 제 2 대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을 쓰러뜨릴 묘안은 스타리오스콜 시의 주변에서 가져온 몇백마리의 모기를 시합전에 러시안 탑팀의 대기실에 풀어놓는 방법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 효도르 취재기 -
모스크바로부터 야간열차를 타고 13시간 거리의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해있는 스타리오스콜 시에 도착한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 창백한 필터가 걸린 새하얀 세계의 풍경. 플랫폼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하지만, 그곳은 틀림없이 야간열차의 종점, 스타리오스콜 역이었다.
열차에서 내리자, 곧바로 텔레비젼 카메라가 다가왔다. 누군가 유명인이 동승하고 있어서 그럴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온 우리 취재진을 비추고 있었다.
통역을 통하여, 미인 리포터인 이리나씨가 이야기를 걸어왔다. 스타리오스콜에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방문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쪽에선 에밀라아 엔코 효도르를 취재하기 위해 먼 일본에서 온 우리를 역취재하고 싶다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스포츠와 교육문화를 담당하고 있다는 부시장의 안내로 역사 박물관등, 시내를 견학한 뒤, 현지의 방송국 [채널 9]으로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스타리오스콜시의 인구는 25만명이지만, 매스미디어는 매우 발달하여 신문은 34지, 유선 TV는 46국, 게다가 로컬 방송국이 9국이나 있다. 채널 9은 그 중의 하나이다. 해당 방송국의 대표로 뉴스 프로그램의 캐스터도 맡고 있는 베르브킨 씨는 "스타리오스콜 시 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도 우리 채널 9은 25만명의 시청자를 가지고 있다" 라며 자랑한다.
"나는 격투기에 밝은 사람은 아니지만, 효도르는 알고 있다. 이제까지 이곳 베오그라드 주에서 복싱, 육상 경기, 수영, 사격, 발리볼등의 종목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내셔널 챔피언이나 유럽 챔피언, 그리고 세계챔피언을 배출해 왔다. 그 중에서도는 효도르의 지명도는 제일 높다. 적어도 스타리오스콜의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효도르의 이름은 알고 있다."
베르브킨씨의 말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후에 시내에 있는 유도 도장이나 복싱 짐을 견학했을 때, 연습하던 소년들에게 "효도르를 알고 있는가?" 라고 물어보자, 그들은 눈을 빛내며 입을 모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왜냐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효도르는, 스타리오스콜의 영웅이니까"
페레스트로이카(역자주 -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 진행된 개혁의 총칭)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가 된 이래로, 러시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다음은 베르브킨씨의 증언이다.
"체제가 바뀌고 난 뒤, 러시아는 후진국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굴욕을 받은 적도 있어서, 러시아 국민들에겐 욕구불만이 쌓여있다. 마음 속에 자신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가운데, 효도르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나오게 되어, 스스로의 장래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어떤 작은 마을에서라도 그곳에서 영웅이 나온다면 현지 사람들은 자랑으로 생각할 것이다. 현재 푸틴 대통령이 스포츠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그런 탓도 있다."
그런 뒤, 효도르의 연습을 견학하게 되었다. 장소는 그가 소년시절부터 익숙해진 현지의 격투장이다.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감고 있는 효도르의 포스터나 소년시절에 모여서 찍은 사진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유도의 연습에 힘을 쏟고 있는 한편, 친동생 알렉산더와 함께 묵묵히 땀을 흘리는 효도르. 이 날은 타격중심의 메뉴로 코치인 우라지미르 보로조프 씨가 끼고있는 미트에 묵직한 펀치나 킥을 넣고 있다. 알렌산더에 비해 상반신과 하반신의 밸런스가 좋다. 연타를 칠때는 반드시 3발째나 4발째에 임팩트가 큰 펀치를 내는 등, 완급을 조절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다음 유도레슨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드레싱룸에서 흥미로운 듯이 에밀리아 엔코 효도르 형제의 연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연습이 끝나자, 이사한 직후라는 효도르의 새 주택에 초대되었다. 우리를 위해서 홈 파티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70 평방미터에 3 LDK(역자주 - 리빙키친)의 맨션. 거실에는 아키하바라에서 구입했다고 하는 66인치 대형 TV가 놓여져 있었는데, 귀여운 딸인 마샤가 [톰과 제리] 비디오를 보던 한참이었다.
그 옆엔 최신 PC도 있어서, 효도르가 마우스를 클릭하자 곧바로 그의 홈페이지가 떴다.
그림으로 그려진 듯한 [이긴 편]의 생활. 스타리오스콜 시의 다른 가정을 본 것은 아니지만, 효도르의 생활수준이 높은 것은 분명했다. TV나, PC도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땅도 깨부수는 파운딩으로 손에 넣은 전리품이다.
테이블 가득히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요리를 만드는 사람은, 효도르의 애처(愛妻)인 오크서나 씨이다. 겉보기에도 보르시치(역자주 - 고기와 야채를 넣은 러시아식 스프)가 맛있을 것 같다. 제일 먼저 유리잔에 따라진 것은 [곰의 피] 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이었다. 건배를 선창하기 전에 효도르는 "다음에 스타리오스콜에 올때는, 적어도 4일정도의 스케줄을 잡고 와주세요. 그렇게 된다면 사냥이라도 갑시다" 라고 말했다.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 기뻤다. 지금의 일본에선 볼 수 없는 사람과 사람간의 뜨거운 관계가 러시아에는 남아있었다.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가 놀던 마샤가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 웃는 모습이 아버지 효도르를 꼭 닮았다.
첫댓글 잘봤습니다.
뉴스게시판에 올라왔었던 글에..몇가지 잼나는 사실이 추가되엇군요..잘바써요..
잘봤어요~
격투면에서든 가정에서든..저 미소가 정말 압권이군요!
잘 보았습니다..조금 더 효도르와 러시아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멋 있 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