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족보의 연원 및 발간
족보는 서양에서도 있었다고 하나 동양의 족보와 같은 것이라기보다 대체로 개인의 가계사(家系史)와 같은 것이다. 동양에서 족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때 족보가 등장하고 있다. 족보의 연원을 살핌에 있어 족보의 편성, 간행을 촉진시킨 우리 나라 고유의 사회적 정세를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두헌(金斗憲), "한국에 있어 족보의 발생은 벌족(閥族)의 세력이 서로 대치하고 동성일족(同姓一族)의 관념도 매우 현저하게 된 이후의 일이며, 계급적 의식과 당파관념이 자못 치열해짐에 따라 문벌의 우열을 명백히 하려고 하였음에 기인한다. "고 말하고 간행을 촉진시킨 요인으로서
① 동성불혼(同姓不婚)과 계급내혼제(階級內婚制)의 강화
② 소목질서(昭穆秩序) 및 존비구별(尊卑區別)의 명확화
③ 적서(嫡庶)의 구분
④ 친소(親疏)의 구분
⑤ 당파별(黨派別)의 명확화 등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고려사》나 고려시대의 묘지명 등의 사료에 의하면, 소규모의 필사(筆寫)된 계보는 이미 고려시대 이래로 귀족 사이에 작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한 동족 또는 한 분파 전체를 포함하는 족보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하였다. 족보가 처음 출현한 것은 1423년(세종 5)으로 이때에 간행된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영락보(永樂譜)》가 최초로 족보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족보는 문화유씨의 두 번째 족보인 1562년 간행의 10책의 《가정보(嘉靖譜)》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1476년 발간의 《안동권씨 세보》가 현존하는 최고의 족보임이 확인되었다.
이밖에 조선 초기 15세기에 간행된 족보는 남양홍씨(南陽洪氏 ,1454), 전의이씨(全義李氏, 1476), 여흥민씨(驪興閔氏, 1478), 창녕성씨(昌寧成氏, 1493) 등의 족보이다. 위에서 예거한 바와 같이 족보는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처음으로 출현하였거니와 모든 동족이 같은 시기에 족보를 간행한 것은 아니다. 어떤 종족은 16세기에, 어떤 종족은 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에 비로소 족보를 간행하였던 것이다.
한편, 현재까지도 족보를 간행하지 않은 종족도 적지 않은데,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동족의 형성이나 조직성은 종족에 따라 시대적으로 차이가 나며, 동시에 조선 후기에 이르러 동족조직이 형성된 종족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현상일 수도 있다.
조선 초기에 출현한 족보의 발간경위에 대해서는 《남양홍씨 세보》와 문화유씨의 《영락보》.《가정보》.《안동권씨 세보》 등을 통해서 대체로 알 수 있다.
1454년에 발간된 《남양홍씨 세보》의 서문에 의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1454년 처음으로 족보를 편찬한 사람은 시조의 16대 손인데, 시간(始刊) 전에는 시조부터 9대손까지의 세계를 그린 계보도 만이 있었다.
② 이 계보도는 수보자(修譜者)의 종당형(從堂兄, 재종형)이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을 보관하고 있었다.
③ 9대손 이후, 즉 10대 손부터 16대 손까지는 기록이 없어서 9대손이 수보자의 몇 대조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첩이 있어서 이것을 여러 벽에 걸어놓고 여러 날 관찰, 연구해 보니 전체의 세계를 알 수 있었다.
④ 수보(修譜)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의 경우는 고조까지의 기록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밖에 문화유씨의 《영락보》(1423), 문화유씨의 《가정보》(1562), 《안동권씨 세보》(1476),《전의이씨 초보(全義李氏草譜)(1476),등의 서문을 종합하여 정리하여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향을 알 수 있다.
첫째, 족보에는 친손과 외손의 차별이 없이 모두 수록하고 있다.
둘째, 1500년대의 족보나 1400년대의 족보를 보면, 자녀를 연령순위로 기재하고 있다.
셋째, 1400년대에 족보가 시간 된 당시나 그 이전이나 또는 그 이후에 규모가 작은 가첩 또는 사보(私報)가 간행되었다. 이러한 가첩은 도보(圖譜)일 수도 있으며 역시 내, 외손(친손과 외손)이 모두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가첩이나 사보는 큰 족보 발행의 자료가 되었다.
넷째, 가첩에 실린 자손의 범위는 문화유씨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외 8촌의 범위 정도로 생각된다.
이상에서 초기 족보의 발간경위와 대체적 특징을 살펴보았거니와, 족보가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발간되었는가를 세기별, 문중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15세기에 시간 된 족보의 수보간격
문 화 유 씨 : 1423, 1562, 1688, 1740, 1803, 1864, 1926
제 주 고 씨 : 1450, 1535, 1640, 1723, 1724(현존), 1769, 1791, 1804, 1819, 1833
※ 濟州高氏 族譜(제주고씨 족보 : 高得宗(고득종))는 世宗(세종) (西紀(서기) 1450년 庚午(경오)) 32년에 최초로 發刊(발간)되었으나 현존하지 않고, 景宗(경종) (西紀(서기) 1724년 甲辰(갑진)) 4년에 發刊(발간)된 濟州高氏 族譜(제주고씨 족보 : 高晦(고회))만이 현존하고 있다. 高氏長興伯派譜(고씨장흥백파보 : 高炅(고경), 高映(고영))는 英祖(영조) (西紀(서기) 1769년 乙丑(을축)) 45년에 發刊(발간) 되었다.
남양홍씨(당홍파) : 1454, 1716, 1775, 1834, 1876, 1920
안 동 권 씨 : 1476, 1605, 1701, 1734, 1794, 1856
② 16세기에 시간 된 족보의 수보간격
한양조씨 : 1524,1651,1726,1807,1849,1884,1921
합천이씨 : 1529,1754,1801,1876,1907
강릉김씨 : 1505,1743,1873,1903,1925
영일정씨 : 1575,1649,1774,1805,1880,1915
능성구씨 : 1576,1635,1716,1787,1853
③ 17세기에 시간된 족보의 수보간격
양성이씨 : 1606,1659,1773,1804,1838,1878,1917
함평이씨 : 1633,1663,1688,1742,1758,1807,1853,1896,1924,1957.1988
청풍김씨 : 1638,1715,1750,1857
반남박씨 : 1642,1683,1706,1825
한산이씨 : 1643,1740,1846,1905,1937
기계유씨 : 1645,1704,1738,1786,1864,1912
풍양조씨 : 1678,1731,1760,1826,1900
경주박씨 : 1684,1864,1883,1908
경주김씨 : 1685,1784,1873
인천이씨 : 1694,1777,1832,1864,1876,1903
④ 18세기에 시간 된 족보의 수보간격
달성서씨 : 1702,1815,1829,1841,1881,1907
대구서씨 : 1702,1736,1775,1818,1852
울산박씨 : 1705,1781,1819,1875,1925
동복오씨 : 1712,1793,1846,1866,1904,1926
연안김씨 : 1719,1765,1870,1912
포산곽씨 : 1743,1782,1853
순창설씨 : 1749,1786,1848,1875,1912
⑤ 19세기에 시간 된 족보의 수보간격
칠원제씨 : 1821,1883,1925
위의 표에 의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향을 알 수 있다.
첫째 18세기나 19세기에 시간 본을 낸 동족의 초간(初刊)과 재간의 시간간격은 비교적 짧다.
둘째 15세기나 16세기에 족보를 시간 한 동족은 대체로 긴 시간이 경과한 후에 재간 본을 발간하였다.
셋째 17세기에 족보를 시간 한 동족의 초간과 재간과의 거리는 대체로 조선 초기(15세기,16세기)에 시간 본을 낸 종족과 조선후기(18세기,19세기)에 시간 본을 낸 종족의 초간∼재간 거리의 중간에 있다.
넷째 15세기나 16세기에 족보를 처음으로 발간한 종족의 초간과 재간의 시간거리가 길다는 것은 아직도 동족 집단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또는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동족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다섯째 전체적으로 조선 초기보다 중기, 후기로 내려올수록 수보 간격이 좁아진다.
여섯째 초판의 발행이 이르든 늦든 대체로 어느 종족이나 초판∼재판간이나 재수∼3수간의 간격이 길고 수보를 거듭할수록 그 간격이 좁아진다.
일곱째 시대적 관점을 떠나서 평면적으로 수보의 간격을 살펴보면 수보 간격 31∼40년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41∼50년, 51∼60년의 순 이다. 어떤 종족이 족보를 발간하였는가를 국립중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제강점기 발행의 족보를 통하여 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족보를 간행한 성(姓)의 종류는 125성에 달한다.
1930년 현재 한국인 성의 총수 250종에 비하여 약 반수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에 족보를 발간한 횟수별로 동족을 보면 4회 이상 발간한 동족의 수가 가장 많고 5회부터 10회 사이가 그 다음이고, 11회부터 20회 사이가 다시 그 다음이다.
함평이씨 기성군파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