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시조문학상 2회 수상자: 임채성
수상작: 꽃마니 외 4편
꽃마니
임 채 성
심마니 삼을 찾듯 꽃을 좇아 꽃마니라
아내 몰래 할부로 산 카메라 둘러메고
꽃 앞에 납작 엎드린 꽃마니가 있었네
야생의 꽃을 탐해 야생으로 사노라며
해돋이 해넘이를 마른 숲에 묶어 두고
뭇 꽃과 눈을 맞추는 꽃마니가 있었네
노루귀 처녀치마 앉은부채 얼레지까지
그 싹 행여 밟을세라 고승 같은 걸음발로
본 꽃도 보고 또 보는 꽃마니가 있었네
성에 낀 가슴속에 못다 일군 꽃밭뙈기
홀로 피는 봄꽃처럼 도시를 멀리한 채
꽃잎에 술을 따르는 꽃마니가 아직 있네
대치동
임채성
여기선 개들마저 혀꼬부랑 소리로 짖네
새벽부터 자정 넘게 노랑버스 좇고 쫓다
다국적 친구들 앞에 제 주인 자랑하듯
더 높이 서기 위해 키를 늘인 아파트들
24 시간 편의점 같은 학원 불빛 깜박일 때
가로수 가슴팍에도 등급표가 내걸리고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잡아 지우려는 듯
한 번에 두세 걸음 축지법을 쓰는 초침
대치맘 *구둣발소리 시계바늘 끌고 가네
* ‘대치동 엄마 ’를 일컫는 신조어
둥지
임채성
불빛보다 달빛이 밝은 산동네 언덕배기
등은 살짝 굽었어도 늘 푸른 소나무에
신혼의 까치 한 쌍이 포르릉 날아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 날을 노래하며
뼘들이로 물어 나른 삭정이와 지푸라기
굵다란 가지 안쪽에 둥지 하나 틀었다
솔 그늘에 해가 들자 돌풍이 일어났다
그악스레 달려드는 까마귀 일족 앞에
갓 낳은 알은 깨지고 바람벽도 무너졌다
까치 울음 맴을 도는 재개발 정비구역
투구 쓴 철거반원 판잣집을 을러멜 때
뉴타운 보금자리주택 분양이 시작된다
날아라 , 두루미
임채성
자판기 커피 뽑다 새 한 마리 다시 본다
우수리로 돌려받은 오백 원 주화 속에
양 날개 활짝 펼친 채 부조된 저 두루미
어디로 날고 싶었나 , 좁은 목 길게 빼고
하릴없이 바라보는 납빛에 잠긴 하늘
몸값을 저당 잡혀도 이민의 꿈은 멀다
주물공장 뜨건 굴뚝 지나온 황사비가
거품 문 개울 따라 몸 푸는 그날에도
갈맷빛 스러진 산엔 피가 돌고 있을까
소나무 참나무가 종이컵을 찍는 도시
뻥 뚫린 고목 가슴 콘크리트 땜질하듯
두루미 숨찬 울음이 쇳소리로 울린다
사랑이 사랑에게
임채성
지하철 계단 아래로 쓸쓸히 몸을 숨기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본 적 있나
전동차 바퀴 소리가 쟁쟁 울던 그런 날
여름의 손을 놓자 차디찬 겨울이 왔네
승차를 거부하며 전원 끊은 스크린도어
터널은 너무 길었네
봄도 따라 연착이네
부은 목젖 안 뵈려고 시퍼렇게 뱉던 말들
헐거워진 늑골 사이 메아리로 울려올 때
어제는 허깨비던가 ,
어디에도
없네
너는
카페 게시글
내가 받은 책들
임채성시인,2020. 『제2회 정음시조문학상』.매일신문. 영남일보.
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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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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