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서부리西部里 유래
영양읍의 소재지로서 동쪽은 동부리와 경계를 두고 있으며, 서쪽은 청기면과 사이하여 있다. 영양군의 모든 행정기관이 이 마을에 있으며 영양문화의 구심점을 이룬다.
남쪽은 송영당을 사이로 하여 큰 느티나무를 수호신으로 한다. 현리와 이웃하여 있다. 고려 공민왕 7년 일본군의 침탈로 말미암아 현리에 있던 관아가 불타게 되고 약 3백년 동안이나 소실된 관아를 다시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지역민들의 상소에 따라서 1676년 현재의 군청 자리에 동헌이 들어 서게 된다. 하여 동부리와 서부리가 영양문화의 요람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마을의 특징]
마을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팔수골폭포수와 항일독립운동 삼의사,삼의각이 있으니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폭포는 영양읍에서 청기로 가는 마을 어구에서 약 1 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는 3~4미터쯤 되지만 물이 떨어지는 곳이 넓은 바위로 디어 있어 그 둘레가 천연의 동굴을 이루고 있는데 바닥이 평평하여 수십 명이 둘러 앉을 만하다. 폭포수를 맞으면 신경통이나 가려움증 및 눈병이 낫는다고 하는데 여름철이면 많은 여성들이 찾아 온다.
한편 삼의각은 서부리 영양중고등학교 정문 어름에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세운 충절의 상징이다. 일본인들의 압박에 맞서서 항일 투쟁을 하던 중 견디다 못해 푸른 동해에 몸을 던진 김도현 장군과 조선총독부 재정 책임자를 암살하려다가 붙잡혀 옥살이를 하던 중 굶어 죽는 남자현 여사와, 김좌진 장군을 도와서 만주에서 활약하다가 중국 상해 유삼정에서 일본국의 영사를 암살하려고 하다 붙잡혀서 사형을 당한 엄순봉 의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물이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갈판지ㆍ갈펀지ㆍ갈평지ㆍ갈전ㆍ갈전지
지역골 뒷산 해발 300미터의 산중턱에 있는 평지로서 칡넝쿨이 많고 또 칡의 질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봉우리를 탕건봉이라 하는데 이는 가뭄이 드는 해 현감의 주재하에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던 중 소나기를 만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갈전은 우리말로는 갈밭이 되며 갈밭은 우리나라 전영에서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칡은 옷감을 만드는데 쓰였고 때로는 갈건을 만드는 데 더러 그 뿌리가 약재로 혹은 먹거리의 일부로 쓰였기에 우리 생활과는 아주 가까운 물건이었다.
*북쇠몰ㆍ북새이
마을의 뒷산이 북새등으로 전해진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방비하는 요충지 구실을 하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가선대부 죽사공 남규원 선생이 북새동이라 불렀으며 현재 서부 3동 3반에 위치한다. 한자의 뜻대로라면 북쪽에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
<추가의견>
'天鼓落地천고낙지천'형의 지세로 하늘에서 쇠로 만든 북이 내려 오는 곳이라서 '쇠북/북쇠'가 변하여 '북쇠'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새들ㆍ새장터
280여년 전에는 읍내 중앙에 생겼으나 인구 증가로 1935년 이 곳으로 옮겨 오면서 생긴 이름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동편에 10여 정의 옥답이 형성되었다. 말 그대로 새로이 만들어진 들판이란 뜻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옥가리ㆍ옥거리ㆍ옥골마을ㆍ옥골몰ㆍ옥골ㆍ옥동
영양 감영에 딸린 감옥이 이 곳에 있었다. 죄인들이 사용하던 옥담 우물도 1970년도까지는 있었으나 이 우물에 부인 한 사람이 투신 자살하였기 때문에 메워져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구슬처럼 맑은 물이 갈펀지에서 지영골을 지나 옥거리로 흐른다 하여 옥동이라고도 했다.
*재검촌ㆍ재인촌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영양읍은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담한 산맥이 둘러있는 좋은 형국이나 남쪽으로는 가까이 울타리가 될 만한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칼을 든 모양의 산이 두곳으로 팔수골 입구 남쪽 칼등과 양평 남쪽 칼등이 마주 보고 있어서 읍민에게 액운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3백년 전 영양읍에서 남쪽으로 1킬로 지점인 현 1리 입구에 산을 만들고 느티나무를 심어 조산단이라했고 양평 남쪽 산의 화기는 정월 대보름날 산 꼭대기에 소금을 묻어 잠 재운다. 팔수골 입구 남쪽 칼등의 액운은 길목에 도축장을 설치하여 방지하였다고 한다. 현재 한국방송공사 영양 중계소 밑 마을이 재검촌이며 농민들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밭이 있을 뿐이다.한자 이름을 보면 여기에서 칼을 만들던 대장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마저도 든다.
팔수골ㆍ팔십골
여덟골 물이 합쳐 하나로 흐르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골이 팔십개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약수 폭포가 있는 청기로 질러가는 꼬부랑길이 너무 가파르고 험해 행곡로, 행곡령이라 한다. 1969년 독립 가옥의 집단화 사업을 벌여 영양군내 흩어져 살고 있던 화전민 20집을 이 곳 팔수골 상턱에 정착시켜 새마을촌이라 부르고 시범촌으로 삼았다.
*징영골, 지역골
징소리가 나는 마을이라 한다.
*좌불들
부처가 앉아 있는 들이다.
[출처;영양군지. 영양군청홈페이지]
꽃빛고을 사투리로 배우는 지명유래
(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07, 183) 영양읍 서부리(西部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모데, 마카, 칠기, 이사져, 굄, 그랑, 마떡, 쬐메.
서부리(西部里)는 영양읍 소재지이며 서부리와 동부리로 농갈라져 있니더.
서부리는 본래부터 읍내면(영양읍)에 속해 있었꼬,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읍소재지 서쪼구에 있는 마실들이라꼬 서부리(西部里)라 카기 시작했니더.
글코, 영양군의 주요 행정기관들이 모데 있는 영양군 소재지시더.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 일본 침탈로 현동(현리)에 있떤 관아가
마카 불타고 빈터만 남가져 있따가 300여년이 지난 1676년에 와가꼬
현재의 군청 자리(서부3리)에 새로운 동헌이 들어 서면서 부터
영양군 전체 소재지이자 중심지가 된니더.
(갈판지ㆍ갈펀지ㆍ갈평지ㆍ갈전ㆍ갈전지)
옛날부터 칠기(칡)가 쌔배따꼬 갈판지(갈전), 혹은 갈평지라꼬도 카니더.
지역골 뒷산 해발 300미터 산중턱에 자리잡꼬 있는 마실로. 읍 소재지가
한눈에 쏙 들어오고 이 산 꼭때기를 탕건봉(宕巾峰)이라 카니더.
갈전(葛田)은 갈밭을 한자로 쓴거시더.
(북쇠뫁ㆍ북새)
서부3리 마을회관이 있는 마실이시더.
옛날 영양군 중심이 현리(영양읍 현리) 이었을때 북쪽에 있는 군청 근바에
절이 있었따꼬 북사(北寺)라꼬 카다가. 북쪽 변방으로 외부의 침략을 대비하는
요충지 역활을 하게 되면서 부터 북새(北塞) 혹은 북쇠뫁이라 카게 된니더.
그리고 풍수지리와 관련 하늘에서 쇠로 만든 북이 떨어진
천고낙지(天鼓落地)한 데라꼬 북쇠라 켔따카기도 하니더.
(새들ㆍ새장터)
영양읍 장터가 처음에는 영양의 중심지인 신작로 (영양농협 근바)에 있따.
인구 증가로 시장이 덩달아 크지면서 1935년에 현재 시장(서부1리)으로
옮기면서 부터 새장터 혹은 새들이라꼬 카게 된니더.
새 장터 동쪼구에는 새로운 들판이 맹글어 지면서 새들이라꼬 카지만.
새들과 새장터는 이사져 있니더.
(옥가리ㆍ옥거리ㆍ옥골마을ㆍ옥골ㆍ옥동)
영양 감영에 딸린 감옥이 있었따꼬 옥골(獄谷)이라꼬 카다가.
갈펀지에서 발원한 그랑물은 지역골을 지나 옥골로 흐르는데 이 물이
구슬가꺼러 투명하고 마떡하다 케가 옥동(玉洞) 혹은 옥골(玉谷)이라꼬
바까 부르게 된니더.
그리고 풍수지리와 관련 해가꼬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관련되는 데로
신선이 다니는 꼴짜기라꼬 옥골이라 켔따 카기도 하니더.
(지역골ㆍ지영골ㆍ진영골)
갈펀지 알게(아래) 있는 마실로 군사 요충지로 진영이 설치 됬떤 곳이라꼬
진영꼴(鎭營谷)혹은 지영꼴(知榮谷)이라 카다. 골짜기가 깊어 안쪽으로 들어 가기가
지루한데라꼬 지엽골이라 카다 지역골로 바까 부러게 된니더.
그리고 풍수지리와 관련 고사(古辭)에 천고낙지(天鼓落地)로 하늘에서 쇠북이 떨어진
꼴짜기라 굄(고함)를 지르면 말의 울림이 징소리로 들린다꼬 케가 징영골,징역골, 지역골이라
켔따 카가도 하니더.
(재검촌ㆍ재인촌)
호국공원(충혼탑) 알게 있는 마실로 옛날에 칼을 맹그던 병장기(대장간)가
있었떤 데라꼬 제검촌(制劍村) 혹은 제인촌(制刃村)이라 카니더.
(좌불들ㆍ자부들ㆍ자푸들)
영양초등 앞에서부터 영양중고 그리고 팔수골 입구까지에있펼처진 뜰이지만
지금은 마카다 주택지로 바껜니더.
이뜰은 불교캉 관련이 있는데로 부처가 앉아있는 형국의 뜰이라꼬.
죄불들 혹은 자부들이라 카기도 했꼬 옛날 부처가 앉아있는 절이 있었따꼬
좌불들, 자부들, 자푸들 이라꼬도 켔니더.
(팔수골ㆍ팔십골)
쬐메한 그랑 여덟개가 엄체져가 흐른다꼬 팔수골(八水谷)이라 카기도 하고.
골이 팔십개라꼬 팔십골(八十谷)이라 카기도 하니더.
그리고 고갯길이 하도 험해가꼬 울면서 넘는 재라꼬행곡령(行哭嶺) 이라꼬도 카니더.
2017년에 영양, 청기간 터널이 맹글어져 지금은 교통이 디게 편리해 졌니더.
(새마을촌)
팔수골 산 중턱에 있는 마실로 1969년 화전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정부차원에서 공동으로 모데 살수 있는 새로운 마실이 맹글어 지면서 부터
새마을촌이라꼬 카니더.
[글 : 영양사투리보존회장 오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