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07.10
[법 이야기]
이인철 변호사의 사랑과 법
바람피는 남편 이메일 몰래 열어봤다가 처벌된 아내의 사연
결혼10년차 아내 김씨는 남편이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매일 늦게 들어오고 항상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밤이면 몰래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눈치였다. “수상하다”고 하면 남편은 되레 “의부증”이라며 아내를 타박했다.
어느날 밤, 아내는 남편 이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남편 이메일을 훔쳐봤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이메일에는 남편이 연인으로 의심되는 여자와 주고받은 내용이 가득했다. 참을 수 없었던 아내는 남편과 그 여성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훔쳐본 이메일 내용도 출력해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아내 김씨를 기소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외도한 남편에 대한 정보인 만큼 그 피해자인 나에겐 비밀이라 할 수 없다”며 “남편 외도를 잡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 경찰에 적발된 심부름센터 직원들과 그들이 사용한 각종 장비들. |
그러나 법원은 아내 김씨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부부 사이라도 배우자 동의 없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배우자의 사적인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읽어보는 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법률에서 말하는 ‘타인의 비밀’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남편 박씨의 사적인 내용이 담긴 이메일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박씨에게 이익이 되므로 정보통신법에서 말하는 ‘타인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아내 김씨가 초범이고 부부였던 점을 감안해 벌금 30만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은 이혼 과정에서 종종 발생한다.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잡으려고 무리하다 생기는 경우다. 하지만 자칫하면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증거 수집도 적정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핸드폰·이메일 비밀번호 알아내 내용 몰래 보면 비밀침해죄
비밀번호 설정 안 된 핸드폰 몰래 본 경우는 범죄 안 돼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이 프라이버시권은 헌법 제17조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 헌법에 기초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인정보법, 형법 등에서 도청, 비밀녹음, 촬영 등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있다.
▲ 1999년 경찰에 적발된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사용한 몰래카메라와 각종 도청장비. |
예컨대 배우자나 연인의 핸드폰, 이메일 등의 비밀번호를 풀어서 내용을 본 경우에는 형법상 비밀침해 행위에 해당돼 처벌받을 수 있다. 형법상 비밀침해죄는 ‘봉함, 비밀장치한 편지, 문서, 전자기록 등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그 내용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나 인터넷, 핸드폰 등에서 배우자나 연인의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낸 다음 그 아이디로 접속하면 불법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형법 제316조 제2항) 하지만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지 않은 배우자 핸드폰을 몰래 본 경우는 비밀침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삭제된 핸드폰 문자 복구, 위치 추적 등도 불법
배우자가 핸드폰 문자나 SNS 대화내용을 삭제한 경우 이를 알아내기 위해 관련 내용을 복구하는 업체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본인 동의 없이 배우자의 핸드폰 문자 내용을 복구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이런 행위를 넘어 최근엔 배우자, 연인 몰래 위치를 추적하는 경우도 있다. 핸드폰이나 차량위치추적기로 다른 사람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인데, 이 역시 범죄에 해당한다.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배우자가 바람피는 현장을 잡기 위해 흥신소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흥신소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흥신소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전화를 도청하고, 차량에 몰래 위치추적기를 설치를 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한다면 이를 의뢰한 사람 역시 처벌 받을 수도 있다.
설령 이런 행위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한 경우 그 증거는 형사재판의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합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배우자와 전화 통화하면서 내용 녹음하는 건 문제 안 돼
배우자와의 대화를 녹음하면 된다. 배우자와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면서 배우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몰래 녹음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면하거나 전화통화하는 것은 공개된 것이고, 타인간의 대화도 아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또 흥신소를 이용하지 않고, 아내나 남편이 우연히 배우자를 길에서 만나 사진을 찍는 것 역시 처벌까지 받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합법적인 방법도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재판을 준비할 때 증거 확보 차원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사소한 의심이 든다고 이런 방법을 쓰면 결혼 생활을 망칠 수 있다. 상대방을 의심할수록 상대방은 점점 더 멀어지고 의심하는 사람 본인도 점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차라리 그 시간에 본인 스스로 당당해지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는 신뢰가 기본이 돼야 한다.
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09/2014070902959.html?csmain
이인철(법무법인 윈)
E-mail : lawfirmwin@naver.com
경기고, 연세대 법대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윈'의 대표변호사. 결혼 생활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는 일에 보람을 느껴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이혼하지 마라! 함께 살 수 있다면 결혼 생활 유지하는 게 최고의 답이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땐 “똑똑하게 이혼하라”고 조언한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재치 있는 입담과 소신 발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