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2006년에 《원본 백석 시집》주해서를 내고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를 출간한 다음에도
백석 시 해석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
다. 그것은 고형진 교수의 역작 《정본 백석
시집》을 대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2월부터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 백석 詩 전편을 감상하는 글을 쓰기 시작
했다. 거의 매일 원고를 썼는데, 다른 일로
바쁠 때에도 하루 한 번은 꼭 작업 파일을 열고
한 줄의 글이라도 추가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학교로 복귀하는 시점에 맞추어 일을 끝내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온 교정지를 검토하는 것도 다른 때와는 달리
무척 힘들었다. 작품 표기를 원본과 대조하고
현대어 정본의 표기법을 일일이 다시 점검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자정을 넘겨 가며 해설을
고치고 또 고치다가 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때
문득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라는 李箱(이상)
의 글귀가 떠올랐다. 그때야 비로소 이 일은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 단체나 학회가 했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끝마친
다음에야 제 정신이 든 것인데 일 년 동안은
정말 백석에게 빠져 살았다.
이 책에는 백석의 첫 발표작 '정주성'부터
해방공간의 마지막 작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까지 백석이 발표한 시 작품을
전부 수록하고 해설을 붙였다. 분단 이후
북쪽에서 발표한 시는 다루지 않았는데,
내가 아는 "백석 詩(시)"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붕방'에서 중단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만선일보》에 '한얼생'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작품과 해방 후의 작품
으로 새로 발견된 '병아리싸움'도 백석의
작품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수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잡지에 실린 짧은 산문 중
詩에 가까운 작품은 수록했다. 시집 출간
이전의 발표작 중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시집의 편제에 따라 수록하고 해설했다.
다만 '定州城(정주성)'은 첫 발표작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앞에 수록하여 해설
했고 시집 부분에서는 작품만 제시했다.
각 작품의 해설은 세 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작품을 원본 표기대로 제시하고 詩語
(시어)의 주해를 달았으며, 그 다음으로
작품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붙였고, 해설
다음에는 작품의 현대어 정본을 제시했다.
'현대어 정본'이라 함은 백석의 詩를 중고등
학생을 위한 교과용 도서나 일반인을 위한
교양용 도서에 수록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현대어 표기법으로 교정한 작품을 뜻한다.
일반인들에게 백석의 詩가 쉬었다고 다가
갈 수 있도록 교정한 것이어서 원칙에 따라
교정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가장 합리적
이라고 판단되는 원칙을 따랐다. 현대어
정본을 만들 때 적용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띄어쓰기와 표기는 현행 한글 맞춤법의
규정을 따랐다.
(2) 詩語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표준
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어휘를
기준으로 교정했다. 비표준어나 잘못된
말은 등재되어 있는 말로 대치하되,
대치가 불가능한 말, 예를 들어 '갈부던'
이나 '즘퍼리' 같은 말은 원본대로 적었
다. 이 경우 '갈부던'을 '갈부전'으로
'즘퍼리'를 '즌퍼리'로 교정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교정해도 현대인이 그 뜻을 알기
는 어렵다. 그래서 그 詩語를 그대로
두고 주해를 통해 뜻을 파악하도록 했다.
(3) 한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병기하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한자는 한글로 바꾸
었다.
(4) 음절 수와 음감을 고려하여 비표준어를
그대로 둔 곳은 주를 달아 이유를 밝혔다.
일을 끝내고 보니 뜻밖에도 방대한 저술이
되었다. 공이 많이 들인 책이어서 애착도
크다. 지금까지 낸 책 중 대표 저작을 고르
라면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그리고 이 책을 택하
고 싶다. 공교롭게도 세 권의 책이 모두
태학사에서 간행되었다. 지현구 사장과의
도타운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표기
자체가 까다로운 白石(백석) 詩(시)를
원본 그대로 옮기면서 편집과 교정에
정성을 기울인 편집부 여러분들의 노고
에도 감사드린다.
2008년 1월
이 숭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