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잦았습니다. 딱히 이유도 없이 시작된 배앓이로 고통을 겪을라치면 저녁 무렵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귀가한 엄마는 병약한 제 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엄마손은 약손"을 주문처럼 외우곤 했습니다.
주문이야 효험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엄마의 말소리와 엄마가 곁에 있다는 안도감에 잠에 빠져들고나면 다음날이면 복통은 한결 가라앉고 그러면 또 한동안은 잘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거봐라, 엄마손이 약손이지"라며 의기양양해하셨습니다.
주문의 효과는 의심스러웠지만 확실한 복통의 경감이 확인되고는 했으므로 딱히 반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부재시에 찾아오는 복통에 맞서 제가 흉내내보는 "엄마손은 약손"은 전혀 효험이 없었으므로 저는 서서히 엄마손은 진짜 약손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주문을 외워줄 엄마가 더 이상 없는 지금, 할 수 없이 약에 의존하지만 약발은 엄마손에 미치지 못합니다. 약효는 그때뿐입니다.
뱃속에서 들끓어 일어나는 통증을 다스리고자 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 온몸의 기운을 손끝에 모아 유난히 부실한 자식의 배를 쓰다듬으며 내뱉는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주문 속에 고스란히 담긴 엄마의 마음은 '치열熾烈'했습니다.
그렇기에 뱃속의 들끓는 열기를 다스릴(治熱)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내면 속 뜨거운 열정을 두드리고 두드려서 정금 같은 말이나 글 혹은 그림이나 노래나 연주를 해내는 사람들,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응원합니다. 저는 그들 곁에서 곁불을 쬐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볕 좋은 날 친구가 보내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