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哀歌
안 국정
S!
귀뚜라미 소리가 소소하게 불어오는 밤
바람을 타고 열어 놓은 창으로부터 간지럽게 속삭입니다.
이미 자정이 지나 대지는 고요하게 어둠을 덮고 잠을 자고 있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는 그리움에 재가 되어가는
저의 혼을 더욱 더 방망이질 쳐 올뿐...
姬 !
저는 지금 좁디좁은 창살 속으로 은가루가 흩어지는 창백한 하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유난히도 창백한 조각달이 뜰 앞 버드나무 실가지 걸렸고 수많은 전설을 실은
무수한 별과 별들이 암담하게 모여앉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말없이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멀고 먼 낭만의 하늘로 허우적거리며 달려 가버린 저의 혼을 미운 듯이,
창살 사이로 차가운 밤하늘이 몰려 들어와 싸늘하게 식혀줄 때 느껴지는 쾌감!
언제 어느 구석에서 현실을 냉혹하게 차 버릴지 몰라도,
한 밤이라는 낭만적인 이 순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귀중한 신의 세계 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려오는 긴박감도 이 순간만은
오히려 비조일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의 아들이 되어 끝없이
먼 애원의 동산으로 갈 수 있으련만,
한 구석이 비어 버린 저의 심란한 심중은 어쩐 일일까요.
S!
「물망초」를 기억하시겠지요. 가랑비가 휘날리던 날.
저녁 조수가 밀려드는 우리들의 모래사장에서 S와 같이 불려 본 음율 말이에요.
지금 이 시간 유달리 생각 키우기에, 포근한 지금의 어느 하늘 아래서 창을 열고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생긋이 웃어 주는 S를 그리며 부르렵니다.
「해 없이 추운 이 땅에 서서, 저 제비 떼는 모두 떠나갔네,
비오델 향기로운 봄을 찾아 따뜻한 그의 보금자리로
나의 정들인 적은 제비도 한마디 말도 없이 내 품을 떠났네.」
문득 귀뚜라미 소리가 그쳤습니다.
이젠 실날같은 달도 언제 왔는지 시꺼먼 먹장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그대여! 밤마다 꿈속에, 내 얼굴 사라지 잖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그대여! 나 항상 너를 고대하도다.
날 잊지 말아라」
순간 그쳤던 귀뚜라미 소리가
이젠 달도 없어져 버린 창구에서 처량히 울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그리울 땐 미칠 듯이 저의 시신경을 자극해 오는 아름다운 영상!
둥그스럼한 얼굴, 윤이 반들반들 나는 새까만 머리,
속눈썹이 긴 새까만 눈, 오뚝 솟은 날씬한 코. 가름한 입술
생긋이 웃을 땐 얀 볼에 패여 지는 볼우물,
그것은 명확히 姬 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S!
울고 싶은 건 나의 마음이 곱게 곱게 순화된 일종의 결과라고 자부하여 본답니다.
문득 생각 난 게 있어 책갈피에 끼워둔 네 잎 크로바를 꺼내 봅니다.
한 잎 한 잎 마다 이름이 있는 기이한 풀이랍니다. S도 아시겠죠?
네 잎 가운데서 사랑잎 이라고 생각이 되는 잎을 따서
이젠 제법 세차게 불고 있는 밤, 바람에게 부탁하여 봅니다.
부디 S의 품속으로 가길...
이젠는 보이지 않게 날라 가버린 잎과 바람에게 기대를 걸어 봅니다.
딱! 딱! 하고 인간이 보낸 어둠의 사자들이 지나 갑니다.
또 바람이 한 차례 세차게 불어,
우수수 하고 노란 물이 든 시들어 윤기를 잃어버린
나뭇잎 들을 울려 줍니다.
이젠 먼 곳에서 반짝이는 꼬막불이 하나 둘 꺼져 먹장구름이 잔뜩 끼어 버린
싸늘한 문명의 대지는 거의 빛을 망각하여 태고적의
자세로 줄달음 치고 있나 봅니다.
또 얼마의 역사가 줄기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후두둑」 하고 나보다 먼저 대지는 울어 버립니다.
희귀한 자연의 울음소리에 나들이 간 나의 혼을 다시 찾아보렵니다.
갑자기 소용돌이 치는 격정의 물결에 질려 버렸는지
귀뚜라미 소리가 뚝 멎어버립니다.
S!
「그리움」이란 신이 나에게 준 이상 야릇한 존재의식을 생각하기보다 번거로운 낮보다 정적이 깃든 야밤중에 찾아온다는 건,
나에게 무척 행복한 조건이라고 허공을 향하여 부르짖어 봅니다.
시간의 흐름은 이렇게 S와 단조로이 이야기 하는 순간도 찾아 왔나 봅니다.
그리하여 이 귀절을 이야기 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시간이란 녀석에게 침범 당하고 있다고...
또 다시 귀뚜라미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아름답게 고조되어 달음박질쳐
나의 고막을 두들깁니다.
혼잡한 言語만이라도 나의 「그리움」을 이겨 내지 못하는 건 人間의
힘이 자연과의 대결에 너무나도 엄청난 거리를 가지는 것일까요.?
이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 파묻혀 안일한 꿈의 향연을 베풀어 주길...
그 때까지 잠사라도 안녕히...
첫댓글 대단한 로맨티스트 안국정 선생님 !
아직도 소년의 감성을 잃지 않으셨네요 ~~
참 부럽습니다요 ^^~~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