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따라 사랑하며 이단을 경계하라 (찬송 50장)
월, 2016-4-4
맥락과 의미
오늘 말씀은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가지라고 합니다.
1. 문안 인사 (1-3절)
첫 번째 말씀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1절은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택하심을 입은’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부녀 (큐리아)는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6장에 하갈의 그 ‘여주인’ 사라 (창 16:4,8,9)라는 표현에 나옵니다. 부녀는 단순히 여성이 아니라, 한 집의 여주인입니다. ‘큐리아’의 남성형은 ‘큐리오스’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이 계시고, 여주인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자녀는 바로 성도입니다. 어머니
교회의 사랑은 직분자를 통해 나타납니다. 요한 사도는 교회의 장로 중 한 사람으로써 같이 택하심을 입는
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장로를 요즘은 목사라 하고, 치리하는 장로를 ‘장로’라 합니다. 사도들은
자신을 ‘장로’로 소개합니다 (벧전 5:1).
우리는 교회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합시다. 어거스틴도 칼빈도
교회도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과 교회는 이러한 말씀에 기초해서 교회는 인간이 세운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낳고 기르시는 어머니와
같은 기관임을 잘 고백했습니다. 또 교회의 직분자는 그 어머니같이 성도들을 잘 기르는 자입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직분자된 목사와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키우는 이 일을 받는 것을 참으로 귀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은혜와 평화를 성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 우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3절)
교회에 보낸 서신서는 이 축복을 교회에 전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편지에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고 하는 데, 개인들 향해 쓴 편지에는 “긍휼”을
더 추가합니다 (딤전 1;2, 딤후 1:2, 유다서 2).
또 따른 특징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고 하는데, 요한이서는 “우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합니다. 편지를 쓰는 자와 편지를 받는, 축복을 주는 자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받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나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들이” (1절). 사랑과 진리 이 두 단어가 핵심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서로 축복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합니까? 진리를 함께 알기 때문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진리의 복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서로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전합니다. 말로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그 복을 전달해 주십니다.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성도에게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는 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그 은혜 때문에 마음의 평강과 강함과 물질적 복과 여러 가지 평강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와 평강은 진리와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바로 알 때 그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의 은혜와 평강에는 고난도 포함됩니다 (빌 1:29).
2. 본론: 진리와 사랑 가운데 행함 (4-13절)
4절에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것을 우리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사도의
기쁨은 성령님의 기쁨입니다. 행함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행하는
자라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진리에 행하는 자. 진리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주신 계명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명 안에 있는 진리가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도는 교회가 이 사랑의 계명을 듣기만 하지 않고, 그 가운데 행하는
것을 심히 기뻐했습니다.
5절에서 “부녀여” 즉
“교회여, 서로 사랑하자.”
“이것은 새 계명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그 사랑은 새 계명이 아니라 옛날부터 받은 계명이라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계명을 쫓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계명으로 주신 십계명을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가르치고, 십자가에서
모범을 보이신 그 새로움 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말고
미워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고 사랑을 실천합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사랑해왔지만
오늘도 서로 사랑하고 말씀에 계속해서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완전의 관점에서 보면 계속 불순종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전히
순종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명령과 함께 두번째 명령은 진리를
꼭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와서
세상에 나왔나니.” 계명을 부수는 미혹하는 자가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그 때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육체를 입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상의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믿었던 사람들이 사람의 눈에는 생활이 신실하고 착하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교회를 멸망시키는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이 자들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9절에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 계시의 말씀을 받고서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되는데 자기 스스로 창조적인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의 상식과 생각으로 창조적인 사상을 만들어 내면, 진리 보다 앞서 나갑니다. 진리와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바로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자기의 생각대로 허물어뜨리는 그런 생각은 멸망할 생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으로 왔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 자들, 이런
이단들을 어떻게 대해야 됩니까? 인사도
하지 말고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사하면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니라.” 11절. 그런 이단적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게 인사를 하지 말라는
뜻 보다는, 숙식이나 경제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에도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올바르지
않는 교리에 빠진 교인은 목사로서는 먼저 잘 가르쳐야 합니다. 계속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교회에서 추방합니다.
비진리에 결코 타협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시지 않았다.” 이것은 그때는 영지주의로 있었지만 지금도 성도들 가운데도 그런 위험한 생각이 조금씩은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체적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신앙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구체적인
삶을 살았고 사랑을 하며 사셨음을 바로 알 때 우리는 많이 달라집니다. 우리 살아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으로서 다 경험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삶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서
일상 가운데 복종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가사 일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학생들 공부하고 그 모든 과정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경배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정말 기쁨을 가지고 인사하고 문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요한이 있던
곳의 자매, 즉 교회의 자녀, 성도들이 문안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렇게 서로 문안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새 백성 되었고 한 지체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정말 소중히 여깁시다. 서로에게 부족함을 볼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 사실을 알고서 진리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합시다. 사랑 가운데 문안하면서 기쁨이 충만한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평화, 긍휼을 서로에게 말해 주며 축복합시다. 진리를 잘 배우며 하나님을
굳게 믿읍시다. 참 믿음 가운데 서로 사랑합시다. 성경과
어긋나는 가르침은 항상 경계하고 진리 안에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살아간 그런 삶의
순간 순간을 복종하며 소중히 여기고 기쁨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