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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전기(田琦)의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기는 19세기 여항시사(閭巷詩社) 중 하나인 벽오사(碧梧社)에 조희룡(趙熙龍)·유재소(劉在韶)·유숙(劉淑) 등과 함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후 벽오사 그룹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림은 송대와 원대의 남종파(南宗派) 화풍을 계승하였고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산수화는 고요하고 쓸쓸하면서도 정답고 담백하다.
작품으로 《연도(連圖)》 《수하독작도(樹下獨酌圖)》 《자문월색도(紫門月色圖)》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추산심처도(秋山深處圖)》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기향하처도(騎向何處圖》 등이 있다.
전기가 오경석(吳慶錫)을 위해 그린 《매화서옥도》는 윤곽선을 연하게 두르고 바위와 주산의 등성이에 녹점을 찍어 강조하였으며 그 단면은 엷게 채색하여 처리하였다. 백호분으로 처리한 눈 같은 매화꽃과 초옥의 지붕, 다리 위의 선비가 입은 붉은 옷 등이 잘 어우러져 산뜻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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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룡의 묵매도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자(字) 치운(致雲), 호(號) 우봉(又峯)·철적(鐵笛)·호산(壺山)·단노(丹老)]은 조선말기의 대표적인 중인화가로서 산수와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특히 매화에 심취하여 방에 매화병풍을 두르고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硯),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으로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에서 매화백영시(梅花百詠詩)를 짓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마셨다고 매화벽을 밝혔다. 줄기가 왼쪽 하단에서 시작하여 둥글게 돌아 중간에서 끝남으로서 참신하면서 세련된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조희룡 매화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초기에 매화줄기를 입체적이고 괴량감 있게 그리다가 점차 평면화 시키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보여지듯 줄기 한쪽에 진한 묵면을 두고 그 위에 농묵으로 분방하게 점을 찍어 개성적인 매화를 그리고 있다. 또한 몰골법으로 그린 홍매와 서로 어울려 산뜻한 색채감각을 보여 준다. 매화는 조선말기 중인 화가들에게 애호되어 많이 그려졌는데, 이에는 임포(林逋)의 고사와 관련해서 자신의 처지를 기탁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매화의 화사한 색감이 장식적인 효과를 갖추고 있어 동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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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峯 趙熙龍(1789∼1866) 홍매도
朝鮮 19世紀 中葉
종이·水墨淡彩 各 145.0×42.2
추사 김정희의 후배이자 제자인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은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중인 출신의 서화가로, 당대 화가들의 그림을 평하기도 하고, 중인층 인재들의 전기를 기록한 『호산외사(壺山外史)』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우봉은 매화를 특히 좋아하여 매화도를 즐겨 그렸다. 이 작품을 보면, 지그재그로 구부러진 굵은 매화 줄기의 일부를 클로즈업하여 화면의 세로 방향에 따라 배치하는 대담한 구성이 돋보이나, 무수히 핀 붉은 매화 송이 외에도 줄기 곳곳에 많은 태점을 찍어 다소 번잡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렇게 꽃이 많고 구도가 복잡한 것은 중국 청대(淸代) 매화도의 영향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조희룡은 자신의 매화도가 청대 화가 동옥(童鈺, 1721∼1782)과 나빙(羅聘, 1733∼1799)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그 양식적 근원을 밝힌 바 있다. 화면 내에 우봉의 관지는 없지만 근대 서화가이자 대수장가였던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이 1947년에 쓴 후제(後題)에서 조희룡의 그림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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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필매화도(趙熙龍筆梅花圖)(조희룡필매화도)
조희룡 군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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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은 현종의 명을 받아 금강산의 여러 곳을 초필(草筆)로 그렸던 적이 있고, 1854년 66세 때는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난죽(蘭竹)에 못지 않게 채색 나비 그림에도 뛰어났던 조희룡은 역시 나비 그림으로 유명한 남계우(南啓宇)보다 한 세대 앞서는 작가이다. 19세기 중엽에는 나비 그림이 크게 성하였다. 고운 설채(設彩)와 함께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러한 나비 그림들은 세로로 긴 화면을 이용해 화훼화(花卉畵)와 곁들여진 경우도 있고, 소폭 나비 그림들만으로 꾸며진 화첩도 여럿 전한다. 화면을 상하로 양분하여 그림과 글씨를 동등한 비중으로 배치한 이 그림은 금·은박이로 장식된 닥종이에 설채하였다. 별도의 배경 없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크고 작은 나비들은 닥나무 껍질의 문양과 더불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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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 품 명 - 우봉 조희룡 왕죽도
* 크 기 - 118 × 28cm
* 시 대 - 조선시대
<다음카페 서예세상 명작감상>
첫댓글 감상 잘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화첩에서 조희룡의 난 그림을 다시 한 번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화서옥도와 홍매도 대련등 자주 접하던 그림이나 한번더 올려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상 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