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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 실천하는 신묘년 구법여행 출발!” 2월, 꽃샘추위가 몰아닥친 이른 새벽 ‘선묵 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회원’들은 안성 칠장사로 제 53차 순례에 나섰다. 장병들에게 전해줄 초코파이와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미, 점심도시락을 담은 배낭을 메고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길을 나서는 회원들의 얼굴들은 그지없이 화사하다.
그 속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초등학생, 예순이 넘은 노(老) 보살님들도 많다. 그들에게 있어서 산사순례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고요소리, 법고 소리가 있으니 이곳은 마치 삶의 산소와도 같다.
선묵 혜자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 이야기 가운데 올해 첫 순례지로 채택된 안성 칠장사. 지난 2월24일 칠장사 경내에 모인 5000여명의 사부대중.
108산사순례는 ‘108산사 찾아 108배 하며 108번뇌 소멸하고 108염주를 만들어 가는 인연공덕을 쌓는 대장정(大長程)’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5년 째를 맞이하고 있다. 회원들은 순례의 기쁨 속에서 얻어진 신행일기의 산(産) 기록들을 남기기 위해 다녀온 곳은 반드시 108산사 책자에 낙관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 아이들에게 어쩌면 삶의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에 5000여 명이 다니니 연인원 6만 명, 그동안 약 25만여 명이 산사를 찾았으니 불교포교에도 더 없이 좋은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산사순례’는 하나의 구법여행이며, 회원들에게는 행을 닦으면 일체(一切)행을 갖춘다는 화엄 원융의 보현행(普賢行)의 실천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108산사순례’는 불타의 자비사상과 은사인 청담대종사의 포교 원력을 구현하기 위한 ‘21세기 신행문화의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을 감안할 때, 9년간의 대장정(大長征)은 온전한 마음을 내지 않고서는 결코 실천할 수 없는 신행순례인데 이번 달이면 봉은사 순례가 꼭 반 순례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회원들은 지금도 기필코 회향하겠다는 강인한 신심(信心)이 존재하지 않는 한 108염주를 모두 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법회’를 열었다. 회원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받을 때마다 그러한 회향에 대한 결심은 한없이 깊어진다. 산사순례를 다니다가 “108산사순례를 염주를 모두 꿰고 싶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소원을 대신하여 딸이 대신 순례를 나서는 사연을 들으면 가슴이 그지없이 뭉클해진다. 적적하게 홀로 계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효녀, 사업실패를 하고 한 뒤 순례를 다니고 부터 사업이 잘돼 죽을 때는 반드시 ‘108염주’를 가지고 가겠다는 한 처사의 이야기 등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그런 그들이 있기에 나 또한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차 안 스님의 녹음법문이 끝났을 때 즈음, 버스는 천년고찰 칠현산(七賢山) 칠장사 일주문 앞 주차장에 닿았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겨울기운 속에 꽃들이 산속에 드문드문 피어 있다. 겨울 햇볕이 산 그림자에 묶여 들지 않아 매서운 꽃샘추위가 몸을 파고든다. 한겨울을 인내하고 핀 인동(忍冬)꽃, 어쩌면 우리 회원들이 한 송이 꽃인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이번 산사 순례는 ‘구제역’으로 인해 한 달간 연기 끝에 이루어진 올해의 첫 순례여서 회원들은 매우 기뻐했다.
<사진>보현행을 실천하는 도선사 108산사순례는 칠장사에서도 효행상과 청소년 장학금 등을 나누면서 나눔결사에 동참했다.
분홍빛 화사한 ‘108산사순례’ 조끼를 입은 회원들이 칠장사 입구를 들어서자 칠장사 대중과 자원봉사자들이 순례기도회를 맞이하였다. 이 장엄한 모습을 보며, 칠장사 대중들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깊은 환희심이 일어났다. 회원들에게 있어서는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법당이요 기도처인지도 모른다.
칠장사는 전통문화의 발자취가 서려 있고 기도발원이 가득한 곳으로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초 혜소(慧炤)국사가 머물면서 홍제관(弘濟館)을 짓고 수도처로 삼은 곳이다. 7명의 악인(惡人)이 찾아와 청해 국사가 마주 했는데 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려 설법을 청했다. 이 때 이들을 교화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하여 일곱 현인(賢人)이 탄생, 산 이름을 칠현산이라고 고쳐 부르고 칠장사(漆長寺)를 칠장사(七長寺)로 개칭했다. 고려의 실록이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인조 원년에 인목대비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된 다음 억울하게 죽은 친정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해 원찰을 삼은 곳으로 애환이 서려 있다.
회원들은 전통문화의 향수가 서린 이곳에서 산사순례 법회를 맞이하는 기쁨은 매우 컸다. 천수경과 사경 입정이 끝나고 맑은 목탁소리에 맞추어 웅장한 염불소리가 칠현산 계곡에 울려 퍼지고 나를 찾는 백팔참회문이 그윽하게 울려 퍼지자 회원들은 두 손 모아 108배의 참회기도에 동참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산과 흰 구름, 백팔 참회기도가 끝나자 하늘에 일심광명 일원상(一圓相) 무지개가 하늘에 떴다. 그 장엄함은 환희요. 가슴 뭉클한 큰 감동의 장광설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화엄의 화장세계이다. 그 다음 날도 상서로운 무지개는 어김없이 하늘에 떴다. 이 모든 것이 저희 은사이셨던 청담 큰스님과 불보살님의 가피’ 때문이다.
법회 중 산사순례기도회는 칠장사 주지스님과 더불어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널리 펴는 길임을 인식, 그 의미를 마음깊이 되새기고 ‘민족문화수호와 수행ㆍ문화ㆍ생명ㆍ나눔ㆍ평화 등 종단 5대 결사 동참발원문’을 결의했다. 이는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을 향한 매우 의미 깊은 결의였으며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결의문이 끝나자 회원들은 일제히 동참을 뜻하는 큰 환호성을 올렸다.
‘108산사순례’의 궁극적 목적은 전생과 현생에 지은 업과 이미 정해진 업을 면하고 좋은 업을 닦아 내면(內面)의 어지러움을 지우고 마음의 순정(純情)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업도 한 순간에 바로 지우지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고, 닦고 좋은 복을 지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가진 업장(業障)을 녹일 수가 있다. 한갓 우리의 삶은 ‘업의 놀음’에 지나지 않으며 이 ‘업의 놀음’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살생을 하거나 죄를 짓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순례는 이러한 업연(業緣)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108산사순례’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산사 순례기도회’의 힘은 선행과 보시에 있다. 우리 회원들은 친환경 지킴이의 일환으로 우리 농산물 사주기, 장병들을 위한 간식 제공, 다문화 인연 맺기, 효행상 시상, 소년ㆍ소녀 가장 장학금 주기, 병든 이를 위한 108약사여래보시금 등 사회의 전 부분에 걸쳐 선행과 보시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문화가정 인연 맺기도 108쌍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108산사순례’에 나서는 것은 선행을 실천하여 자신이 지닌 정업(定業)을 지우는 일이다. 일찍이 부처님은 선행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으셨다. 부처님의 ‘복밭(佛田)’은 아무리 작은 선행(善行)의 씨앗일지라도 그 작은 씨앗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그 씨앗이 나중 잎을 틔우고 그것이 자라 수많은 복의 씨앗을 뿌린다는 것을 일러주셨다.
따라서 ‘108산사순례’는 회원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불사(佛事)라 할 수 있다. 나아가 ‘108산사순례기도회’는 108염주를 꿰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크나큰 불사에 앞장선 신행단체라 할 수 있다. 원래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우리 5천여 명의 회원들이 내는 십시일반의 보시는 이웃을 돕고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며, 이 세상 아름다움의 원천(源泉)이 된다. 누구나 사람에게는 힘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항상 보시를 실천하고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람은 그런 절망의 때를 능히 이기는 힘을 부처님께서는 주신다. 이것이 불교이며 우리가 ‘산사순례’를 떠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비록, 아쉽고도 짧은 3일간의 순례기도였지만 주지스님 이하 칠장사 대중스님들에게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