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강씨 (강이식)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
시조 | 강이식(姜以式) |
주요 중시조 | 강감찬, 강민첨, 강계용 강위용, 강원로 |
주요 집성촌 | 평북 정주군 함남 북청군 경남 진주시 경북 안동시 경북 영주시 |
주요 인물 | 강태공, 강희안, 강희맹, 강맹경, 강영훈, 강대련, 강동희 |
인구(2000년) | 966,710명 (7위) |
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한국의 여러 성씨 중 하나다.
목차
[숨기기]개요[편집]
원조 강석년(神農 姜石年)[편집]
시조 강이식[편집]
그는 고구려인이고 천수강씨이다. 597년 고구려 영양왕 8년 수나라의 수 문제가 지성과 충절을 소홀히 한다는 내용의 국서를 고구려에 보내자, "칼로써 대답하자"고 주장하며, 말갈병을 거느리고 수나라를 공격한 장군으로 이후 598년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30만 수군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불과 수십 년전까지도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는 큰 비석이 있었으나 중국 문화혁명 때 소멸되고,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묘역에 남아 있다.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871-1에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가 있다.
진양후 강진[편집]
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것은 고구려 멸망 이후 당제가 안동지방 준재(俊才)를 발탁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에서 강진(姜縉)이 650년 경에 출생하여, 당제가 안동도호부를 평양으로 옮기기 전인 676년 전에 이미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태중대부 판내의령 (太中大夫判內議令)을 역임하다가 진양후(晋陽候)에 봉해진 이후이다. 이 때부터 진주강씨의 본관을 진주(晉州,진양,진산으로 불리기도 함)로 하게 되었다.[2]
이는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의 핵심 귀족이었던 강족(姜族)과 고구려 유민들과의 단합을 두려워하여 한반도 최남단인 경남 진양후로 봉한것이다. 일부 후예들이 경북지방에 정착하여 문벌을 떨쳤는데 당당히 영남문과 급제 배출 제1위의 태백오현 도은공, 잠은공 형제 가문이 그들이다.
인구[편집]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진주강씨는 325,288가구, 총 1,044,38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가장 많은 65,409명, 경기도가 52,957명, 경남이 35,072명, 부산이 31,969명 등의 순이다.[3]
남한의 전체 인구 중 7.29%로 김(21.59%) > 이(14.78%) > 박(8.47%) > 최(4.72%) > 정(4.37%) 다음으로 여섯 번째(2.27%)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계파[편집]
이러한 진주 강씨는 크게 은렬공파, 인헌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다섯 파로 구성되는 데, 은렬공파가 가장 먼저 발원하였지만, 규모는 박사공파가 가장 크다. 인헌공파는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의 호인 인헌(仁憲)을 취해 인헌공파라 부른다, 다만 강감찬장군의 출생지가 금천이라하여 금천 강씨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강(姜)'자를 씨(氏)로 삼는 성씨는 진주(晉州)를 단일본으로 하고 있다.
박사공파[편집]
박사공파는 진주강씨의 인구 중 80%를 차지하는 대 문벌로[출처 필요] 고려 때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을 이끌고 일본정벌에 나섰던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계용은 고려 때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내시다 통신사 서장관(書狀官)으로 고, 몽 연합군을 이끌고 일본출정을 나가셨다가 태풍을 만나 실패하고 돌아왔고 이후 그 아들인 전중내급사공 강인문이 2차 정벌에 따라갔으나 역시 태풍으로 실패하고 돌아왔는데 일본은 이것을 신의 바람이 도왔다는 뜻으로 신풍(神風) 즉 카미카제(かみかぜ)로 부르게 되었다. 귀국 후 정 1품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진 후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강계용의 후손으로 고려 공양왕과 사돈 간으로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강시(姜蓍), 강회중(姜淮仲) 부자와 왕의 부마로 역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강회계(姜淮季) 등은 고려 조의 이름난 충신열사들이다.
조선 세종 때 세종을 도와 한글창제에 참여했던 강희안(姜希顔)과 대문장가 강희맹(姜希孟)형제는 진주강문이 낳은 대명필로 평가받고 있다.
강항은 강희맹의 후손으로 선조 때 석학으로 공조좌랑과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모친 상으로 고향에 낙향해 있다가 정유재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불행히 가족이 모두 포로로 잡혀 일본에 끌려가 일본의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그는 일본 성리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가 31세 때 지어 남긴 서책과 글들이 현재 일본의 국보로 소장되어있다.
소감공파[편집]
박사공의 아우인 강위용(姜渭庸)은 고려 때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으며 강문의 5대파조 중 소감공파의 파조이다. 4대손 강태(姜泰)는 가선대부 대상(嘉善大夫 大相)으로 있으면서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으나 마침 부친상을 당하여 엎드려 곡하면서 한사코 자리를 뜨지 않자 오랑캐도 감탄한나머지 해를 입히지 않았을만큼 대단한 효자였다.
관서공파[편집]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시조로 하고 있다. 선대는 고려 중기 판문하시중(判門下侍中)을 지낸 강원용(姜遠庸)이 조부이며 역시 보문각직제학을 역임한 강기문(姜起文)이 친부이다.
후손들로 많은 문하시중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전객령 문하시중을 역임한 강윤보(姜允輔)는 포은 정몽주와 도의교(道義交)를 맺기도 했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바로 벼슬을 버리고 은거해버린 기인이다. 9세손 강행(姜行)은 1467년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했다
은열공파[편집]
은열공파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거란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 장군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민첨은 고려 광종 14년 963년 11월 29일 진주 옥봉산(玉峰山)아래 개경향(開卿鄕 : 지금의 진주시 옥봉남동 622)에서 태어나, 1012년 현종 3년 5월에 동여진(東女眞)이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오자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등과 함께 안찰사로서 날카로운 못이 돋아난 일종의 철갑선인 과선(戈船)으로 격퇴하였다.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내침하자 대장군으로 평장사(平章事)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바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다시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을 자주전투라 한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 장군 주국이 되고, 곧이어 우산기상시에 올라 추성치리익대 일등공신(推誠致理翊戴一等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다.
1021년 11월 12일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으며, 현종이 3일동안 조회를 철폐하고 예관을 보내어 장사를 돌보게 하고, 태자태사(太子太師)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증직하시고 은렬(殷烈)의 시호를 내렸다.
또 조선 때 강세황의 후손으로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을 지낸 강윤(姜潤·1830~1898)과 동생 강건(1843~1909)형제가 만든 휴대용 해시계를 만들었으며, 이들 형제의 큰아버지 강이중과 아버지 강이오는 혼천시계를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헌공파[편집]
인헌공파는 삼한벽상공신 여후(三韓壁上功臣呂侯) 강궁진(姜弓珍)을 파시조로 하고 있다. 강궁진은 문하시랑 강여청(姜餘淸)의 4대손이다. 강궁진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정국평정 1등훈으로 태조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으로 봉해졌으며 여후(呂侯)로 있었다. 시조는 고구려 원수공(元帥公) 강이식(姜以式)장군으로 모시면서 관향을 금천(衿川)으로 하고있다.
강궁진의 아들이 바로 구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이다. 강감찬은 임헌복시(任軒覆試) 갑과에 장원급제한 인물로 중국 사신이 별이 떨어진 후 태어난 강감찬 장군을 보고 문곡성이 태어났다고 경탄한 일화가 전해오며 한민족사 수많은 전설과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이후 상원수로 거란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전멸시켜 명실공히 고려 최고의 명장이었다. 강감찬의 출생지인 금천을 따서 인헌공파를 따로 금천 강씨로 부르기도 한다.
인헌공파의 인물로는 조선 인조와 사돈인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가 있으며 그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 세자부(世子傅)를 지냈다. 그의 딸이 소현 세자의 빈이 되는 민회빈 강씨이다. 소현 세자가 독살로 예상되는 죽음으로 억울하게 사약을 받게되자, 그의 아내와 친모, 4형제가 모두 인조에게 죽음을 당하고 아들들은 제주도로 귀양보내져 결국 생을 마감했다. 이 중 한 아들만이 살아남아 이방파(李方派)의 맥을 잇고 있다. 이후 소현세자빈의 억울함이 밝혀졌지만, 소현세자빈이 옥사 때 가친들이 풍비박산되어 고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우규는 일제 시대인 1919년 9월 2일 일본인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항일 의사이다.
주요 세거지[편집]
제주도[편집]
제주도의 입도한 진주 강씨는 각각 1418년 태종 18년 강윤희(姜允熙) 공이 양녕대군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를 왔으며, 1436년 세종 18년에는 은둔생활을 위해 강인덕(姜仁德) 공이 입도를 하였고, 1506년 연산군 12년에는 갑자사화를 피해 강철(姜哲) 공이 입도하였다.[4]
강윤희(姜允熙)
중시조 은렬공 강민첨의 제 13세손으로, 진주에서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학관을 역임하고, 이어 형조좌랑과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다. 대사헌으로 역임하고 있던 1418년 태종 18년, 양녕대군의 폐출에 반대하다가 제주에 유배되었다. 당시 제주목 납읍에 정착하였고, 입도 후에는 학덕을 펼쳤다.
강인덕((姜仁德)
중시조 은렬공 강민첨의 제 15세손으로, 1406년 태종 6년에 출생하여, 은둔생활을 위해, 1436년 세종 18년에 제주도에 입도 하였다. 제주목 북포촌에 정착을 하여 학문에 힘썼고, 염통공악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묘는 상여오름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염통뫼라고 부르던 것에서 염통악파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강철(姜哲)
중시조 박사공 강계용(姜啓庸)의 11세손으로, 성종 중엽 한양에서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진용교위(進勇校尉)에 올랐다. 1506년 연산군 12년에 갑자사화로 재종형(再從兄) 대사간 강형(姜詗)이 화를 입자, 전라도 완산으로 피신했다가 멸문지화를 면하기 위해 제주로 입도하였다. 제주목 오라리에 정착하여 후진 교육에 힘썼다. 애월읍 물메오름, 수산봉에 묘가 있는데, 이 수산봉을 따서 수산파라고 한다.
강씨 득성[편집]
강씨는 세상의 현존하는 성씨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5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염제신농씨가 섬서성 천수에서 자라 강수라는 강의 이름을 따서 강씨(姜氏)로 득성하게 된다. 그 이후 수천년을 이어오면서 강태공으로 세계가 이어져 강태공은 제나라 황제로서 큰 업적을 남긴다.
중국의 강씨[편집]
중국의 강씨(姜氏)는 천수, 산서, 니련, 광동, 유이 등의 강씨가 있으며 천수외의 강씨는 모두 다 대종인 천수강씨에서 분파하였다. 중국에서의 성씨순위는 50위 약 600-700만명 정도이다. 진주강씨의 먼 핏줄이자 한 혈통이다.
강씨의 분성 성씨[편집]
중국성씨들의 기원으로 두고 있는 인물이 고대 염제신농씨(姜姓)와 황제헌원씨(姬姓)이다. 그 두인물에서 현존하는 중국성씨가 생겨났다. 강씨에서는 염제신농씨부터 강태공에 이르기까지 무려 도합 247여개 성씨가 갈라져 나갔다. 대표적인 강성(姜姓)계 성씨로는 고(高), 노(盧), 여(呂), 허(許), 구(丘,邱), 강(强), 방(方), 정(丁), 장(章), 사(謝), 제(齊), 하(賀), 가(柯), 뢰(賴), 박(薄), 경(景), 초(焦), 기(紀), 최(崔), 좌(左), 역(易), 신(申), 문(文), 향(向) 등의 247여개 성씨이다. 이 성씨들은 중국과 한국은 물론 동남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라오스, 타이 등으로 뻗어나가 살고 있으며 그 중 노씨와 구씨는 한국과 태국에서 대통령과 태국총리를 지냈다. {현재 태국(타이) 총리는 탁신친나왓의 여동생인 잉락친나왓.} 이렇듯 강씨의 분성성씨들 역시 각 국으로 뻗어나가 강씨의 혈통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다.
강씨 인물 (역사인물)[편집]
- 염제신농씨(강석년, 姜石年) - 세계 강씨의 원조.
- 치우천황 - 염제신농씨의 후손. 황제헌원과의 전쟁.
- 강태공 - 염제신농씨의 후손. 800년역사의 제나라의 황제이자 세계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
- 강소백 - 강태공의 후손이자 제나라의 후대 황제. 춘추오패 패자.
- 강유 - 강태공의 후손이며 삼국지의 촉나라 장수. (본관 천수강씨,天水 姜氏)
- 여불위 - 강성 여씨(姜姓 呂氏)이며 진시황의 아버지.(여불위가 자신의 아들(진시황)을 임신하고 있었던 조희(趙姬)를 장양왕 영자초에게 줌.
- 진시황 - 영정 혹은 강정(姜政),여정(呂政). 여불위의 친아들. 만리장성과 불로초로 유명. 秦나라의 황제.
- 강이식 - 진주강씨의 시조, 고구려인으로 수나라와의 전쟁 임유관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명장.
- 강감찬 - 고려 장군. 귀주대첩의 명장.
진주강씨 성을 가진 사람 (현대 인물)[편집]
- 강경순 - 교수
- 강동호 - 작가
- 강영우 -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
- 강진영 - 미국 백악관 오바마대통령 입법관계 특별보좌관
- 강창희 - 정치인 (국회의장)
- 강기갑 - 정치인
- 강만수 - 정치인
- 강재섭 - 정치인 (전 한나라당 대표)
- 강덕수 - 기업인 (STX그룹 회장)
- 강희락 - 전 경찰청장
- 강신성일 - 정치인, 영화배우
- 강상중 - 교수 (일본 동경대 교수, 도쿄대 최초 한인교수)
- 강창우 - 변호사 (법무법인 세현 대표)
- 강수정 - 아나운서, MC
- 강다솜 - MBC 아나운서
- 강유택 - 바둑기사
- 강수진 - 발레리나
- 강수진 - 성우
- 강희선 - 성우
- 강구한 - 성우
- 강우석 - 영화감독
- 강제규 - 영화감독
- 강신일 - 배우
- 강신범 - 배우
- 강경준 - 배우
- 강경헌 - 배우
- 강혜정 - 배우
- 강예빈 - 배우
- 강소라 - 배우
- 강수연 - 배우
- 강문영 - 배우
- 강동원 - 배우
- 강남길 - 배우
- 강부자 - 배우
- 강별 - 배우
- 강래연 - 배우
- 강성진 - 배우
- 강성민 - 배우
- 강성필 - 배우
- 강현정 - 배우,모델
- 강승현 - 슈퍼모델(포드 모델1위)
- 강소영 - 슈퍼모델(2004년 슈퍼모델대회 1위)
- 강유이 - 레이싱모델
- 강현주 - 레이싱모델
- 강수지 - 가수
- 강산에 - 가수
- 강승윤 - 가수 (슈퍼스타 K, 본능적으로)
- 강지영 - 가수 (카라)
- 강민혁 - 가수 (씨앤블루)
- 강민경 - 가수 (다비치)
- 강대성 - 가수 (빅뱅,대성)
- 강희건 - 가수 (리쌍,개리)
- 강준 - 가수 (씨클라운)
- 강민호 - 가수 (슈프림팀,E-Sens)
- 강창모 - 가수 (KCM)
- 강지현 - 가수 (씨스타,소유)
- 강현정 - 가수 (버블시스터즈)
- 강은혜 - 가수 (달샤벳,비키)
- 강균성 - 가수 (노을)
- 강성훈 - 가수 (젝스키스)
- 강주희 강승희 - 가수 (윙크)
- 강상수 - 가수 (현철)
- 강동철 - 가수 및 작곡가 (용감한형제)
- 강지원 - 작곡가 (시크릿 - 샤이보이 등)
- 강진우 - 작곡가, 덤앤더머 (크레용팝 - 빙빙 등)
- 강호동 - 개그맨, MC
- 강성범 - 개그맨
- 강유미 - 개그맨
- 강준 - 개그맨
- 강재준 - 개그맨
- 강걸 - 모델, 방송인
- 데니스강 - 이종격투기선수 (스피릿MC, heros, k-1, 드림, 로드FC, UFC)
- 줄리엔강 - 방송인, 모델, 격투기선수
- 토미강 - 격투기선수
- 강경호 - 격투기선수 (UFC 밴텀급 선수)
- 강용환 - 수영선수 (전 국가대표)
- 강병규 - 前 야구선수
- 강정호 - 야구선수 (국가대표)
- 강명구 - 야구선수
- 강민호 - 야구선수 (국가대표)
- 강동우 - 야구선수
- 강상우 - 축구선수 (국가대표, 2012 AFC U-19)
- 강민수 - 축구선수 (국가대표)
- 강병현 - 농구선수 (국가대표,2011아시아농구출전)
- 강혁 - 농구선수
- 강동희 - 농구선수 및 감독 (전 국가대표, 대한민국 최고의 포인트가드)
- 강동궁 - 3쿠션 당구 국가대표
- 강동진 - 배구선수 (국가대표)
- 강만수 - 前 배구선수
- 강민혁 - 스키점프 (국가대표)
- 강경원 - 보디빌더 (전 국가대표)
- 강초현 - 사격 (전 국가대표)
- 강민 - 프로게이머
- 강풀 - 만화가(강도영)
- 강도하 - 만화가
강씨분성 대표적 인물[편집]
<노(盧)씨>
<구(丘)씨>
- 탁신친나왓 - 태국총리
- 잉락친나왓 - 현 태국(타이)총리
<경(景)씨>
- 경첨 - 중국 여배우
<박(薄)씨>
- 박희래(보시라이) - 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장(章)씨>
- 장쯔이(章子怡) - 중국 여배우
<사(謝)씨>
- 사정봉 - 중국배우
항렬표[편집]
- 은열공파(중시조로 1세)
관련 유적지[편집]봉산사[편집]봉산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5에 위치한 사당이며, 시조인 강이식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은렬사[편집]은렬사는 경남문화재자료 14호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622번지에 위치한다. 은렬사에는 은렬공 강민첨의 유허지(탄생지), 유허비, 은열사, 강민첨 장군의 모사화 등이 있다. 은렬공 묘소[편집]충청남도 문화재 제 319호로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 산 34에 위치하며, 묘소와 홍살문, 신도비, 사적비, 예산재, 경앙문 등이 있다. 이곳에서 음력 3월 11일에는 춘향제를, 음력 10월 5일에는 시향을 올린다. 낙성대[편집]낙성대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산48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의 명장 강감참 창군의 출생지로, 출생 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이 생겼다. 사당인 안국사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인 낙성대유지가 있다. 같이 보기[편집]장군 예부 트리오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