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我的父親母親)
영화 ‘집으로 가는 길’(원제 我的父親母親, 부제 '바오 쉬의 회상')은 첫사랑을 소재로 1999년에 개봉한 영화다. 1979년생인 20살 '장쯔이'(章子怡)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소녀는 아름답다지만 장쯔이의 청순함이 금방 핀 꽃처럼 눈부시다. 장쯔이를 연금술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빛나는 연출력이기도 하다. 총각 선생역의 젱 하오(Zheng Hao)와 아들 '루오 유생'역의 '손홍뢰'(孫紅雷)도 장쯔이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으니, 빛나는 조연으로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뿐이랴! 단풍이 연출하는 붉거나 노란 가을과 흰 눈 가득한 세상에 붉은색 옷을 입은 장쯔이가 설원을 내달리는 장면은 마치 그의 뜨거운 심장을 보는 듯 시네마투르기로서 압권이다.
아름다운 아가씨, 귀여운 여인
마을의 제일가는 미인이 있어도
한숨 쉬며 그들에게 나는 말했소.
”아무래도 그대들이 메리 모리슨은 아니지”
– 로버트 번즈의 시 ‘올드 랭 사인’에서
첫사랑이거나 또한 사랑은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만의 ‘메리 모리슨’에게 바치는 열정이다.
도시에서 사업하는 루오 유셍은 고향에서 교사를 지내다 돌아가신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려고 고향에 온다. 부친은 낡은 학교를 다시 세우려고 다른 지역에 후원금을 모금하러 갔다가 객사한 것. 모친은 베를 짜며 부친과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회상한다.
사랑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성큼 다가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시골학교에 부임해온 20살의 총각 선생에게 양 갈래 머리를 한 18세 순박한 시골 소녀 ‘쟈오 디’는 첫눈에 반해 바다로만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 소녀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위해 선생이 오가는 길목에서 서성이고, 학교를 지을 때 먼발치에서 자신이 정성을 다해 준비해 간 음식을 선생이 먹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선생이 선물로 준 헤어핀을 잃어버리자 핀을 찾고자 며칠 동안이나 들과 산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과연, 사랑은 누가 시킨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애태우며 기다리고, 조바심하며 기다리는 장면의 반복을 통해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의 크기를 발견한다.
선생도 소녀의 마음을 읽으며 둘의 사랑이 무르익으려 하지만 만남을 짧았다. 도시로 나와 살기를 강권하는 부친의 성화로 청년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선생은 꼭 돌아올 것을 약속하지만, 기약은 없다. 사랑은 강한 자를 약하게 하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한다. 이날부터 소녀는 마치 북극만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선생이 떠난 마을 입구에서 그를 향한다. 사랑은 그리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호흡하기도 버겁다. 맞다. 사랑의 크기는 곧 아픔의 크기다.
이별의 아픔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2,500년 전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는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도저히 지금 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입술은 바싹 타고 있어요.
오, 그대가 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오, 그 누가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랑은 기다림이다. 소녀는 선생님이 걸었던 길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기다리다가 쓰러져 죽음의 경계를 오간다. 그런 어느 날 꿈속처럼 선생은 돌아온다. 겨울을 이긴 생명만이 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듯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사랑은 더없이 보배롭다.
학교 수업은 다시 시작되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커간다. 이제부터 소녀는 더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둘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정감 어린 시골을 배경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음 직한 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첫 사랑은 아름답다. 아픈 이별보다 아름다운 추억의 무게 때문이리라. 그래서 첫사랑은 어머니 가슴처럼 아늑하고 넉넉하다.
남자의 마지막 사랑은 첫사랑이다.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던 단테도 그랬다. 단테는 평생 딱 두 번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단테보다 한 살 아래였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9살 때. 단테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계급사회였던 시대에 비루한 집안의 아이였던 단테는 피렌체 법사위원이자 많은 영지를 가진 귀족의 딸 베아트리체를 넘볼 수 없었다.
단테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만났다. 그때 베아트리체는 ‘시모네 디 발디’라는 사내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기억하며 단테에게 다가와 인사했을 때,
단테는 행복도 충격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단테가 흠모했던 베아트리체의 인생은 짧았다. 그녀는 24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1290년)했다. 하지만 그녀가 요절했다고 단테의 사랑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첫사랑의 영원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100여 년 전 미국의 여성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1830~1886년)은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 '찰스 워즈워스'를 사랑했다. 하지만 목회자는 기혼자. 사랑의 절댓값은 인간의 셈법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찰스 워즈워스가 다른 곳으로 부임하여 헤어지게 되자 에밀리 디킨슨은 그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 어떤 격렬함도, 화끈한 사랑도 없이,
그저 먼 발치에서 짝사랑했던 애타는 그리움 하나만으로도 거뜬히 인생의 고독을 넘어설 수 있었다. 디킨슨은 이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별은 우리가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게 해준다.”
시인이 견뎌야 했던 이별의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뼛속까지 스며 온다. 그 그리움은 1,700여 편의 시로 길쌈 되어 8권의 시집에 담겼다.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던 단테가 에밀리 디킨슨처럼 오직 그리움만을 기억하며 혼자 산 것은 아니었다. 단테는 26살 되던 해에 ‘젬마 돈티’와 결혼했다. 하지만 단테의 가슴 속에 있던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신곡’(Divina Commedia)을 만들고, 중세기를 청산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문예부흥을 이끌게 해 주었다.
영화 표현에 있어 회상장면인 플래시 백(Flashback)이 돋보인다. 영화의 전반과 후반의 현실 장면은 흑백으로, 첫사랑을 만나 이루어지기까지의 과거 장면은 컬러로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표현한다. 사랑의 감정을 오롯이 담기 위해서였으리라.
영화의 절반 이상이 흐벅진 그리움과 애타는 기다림이지만 이 그리움과 기다림만으로도 질감
높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장이머우 감독은 보여주었다.
장이머우(張藝謨)는 제5세대 감독으로 불린다.
영화 평론가들은 중국의 영화감독을 세대별로 나누었다. 영화개척자 1세대, 193,4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개발하였던 2세대, 영화를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인민공화국 성립 후 영화계에 투신했던 지금의 중견 작가군 3세대, 영화를 공부했지만,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4세대. 그리고 1982년 이후의 세대를 5세대로 구분한다. 중국영화의 혁명적 변화는 4, 5세대가 주도했다. 4,5세대의 대표주자들을 서구 평론가 그룹에서는 중국의 선봉파라고 지칭했다.
이 말은 20년대 프랑스의 아방 가드( Avant-garde), 50년대 말의 누벨-바그, 60년대 미국의 New American Cinema그룹과 독일의 오벨하우젠(Oberhausen Mani- festo) 선언을 주도했던 그룹과 같은 반열의 의미부여였다.
4,5세대 감독으로는 티엔주왕주왕(田壯壯), 장준자오(張軍釗), 우쯔녀우(吳子牛), 황지엔신(黃建新) 등을 선봉파의 기수라고 한다. 장이머우(張藝謨)도 함께.
1984년 켄 카이거(陳凱歌)의 황토지(Yellow Earth)가 전 세계에 중국영화의 바람을 일으켰을 때 장이머우는 이 영화에서 촬영을 맡았다. 장이머우는 중국정부가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북경대 연극영화과 졸업생이다. 즉 영화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학습 받은 세대가 아닌 전공교육을 받고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최초의 세대. 또한, 5세대는 중국의 고유문화뿐 아니라 자유를 상징하는 롹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세대이자 내일보다는 지금을, 저기보다는 여기를 중시 여기는 차별화된 세대이다. 즉 내일의 중국을 설계하며 험난한 역경을 걸은 혁명세대가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미국문화에 맹종하는 철부지 포스트 세대도 아닌 양쪽을 고루 받아들이고 고민하며 수직과 수평을 쌍방향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세대라는 점도 이들 영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었으며 제5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장이머우에게 은곰상을 안겨 주었다. 영화시간 90분
남돈우(南敦祐)/영화제작자
월간 시사아트앤씨 기획편집위원장
(현) 씨드윈 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