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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를 나와 복잡한 아랍인 거주 지역 뒷골목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비아 돌로로사’에 이르게 됩니다.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라틴어입니다.
의미는 ‘슬픔의 길’이 되겠군요.
‘비아 돌로로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지만 ‘비아 크루시스’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비아 크루시스(Via crucis)’.
역시 라틴어이고, 그 의미는 ‘십자가의 길’이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비아 돌로로사’로 호칭하겠습니다.
‘비아 돌로로사’.
주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갔던 길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전체 길이는 약 800미터 정도.
이 길은 역사적인 길이기도 하겠지만, 그 역사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신앙 고백적인 길이라고 여기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이냐를 따지는 것 말입니다.
성지답사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역사성에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은혜가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으로 고백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이 길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간 길로 고백되어진 것은 14세기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에 의해서입니다.
비아 돌로로사에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중 벌어진 14곳의 의미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아 돌로로사 순례는 그 길을 걸으면서 14곳의 의미있는 곳에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14곳의 의미있는 장소가 확정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나와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안토니아 요새까지 이르는 길은 아랍인 거주 지역입니다.
느낌은, 비교적 소란스럽고 깔끔하지 못한 뒷골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베데스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지만 멀게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지점]
저 개인적으로 이 길을 가면서 급격하게 컨디션이 저하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지에 온 이후 약간 문제가 있던 기관지가 요란하게 굉음을 내며 골목길을 달리는 스쿠터와 낡은 승용차가 뿜어내는 매연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진도 잘 찍지 못하고, 성묘교회에서도 답사하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묘교회 내에 피워놓은 향이 몹시 힘겹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일정을 생각하여, 아쉽지만 성묘 교회 내부 투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의 의미있는 14 지점 중, 1부터 9지점까지는 성묘 교회 이르기 전에 만나게 됩니다.
길에 있는 거지요.
10부터 14지점까지는 성묘 교회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와 성묘 교회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눠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지고 사진도 많을 것 같아서입니다.
베데스다에서 나와 약 200여미터쯤 될까요?
감람산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걸어들어오다 보면,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은 주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재판정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 형이 확정되었지요.
[막15:1-15]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주님이 재판을 받은 법정은 안토니 요새입니다.
안토니 요새는 헤롯이 로마의 실력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기리기 위해 지은 요새입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시저 사후 시저의 후계자로 권세를 누릴 때, 헤롯은 안토니우스에게 정치적 줄을 대고 있었습니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하고 몰락한 후, 헤롯도 몰락의 위기를 만났지만 기막힌 정치적 감각으로 옥타비아누스의 환심을 사 이두메 출신으로 유다 왕으로 임명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옥타비아누스가 바로 성경의 로마 최초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성경의 가이사 아구스도입니다.
[눅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호적하게 하니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조상 다윗의 본거지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고, 베들레헴에서 출산하여 예수님께서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게 되지요.
안토니 요새는 성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아마 유대인들의 동향을 파악하려면 성전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 요새가 세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진: 이스라엘 박물관의 제2성전 시대 모형 중에서. 사진 오른쪽 네 곳의 전망대가 세워진 곳이 안토니 요새입니다. 성전이 잘 내려다 보이지요? 조금 더 자세히 찍은 사진을 연이어 올립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는 평상시에는 지중해변의 신도시 가이사랴에서 지냅니다.
복잡한 예루살렘보다 쾌적한 도시이지요.
그러나 유대인 명절이 되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와야합니다.
소요사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치안을 위해서 오는 거지요.
아마 빌라도에게도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늘 시끄럽고 성전에서는 짐승을 태우는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오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산속의 도시 예루살렘보다는 지중해변의 쾌적한 신도시 가이사랴가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을 때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빌라도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소요사태에 대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와 있는 빌라도에게 대제사장 무리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판결을 내리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한 법정, 곧 안토니 요새의 재판한 자리가 비아 돌로로사의 첫 출발점입니다.
안토니 요새는 주후 70년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성전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이 지점은 현재 아랍인 초등학교(Omariyeh College)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학교가 자리잡고 있으므로 평상시에는 개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반 성지답사객들은 이곳을 방문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금요일마다 이루어지는 십자가의 길 행진시에는 이곳에서 출발이 된다고 하는군요.
이 때에 잘 맞춰 비아돌로로사를 경험한다면, 첫 출발점부터 출발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간 문이 학교 입구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과거 성전이 내려다 보이던 것 같이 지금은 성전산의 황금돔이 잘 보이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들어가 보지 못해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구해보았습니다.]
[사진: 학교에서 내려다 본 성전산. 황금돔이 보입니다.]
[출처: 구글]
비아 돌로로사의 제2지점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가 지워진 곳입니다.
실질적으로 성지 답사 오는 분들은 이곳에서 비아 돌로로사 순례가 시작이 되는 셈입니다.
학교를 나와 바로 맞은편 프란시스코 수도원자리입니다.
수도원 내부로 들어오면 입구를 기준으로 들어오면서 오른편에 채찍질 교회, 왼편에 선고 교회가 있습니다.
[사진: 채찍질 교회]
채찍질 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수난을 기념하며 건축된 교회입니다.
시간이 촉박하여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내부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내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천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회의 둥근 천정은 사방으로 가시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으며, 그 주변으로 선혈이 흘러내리듯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연상케 해주는 설계입니다.
[사진: 채찍질 교회 천정]
[출처: 구글]
전면과 좌우측에는 세 장면을 묘사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습니다.
[사진: 정면 사진]
[출처: 구글]
사진 상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설명드립니다.
우측에는 바라바를 예수님 대신 놓아달라고 외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뜻밖에 풀려난 바라바. 기뻐합니다만, 기뻐할 일일지요?
좌측에는 예수님을 내어 주면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는 빌라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로마 군인들에 의해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수난을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채찍질 교회의 곁에는 선고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형이 선고되고 십자가가 지워진 곳입니다.
내부에 예수님에게 십자가가 지워지는 성화가 걸려있습니다.
[사진: 선고교회 내부 전면]
여기서 비아 돌로로사 전체를 보여주는 그림을 참고로 보시겠습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 전체 개요 안내판]
제1부터 14지점까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안내판이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채찍질 교회 아니면 선고 교회 어딘가에서 찍은 것 같은데...
제2지점을 나와 이런 길을 걸어갑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 골목]
제3지점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제2지점에서 백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백여 미터도 오지 못하고 쓰러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육체적으로 극도로 탈진된 상태였고, 십자가의 무게가 상당하였기 때문에 이 만큼 오신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에 속해있는 작은 교회당에 제3지점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사진: 제3지점]
제4지점은 주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입니다.
제3지점의 바로 옆에 있는 장소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이 없어 구글에서 구해 올립니다.
[사진: 제4지점]
[출처: 구글]
비아 돌로로사.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에 처음 찾을 때는 대단히 숙연한 자세로 찾습니다.
그러나 걷다 보면...계속 이런 길을 걸어 갑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 골목길. 한 마디로 시장통입니다.]
제5지점은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가 지워진 곳입니다.
[사진: 제5지점]
[사진: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돌의 패인 자국이 예수님께서 손을 짚으신 자국이라고 하는 군요]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의 도시이지요.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온 구레네 사람 시몬.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한 나사렛 예수라는 젊은 선지자를 처형하는 십자가 행렬을 구경하다가 그 앞에서 예수님이 쓰러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 사람 시몬 이야기 조금 더 할까요?
그는 마가복음에 의하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굳이 구레네 시몬의 아들 이름이 마가복음에 기록된 이유가 뭘까요?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할 즈음에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이름은 꽤 알려진 이름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 알렉산더와 루포가 누구일까요?
로마서 16장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 루포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로마서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여기는 한 사람.
그 사람의 아들이 루포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대체로 이 루포가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루포의 어머니는 곧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은 그의 후손들이 교회의 지도자급 인물로 살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하나님을 위해 흘린 땀과 피 한 방울도 조금도 헛되지 않게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심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계속 이런 길을 갑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 골목길]
제6지점은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초대 교회의 전승으로 전해지는 사건을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에서 예수님의 여제자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렸다고 합니다.
이때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졌다고 하는군요.
이곳에는 그리스 정교회가 이를 기념하여 기념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진: 제6지점]
계속 갑니다.
[사진: 제6지점에서 제7지점을 향해 가는 길]
제7지점은 주님께서 두 번째 쓰러지신 곳입니다.
경사가 가파른 곳입니다.
십자가는 구레네 시몬이 지고 가더라도 예수님은 한 몸을 이끌기도 힘겨운 상태였습니다.
[사진: 제7지점]
멜 깁슨이 연출하여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수난을 다룬 여러 영화들이 있습니다.
감독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스크린에 옮겨진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골고다의 길.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주님에게 계속해서 채찍질을 가하는 로마 병사들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렇게 매질을 당하면서 두 번 쓰러지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제8지점은 예수님께서 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만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울며 따르는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당부하셨지요.
정말 울어야 할 일은 지금이 아니라 종말의 때임을 깨우쳐 주려하셨지만, 당시 여인들은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너무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눅23:27-31]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제9지점은 주님이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콥틱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출처: 구글]
이어서 제10지점부터는 성묘 교회 내로 들어가서 보게 됩니다.
다시 정리되는 대로 올려보겠습니다.
2013. 6. 6 밤에 올렸다가 7일 아침에 수정하여 올립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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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글과 사진 진한 감동입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기회! 무척 아쉬움으로 남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