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가는 길 / 상록수 2013-01-12(토)
당진 지인으로부터
부부동반 초대를 받은 만보,
당진 그곳에 어차피 가는 길~
늘 그랬던 것처럼 생산적인 시간을 짜낸
효율적인 시테크이다.
▼ 당진 가는 길~ 동선
11일(FRI) 출발
(1) 청양 처갓집 1박
12일(SAT)
(2) 청양 큰처남 형님댁 방문
(3) 공주 큰아버지 뵙기
(4) 공주 친구 거브기와 차 한 잔
(5) 아버지 산소
(6) 당진 지인댁 방문 2박
13일(SUN)
(7) 왜목마을 일출
(8) 다시 당진 지인 댁에서 아침식사
(9) 당진 필경사 방문
(10) 서울 집으로 가는 길~
안산 동서 병문안
(11) 안산 처형댁 방문 점심~
(12) 안산 미로 아우 음식점에 들러
저녁 먹을거리 부대찌개 포장
집으로~~~
부창부수(夫唱婦隨)
여창남수(女唱男隨)
처음 시작은 부창부수요,
세부 계획안은 여창남수인
우리 부부의 맞춤형 화합
일부 계획안 수정
"열심히 일한 당신~
자~ 자유롭게 떠나자!"
토욜 이른 새벽 아침에 떠나는
「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가보자.
공주 큰집
아버지 산소 가는 길에
꼭 들리는 망향휴게소
안전운행~ 휴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생전 아버지 모시고 큰집 갈 때
꼭 들렸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휴게소에서 먹는
만보의 단 하나 먹을거리 우동~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나기만 하다.
공산성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山城)으로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다.
공주 금학동
큰아버지 계신 곳에 도착하니
아침식사를 한다.
컴 앞에 앉아 있는
두 꼬마 녀석
사촌동생 아들(5살, 4살)
요즘 농촌의 현실 다문화 가정이다.
우리 제수씨(베트남, 호치민)
어찌나 살림을 잘하는지~
거기다 시아버지까지 모시고 사는
막내 며느리의 예쁜짓에
걍~ 예쁘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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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코스~ 5분거리
차. 한. 잔. 거브기와의 만남은
거브기 사정으로 꽝~~~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아버지 산소로 향한다.
공주 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아버지 산소~
생전 아버지 말씀대로 커피 한 잔 올리고
2013' 계사년 우리집 평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기원했다.
다음 코스~
청양 칠갑산에 인접해 있는
형님 처남댁 가는 길~
얼음낚시 풍경
동백이와 만보,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잠시라도 낚시대를 잡고 싶은 동백,
예정에 없던 시간이라
발길을 돌리며
"재밌겠다 그지?"
▲ 칠갑산 휴양림(오른쪽)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
▼ 다음 코스~
큰처남 형님댁 아무도 없어
비상구에 선물만 놔두고 통과한다.
※ 미리 연락하면 부담이 될까봐
우리 부부의 동선(가는 길)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마침 청양 5일장 날
▼ 동백 자란 곳, 처갓집
그런데 만보의
한 달에 한 번 장모님 찾아뵙기에
누가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쉽지 않은데, 시골 처갓집을 꼬박꼬박
다니는 유별난 것 아니냐고...
하지만
부지런을 떨면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본성~
삶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야그가 길어져 이만 생략~
장모님을 찾아 뵈면 하룻밤을 보내는데
동백 계획안 수정으로 4시간 머물다
당진으로 출발이다.
당진 가는 길~
해가 서산마루로 서서히 떨어지며
황금빛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
아~ 태양
당당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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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 지인 댁 도착
저녁 밥상이 차려 지는데
갑이 씨가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늘 자상한 남편이다.
만보와 갑이 씨와의 관계?
우리 엄니 고향은 이북 황해도 곡산
갑이씨 아버지 고향도 황해도 곡산
엄니와 이북에서 한 동네에 살았던
이산가족의 아픔~ 동병상련이었다.
울 엄니와 갑이 씨 아버지
1.4 후퇴 때 피난살이 부산에 정착.
1957년 나와 갑이 씨가 태어난
우리는 동갑네기 정유생~
만보는 3살 때 서울로~
갑이씨는 당진(현대제철)에 정착이다.
▼ 소박하면서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
서로간의 야그가 죽이 딱딱 맞는다.
막걸리 3병과 양주가 동이 날 즈음
시간은 자정을 가르키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한다.
갑이 씨 부부 원래 술을 못해
동백이와 만보가 거의 다 해치운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주당파!!!
내 여자 동백이가 세상에 나와
가장 많이 술을 마신 날~
나도 놀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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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의 아침에 눈이 떠진다.
그렇게 마셨건만 골~ 때리지않고 괜찮다.
역시 술은 기분 좋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제맛이 나는 법,
편안해서 부담 없이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자리여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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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기대감을 안고
왜목마을로 향하는데 새벽 안개가 자욱하다.
해맞이가 어려울 것 같다.
서해안의 일출 명소 왜목마을
왜목마을은 마을 양쪽이 바다여서 마치 왜가리
목같이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 매년 왜목마을 해돋이축제가
열린다.
동해의 일출처럼 장엄하지는 않으나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의 일출은
왜목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상이다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아
진동의 설렘~ 해맞이를 못했지만
아니 이미 떠오른 태양~
눈으로 보지 못할 뿐. . .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에 괜찮다.
우리 부부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기에 또한 괜찮다.
갑이 씨네 집
아침 밥상을 물리고 차 한 잔 나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많은 정을
나누고 쌓았다.
서로의 존칭에서 말을 트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
이제는 일어서야 할 시간
다음 만남은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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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필경사
이 집은 심훈 선생이 1932년 서울에서
당진 부곡리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하던 중
1934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으로
"필경사(畢耕舍)"라 명하였다.
"필경"은 심훈 선생의 1930년 7월 작품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갈아엎고자 하는 심훈의
의지와 함께 자신의 집을 필경사라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족의식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닌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1935년 이 곳에서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상록수」 를 집필하였다.
당시 시대적 사명은 독립이고 해방이었다.
심훈의 <그 날이 오면>에는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절절한 심경이 담겨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중략>
심훈 선생의 유품
이 책상에서 상록수가 탄생
해설 자원봉사자 알고 보니
10년 전에 우리 옆동네에 살았는데
현재 당진에 정착.
상록수 심훈
"배워서 알아야 살 수 있다'는
농촌계몽운동~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에 온 힘을 기울이는
박동혁과 채영신의
젊은 동지적 사랑이야기~
지난 시간을 곰곰 돌이켜보건대
초딩 5학년 때 우연히 접한 소설,
아 ~ 상록수~
그 감동에 6학년 때 다시 한 번
밤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상록수
필경사에서 새로 구입했다.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아~ 나, 만보(漫步)는 행복하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첫댓글 언제나 즐거운 삶을 사시는 오라버니와 동백언니의 살아가는 이야기~.
동백언니 더욱 건강챙기시고 오라버니도 건강 챙기세요.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시고.올 한해 승승장구 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별다래 님 또한 지난 아픔을 훌훌~털어버리고
2013' 계사년 승승장구 파이팅~~~!!!
잘~~~바떠
아~~~라떠^^
우~와 빨 빨 빨 거니면서 너 돌아가네 ㅎ ㅎ 기사 한명 채용해야 겠다 어떠냐 김기사~~ 열심히 다니자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잖다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그러고 보니 우리 신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