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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저녁, 쏟아지는 빗속을 버스 속에 앉아 집에 들어가는 길가에 낯 선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당선된 사람들이 신이 나서(?) 내 건 “당선사례”라는 현수막은 많이 봤어도 낙선한 사람이 “낙선사례”라는 현수막을 내건 건 생전 처음 보았기에 낯이 설었다. 그리고 참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런 사람이라면 다음 선거에는 찍어줘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당선사례”에 겹쳐서 “만원사례”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 상암경기장이 만원사례를 이루었습니다.”
방송 아나운서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뭔가 씁쓸하다. 경기장이 만원이 되었다는 말인데 누가 누구에게 사례를 하고있다는 말인가?
“만원사례”라는 말은 내가 알기로는 영화판에서 생긴 말이다.
우리 학교 다니던 시절에 우리 집안은 영화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제작을 하고 현상을 하고 편집을 하는 등등의 주로 기술적인 면에 집안사람들이 손을 대고 있었다.
그때 자주 듣던 말이 “만원사례”였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때에는 하루 종일 영화관에 관객이 꽉 차면 “만원사례”, 객석의 90퍼센트(?)를 못 채우면 당장 영화를 내려야 한다. 만원 아니면 끝. 극장주들은 그래야 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표를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며 자리를 채우느라 고심을 했다.
객석이 만원이 되면 제작자측은 “만원사례”라는 입간판을 극장 입구에 세운다. 그리고 제작팀들, 소위 스텝이라는 사람들에게 “만원사례”라는 도장이 찍힌 봉투를 하나씩 돌린다. (배우들에게도 봉투를 돌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봉투는 지금의 편지봉투 반만 한 건데, 그 속에 지금으로 치면 5천 원 정도의 돈이 들어있다.
“만원사례”란 그렇게 제작자들이 입간판으로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사례), 제작진에게는 봉투로 감사를 하는 것(사례)이 내 기억 속의 “만원사례”라서인지, 아나운서들의 무분별한 “만원사례를 이루었다”는 말에 조금은 거부감을 느낀다.
어쨌든 당선이 아닌 낙선을 하고서도 “낙선사례”의 현수막을 걸어놓는 그런 후보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무척 신선하다는 느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