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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에서 큰 문제가 있었던 ‘드래곤볼 슈퍼’는 침체를 뒤로 하고 우주 서바이벌 편부터 큰 질적 향상을 보여주었고 130화는 그것의 화룡정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액션적으로 이 회차는 단순히 슈퍼만이 아닌, 드래곤볼 애니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는데요. 업계는 물론 팬들에게까지 드래곤볼 슈퍼의 타이트한 스케줄 문제는 이미 비밀이 아닌 수준이었음에도 토에이는 이를 이겨내고 해냈습니다.
미리 공개되었던 스탭진 명단에서부터 이 회차는 이미 팬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키우기 충분했습니다. 먼저 감독 겸 콘티 아티스트를 맡은 사람은 ‘나가미네 타츠야’와 함께 우주 서바이벌 편의 시리즈 디렉터를 맡은 ‘나카무라 료타’였습니다. 나카무라는 드래곤볼 슈퍼의 퀄리티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작 총괄자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시리즈를 조율하였으며 우주 서바이벌 편에선 다른 아티스트들의 콘티들을 위에서 총괄하기도 하며 시리즈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큰 몫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편 작화 감독 명단에는 많은 팬들이 익숙한 ‘타테 나오키’와 ‘마나베 슈이치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더욱 놀라운 건 바로 이 둘 밑의 원화가들입니다. 슈퍼 130화는 토에이의 톱티어 액션 애니메이터들이 총출동하여 최고의 전투씬을 선사했습니다.
도입부는 작화 감독 타테 나오키가 직접 원화를 담당하였습니다. 타테는 드래곤볼 슈퍼 스케줄링 문제의 말할 것도 없는 최대 피해자입니다. 원화가로서 2화에 참여하고 불과 3주만인, 그 유명한 5화의 작화 감독을 맡아 많은 팬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드래곤볼 Z의 애니메이터였음에도 온갖 오명을 뒤집어쓴 타테는 점점 슈퍼의 제작 스케줄이 개선됨에 따라 같이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고 그것은 이 130화에서도 이어지는데요. 타테 나오키는 그 누구보다도 무의식의 극의와 궁합이 좋은 애니메이터입니다. 타테 특유의 부드러운 액션은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컨셉의 무의식의 극의에 딱 맞아 떨어지며 실제로 극의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110화 후반부도 거의 타테의 몫이었죠. 이 회차 역시 도입부 전투씬을 보면 오공의 몸이 정말 아무런 무리 없이 지렌의 공격을 다 피해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타테의 또다른 강점인 임팩트 프레임과 과장된 표현력이 빛을 보기도 합니다.
타테 다음엔 원화가 ‘니카이도 아츠시’의 파트가 등장합니다. 니카이도는 1화부터 슈퍼에 참여하였으나 빛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건 스케줄 문제가 점차 해결된 우주 서바이벌 편에 들어서였는데요. 뛰어난 속도감과 이펙트 연출, 그리고 묵직한 타격감을 바탕으로 니카이도는 훌륭한 액션씬을 선보입니다.
배경음악인 궁극의 성전이 끝남과 함께 니카이도의 파트도 끝이 나고 타테 나오키가 다시 한 번 등장해 묵직한 펀치를 보여줍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타테는 과장된 표현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펀치의 박력을 보여주기 위해 지렌의 몸이 상당히 크게 일그러지는데 이건 팬들이 Z 때부터 많이 봐온 연출이기도 합니다.
지렌의 분노로 잠깐 액션이 끊기는데 이것은 회차 초장부터 상당한 전투씬을 선보인 상황에서 팬들이 숨을 고르기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습니다. 이후 액션이 다시 시작되고 이번엔 ‘투 영서’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투 영서는 34화부터 슈퍼에 참여했었으나 정작 중반까진 제 2원화가로서 다른 원화가들의 작품을 가다듬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팬들이 그를 제대로 각인하게 된 계기는 오공과 오반의 전투가 있던 90화로 제한된 기간인 11일만에 무려 100컷을 담당하며 후반부를 캐리했고 이후부터에서야 액션 애니메이터로서 본격적으로 기용되기 시작했죠. 투 영서의 최고 장점은 바로 기탄 이펙트로 지렌이 오공에게 기탄을 던질 때 그 진가가 멋지게 드러납니다.
참고로 이 때 오공의 에네르기파씬은 122화 ‘타카하시 유야’의 파트가 재사용되었는데 그래도 완전히 다시 그려졌으니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사실 집중하면 재활용씬은 이 회차에서 조금씩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주 군데군데이고 딱히 거슬리는 정도도 아니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 130화 전인 129화가 본격적인 클라이막스의 시작으로 상당한 기대를 받았으나 재활용씬들만 무수해서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이요.
후반부가 시작하고 곧바로 다시 액션에 들어갑니다. 이 부분을 담당한 사람은 ‘미우마 켄지’로 프리큐어 시리즈의 스타 애니메이터이기도 한 그는 미래 트랭크스 편의 액션을 마무리 지은 66화부터 슈퍼에 참여하여 이후 레귤러 작화진에 자리잡았습니다. 미우마는 사실 이 전까진 이펙트 연출은 좋으나 전투씬은 살짝 아쉽다는 평을 팬들로부터 종종 듣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130화에서는 나카무라 료타의 훌륭한 콘티 아래에 최고의 활약을 펼칩니다.
이 다음은 ‘히가시데 후토시’가 과거 회상 과정에 실루엣으로 나오는 전투씬을 맡았습니다. 히가시데 후토시는 정말 드래곤볼 슈퍼를 구해낸 애니메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슈퍼가 빌빌거리던 시기에 투입된 히가시데는 그후 미래 트랭크스 편에서 거의 노예로 굴려지다시피 하며 주요 싸움들의 상당수를, 그것도 슈퍼의 상당히 촉박한 스케줄 사이에서도 거의 혼자 캐리해냈으며 그 훌륭한 활약은 우주 서바이벌 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나카무라 료타의 역할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액션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는 단순히 작화진의 기량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설령 작화와 액션 자체가 좋아도 연출과 콘티가 별로면 전투씬의 긴장감과 스케일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죠. 가장 대표적으로 ‘야마무로 타다요시’ 감독의 초짜스러운 연출로 실망스러운 결과물이 되어버린 ‘부활의 F’ 극장판이 있습니다. 나카무라는 콘티 아티스트로서는 인상적인 카메라 앵글 전환으로, 감독으로서는 안정적인 페이싱과 좋은 타이밍의 배경음악 삽입으로 이 회차를 크게 빛냈습니다.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전반부 지렌의 분노 장면이 대표적인데요. 엄청난 전투 후 갑작스러운 침묵과 불덩이 사이에서 실루엣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지렌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주기 충분하며 오공의 파란 오오라와 반대되는 지렌의 빨간 오오라는 둘을 제대로 대비되게 해줍니다.
130화에서 나카무라는 과거 자신이 팬들에게 보여준 연출을 다시 사용합니다. 본인이 직접 담당했던 슈퍼 75화에 이어 이번에도 무천도사의 안경을 이용한 연출을 보여줬으며 히가시데가 그린 회상 및 전투도 나카무라가 예전 프리큐어에서 사용한 방법입니다. 오공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아주 잘 보여주어 팬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죠.
다시 히가시데 후토시의 액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육탄전에선 펀치 한 방 한 방의 타격에 힘이 들어가있고 지렌의 기탄 공격을 피하는 현란한 오공의 움직임은 116화에서 에네르기파를 준비하며 케프라의 공격을 피해내는 오공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당연히 그 파트를 담당한 사람 역시 히가시데였습니다. 히가시데의 파트는 그 다음에도 계속 이어지며 이후 넘버원 클라이막스 애니메이터 ‘시다 나오토시’에게 바통을 넘겨줍니다.
시다 나오토시는 57화가 되어서야 애니메이터로서 슈퍼에 데뷔하였으나 사실 그는 슈퍼 초반부부터 줄곧 콘티 아티스트로서 시리즈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시다의 57화 원화는 팬들에게 흥분을 주었으며 이후 돌아온 66화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우주 서바이벌 편의 오프닝에도 참여한 시다였으나 정작 이 에피소드에서 시다는 다시 주로 콘티를 담당하며 애니메이터로서는 그리 많은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요. (다만 그 결과, 콘티 아티스트로서의 시다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130화에선 원화가로서 참여하였으며 말이 필요없는 시다스러운 액션을 선사하였습니다. 지렌에게 달려들기 직전 오공의 목이 격정적으로 꺾이는 연출은 익히 알려진 시다의 특징으로 신들의 전쟁 극장판에서 보여주기도 했었으며 시다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로 유명한 타카하시 유야가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에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다음 오공의 어퍼컷과 에네르기파를 맡은 원화가는 또다른 스타 애니메이터 ‘오오츠카 켄’이었습니다. 5화에 참여하면서 슈퍼에 데뷔하여 이후 39화, 66화, 116화 등 주요 회차들의 주요 파트들을 담당한 오오츠카는 늘 볼 때마다 반가운 존재입니다.
이 다음 오공이 극의 반동으로 마무리에 실패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파트는 후반부의 작화 감독 ‘마나베 슈이치로’가 담당하였습니다. 슈퍼로서는 드물게 피가 터진다는 묘사가 나오기도 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한 장면이기도 하죠.
‘이시카와 오사무’가 관중석의 모습이 비춰질 때의 파트를 담당하였는데 단순히 130화에 모습을 비춘 애니메이터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객관적인 시각에서의 이시카와는 정말 슈퍼의 레귤러 작화진 중에서 가장 무색무취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딱히 특별히 나쁜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또 뛰어난 편도 아닌 정말 문자 그대로 그저그런 애니메이터인지라 이시카와가 이 회차에서 가장 약한 파트인 관중들의 대화 장면을 맡은 게 이해가 됩니다.
이후 미우마 켄지가 다시 돌아와 지렌의 기탄 공격을 담당해 특유의 훌륭한 이펙트를 보여주고 다음엔 마나베 슈이치로가 마무리를 하며 130화는 끝이 납니다.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돌려보면서도 정말 대단한 회차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130화는 글의 제목 그대로 진짜 토에이의 올스타가 나선 최고의 회차로 오늘날 드래곤볼 애니의 이상 중 이상입니다. 과연 미래에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지난 몇 주동안 내내 글을 쓸 컨텐츠를 생각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 고민이었는데 그냥 좋았던 애니 회차를 복습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는데 점점 쓰면 쓸 수록 예상보다 내용이 길어져서 결국 몇 시간에 걸쳐서야 완성했네요. 이런 건 영상 같은 걸로 하면 훨씬 디테일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늘 아쉬운 기분이네요. 하지만 얼마 전 제가 즐겨하는 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제 예전 글을 정리해 출처와 함께 올려주신 걸 보고 신기하고 괜히 좋기도 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분석진짜 잘하셨네요 한 스탭 한 스탭의 장점을 정말 잘 뽑아내시네요 대단합니다!!
좋은글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좋은글이여서 좋았어요!
캬 분석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