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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원론: 멜로디와 음악적 모방에 대하여(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 où il est parlé de la Mélodie, et de l’Imitation musicale)(1781, posthume)
마떼이(J.-F. Mattéi),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1434-1435. (P.2190.)
- 마떼이(Jean-François Mattéi, 1941-2014) 프랑스 철학자, 그리스철학과 정치철학 전공.
일반적으로 루소의 언어 기원론(1781)은 posthume)은 말씀과 음악에 관한 반성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1955년 경에 쓰기 시작했다고 하며썼다고 하며, 1763년에 출판하려 하였다고 들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제네바에 살았던 루소의 친구이며 유언집행자인 뒤페루(Pierre-Alexandre Du Peyrou, 1729-1794)에 의해, 루소 사후 1781년에 출판되었다.
언어 기원론은 불평등의 토대와 기원론(1754)의 완성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 안에는 에밀(1962)이 언급되어 있어서 이 시기까지 루소가 원고에 관심을 가졌다고 본다. (52WKA)
제목에서 언어는 몸짓 등을 포함한 의사전달 방식의 총체로서 언어(le language)라기보다, 말씀(la langue)인데도 그 내용상으로 목소리로 말하는 언어를 의미한다. 그 목소리(la voix)는 소리(le son)와 비교하기에, 언어와 음악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그래서 제1부는 언어의 발생을 다루면서, 언어와 사교성과 사랑을 통하여 가정과 사회의 형성을 다룬다. 제2부는 언어보다 음악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음악에 대한 미숙으로 잘 번역하기 어렵다. (52W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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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기원론: 멜로디와 음악적 모방에 대하여(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 où il est parlé de la Mélodie, et de l’Imitation musicale)(1781, posthume)
만일 말투(la parole)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게 한다면, 말씀(la langue)은, 이 말씀들이 다양하다는 사실로부터, 인간들 사이를 구별하게 한다. 따라서 어떤 지역적[풍토적, 영토적] 이유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만 하는데, 이 이유란 자연적 원인들로부터 로만 말씀의 기원을 끌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통하기 위하여 두 가지 감각적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몸짓의 말씀[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목소리의 말씀[언어]이다. 전자는 눈에게 무매개적으로 말을 걸며, 후자는 심장[가슴]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전자는 신체적 필요들에 제한되어 있으며,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기호[신호]가 말하기에 앞서서 모든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기호는 시각에게 완전한 대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우리의 욕망들과 우리 정념들을 생산하며, 시간의 리듬에 종속되고, 우리 속에서 반성으로 파고든다(“중복된 타격[충격]들로 [가슴을] 두드리는 담론의 연속적인 인상은 우리에게, 우리가 한번 눈길로 보았던 대상자체의 현전과는 다른 감동(autre emotion)을 준다”).
말하자면 장-자끄에게서 인간의 형이상학적 필요를 드러내는 것은 정념[정열]들이다. 우리 관념들의 소통은 감관 기관들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une faculté)”에 의존한다. 이 능력이 인간에게 협약의 언어[말씀]을 획득하게 해주고 또 진보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다. 인간들은 우선 기하학자들의 언어[말씀]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언어[말씀]들로 말한다. 왜냐하면 언어의 기원은 도덕적 필요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단어의 고유한 의미가 발견되기에 앞서서, 역설적으로 원시 말씀들이 도형[형상]들과 전의(轉義)(un trope)들로부터 표현되었다. 은유(la métaphore)가 인간에게서 먼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은유는 인간 영혼의 자연적 운동(le mouvement naturel)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초기 말씀들[언어들]은 말을 하는 대신에 노래했었고, 그리고 수(au nombre)와 자연의 조화에 연결되었다. 마치 사람들이 플라톤(Paton, 전427-전347년)의 크라틸로스(Cratyle)에서 그것을 보듯이 말이다. 그러나 진화하면서 말씀은 보다 분명하게 되고 보다 냉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로부터 우리들의 알파벳에까지 글쓰기(l’écriture)의 진화가 그것을 증명하듯이 대상들 자체와 따로 분리되어 나온다.
루소가 글쓰기를 말투(la parole)로부터 조심스럽게 따로 떼어내고, 또한 이 글쓰기는 분리하 “표현 대신에 정확성”을 대체한다. 이리하여 글쓰기는 소통과 학문의 발전을 허용한다.
구어로 되돌아가면서, 저자는 근대 운율법(la prosodie)을 그리스인들의 운율법과 비교하는데, 그리스인들의 말씀[언어]은 자연적으로 음악적이라고 한다(5도의 일치(un accord de quinte)는 악상떼귀와 악상그라브를 분리했다). 그런데 기원은 지역적 기후에 기인한다. 이러한 것은 남부지역(le Midi)의 언어들로부터 북쪽 언어[말씀]들을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남쪽 언어[말씀]들의 형성은 이 작품은 기장 긴 장(章)을 차지하며(9장), 이 장은 이 작품의 뼈대를 구성한다. 초기시기에, 흩어져 사는 인간들은 서로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 때가 황금의 세기이다. 이 세기는 인간들을 사회적 제도 속에 고착시키기를 폭력으로 금지했다(“도처에서 전쟁 상태가 퍼져있었고(régner, 유지되었고), 땅 전체는 평화로웠다(en paix)”).
농업인이기에 앞서서 노마드들이었던 인간들은 연속적으로 우주적 격변이 있고나서야 사회[상태]로 들어갔다. 이 우주적 격변[의 견해는]은 성경에서라기보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ée)편과 정치가(Politique)편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사회적일 수 있기를 원했던 자가 지구의 축과 손가락으로 건드렸고, 그것을 우주의 축에 [맞게] 기울게 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사교적일 수 없는 사회성”의 기원은, 칸트(Kant, 1724-1804)가 그렇게 말했듯이, 우주적 필연성에 복종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비합리적으로 남아있다. 여기서 루소는,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 1908-2009)에 앞서서, 날것과 익힌 것에 관한 중심화된 불의 인류학을 묘사한다. 그리고 바슐라르(Bachelard, 1884-1962)에 앞서서, 어떻게 전원풍의 난로가 “성스러운 불”을 보호하는 지를 제시하였다. 이 성스런 불이 “인류의 초기 감정”을 생겨나게 했을 것이라 한다.
그러고 나서 인간들을 물의 관점으로 향하여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욕망이 언어, 사회, 사랑을 동시에 생성하게 하면서, 물(수, 水)의 관점에 붙들어 둔다.
“거기서 가족들의 초기 유대들이 형성되었으며, 거기에서 두 성(性)들의 초기 만남들이 있었다. 젊은 여성들은 가사 일을 위하여 물을 찾으러 왔고,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짐승들에게 물을 먹이러 왔다. 거기에서, 어린 시절부터 동일한 대상들에 익숙해진 눈(목, 目)들은 그것들에 대해 더욱 부드럽게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초기 축제들이 이루어졌다(…). 함께 뒤섞여서진 쾌락과 욕망이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결국 거기에는 인민의 진솔한 요람이 있었다. 샘들의 순수 수정체(水晶體)로부터 사랑의 초기 불꽃들이 나왔다.”
언어의, 사회성의, 사랑의 이런 수정체화는 루소의 주요 주제들 중의 하나 인데, 그 수정체화(cette cristalisation)는 물리적 필요 속에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욕망 속에서 의미의 실재적 근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소리와도 목소리의 멜로디 엑센트와도 분리할 수 없다.
작품의 제2부, 12장에서 20장까지는 음악에 할애되었다. 음악은 언어[말씀]의 진실한 본질을 벗겨낸다. 멜로디는 귀의 즐거움에 한정된 단순한 “소리의 연속”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정념[정열]의 모방(l’imitation)이다. 조화(l’harmonie, 화음)에 관해서 말하자면, 루소는 라모(Rameau, 1683-1764)에 반대하여 한 번 더 새로이 논쟁적이게 되는데, 조화[화음]는 “협약의 아름다움들[미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통합과는 다른 자연적 조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화는 아무것도 모방하지 않으며, 조화는 소리들 사이의 물리적(신체적) 간격의 일체로 환원된다.
반대로 멜로디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 노래인데, 그 멜로디는 순간적으로 영혼을 정념(정열)의 엑센트[강도]에 복종한다. 따라서 음악의 진실한 원리는 또한 언어[말씀]의 진실한 원리는 물리학이지 않다. 소리들과 협화음의 조곡들(des suites)은 감명을 주지 못한다. 또한 이것들[조곡들]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인상들의 기호들이며, 이것들에 대해 한 세기동안에 이야기되었었다고 할지라도, “그 세기에서 사람들은 영혼의 모든 조작들을 물질화하려고 노력하였다.”
루소는 “조화로운[화음] 체계” 속에서 어떤 소리는, 만일 그 체계가 다른 소리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 강세적이지도, 지배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고 - 아니다. “이 모든 성질들은 연관들이 뿐이며, 또한 악상 그라브에서 악상 떼귀로 변화할 수 있는 체계일 뿐이다. 그 체계가 정도(degré 음정)을 변화기킴에 따라서 각 소리는 체계 속에서 질서[순서]와 자리를 변화시킨다.” 여기에 이미 소쉬르(Saussure, 1857-1913)가 언어에서 발견할 대립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는 구조주의의 자신일 될 것이다. 그러나 루소는 훨씬 더 멀리 나간다. 만일 “음악의 영역이 시간이라면, 화가의 영역은 공간이다” 이로부터 음악가는 “사람들이 들을 즐 모르는 사물을” 그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화가는 “사람들이 볼 줄 모르는 사물을 재현할” 수 있다. 이리하여 음악은 소리에게 들을 수 없는 것(l’inaudible)을 부여한다. 이 들을 수 없는 것은 플라톤의 주제였으며 시간의 바같에 있다. 그런데 화가는 공간을 피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준다. 이리하여 화가는 인간이 자기 조건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막아준다.
음악이 “순수하게 물리적 인상”에로가 아니라 오로지 “도덕적 효과들”로 귀착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음악에게 철학 그 자체보다 더 높은 형이상학적 소명(une vocation)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체(Nietzsche, 1844-1900)에 앞서서 플라톤의 대화편보다 그 위에다가 호머의 노래[시가(詩歌)]를 놓았다. 이런 귀결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다. 음악의 퇴폐는 화모니[조화]를 이용하여 멜로디의 망각하는 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공공장소에 모이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모여있는 인민 전체에게 이해하게 할 수 없는 언어[말씀씀이]는 “예속 언어[말씀]”이다. 말하자면 언어 주요 음색(la tonalité)은 자유의 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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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록
7?? 호메로스(Homer, Ὅμηρος 맹인 盲人, 8세기경) 그리스 유랑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427 플라톤(Paton, Πλάτων, 전427-전347년)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사상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교육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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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 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는 프랑스의 작곡가. 그는 후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이론가이기도 하며, 프랑스의 국민적 오페라, 발레 양식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음악이론가.
1712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
1724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1729 뒤페루(Pierre-Alexandre Du Peyrou, 1729-1794), 위그노 가계의 스위스 뇌샤틀의 유명인사. 루소의 친구이며 유언집행자. 루소의 천 전집을 출판한 인물이다.
1844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고전 문헌학자, 철학자. 서구의 오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1857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스위스의 언어학자,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 유고로 일반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1916)첫 논문으로는 「인도유럽어족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문(Mémoire sur le systè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éennes 1878)」
1884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프랑스 철학자. 시학의 철학자. 1927년 박사학위. 도덕 정치과학 아카데미 회원. 과학철학에 인식론적 장애와 인식론적 단절(obstacle épistémologique et rupture épistémologique)의 개념을 도입했다.
1908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 프랑스의 인류학자, 구조주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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