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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印度)
3.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 주
<1> 철도교통의 요충지 솔라푸르(Solapur)
다음날 아침, 버스로 1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마하라쉬트라주(Maharashtra)의 솔라푸르로 향하였다. 솔라푸르(Solapur)는 인구 100만정도의 도시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고 철도교통의 요충지라고 관광책자에 나와 있다. 나도 특별히 관광이 목적이기보다는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중간에 하루 쉬어가는 도시이다.
마하라쉬트라주(Maharashtra State)는 인구 1억 2천만, 면적은 30만 7천 ㎢(남한면적의 3배)라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비자푸르로부터 거리는 100km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에 도착하였다. 그 거리를 7~8시간 정도나 걸렸으니 인도의 열악한 도로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낡아빠지고 털털거리는 버스 차창으로 불어드는 뜨거운 바람, 차에서 내 뿜는 지독한 매연, 중간에 들르는 정거장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온통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 죽는 줄 알았다. 설사는 멈췄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고 아무것도 못 먹겠다. 갑자기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2> 데칸(Deccan) 고원의 고대도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아름다운 능묘 비비카 막바라 / 다울라타바드 요새
마하라쉬트라주(Maharashtra)의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는 인도 중부의 관광거점 도시로 근처에 수많은 유적들이 있다. 무굴제국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황태자 시절 태수로 부임하였던 데서 도시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인구는 100만 정도의 그다지 대도시는 아니다.
아우랑제브 황제는 왕비를 위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義)로 꼽히는 아름다운 능묘(陵墓) 타지마할(Taz Mahal)을 건설한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의 아들이다.
◐ 비비카막바라(Bibi Ka Maqbara)와 판차키 바바사(Panchakki Babashah)
첫날은 먼저 쿨다바드(Khuldabad)에 있는 아우랑제브가 왕비를 위하여 타지마할을 본 떠 17세기 중반에 건축하였다는 능묘(陵墓)를 보러갔는데 비비카막바라(Bibi Ka Maqbara)라고 한다. 아름다운 건물은 타지마할(5대 황제 샤자한의 왕비 능묘)과 꼭 닮아 작은 타지마할이라고도 불린다는데 크기는 3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능묘였다.
아우랑가바드에서 13km떨어진 곳에 있는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Port)는 고대 요새유적이다. 물의 정원 혹은 물레방아 정원이라고 부르는 중세의 관개시설인 판차키 바바사(Panchakki Babashah)도 둘러보았는데 중세 인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판차키 바바사 입구 / 사진 찍히기 좋아하는 인도사람들(앞의 노인은 소경)
<3> 경이의 엘로라(Ellora) 석굴군
마지막으로 찾아간 엘로라 석굴사원(Ellora Cave Temple)은 아우랑가바드 북서쪽 20km 지점에 있다. 바위산 중턱에 2km에 걸쳐 석굴사원이 34개가 조성되어 있는데 인도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 카일리쉬 석굴사원
카일라쉬 석굴사원의 위용
각각의 석굴은 석굴 앞 바닥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1~12석굴은 6~7세기에 조성된 불교석굴로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고, 13~29석굴은 힌두교 석굴, 30~34석굴은 8~10세기 가장 나중에 조성된 자이나교(Jainism) 석굴이다. 모든 석굴들이 모두 특징이 있고 아름다운 부조들로 채워져 있지만 비교적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제16굴의 힌두교 석굴인 카일라쉬 사원(Kailash Temple)인데 카일라쉬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이다.
이 석굴은 우선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가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데 다른 석굴과 특별히 차별되는 것은 단순한 석굴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파고 들어가(하늘이 보이도록) 바위산 자체로 사원을 조성한 점이다.
사원의 규모는 앞쪽의 가로길이가 46m, 뒤쪽 암벽 높이가 33m, 입구에서 안쪽까지 54m나 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본전(本殿) 건물은 물론 벽면들마다 가득 채워진 부조들이 눈부시고 사원의 탑 뒤에는 거대한 코끼리 상도 우뚝 서 있다.
불교 밀교(密敎) 석굴 / 수많은 작은 석굴들 / 석굴 대회랑
뿐만 아니라 사원 뒤편의 절벽은 다시 수많은 동굴을 파서 다양한 힌두교 신들을 모시고 있다. 우리는 그저 훌륭한 예술품으로 감상하며 감탄할 따름이지만 바위산을 통째로 파내고 또 파들어 가느라 얼마나 많은 석공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곳에서 고생했을까 경외감이 든다. 그 밖에 나머지 석굴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동굴마다 정교한 조각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마치 조각전시회를 보는 느낌이다.
<4> 대 불교 석굴사원 아잔타(Ajanta) - 찬란한 불교미술의 금자탑
아잔타 석굴사원(와고레 강기슭) / 바위절벽에 조성된 아잔타
◐ 아잔타 석굴의 발견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황량하고 넓은 데칸고원 평원을 달리는데 텅 빈 뱃속에다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금방 녹초가 된다. 4시간 쯤 달렸을까 버스는 평원에서 갑자기 수풀이 무성한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 아래에 내려왔을 때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몇 개의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나 하나만 달랑 내려놓고 가버린다. 거기에 아잔타 석굴사원 매표소가 있고 이곳에서 마을까지는 다시 4km정도 더 가야한다. 입장료는 255루피(우리 돈 약 6,000원).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6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잔타(Ajanta) 대 불교 석굴군은 1819년,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 일행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근 1.200여 년 동안 밀림에 버려져 잊혀졌던 아잔타는 쫓던 호랑이가 맞은편 절벽 밑으로 사라지자 스미스 일행이 내려가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어마어마한 석굴군(石窟群)이 있었고 비로소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잔타는 엘로라 석굴군보다 수세기 앞서 조성된 석굴이다.
◐ 찬란한 불교미술의 금자탑
와고레(Waghore)강 계곡이 반원형을 그리며 흐르는 절벽을 중심으로 조성된 30개의 불교석굴군은 높이 70m의 암벽에 조성되었다. 이 석굴들은 BC 2세기부터 BC 1세기까지 조성된 전기 석굴들과 AD 5세기에서 AD 7세기 사이에 조성된 후기 석굴들로 나누어지는데 총 길이는 1.5km에 이르며 가장 오래된 석굴은 BC 2세기에 조성된 제10석굴이라고 한다. 이 아잔타 불교석굴군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이자 초기 인도 불교미술의 금자탑(金子塔)으로 불리어진다.
전기 석굴군은 불상이 없고 후기 석굴군부터 불상이 모셔지기 시작했고, 초기 형태의 불탑이 나타나는 등 불교 건축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귀중한 불교유적이라고 한다. 보존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여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운 현란한 색채의 프레스코화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제15굴 입구의 코끼리 조각 / 제26굴 와불상
불교미술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제1굴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 ‘연화수보살상(蓮花手菩薩像)’, 석굴 입구를 양쪽에서 두 마리의 코끼리가 무릎을 굽히고 지키는 제15굴, 초기불교의 법당(法堂) 모습과 불탑의 원형을 짐작케 하는 제19굴, 아잔타 석조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제26굴의 아름다운 부처님 와불상(臥佛像) 등 참으로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라는 느낌이다.
연화수보살(1굴) /아름다운 벽화(16굴) / 천정조각(26굴)
◐ 고난의 여정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사진도 못 찍고 헐떡거렸다. 입구에 200루피짜리 관광객용 가마도 있었는데 타고 올걸 그랬다는 후회도 든다. 뱃속은 텅 비었는데 목으로는 콜라 밖에는 아무것도 넘길 수 없다.
매표소 옆에서 팝콘을 팔고 있기에 샀는데 깔데기 모양의 신문지 봉지에 담아주는 것을 한주먹 입에 넣었지만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메마른 입속에서 가까스로 녹여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석굴사원 귀퉁이에 앉아 팝콘을 담은 신문지 깔데기를 옆에 놓고 콜라를 마시는 사이 랑구르 원숭이가 옆에 세워놓은 팝콘을 잽싸게 낚아채 도망친다. 그것을 빼앗으려 한 무리의 원숭이 떼가 뒤를 쫓고.... 참 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천신만고 쉬고 또 쉬며 그래도 악착같이 마지막 석굴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 여행 포기
입구로 나와 나무그늘에서 헉헉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제법 또렷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은 아시라프 알리(Asiraf Ali)로 부산에서 1년 동안 여행사 가이드를 했다고 하며 한글 명함도 보여 주는데 매우 반가웠다.
이름이 알리인 것으로 보아 무슬림인데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정직하다고 알려져 있고 평판이 좋다. 날씨가 너무 덥다고 했더니 지금이 장마철 직전으로 가장 더울 때라며 한낮 기온은 섭씨 38~40도 정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자신도 이곳은 너무 덥고 살아가기가 힘들어 곧 살기 좋은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내가 너무 힘들어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자 가는 방법이 아우랑가바드로 되돌아가서 비행기로 뭄바이로 간 다음 한국으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지금 당장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곧바로 택시를 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바로 가자고 하여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타고 4km 떨어진 마을로 왔다.
택시기사를 만났는데 아우랑가바드 공항까지 택시로 3시간 정도 걸리고 차비는 1.200루피(2만 8천 원)를 달라고 한다. 당장 그렇게 하자고 흥정이 되어 알리에게는 고맙다고 100루피와 입맛이 없어 한 개비 피우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갑과 라이터까지 주었더니 입이 헤벌어진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택시를 타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우랑가바드 공항에서는 곧바로 뭄바이 행 비행기가 없어 네 시간이나 공항로비에서 앉아 기다렸는데 시원하니 그래도 살 것 같다. 또 콜라만 마셔댔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서남쪽으로 350km지점에 뭄바이(Mumbai)가 있다.
<5> 인도의 관문 뭄바이(Mumbai), 그리고 머나먼 귀국길
인도문(Gateway of India) / 뭄바이 빨래터
녹초가 되어 뭄바이 공항에 내려서 한국 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는 시내로 들어왔다. 표가 곧바로 없기도 하려니와 너무 몸이 좋지 않아 한 이틀 쉬다가 가야겠다. 시내로 들어와 호텔에 이틀치 요금을 내고는 침대에 쓰러져 곧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깨니 저녁 무렵인데 뭔가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
프런트에 전화로 계란 프라이를 넣은 샌드위치와 바나나 네 가닥, 사과 큰 거 1개, 콜라 한 병을 날라다 달라고 하여 침대에서 강제로 입에 구겨 넣었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놓으니 조금 살 것 같고 음식도 제법 입에 들어간다. 웃기는 것은 여기서는 샌드위치를 안 만들어 보았는지 계란 플라이와 토마토 슬라이스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식빵 테두리 구운 부분은 모두 뜯어내어 들쭉날쭉 하다. ㅎ
◐ 엄청난 대도시 뭄바이
다음날 아침 조금 기운을 차리겠는데 또 욕심이 생긴다. 이곳까지 왔는데 뭄바이 관광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관광안내 책자를 펴 들었다.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도(州都)인 뭄바이(Mumbai)는 인구 1.400만의 대도시로 인도 제2의 도시라고 하며, 1995년 봄베이(Bombay)에서 뭄바이(Mumbai)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볼거리가 많았지만 내 몸 상태를 고려하여 인도문(Gateway of India)과 인도문에서 10km거리 뭄바이만(灣)에 있는 작은 섬 ‘코끼리 섬(Elephanta)’ 만 보기로 했다.
호텔에 부탁하여 택시를 불렀는데 300루피를 달라고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인도문은 굉장히 먼, 기다란 반도 끝 부분인 아폴로 부두에 있었다.
◐ 인도의 전통 빨래터
가는 도중 택시 기사는 갑자기 도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다리 난간 밑을 넘겨다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고 내려다 봤더니 그곳이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인도의 빨래터였다.
벌집 같이 칸막이가 쳐진 빨래터에서 물에 불린 빨랫감을 휘둘러 내리치는 장면이 신기하고, 길게 줄에다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이채로웠다.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제일 아래 계급인 빨래꾼들은 대대로 세습되며 신분상승이 안된다든가....
◐ 인도문(Gateway of India)
뭄바이 도심은 유럽풍의 멋진 건물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인다. 뭄바이 만 아폴로 부두에 세워진 거대한 인도문은 1911년 영국 식민지 당시 조지 5세(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의 델리 방문을 기념하여 9년간의 공사 끝에 1924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인도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16세기 구자라트(Gujarat)양식이라는 인도문은 높이가 26m로 굉장히 멋지고, 바로 옆에는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이라는 타지마할 호텔이 있는데 꼭 거대한 왕궁을 보는 것 같다.
타지마할 호텔 / 아폴로만(灣) 선착장 / 세련된 뭄바이 아가씨들
◐ 코끼리 섬(Elephanta) 석굴사원
인도문 바로 뒤에 있는 아폴로만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한 시간 쯤 거리에 코끼리 섬(Elephanta)이 있다. 배 삯이 120루피, 섬에 내려서 500m쯤은 코끼리 머리를 단 간이기차로 차비는 5루피...
7~8세기에 건축된 힌두교 석굴사원을 들어가는 입장료가 250루피로 제법 비싼 편이다.
코끼리 섬 석굴사원 / 아폴로만과 인도문
이곳 코끼리 섬의 석굴사원은 삼면상(三面像)의 쉬바신 석상 등 볼만 하다고 안내책자에는 소개되어 있었지만 힘도 없고, 돈도 아깝고, 이미 너무 많은 석굴사원을 보았던지라 그만두었다.
대신 배에서 바라보는 아폴로만과 인도문과 타지마할 호텔, 그리고 코끼리 섬의 아기자기한 풍광 등이 인상에 남는다. 다음날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 다시는 배낭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귀국하였는데 집에 와 재어보니 체중이 4kg이나 줄었다.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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