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곶감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곶감 산지(産地)로는 경상북도 상주(尙州)가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상주 곶감은 '먹감'이라고 해서 감 표면에 커다란 검은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상주사람들 이야기로는 이 먹감이 곶감을 만드는 감 중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곶감(준시/蹲柿) / 감 말리기 / 감 껍질과 삐제기 / 감따기
우리 고향 강릉지방(江陵地方)도 감이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일손이 모자라 겨울이 깊도록 하얀 눈 속에 따지 못한 감들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어 아쉬운데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곶감을 만들어 파는 것이 농가의 큰 소득원이 되기도 했었다.
곶감을 만드는 감은 아래위가 약간 납작한 감으로 ‘따배’라 불리던 감인데 둥그렇고 큰 고동선이나 대봉(大峯), 동철, 그리고 단감 등은 100개를 깎아 말려 한 접으로 묶는 곶감으로 만들지 못한다.
싸리가지에 꿰어 100개를 한 접으로 하는 옛날식 곶감은 차례상에 올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고모 네는 감나무가 무척 많았는데 가을이 되면 감 따는 사람을 품삯을 주고 사서 며칠씩이고 감을 따곤 했다. 엄청나게 큰 감나무에 높이 올라가 대나무 장대로 감을 따는 작업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감나무는 특히 목질(木質)이 약해서 잘 부러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가지가 부러지면서 떨어져 다치곤 했다.
감을 따는 장대는 끝을 둘로 쪼개어 감이 달린 가지를 꿰어 똑 분질러 따는데 감나무 가지에 몸을 지탱하고 무거운 장대로 종일토록 감을 따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망태에 감이 그득 차면 긴 줄로 아래로 내려 아래 있던 사람이 쏟아 놓으면 위에서 다시 끌어올려 가지에 걸쳐놓고 따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저녁이면 동네 아낙네들이나 처녀들이 감을 깎으러 칼과 광주리를 챙겨들고 모여들었는데 품삯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을 깎으면 나오는 감 껍질을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이 감 껍질은 말려두었다가 떡을 찔 때 넣기도 하고 겨울철 아이들의 군것질꺼리였다.
이따금 깨진 감이 나오면 곶감을 만들지 못하니 칼로 쭉쭉 납작하게 잘라서 감 껍질과 함께 말리는데 ‘감 삐제기(말랭이)’라고 했다. 감 주인은 껍질을 얇게 깎으라고 하고, 깎는 사람은 가져갈 욕심으로 두껍게 깎으려 하고, 곶감이 될 만한 감도 감 깎는 사람들은 사정없이 삐제기를 만들고.....ㅎㅎㅎ
시루에 쌀이나 여러 가지 잡곡을 가루로 내어 팥 대신 감 껍질 말린거나 고구마 얇게 썰어 말린 것을 켜켜로 넣고 쪄낸 시루떡을 강릉말로 ‘뭉셍이’라고 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는 강릉지방 고유의 떡으로 시내 떡집에는 유리창에 써 붙인 이름도 가지각색이었다. ‘뭉세이’, ‘뭉숭이’, ‘뭉셍이’, ‘뭉쉥이’....
사전에는 ‘뭉셍이’라 나와 있고 ‘여러 가지를 버무린다는 의미의 강릉지방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이따금씩 이 뭉쉥이를 쪄서 먹는데 칼로 모양을 내어 자르지 않고 그냥 뭉텅이로 뚝 떼어서 들고 다니며 먹었는데 감 껍질이나 고구마 말린 것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맛이다. 깎은 감을 곶감으로 만들려면 손이 여러 번 가야한다. 우선 산에서 맞춤한 싸리가지를 베어 와서는 가지를 다듬고 매끈하게 70cm 쯤 잘라서는 한쪽 끝을 뾰족하게 하여 깎은 감을 10개씩 꿴다.
이렇게 10개씩 싸리가지에 꿴 감 꽂이가 수백 개씩 되었고 말리는 것은 감을 꿰고 남은 양 옆의 싸리가지를 새끼줄에 꿰어서 처마 밑에 걸어 말리는데 흡사 기차 철로를 세워 걸어 놓은 형상이다.
감이 많은 집에서는 마당 귀퉁이에 기다란 나무 장대를 5~6m 높이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마치 오징어 덕장처럼 만들어서는 수백 개의 감 꽂이를 매달아서 초겨울까지 말렸다.
동네 장난꾸러기 형들은 이따금 곶감 서리를 나서는데 서너 명이 나서서 한 명은 망을 보고 한 명은 밑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는데 한 명이 까치발을 하고 낫으로 위의 양쪽 새끼줄을 자르면 두 팔 위로 주르르 곶감 꽂이가 쏟아진다.
감이 알맞게 말랐다 싶으면 감을 걷어다 사랑방에 쌓아 놓고는 남정네들은 본격적으로 곶감 접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선 싸리가지에 꿰인 곶감을 손으로 만져서 모양을 만들어야하는데 꿰인 부분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주물러서 각을 살려 일정한 모양을 만들고는 가운데로 모아 붙여 한쪽이 약간 납작하게 누르고는 양쪽에 삐죽이 남은 싸리가지를 칼로 모양을 내서 삦은 다음 똑 부러트리고는 세워서 나무망치로 톡톡 치면 예쁜 꽃모양으로 마감이 된다. 이렇게 10꽂이가 준비되면 방바닥에 5꽂이를 나란히 놓고 싸리가지를 한 개 가로로 그 위에 놓은 다음 다시 덮어서 5꽂이를 놓고 칡껍질로 가운데 부분을 단단히 묶어 내 놓으면 네모반듯한 감 한 접이 되는데 모양새가 너무도 예뻤다.
그런 다음 다시 감 껍질에 싸서 덮어두고 한 달쯤 지나면 감 표면에 먹음직스런 뽀얀 가루가 입히면서 시장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감 100개가 한 접인데 요즘은 그런 식으로 싸리가지에 꿰지 않으니 무게를 달아 팔기도 하고 낱개로 세어서 파는 모양이다.
감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감의 상태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양하다. 말랑말랑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홍시(紅柿)는 색깔이 빨갛다고 그렇게 부르지만 말랑말랑하다고 연시(軟柿)라고도 하며, 요즘처럼 싸리나무에 꿰지 않고 말려서 만든 곶감은 준시(蹲柿)라고 한다. 이 준시는 눌러서 조금 납작하게 만드는데 예전에는 주로 큰감(대봉)을 그렇게 준시로 만들었다.
예전에는 감이 조금 덜 익어서 떫은 감(땡감)도 따서 약한 소금물에 담가 떫은맛을 없애고 먹는 침감(침시/沈柿)도 흔했는데 요즘은 보기 어렵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담가서 아이들 주전부리로 삼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20여 년 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자금성(紫禁城) 관광을 했을 때 5월 중순이라 제법 더운데 길가 가판대에서 감을 팔고 있었다. ‘삥따쓰(氷大柿)’라고 외치는 모양이 ‘언 감’인 모양이었다. 빨갛게 익은 주먹만 한 큰 감인데 중국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양이 너무 먹음직스러워 나도 한 개 샀다.
덥석 베어 물려고 했는데.... 땡땡 얼어서 앞 이빨로 긁어 먹어야 했는데 얼마나 떫은지 입이 천근은 되는 것 같았다. 이런 돼지 같은 놈들 이걸 어떻게 먹는 담!!!
혓바닥으로 몇 번 핥다가는 길가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말았다. 아까와라 내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