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해변 라카이의 밤은 깊어라.
4월 둘째 주 토요일은 2014년 명전 20회 동창회의 날이라고 나는 해마다 연초 새 달력의 연중행사에 표시해 놓는 것이 낙이 되었다.
기다려지는 이 날이 올해는 4월 12일이다. 회장과 총무로부터 이번 동창회는 강원도의 명소인 경포해변을 끼고 자리 잡은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에서 한다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조금은 거리가 있지만 그래서 생경하게 오가는 여행길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약속의 날인 12일 둘째 토요일 오후 2시, 상주의 집에서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로 핸들을 돌렸다. 문경 이화령을 지나는 동안 주변의 산들은 연록색의 새 잎들과 개화한 연분홍의 산 벚꽃이 잘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들어 놓았다. 목적지인 강릉을 향해 차를 모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돌아보니, 20회의 동창회에 처음 초대 받았을 때가 명전을 떠난 지 35년 만인 2005년이었으니까 제자들과 행복한 봄 소풍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열 번째의 만남이니 벌써 10년이 이어져 45년의 긴 세월이 쌓였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45년, 그 동안 문경, 상주, 김천, 구미 등, 많은 학교를 거치면서 제자들을 만나고 보내면서도 이렇게 오랜 날을 마음 깊이 선생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처음 만날 때와 변함없이 계속해서 정을 나누는 제자들은 일찍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겐 명전학교의 선생님으로서 첫 발을 내딛은 것을 교직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주를 지나면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토요일이라 경인지역에서 오는 동해로 가는 차들로 인하여 지체가 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소통이 원활하였다. 북강릉의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5시 20분경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전 중에 일찍 도착한 친구들이 있어서인지 통화 중에 뒤에서 주고받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냥 기뻤다. 드디어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총무가 방금 보내준 따끈한 문자를 열어보니 2동 251호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251호의 문을 여니 일 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활짝 웃음을 띠고 다가왔다.
베란다 바로 앞으로 경포해변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이 멋진 장소를 예약하고 앞장서서 여러 모로 도와준 사람이 승난 친구였다는 회장의 말을 들으니 강릉에 사는 친구로서의 정감 넘치는 승난의 마음 씀이 더욱 고맙게 여겨졌다.
약속한 저녁 7시까지 멀리서 오는 친구들과 통화하며 기다리는 동안 지난 회포를 풀며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바빴다. 저녁 식사 장소는 15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어화횟집’으로 강릉에서는 규모가 큰 맛집으로 통한다 했다.
친구들과 같이 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길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주차장을 지나 해변 솔밭이 보이는 쪽문을 나서니 오른쪽으로 둘레가 십 여리 넘는 경포호수가 활짝 핀 벚나무에 둘러 싸여 있고 왼쪽으로는 해송이 우거진 경포해변을 끼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해송 사이로 올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는데 승난이 말로는 속칭 ‘바우길’로 불린다고 한다. ‘강원도 감자바우’ 라니 어쩌면 이름도 그럴 듯하다. 걸어가는 동안 어두워진 해변의 풍경은 각종 유혹하는 업소들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이곳이 관광지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길이었다.
‘어화횟집’에서 김오현 전 회장에게 동창회원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공로패를 내가 직접 전달하였다. 초대 정해락 회장 때도 내가 전달하였는데 선생님을 배려한 제자들의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온다.
다양한 종류의 회로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회장과 총무의 수고로 잘 준비된 회칙의 수정과 알뜰한 결산보고가 있었다. 참여한 모든 친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한 마음으로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을 생각하는 의견들이 많아 역시 정이 깊은 친구들임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원근을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참여하는 친구들의 동창회를 향한 애정 또한 놀랍기만 하다.
‘경포에 뜬 다섯 달’ 이라는 서승달 회장의 깜짝 이야기를 경포에 와서 직접 들으니 그 느낌이 새로웠다. 첫째 하늘에 뜬 달, 둘째 바다에 뜬 달, 셋째 경포호수에 뜬 달, 넷째 술잔 속에 뜬 달, 마지막 다섯째는 ? 로 남겨 두기로 하자. 누군가 잘도 옛 이야기를 발전시켰다는 생각이다.
뭐니 뭐니 해도 2부로 이어지는 노래와 춤이 동창회의 백미가 아니던가?
노래방이냐 클럽이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카리스마 클럽’으로 낙착되었다.
클럽에서 횟집으로 귀빈(?)을 모시러 왔다. 클럽에 들어서 자리에 앉으니 얼굴을 겨우 분간할 수 있는 어두운 불빛, 귀에 익숙한 트로트로 귀청을 울리는 음악, 번쩍 번쩍이는 조명이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돌아가며 술 한 잔에 건배를 외치고 무대 앞으로 모두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와 친구들이 둥글게 팀을 이루고 흐르는 음악에 맞춰 우리들만의 우정과 즐거움으로 신나는 막춤에 빠졌다. 언제 어느 때 우리들이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이런 춤을 출 일이, 친구 아니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마음에 공감이 간다. 한 스테이지가 끝나고 막간에 20회 동창회를 축하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전광판에 20회 친구들의 얼굴들과 명전 20회 동창 모임을 축하한다는 멘트가 마이크 울림으로 장내에 가득 찼다. 우리 자리에서는 불꽃 미니 축포가 타 들어가고 친구들 모두 축배를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본격적인 3부가 시작되었다.
강릉의 명물인 문어숙회와 곁들인 잘 익은 배추김치와 홍어무침, 가오리무침, 특산인 기정 떡, 우리들 고향의 맛인 엄나무 새순의 쌉싸름한 개두릅 맛도 일품이었다. 친구들의 즐거움이라면 이 한 몸 불 태우리라! 는 마음으로 그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승난의 원맨 쇼 공연으로 잠깐이나마 친구들의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지. 술잔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사이 벌써 시계는 밤 1시를 쉽게 지나고 있었다. 술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거봉과 방울토마토, 음료수를 마셨다.
나는 거실을 떠나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수런거리는 소리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에 2시가 넘어 상철이와 명순이가 경포해변에 나가 밤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렸는데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정말 아름다웠다고 자랑을 했다. 즐거워하는 그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아침은 부지런한 정자가 준비한 컵라면을 먹고, 남은 국물에 따끈한 백반을 말아서 익은 배추김치와 같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앉아 다들 맛있게 먹었다. 해장을 하자하는 중권이의 권유에 귀한 아침술을 한 잔 마셨다.
간단한 식사 후 아침 산책으로 경포호수를 돌아보기로 하고 친구들과 경포호로 나섰다. 호수 주변에 마침 4인용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세 대를 빌려 친구들과 나눠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타다 보니 1호차는 승달이와 세 여자, 2호차는 나와 세 여자, 3호차는 상철이와 세 여자, 미리 정한 것이 아닌데도 용케 딱 인원이 맞아 떨어졌다. 지나는 길에 가끔 새벽운동으로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수 둘레 군데군데 적당한 거리에 쉼터가 있었다. 처음 쉼터는 포토 존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호수를 뒤로 사진을 찍는데 아침 안개로 배경이 잘 나오지는 않아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동안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재미를 더하였다. 자전거 패달을 함께 밟으면서 헛바퀴를 돌릴 때면 계속 깔깔거렸다. 이 아침에 강릉 경포호수 둘레길을 나와 제자들이 자전거를 같이 밟으며 달릴 거라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마냥 감격스러웠다. 그냥 오롯이 소중한 시간이요, 훗날 가슴 속에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로 영원히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 기념탑과 독립 운동가들의 흉상이 서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내려 잠시 쉬며 운동도 하였다. 그냥 가볍게 운동 삼아 시작한 자전거 타기가 한 바퀴를 다 돌고 오니 제대로 아침운동을 한 것 같다. 친구들 모두 대만족이었다.
조금은 불안하던 날씨가 기우라는 듯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밝아져서 기분이 좋았다. 호수를 뒤로 하고 경포해변으로 갔다. 삽상한 바닷바람이 싫지 않게 적당히 불어준다. 친구들은 어묵과 국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포장마차 주인이 우리 일행을 보고 노래를 높게 틀어 주었다. 멋들어진 친구 정숙이, 명순이의 신바람 끼가 그냥 있을 리 없었다. 지나가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미소를 지으며 간다. 친구들이 해변을 배경으로 서로 서로 우리들의 추억이 될 기념사진을 찍었다.
11시경 라카이 숙소를 나와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점심은 유명하다는 ‘초당생선찜’으로 하였다. 바다낚시를 갔던 인용이, 중권이 일행도 다들 돌아와 합류했다. 어젯밤에 목을 못 풀었는지 정숙이, 명순이의 생음악이 멋들어지게 나온다. 아무래도 정숙이의 ‘진또배기’나 명순이의 ‘안동역에서’의 리사이틀은 내년으로 아쉽지만 기약해야겠다. 갈치, 도루묵, 명태, 가오리 등 여러 가지 종류에다 감자와 갖은 양념을 넣고 만든 생선찜을 처음 먹어 보았다. 별미였다. 고기 종류별로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마당에서 모든 친구들이 함께 모여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전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들에겐 소중한 시간이었고 마음으로 정말 즐거웠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내년에 또 소선암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담아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한 후 20회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상주로 돌아왔다.
이번 행사를 유의미하게 기획하느라 애쓴 회장 승달, 총무 상철, 아침 일찍 일이 있어 먼저 출발한 인수, 집의 중요한 일을 두고도 참석한 명필이, 아낌없이 협조한 승난, 용옥, 명순, 옥희, 오현, 정숙, 중권, 명자, 인용, 멀리서 온 선태, 정옥이, 천수, 해락, 미주, 정자, 헌태 친구들과 함께 한 2014년 강릉 경포의 만남을 우리들의 이야기에 선생님은 자랑스럽게 남긴다.
끝으로 선생님은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을 읽으며 아쉬움을 같이 한다.
명전 20회 모든 동창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아 참, 선물로 챙겨준 문어, 돌아온 저녁 맛있게 먹으며 덕분에 점수를 많이 땄다.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밤에 상주에서 박철윤 선생님.
첫댓글 선생님! 먼길 다녀 가시느라 수고 많으 셨읍니다 모두에 만남은 축복이요 행복이였읍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내년에 또 만나길 소망합니다
따꽁, 일찍도 들어왔네. 이번 친구들을 위해 정말 수고가 많았다. 선생님도 고맙고 한편 기쁘게 생각한다.
너의 말처럼 20회 옛 고향 친구들의 만남은 우리들의 인생에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에 동감이다.
너도 하는 사업이 번창하고 가정에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이어지길 바란다. 항상 건강하렴.
선생님 1박2일의 소풍이 긴 장문으로 기쁘고 행복 하심이 눈에 선하게 느껴집니다.
저 역시 덩달아 흐믓함에 빙그레 행복의 미소를 지어봅니다.
행복을 즐겁게 한 명초교 20회 모든 친구들이 부처요 예수님 입니다 -품 바-
품바씨, 해마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에 명초교 20회 제자들과 함께하는 봄소풍은
정말 나에겐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이번 소풍의 여정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명전초 기별로 동창회가 활성화 되어 선 후배의 좋은 만남이 많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품바씨, 항상 즐겁고 활기찬 나날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20회 정기모임을 상세하게도 쓰셨네요. 참석치 못한 친구들이 선생님의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마치 동창회에 참석한 것처럼 어디가서 말해도 참석한 줄 알겠습니다. 즐거운 나들이가 되셨다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향의 정든 자리를 떠나 타향에서 모임을 갖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불만도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조금 떠나와서 모임을 가져보니 저역시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컸습니다. 두번의 외유끝에 내년엔 고향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지만 또 이런 즐거운 나들이겸 뜻깊은 만남을 기획 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정상 늘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늘 있어서 그 점이 많이 아쉽네요.
함지박귀, 동창회장으로서 앞장서 일을 추진하다보면 모든 회원이 만족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의 외유를 했지만 그 뜻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여긴다. 총회에서 회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고 장단점을 허심탄회하게 나눈 뒤 결정한 내년의 고향에서의 모임은 시간과 거리의 여건상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담겨 있으니 좋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선생님도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이 동창회의 여정을 간략하게나마 글을 통해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금 욕심(?)을 부려 자세히 쓴 것을 이해해주니 기쁘다. 내년 고향 모임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반가운 얼굴들을 보여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