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럴 나이가 아니데!!!]
햇살이 한낮의 기온을 누그러트린다. 텃밭에서 몇 시간 정리를 하고 온 뒤라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직 저녁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다. 친구 부부가 해수욕장에 바람 쐴 겸 소나무 그늘아래 산책을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내와 함께 만나기로 하여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주차장은 혼잡하여 입구부터 길게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두어 바퀴를 돌면서 주차할 곳을 찾다가 친구를 만난다는 기분에 주택가 작은 공간에 서둘러 자동차를 두고 해수욕장부근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수대를 거쳐 시계탑을 지나 수로를 따라 걸으면서 소나무 숲 아래에 있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니 반대편 자락에 있었다. 종종 걸음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멀리서 손을 흔들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해수욕장 가까이 살면서도 소나무 숲 아래에 자리를 깔고 쉬어 본 적은 없다. 바닷바람이 가볍게 불어오는 가운데 시원함을 절로 느낀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뉘엿뉘엿 사라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 본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주꾸미 볶음으로 두 가족이 맛있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반찬과 함께 푸짐한 반찬이 식탁을 가득 차지해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다. 불맛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가로등 불빛이 분위기를 더하는 동편 바닷가 카페를 찾았다. 군데군데 먼저 자리한 사람들로 밤바다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없어 귀퉁이에 남아 있는 자리를 잡았다. 커피, 녹차, 빵 각자의 취향에 따라 주문한 것을 먹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어느덧 저녁 10시가 되어간다. 아쉬운 마음에 밤바다 산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인사를 건넨 후 각자의 차로 발걸음 옮겼다. 큰 도로를 건너 주차한 곳 가까이 다가가는데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비치는 느낌이 들어 간판에 반사된 것인가 하고 자동차에 와보니 아이구! 차 시동을 꺼지 않아 몇 시간 동안이나 공회전 중이었다. 친구를 만난다는 반가운 마음에 엔진을 끄지도 않고 그냥 간 것이다. 아니 주차 후 잠금장치 확인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는 것인가. 연료 표시등에 주유 경고등이 켜져 있다. 애당초 주행가능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자동차 안은 정차 상태에서 긴 시간 공회전이 되어서인지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진다.
혼란스럽다. 인지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직까지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 일상에서 깜빡 잊어버린 일이 생겨났다. 오래전 지니고 있던 지갑을 한 번 잃어버린 적은 있다. 오늘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장시간의 공회전이 엔진 과열로 인하여 큰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나.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다.
누구에게나 실수는 있다. 순간적으로 깜빡 잊고 지나치는 경우도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이처럼 실수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점검해 볼 사항이다. 살아가면서 오히려 잊고 지내야 할 경우도 있다. 모든 기억을 안고 산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될 테니 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보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까지 행해왔던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소홀하기 쉬운 부분, 평상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 등 어쩌면 오늘의 황당한 일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예전의 기억들에 자만하여 행동에 신중하지 못함을 만든 건 아닐까. ‘내가 아직 이럴 나이는 아닌데’ 스스로 행동을 차분히 하고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