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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5권
22. 발취분(1)
22.1. 개관
세 번째 발취분發趣分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의를 전체적으로 나타냈고, 둘째는 각각 분별하였다.
22.1.1. 대의
[논]
도에 발심하여 나아가는 상을 분별한다는 것은 모든 부처가 증득한 도에 모든 보살이 발심하고, 수행하여 나아가는 뜻을 말하기 때문이다.
[소]
처음에 “모든 부처가 증득한 도”라고 한 것은 나아갈 바의 도를 든 것이며,
“모든 보살이” 이하는 나아가는 행을 나타낸 것이니,
보살이 부처가 증득한 도에 발심하여 나아감을 밝히려고 하기 때문에 “도에 발심하여 나아가는 상을 분별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22.1.2. 발심의 세 가지
이 아래는 두 번째로 각각 분별한 것이니, 이 중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를 들어 장章을 여는 것이고,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름에 의하여 상을 분별하는 것이다.
[논]
간략히 발심發心을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요,
둘째는 해행발심解行發心이요,
셋째는 증발심證發心이다.
[소]
처음 글은 알 수 있을 것이다.
1) 신성취발심
두 번째 중에 “신성취발심”이라고 한 것은 지위가 십주十住에 있으며 겸하여 십신十信을 취하니,
십신의 지위에서 신심信心을 닦아 익혀서 신심이 성취되어 결정심決定心을 일으켜 곧 십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성취발심’이라고 한다.
2) 해행발심
“해행발심”이란 십회향十廻向의 지위에 있으며 겸하여 십행十行을 취하니,
십행의 지위에서 법공法空을 잘 알고 법계를 수순하여 육도행六度行을 닦아서 육도행이 순결해지고 성숙하여 회향심을 일으켜 회향의 지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해행발심이라고 한다.
3) 증발심
“증발심”이란 초지 이상에서 십지까지의 지위에 있으니,
앞서 두 가지의 상사相似한 발심에 의하여 법신을 증득하여 진심眞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상을 분별하는 것이다.
글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앞의 차례대로 세 가지의 마음을 말한다.
22.2. 신성취발심
22.2.1. 처음 발심한 것의 세 가지
처음 발심한 것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믿음을 성취시키는 행실을 밝혔고,
둘째는 행위가 이루어져 발심한 상을 나타냈으며,
셋째는 발심하여 얻게 된 공덕을 찬탄하였다.
22.2.2. 믿음을 성취시키는 행실
1) 본문의 해석
[논]
신성취발심이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어떤 행실을 닦아서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른바 부정취중생不定聚衆生에 의하여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으므로 업의 과보를 믿고 십선十善을 일으키며,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고자 하며,
여러 부처를 만나 직접 받들어 공양하고 신심信心을 수행한다.
이리하여 일만 겁을 지나서 신심이 성취되는 것이니,
모든 부처와 보살이 가르쳐서 발심하게 하거나,
대비에 의하여 스스로 발심하게 하거나,
정법正法이 없어지려 함에 의해서 호법護法의 인연으로 스스로 발심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심이 성취되어 발심하게 된 사람은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 끝내 퇴전하지 아니하니, 이를 여래종如來種에 머물러 정인正因과 상응한다고 한다.
만약 어떤 중생이 선근이 미소하여 아득히 먼 옛날부터 번뇌가 매우 두텁다면 비록 부처를 만나 공양하게 되더라도 인천人天의 종자를 일으키고, 혹은 이승二乘의 종자를 일으킨다.
설사 대승을 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근기根機가 결정되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나며,
혹 여러 부처에게 공양함이 있더라도 아직 일만 겁을 지나지 아니하여 중도에 연을 만나 또한 발심함이 있다.
이른바 부처의 색상色相을 보고 그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여러 스님에게 공양함에 의하여 그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이승인의 가르침에 의하여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 마음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발심들은 모두 결정되지 아니한 것이니, 나쁜 인연을 만나면 혹 퇴실하여 이승의 지위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소]
처음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뒤에는 답하였다.
물음에 “어떤 사람에 의하여”라고 한 것은 닦는 사람을 물은 것이요,
“어떤 행실을 닦아서”라고 한 것은 닦아야 할 행위를 물은 것이며,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을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것은 발심의 결과에 대하여 그 행위의 이루어짐을 물은 것이다.
답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묻는 바에 바로 답한 것이고,
둘째는 열악한 자를 들어 수승한 자를 나타낸 것이다.
바로 답한 것 안에 앞서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것이 있다.
처음에 “부정취중생에 의하여”라고 한 것은 처음 물음에 답한 것이니, 닦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삼취三聚)를 분별한다면 여기에 여러 문門이 있지만, 이제 이 글 중에서는 다만 보살의 십해十解 이상의 결정불퇴決定不退를 정정취正定聚라 하고,
아직 십신十信에 들어가지 아니하여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을 사정취邪定聚라 하며,
이 둘의 중간에 도에 나아가는 사람이 발심하여 무상보리를 구하려고 하지만 마음이 아직 결정되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서는 것을 십신이라 하고 부정취不定聚라 함을 밝힌 것이다.
이제 이 사람에 의하여 닦아야 할 행위를 밝힌다.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으므로” 이하는 그다음에 두 번째 물음에 답한 것이니,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닦아야 할 행위를 밝힌 것이다.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으므로’라고 한 것은 여래장 내의 훈습력에 의하고 또한 전세前世의 선근을 닦은 힘에 의하므로 이제 신심信心을 닦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며,
“업의 과보를 믿고 십선을 일으키며”라고 한 것은 복분福分의 선을 일으키는 것이다.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무상도(무상보리)를 구하고자 하며”라는 것은 도분道分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여러 부처를 만나……신심을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닦아야 할 도분의 선근을 밝힌 것이니, 이른바 열 가지 신심을 닦는 것이며,
이것의 갖추어진 모양은 『일도장一道章』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일만 겁을 지나서” 이하는 세 번째 물음에 답한 것이니, 신심이 성취되는 모양을 밝힌 것이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기를 들어서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하는 연을 밝혔고,
두 번째는 취聚를 기준으로 하여 발심해서 머무는 지위를 나타냈다.
처음 중에 “일만 겁을 지나서 신심이 성취되는 것이니”라고 한 것은 십신에서 십천 겁을 지나 신심이 성취되면 곧 십주十住에 들어감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본업경本業經』에서,
“이 신상보살信想菩薩이 십천 겁에 십계법十戒法을 행하면 응당 십주심十住心에 들어서 초주의 지위에 들어간다.”라고 한 말과 같다.
이를 풀이하면 이 중에서 들어가는 초주의 지위란 십주에서 처음 발심하여 머무는 지위(初發心住位)를 말하는 것이니, 이 지위라야 비로소 신심이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또한 믿어서 십심十心에 들어간다고 이름하는 것이지, 십해 이전의 십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그것이 그러함을 알게 되는가?
이는 『인왕경』에서,
“습종성習種性에 십심이 있으니, 이미 이승二乘의 일체 선지善地를 초월하였으며,”
“이 습인習忍 이전에 십선十善을 행하는 보살은 물러남도 있고 나아감도 있어 마치 가벼운 털이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갔다가 하는 것과 같다.
비록 십천 겁에 십정도十正道를 행하지만 보리심을 발하여야 이에 마땅히 습인위習忍位에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이 글로 증명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경에서 ‘십천’이라 한 것은 곧 여기서 “일만”이다.
“부처와 보살이 가르쳐서 발심하게 하거나”라고 한 것은 발심의 연이 많이 있으나 여기서는 대략 세 가지 수승한 연만을 낸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하는 그 발심이 머무는 지위를 나타낸 것이고,
“신심이 성취되어……정정취에 들어가”라고 한 것은 곧 십해의 초발심주에 들어간 것이므로 “끝내 퇴전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하였으며,
이때 바로 습종성의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여래종에 머물러”라고 하였고,
그 닦는 행위가 불성佛性을 수순하기 때문에 또한 “정인과 상응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위에서부터 앞서의 세 가지 물음에 바로 답하여 마쳤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이하는 열악한 자를 들어 수승한 자를 나타냈다.
십신의 자리 안에는 수승한 자도 있고 열악한 자도 있으니,
수승한 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십주에 진입하고 열악한 자는 여기서와 같이 이승의 지위에 물러나 떨어진다.
이는 『섭대승론』에서,
“모든 보살이 십신의 자리에서는 대승을 닦음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여 흔히 생사를 두려워하며,
중생을 자비하는 마음이 아직도 엷어서 대승의 본원本願을 버리고 소승도小乘道를 닦기를 즐겨하므로 소승을 수행하려 한다고 말한다.”라 한 것과 같다.
대의가 이와 같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믿음을 성취시키는 행실을 밝혔다.
2) 신성취발심의 마음의 세 가지
[논]
다음에 신성취발심이란 어떠한 마음을 발하는 것인가?
간략히 말하자면 세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직심直心이니 진여법을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심심深心이니 일체의 모든 선행을 이루기 좋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대비심大悲心이니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3) 수행을 배우는 까닭
[문]
위에서 “법계法界는 하나인 모습이며 불체佛體는 둘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오직 진여만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모든 선행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가?
[답]
비유컨대 큰 마니보摩尼寶가 그 체성體性은 맑고 깨끗하지만 거친 광석의 때를 가지고 있어,
만약 사람이 마니보의 깨끗한 본성을 생각하면서도 방편으로써 갖가지로 갈고 다듬지 않으면 끝내 깨끗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의 진여의 법도 그 체성이 텅 비고 깨끗하나 한량없는 번뇌의 더러운 때가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진여를 생각하지만 방편으로써 갖가지로 훈습하여 닦지 않으면 또한 깨끗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때가 한량이 없어 모든 법에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선행을 닦아서 대치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모든 선법을 수행하면 절로 진여법에 귀순하기 때문이다.
4) 방편의 네 가지
간략히 방편을 설명하자면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⓵ 행근본방편
첫째는 행근본방편行根本方便이다.
모든 법은 자성自性이 생김이 없음을 보고 망견妄見을 여의어 생사에 머물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업과業果를 잃지 아니함을 보고 대비를 일으켜 여러 복덕福德을 닦아 중생을 섭화攝化하여 열반에 머물지 아니함을 말하니,
이는 법성의 주착住着함이 없음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⓶ 능지방편
둘째는 능지방편能止方便이다.
자기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모든 악법을 그치게 하여 증장하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법성의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⓷ 선근을 일으켜 증장시키는 방편
셋째는 선근을 일으켜 증장시키는 방편(發起善根增長方便)이다.
삼보三寶에 부지런히 공양하고 예배하며, 모든 부처를 찬탄하고 따라 기뻐하며 권청하여 이와 같이 삼보를 애경하는 순후淳厚한 마음 때문에 믿음이 증장되어 무상의 도를 구하는 데 뜻을 두며,
또 불佛ㆍ법法ㆍ승僧의 힘으로 보호됨에 의하여 업장業障을 녹이고 선근이 퇴전하지 않음을 말하니,
이는 법성의 치장癡障을 여의는 것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⓸ 대원평등방편
넷째는 대원평등방편大願平等方便이다.
미래에 다하도록 모든 중생을 교화ㆍ제도하여 남음이 없게 하여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이루도록 발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법성의 단절됨이 없음을 수순하기 때문이며,
법성이 광대하여 모든 중생에 두루하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피차彼此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끝내 적멸하기 때문이다.
22.2.2. 행위가 이루어져 발심한 상
[소]
두 번째는 발심하는 상을 나타냈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로 밝혔고, 둘째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하였다.
1) 직심
처음에 “직심”이라고 한 것은 굽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약 진여를 생각하면 곧 마음이 평등하게 되어 다시 다른 갈래가 없을 것이니, 무슨 어그러지거나 굽어짐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여법을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라 말하였으니, 이는 곧 이행二行의 근본인 것이다.
2) 심심
“심심”이라고 한 것은 근원을 궁구한다는 뜻이다.
만약 하나의 선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근원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
근원에 돌아가는 것을 이루려면 반드시 만행萬行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선행을 이루기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며, 이는 곧 자리행自利行의 근본이다.
3) 대비심
“대비심”이란 널리 제도한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기 때문”이라 말하였으며, 이는 곧 이타행利他行의 근본이다.
이 세 마음을 내면,
어떤 악이든 여의지 않음이 없고,
어떤 선이든 닦지 않음이 없으며,
한 중생도 제도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를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이라 한다.
“문” 이하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묻는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대답하는 것과, 거듭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 바로 대답하는 것 중에 실례와 적용이 있다.
“간략히 (방편을) 설명하자면” 이하는 거듭 나타내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22.2.4. 발심하여 얻는 공덕
[논]
보살이 이 마음을 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 되며,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願力에 따라서 여덟 가지로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도솔천兜率天으로부터 나와서, 모태母胎에 들어가고, 모태에 머물고, 모태에서 나와서, 출가하여, 성도成道하고, 법륜을 굴리며, 열반에 듦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과거 한량없는 때로부터 유루有漏의 업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그 태어나는 바에 따라 미세한 고통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업의 계박이 아닌 것이니, 대원大願에 의하여 자재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다라에서 “혹 악취惡趣에 물러나 떨어짐이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은 실제로 물러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만 초학보살初學菩薩로서 아직 정위正位에 들지 못하고 게으름 피우는 자를 위하여 두려워하게 하여 저로 하여금 용맹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 보살이 한 번 발심한 후에는 겁약한 마음을 멀리 여의어 이승의 지위에 떨어짐을 끝내 두려워하지 않으며,
가령 무량무변한 아승기겁阿僧祇劫에 어려운 행실을 부지런히 애써야만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겁내어 좌절하지 않는 것이니,
일체법이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임을 믿어 알기 때문이다.
[소]
세 번째는 그 발심의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수승한 덕을 나타냈고,
다음은 미세한 허물을 밝혔으며,
세 번째는 권교權敎를 회통會通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실행을 찬탄하였다.
1) 수승한 덕
처음의 두 구절에서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 되며”라는 것은 자리自利의 공덕을 밝힌 것이니, 십해 보살이 인공문人空門에 의하여 법계를 보는 것이며,
이는 상사견相似見이므로 ‘조금(少分)’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원력에 따라서” 이하는 이타利他의 덕을 나타낸다.
“여덟 가지로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는,
『화엄경』에서 십주 처음의 발심주發心住를 찬탄하여 말하기를,
“이 발심보살이 여래의 ‘일신一身이면서 무량신無量身’을 얻어 모두 일체의 세간에 성불하게 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2) 미세한 허물
“그러나 이 (보살을)” 이하는 미세한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3) 권교를 회통함
“수다라에서” 이하는 세 번째 권교를 회통한 것이다.
이는 『본업경』에서,
“칠주七住 이전은 퇴분退分이 되므로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에 1겁 내지 10겁에 보리심이 퇴전하는 것이니,
정목천자淨目天子와 법재왕자法才王子와 사리불舍利弗 등이 제7주에 들고자 하다가 그 사이에 악지식ㆍ악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범부의 불선한 악 중에 들어간 것과 같으며”라고 하며, 이어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으니,
여기서 이 뜻이 단지 권어權語일 뿐 실제로 퇴전함이 아님을 풀이한 것이다.
4) 실행을 찬탄함
“또 이 보살이” 이하는 네 번째 그 실행을 찬탄한 것이다.
영구히 겁약함이 없게 되니, 이는 곧 저 경(『본업경』)이 방편의 가르침일 뿐 실제의 가르침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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