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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7권[1]
[협산 화상] 夾山
화정花亭의 법을 이었고, 예주澧州에서 살았다. 휘諱는 선회善會요, 성은 요廖씨이며, 한광漢廣의 현정峴亭 사람이다. 용아산에서 수업을 하다가 나이가 되어 형문荊門에서 계를 받았다. 나중에 경론을 통달하니, 사람들은 학식의 바다라 일컬었고, 총명과 변재는 천품으로 타고났다. 처음에는 서울 어귀에서 법을 펴다가 나중에 도오道吾의 지시에 따라 화정花亭에게 참문하여 현묘한 관문에 계합하고, 바로 협산夾山 기슭에 몸을 의지했다.
선사가 어느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부처와 법과 조사가 있은 뒤로부터 사람들은 잘못 알아서 부처와 조사와 법의 테두리에서 대대로 이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모름지기 부처와 조사와 법 구절의 뜻을 따라서 그대들 스승의 말씀으로 삼아야 한다 말하니, 이로 인해 천하에는 눈 없는 미친 사람이 생겨나 도리어 무지를 이룬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법이 없음이 본래 도이어서 생각에 붙일 어떠한 법도 없어서 이룰 부처도 없고 닦을 도도 없으며 버릴 법도 없다.
그런 까닭에 말하기를,
‘눈앞에 법이 없다 함은 뜻이 눈앞에 있음이다’고 하니,
이는 눈앞의 법이 아니며, 귀와 눈으로 미칠 바도 아닌 것이다.
3승 12분교는 노승의 방석이요, 조사의 현묘한 뜻은 낡은 짚신짝이니, 차라리 맨발로 다닐지언정 신지 않는 것이 훨씬 나으며, 눈으로 구담瞿曇을 보아도 가랑잎같이 여겨야 한다. 그대들이 만일 부처의 편에 서서 법을 들추어내면 그 사람은 안목이 없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모두가 의지해 있는 법에 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사는 본래 아득하니 법에만 의지하면 자유로운 성품을 알지 못한다. 저들이 천 리 길을 떠나 선지식을 구한다 하지만 안목眼目이 있어야 허망하고 잘못된 소견에서 벗어나 미혹된 법에 빠지지 않아 통달하리라. 후인들은 눈앞의 생사를 한마디로 결정지으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이 있는가, 없는가? 누군가가 확정지을 수 있다면 노승은 그를 인정하리라. 그러므로 노승이 ‘천 길 물속에 실을 드리움은 그 뜻이 깊은 못에 있다’고 한 것이니, 확정짓는 말은 모든 계제를 포괄하는 듯하나 돌아볼 것이 없고, 혀끝은 현묘한 듯하지만 참구할 것은 못 된다.”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햇빛이 눈에 가득하니, 만 리에 조각구름도 걸리지 않느니라.”
“학인學人이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맑은 못물 속에 노는 고기가 스스로 미혹하느니라.”
어떤 대덕이 발심하여 행각行脚을 떠나 선백마先白馬에게 이르러서 물었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한 먼지 속에 끝없는 법계를 머금는다’ 했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백마가 대답했다.
“새의 두 날개 같고, 수레의 두 바퀴 같으니라.”
좌주座主가 말하였다.
“선종에는 달리 기특한 일이 있으리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경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본사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선사가 출세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사미沙彌를 시켜 선사에게 앞의 질문을 하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자갈을 쪼는 이에게는 옥을 새기는 이야기가 없고, 풀을 묶는 이에게는 도인의 생각이 없다.”
사미沙彌가 돌아가서 이 일을 전하니, 그는 멀리 협산夾山을 향해 절을 하면서 칭찬했다.
“선종과 교종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여겼는데, 분명히 다른 점이 있도다. 협산夾山 같은 이가 없구나.”
후생後生 불일佛日이 와서 화상을 뵙고자 하니, 유나維那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불일이 말했다.
“나는 잠시 화상께 인사만 하려는 것이요, 머물지는 않겠소.”
유나가 이 뜻을 화상에게 전했다.
“지금 어떤 젊은 스님이 와서 ‘잠시 화상께 인사만 드리되 머물지는 않겠다’ 합니다.”
이에 선사가 만나 보기를 허락하니, 불일이 법당 층계 밑에서 막 오르려는데,
선사가 물었다.
“세 가닥의 보배 층계에서 사리闍梨는 어디로 올라왔는가?”
“세 가닥의 보배 층계는 도리에 맞지 않게 지금을 위한 것입니다. 향상하는 외길을 스님께서 속히 일러 주십시오, 속히 일러 주십시오.”
그리고는 얼른 층계를 올라와서 절을 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천태 국청사國淸寺에서 왔습니다.”
“듣건대 천태에는 푸르디푸른 물이 있고, 초록의 파도가 있다는데, 그대 멀리서 온 것을 감사한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오랫동안 바위굴에서 살면서도 우거진 다래 넝쿨을 걸치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봄의 소식이다. 가을 소식은 어떠한가?”
불일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보아 하니 겨우 배나 끄는 놈일 뿐, 끝내 물살을 일으키는 사람은 못 되는구나.”
복선福先이 그를 대신해서 말했다.
“서늘한 바람이 낙엽에 불어오니, 높고 낮은 골짜기에 마음대로 뒹군다.”
붕지鳳池가 이 일을 들어 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답하여야 배나 끄는 놈이란 비난을 면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께서 출세하시면 헤아려 보겠습니다.”
“출세했다면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스스로 대신 말했다.
“미리 긁고서 가렵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그리고는 또 대신 물었다.
“만일 이르렀다면 말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선사가 또 물었다.
“누구와 도반을 맺었는가?”
“목木 상좌입니다.”
“어디 있는가?”
“승당僧當에 있습니다.”
“불러오너라.”
불일이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주장자를 갖다가 선사의 앞에 던지니, 선사가 말했다.
“천태산에서 구한 것인가?”
“오악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수미산 꼭대기에서 얻은 것인가?”
“월궁에서도 만난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로다.”
“자기 자신도 원수인데 남에게 얻은 것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꺼진 재에서 콩이 튀는구나.”
그리고는 유나維那를 불러 등불 밝은 곳에 앉히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나서 또 물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불일佛日입니다.”
“해는 어디에 있는가?”
“협산夾山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한 구절도 초월超越하지 못한 것이다.”
한번은 선사가 대중에게 김을 매게 하였다. 그때 불일이 차를 잔에 따라서 선사에게 드리니, 선사가 차를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불일이 물었다.
“차 두세 잔을 공손히 올림은 그 뜻이 호미 끝에 있습니다. 속히 말해 주십시오, 속히 말해 주십시오.”
선사가 물었다.
“병에는 주발의 뜻이 있다. 광주리 안에는 몇 개의 주발이 있는가?”
“병은 차를 따를 뜻이 있지만, 광주리 안에는 주발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손에 야명부夜明符를 들고 있으니, 끝내 날이 밝는지를 모르느니라.”
나羅 수재秀才가 선사에게 물었다.
“화상께 파제破題를 청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용龍에게 용의 체구가 없으니, 본래 형태를 범하지 말라.”
수재가 다시 물었다.
“용에게 용의 체구가 없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노승이라고 하지 말라.”
“본래의 형체를 범하지 말라 함은 무엇입니까?”
“경지境地라고 말하지 말라.”
“어떤 것이 협산夾山의 경지입니까?”
“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간 뒤 새가 꽃을 물고 청록의 절벽 앞에다 떨어뜨린다.”
어떤 좌주座主가 나서서 물었다.
“3교敎를 환하게 밝힌 이라면 이 이치도 통달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야명주夜明珠가 아무리 밝아도 새벽빛만은 못하니라.”
“등각等覺과 묘각妙覺 두 경지에 이른 이도 이 이치를 통달합니까?”
“금계金鷄와 옥토끼는 어부의 손에 잡히지 않느니라.”
“그 뜻은 어떠합니까?”
“구절 가운데에는 법이 없으니 그 뜻으로 사람을 제도할 수 없느니라.”
“걸음마다 연꽃을 밟아도 역시 지금을 오르내리니, 상투[螺髻]를 틀어 올려 향상向上하는 구절을 스님께서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무쇠 소는 소리를 내지 않으니 들을 필요가 없다.”
선사가 운개雲蓋에게 물었다.
“근래에 어디로부터 떠나왔는가?”
“낭주朗州를 떠나왔습니다.”
“여기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길이 없다면 어째서 여기에 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선사가 그를 인정하였다.
선사가 법지法志에게 물었다.
“요즘 어디를 떠나왔는가?”
“최근 낭주에서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는가?”
“화상의 자취를 더듬으려 왔습니다.”
“노승이 걸음을 옮기지 않았거늘 그대는 어디서 내 자취를 찾는다 하는가?”
법지가 꾸짖으며 말했다.
“쯧쯧, 뿌리가 없는 사람이로군요.”
이에 선사가 응수했다.
“아직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느니라.”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하는 것이, 어찌 굴복하지 않은 것이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무심코 웃었다.
선사가 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신풍新豊에서 왔습니다.”
“그 지방에는 누가 선지식이던가?”
“윗글자는 양良, 아랫글자는 개价입니다.”
“알겠는데, 어떤 불법 인연因緣이 있었는지 말해 보아라.”
그 스님이 다음과 같이 전했다.
“화상께서 설법하시기를,
‘새의 길을 가려면 모름지기 발밑에 실오라기가 하나도 없어야 하고, 현묘한 배움을 이루려면 손을 펴고 배워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선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그 스님이 절을 하면서 물었다.
“저는 총림叢林에 갓 들어온 신출내기입니다. 그래서 동산의 뜻이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천리초千里抄를 가진 것은 귀한 일이긴 하나 숲 속의 도인은 슬퍼한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물러서서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에끼! 이 중놈아, 가까이 오너라.”
그 스님이 가까이 와서 서니, 선사가 말했다.
“내가 은사를 처음 만났을 때 은사께서 나에게 물으시기를,
‘어느 절에서 살았는가?’ 하시어,
내가
‘절은 머무르지 않고 머무르면 절이 아닙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은사께서 다시 묻기를,
‘어째서 그런가?’ 하시어,
내가
‘눈앞에 절이라고는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은사께서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는지 물으시기에,
나는
‘눈과 귀로는 미치지 못하는 바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은사께서는
‘한 구절이라도 의식적인 말이 있다면만 겁 동안 나귀 매는 말뚝에 매이리라.’ 하셨다.
지금은 4구절 게송으로 고쳤느니라.
눈앞에 법이 없음은
뜻이 눈앞에 있음이니
그는 눈앞의 법도 아니며
귀와 눈으로 미칠 바도 아니다.
내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이것이 내가 은사를 뵙던 인연이며 주머니 속의 보물이다. 가지고 가서 제방에 이야기하여 누군가가 따져서 깨뜨리면 다시 오지 말고, 만일 아무도 따져서 깨뜨리는 이가 없거든 돌아오라.”
그 스님이 바로 동산으로 돌아갔더니,
동산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협산夾山에 갔었습니다.”
“무슨 불법의 인연이 있었는지 말해 보라.”
“그곳의 화상께서 면전에서 인연을 물으시기에 제가 정성껏 그 화상에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인연因緣을 말하던가?”
“제가 화상께서 시중하신 인연, 즉 ‘새의 길을 걸으려면 모름지기 발바닥에 실 한 오라기도 없어야 하고, 현묘한 배움을 얻으려면 손을 펴고 배워야 한다’ 하신 것을 말했습니다.”
이에 동산이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협산이 무엇이라 하던가?”
“협산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리초千里抄를 가진 것은 귀한 일이긴 하나 숲 속의 도인은 슬퍼한다’ 하십니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과연 협산은 작가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로다.”
협산夾山의 사미가 동산에 가 있을 때, 동산이 사미沙彌에게 말했다.
“빨리 돌아가거라. 그대의 스승은 협산에서 2백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이러이러한 일을 하신다.”
사미沙彌가 대답했다.
“저의 화상에게는 불법도 없고 더불어 협산에 계시지도 않습니다.”
이에 그 스님(협산에게 법을 물은 스님)이 사미에게 말하였다.
“옛날에는 합산合山이라 했는데 지금은 협산夾山이라 고쳤느니라.”
사미가 그제야 그 말을 믿고서 동산을 하직하고 본산으로 돌아갔다. 문 앞에 이르자 큰 소리로 곡을 하면서 들어가 화상에게 말했다.
“제가 화상께서 이 산에 처음 자리 잡으실 때, 화상과 더불어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으며, 겪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다지 기특한 일이 있으면서도 그 당시에 어찌 저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처음에는, 네가 쌀을 일면 나는 불을 피웠고, 네가 밥을 돌리면 나는 발우를 펴서 받았는데, 도대체 나의 어디를 나무라느냐?”
이에 사미가 크게 깨달으니, 그가 소산韶山 화상이었다.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길 잃은 자식이 집에 돌아올 때는 어떠합니까?”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아들이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옛날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뜰 가에 남은 눈은 햇빛이 녹이지만 방 안의 먼지는 누구더러 쓸라 하느냐?”
“신속하여 멈추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눈이 있어도 천자의 즐거움을 엿보지 말고 눈앞에서 노승의 노래나 들어라.”
“남북은 묻지 않겠습니다. 화상 발밑의 일이 어떠하십니까?”
“모래에 새기는 이에게 옥을 쪼는 기교가 없고, 풀을 맺는 이는 도인의 안목을 어그러뜨린다.”
어떤 좌주가 선사를 뵈니,
선사가 물었다.
“오랫동안 어떤 공부를 익혔는가?”
“『법화경』에 오래도록 마음을 두었습니다.”
“『법화경』에는 무엇으로 극칙極則을 삼는가?”
“대지의 흰 소[露地白牛]를 극칙極則으로 삼습니다.”
“노사나불[舍那]의 복장과 영락瓔珞의 옷을 즐겨 입고서 흰 소를 타고 이 도량에 왕림하려는 것이 좌주의 가풍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그 옆에 뿌리 내렸던 가섭이 나와서 긍정하지 않았던 것은 여러 아이들이 유치하여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승의 이곳에는 우거진 풀숲과 호미 한 자루뿐이니라.
좌주야, 향상하는 부귀한 곳의 한 길을 어째서 물을 줄 모르느냐?”
“그러면 제2의 달이 있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노승이 태양을 깔고 앉아서 천하가 어두우니 아득함이 온 천하에 가득하다.”
좌주가 물었다.
“어떤 것이 향상일로의 부귀한 곳입니까?”
“적설봉 바깥쪽에는 흰 구름이 걸리지 않느니라. 좌주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어 선사가 또 말했다.
“한 구절은 시방이 함께 참구하고, 한 구절은 천하 사람도 어쩔 수 없고, 한 구절은 천하 사람을 살리고, 한 구절은 천하 사람을 죽이나니, 교묘함과 졸렬함을 그때마다 스스로 살펴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리초를 가진 것은 귀한 일이긴 하나 숲 속의 도인이 슬퍼한다’ 하노라.
설사 신령한 풀을 걸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구오(九五:군왕의 지위)가 아니요, 야명주와 야월夜月의 빛은 새벽에 비할 바가 아니니라.”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움직이면 그림자가 생기고 깨달으면 병이 생기느니라.”
흠산欽山이 시자를 시켜서 선사에게 물었다.
“학인이 몸을 끊어 천 조각으로 내고자 할 때 누가 손을 씁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도에는 곁가닥이 없으니, 나서는 이 모두가 위태로우니라.”
또 시자가 물었다.
“불어대는 회오리바람과 맞서서 날려 버릴 때는 어떠합니까?”
“여기에 바람이 없는데 무엇을 날리는가?”
또 물었다.
“푸른 산에 놀이 없는데, 구름은 어디서 생깁니까?”
“준마駿馬가 봉골峯骨을 드러내지 않아도 환한 그 모습은 맑고 뚜렷하다.”
“준마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들로 바늘만한 말을 만들더라도 묶여 있는 주머니 속에는 넣지 못한다. 천 길의 흰 구름은 푸른 못에 의지하기도 하되, 떠다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세 치의 갈고리를 여의는 도리를 그대는 어째서 물을 줄 모르는가?”
시자가 돌아가서 흠산에게 말하니, 흠산이 말했다.
“협산夾山은 과연 작가로다.”
장남漳南이 이 인연을 들어 설법했더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도에는 곁가닥이 없으니 나서는 이 모두가 위태롭다 한 것은 그저 도를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이에 장남이 말했다.
“대가들은 늘 그대들을 살피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을 시켜 석상石霜에게 다음과 같이 묻게 하였다.
“어떤 것이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 것입니까?”
석상이 대답했다.
“흰 구름은 그대가 흰 구름이라 하는 말을 따르고, 청산은 그대가 청산이라 하는 말을 따른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선사에게 말하니, 선사가 말했다.
“문 앞에서 희롱하느니 차라리 노승의 진리와 맞는 이야기에 드니만 못하다. 내 세 걸음 양보하리라.”
선사가 천문天門과 협산夾山에서 12년 동안 살았고, 입산 전의 일까지 합하여 세 차례 법을 펴다가 중화中和 원년 신축 11월 7일에 손수 문과 집을 불태우고서 대중에게 말했다.
“괴롭다, 괴롭다. 석두의 한 가닥이 묻히는구나.”
이에 낙포落浦가 나서서 대답했다.
“그 사람 마음대로묻힌다지만 청룡은 본디 있습니다.”
선사가 물었다.
“청룡의 뜻이 어떠한가?”
“귀인은 남의 옷을 빌려 입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는 불을 끄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큰 강이 다 잠긴 뒤에야 작은 강이 나타나니
밝은 달 걸리는 높은 봉우리에 법이 저절로 흐른다.
돌소가 물 위에 누웠으니
그림자 외로운 봉우리에 지고
황무지가 나의 말을 들으니
매인 데 없는 배 같도다.
그리고는 문득 입적하니, 춘추는 77세요, 승랍은 57세이며, 협산山에 탑을 모셨다. 시호는 전명傳明 대사라 내려졌고, 탑호는 영제永濟요, 소주韶州 자사 김기金夔가 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