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제국 잉카(Inca) - 페루(Peru)
5. 아아~! 신비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1> 아구아스 까리엔테스(Aguas Calientes)
기차의 종착역인 마추픽추 역(驛) 앞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마을 ‘아구아스 깔리엔테스(Aguas Calientes)’가 있는데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거리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마을은 가파른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옴폭한 분지인데 사방의 봉우리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런 산꼭대기 마을이 있을 만한 흔적이 전혀 없는, 깊고 깊은 계곡 속의 마을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추픽추를 ‘비밀의 공중도시, 수수께끼의 도시’ 등으로 불렀고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 하나로 꼽았던 것이리라.
마추픽추를 오르는 버스는 좌석이 채워지면 곧바로 출발하는데 밀림 속을 조금 지나자 곧바로 뱀이 꼬리를 물 듯 지그재그로 건설된 가파른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10여 회 꼬불거리며 오르기를 30여 분이면 산꼭대기 마추픽추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주차장에는 입장권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1911년 예일대 빙엄교수가 발견하였다는 자그마한 기념 동판이 보이고 연이어 숲길을 따라 언덕을 돌아가면 위대한 잉카의 유적 마추픽추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2> 하이람 빙엄(Hiram Bingham) 교수
1911년, 미국 예일대학의 고고학 교수인 하이람 빙엄(Hiram Bingham/1875~1956) 교수는 잉카의 만꼬(Inca Manco) 왕이 스페인 정복자들에 맞서 싸웠다고 문헌상에 기록되어있는 마지막 저항지인 ‘빌까밤바(Vilcabamba)’를 찾으러 이곳 신성계곡으로 온다.
현재의 마추픽추 / 폐허의 마추픽추(1911년) / 빙엄 교수
빙엄 교수는 한 인디오 농부로부터 산꼭대기에 귀신(鬼神)이 나오는 허물어진 고대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인디오 소년을 앞세우고 답사를 나서는데, 그리하여 이 신비에 싸인 비밀도시가 비로소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빙엄 교수가 처음으로 마지막 돌계단을 통하여 이곳에 올라왔을 때는 나무와 풀로 뒤덮여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웠다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한눈에 모든 윤곽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빙엄 교수는 밀림으로 뒤덮인 이곳 유령도시에서 인디오 한 가정이 살고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130여 구의 유골(遺骨)과 5,000여 점의 유물(遺物)을 발견하여 수습하였다고 한다.
<3> 미스터리의 마추픽추 공중도시
마추픽추 전경(뒤에 솟은 산은 와이나픽추) / 마추픽추를 오르는 지그재그식 찻길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마추픽추는 해발 2,400m의 산 위에 완벽하게 숨겨진 공중도시로, 잉카인들의 마지막 저항지 빌까밤바(Vilcabamba)로 추정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훗날 학자들에 의해 전쟁의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음으로 빌까밤바는 아니라고 판명되었다고 한다.
후일, 학자들은 건물의 수와 주변에 조성된 계단식 밭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상주인구가 2,000명에서 10,000명 정도로 추정했다니 상당히 규모가 큰 도시(마을)였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미스터리인 것은 수습된 유골들을 분석한 결과 80% 이상이 여자와 아이들 유골이고 성인 남자의 유골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무슨 연유인지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이 유적은 총면적은 5㎢ 정도로 그 절반은 주변 비탈면의 계단식 밭이고 나머지 절반이 산 정상의 평평한 부분의 주거지인데 서쪽의 높은 곳은 신전과 궁전이 있고 동쪽 낮은 곳은 주민 주거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둘레의 계단식 밭 바깥으로는 다시 성벽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다. 관광객들이 처음 서게 되는 곳은 마추픽추(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뒤쪽 언덕 위인데 눈 아래로 유적(遺蹟) 전체가 한눈에 펼쳐져 보이며 그 뒤로 와이나픽추(WaynaPicchu:젊은 봉우리)가 마추픽추를 호위하듯 우뚝 솟아있는 모습으로, 정말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우선 사진으로 보아오던 것에 비하여 굉장히 규모가 크다는 것에 놀라게 되고 또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로워서 잠시 말문이 막힌다. 마추픽추는 산 아래에서는 전연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 위에 건설된 완벽하게 숨겨진 도시이다. 놀라운 것은 돌을 다듬고 끼우고 짜 맞추어 지은 각종 신전(神殿)들의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건축 솜씨, 그리고 이 높은 산꼭대기에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물을 끌어오는 놀랍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수로(水路)도 또한 미스터리인데 지금도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도시의 형성을 두고 학자들은 초기에
① 스페인군의 공격을 피해 세운 비밀도시
② 훗날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위해 건설한 비밀도시
③ 자연재해, 특히 홍수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
등으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도시의 건물 배치나 기능으로 보아 『태양신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세워진 특별한 신성(神聖) 도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16세기 후반, 잉카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이 도시를 버리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유골을 조사한 결과에서 보였듯이 왜 여자들과 아이들 유골만 있고 남자 어른들의 유골이 없는지 아직까지도 가설(假說)이 난무한다고 한다. 여자들과 아이들만 굶어 죽었는지,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죽이고 떠났는지, 또 새로운 도시를 찾아 더 깊숙한 오지로 남자들만 떠났는지, 스페인군과의 전투에서 남자 성인들은 모두 죽었는지....
가지가지 의문만 남기고 이 매력이 넘치는 공중도시는 ‘버려진 도시,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그 뒤 약 400년 동안 밀림 속에 묻혀 있다가 미국의 빙엄 교수에 의해 마침내 발견되는 것이다.
<4> 마추픽추의 이모저모
(1) 중앙 신전(中央神殿)
매표소를 지나 유적 입구에 오면 정교하게 쌓은 석문이 나타나는데 석문을 지나면 가운데 높은 언덕 위에 중앙신전이 있다.
허물어져 가는 중앙신전 / 벽감(壁龕)의 방
신전 앞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돌 제단이 있고 뒤쪽은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한쪽 부분이 허물어지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 원인이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관광버스와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원인이 될 수 있다하여 유네스코에서 일일 관광객을 500명으로 제한할 것을 페루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페루 정부의 주요 관광수입원(觀光收入源)인 이곳의 인원제한이 어려웠는지 현재 비수기에는 1일 2,500명, 성수기에는 5,000명의 관광객이 들끓는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신전의 뒤쪽으로 돌아가면 신관들이 머무르던 방이 있는데 사람 얼굴 높이의 벽면에 깊이 20cm 정도의 사다리꼴 벽감(壁龕)이 쭉 둘러 있다. 그곳에 머리를 집어넣고 말을 하면 공명현상이 일어나 머리가 윙윙거린다. 잉카 시대의 신관(神官)들은 코카 잎을 씹으며 큰 소리로 벽감에 대고 주문을 외어 최면상태가 일어나면 나와서 일반인들에게 최면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전하였다고 한다.
(2) 인티우아타나(Intihuatana)
인티우아타나(태양을 묶는 기둥) / 마추픽추와 우루밤바강 / 신전 일각
중앙신전 뒤쪽 조금 높은 곳에는 태양을 묶는 돌기둥이 있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온다고 믿었는데 매년 6월 동지(새해)가 되면 이 ‘인티후아타나’라고 하는 높이 1.8m, 너비 36cm의 돌기둥에 바로 머리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3)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
원형의 성채(城寨) 모양으로 건축된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은 함께 있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그 아래 지하에는 왕의 무덤이었다는 지하 공간이 있다.
태양의 신전 터(址) / 지하 묘지 / 좁은 계단식 밭
(4) 콘도르(Condor) 신전
콘도르 신전 / 콘도르 부리 / 뒤쪽에서 본 콘도르 신전
태양의 신전 조금 아래쪽에 매우 신비한 모습의 콘도르 신전이 있다. 크고 삐죽한 두 개의 자연석 바위는 흡사 거대한 콘도르가 날개를 편 모양인데 그 아래쪽 넓적한 바위 위에 콘도르의 부리와 눈을 새겨 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펼친 콘도르 형상이다.
잉카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콘도르에 의하여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콘도르를 신성한 새(鳥)로 여긴다. 신전 옆 바위 밑에는 감옥(監獄)도 있다.
(5) 계단식 밭과 오두막
계단식 밭이 있는 곳에 서너 채의 오두막집이 있는데 사람들이 숙식(宿食)을 하던 흔적이 보이지 않아 농장을 관리하던 집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 옆 풀밭에는 알파카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어 목가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면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긴 띠 모양의 계단식 밭은 그 폭이 좁은 곳은 1m도 채 안되는 듯 너무 좁고 높아서 자칫 실족하면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다. 가이드는 너무도 위험하니 아마도 죄수들이나 최 하층민으로 경작하게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웃는다.
계단식 밭 / 알파카 / 오두막
마추픽추의 건축물들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은 부분적으로 건축 시기가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주 신전, 태양의 신전 등은 잉카제국이 형성되기 800년 이상 앞선 선사인(先史人)들이 건조한 것으로 판명 났고, 그 위에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기술로 쌓은 것, 또 조잡한 석조기술로 보아 그 이후에 쌓은 것 등 크게 3기(期)의 건축 시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도시의 기능도 달랐을 것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교하고 튼튼하게 쌓은 것은 초기에 쌓은 석축이고, 조잡하고 엉성하게 쌓은 것일수록 후대에 쌓았다니... 웃긴다.
(6) 와이나픽추(WaynaPicchu)
‘젊은 봉우리’라는 의미를 지닌 와이나픽추는 높이가 마추픽추보다 100m 정도 더 높은 2,500m로 구름에 싸여있어 신비감을 자아내는데 정상까지 등산로가 있다. 왕복 2~3시간이 걸린다는 와이나픽추 등산로는 매우 좁고 가팔라서 위험하여 따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필 우리가 도착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고, 시간도 촉박하여 오르지 못했는데 몹시 아쉬웠다.
빗속에도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아슬아슬하게 절벽 모서리의 등산로를 오르는 모습이 몹시 위태로워 보인다.
와이나픽추 등산로 / 잉카트레일 / 아슬아슬한 절벽길
까마득히 골짜기 아래로는 아마존을 향하여 힘차게 흐르는 우르밤바강의 거센 물줄기가 보이고, 고개를 젖혀야 봉우리가 보이는 빙 둘러싸인 높은 산들은 잉카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가파른 고산지대의 산길을 코카 잎을 씹으며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옛 잉카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2시간 남짓 마추픽추의 관광을 끝낸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마추픽추 마을로 내려와 점심으로 송어 튀김을 먹었는데 그 특별한 맛 또한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