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윤회와 육도 중생
현장스님
티벳 불자들은 새해초에 오체투지의 성지순례를 한다.
온몸을 땅위에 던지면서 그 사람들이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집안의 행복이 아니다.
조국 티벳의 독립도 아니다.
티벳 불자들은 여섯 갈래의 존재계에 윤회하는 중생들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축원한다.
그 사람들은 윤회하는 세계 속에서 얻는 행복과 권력과 재산 같은 것은 모두 참된 것이 아니고 괴로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보에 귀의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고 본다.
'생명의 수레바퀴'라고 일컫는 이 그림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으로 선업과 죄업을 쌓고 그 결과로 끝없이 여섯 갈래 세계를 윤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맨 가운데 동그라미를 보면 세 마리 짐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시계바늘 가는 쪽으로 돌고 있다.
수탉은 뽐내기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탐냄과 애욕을 나타내고,
독뱀은 미움과 샘냄처럼 다른 이를 해치려고 하는 원한과 분노를,
돼지는 사성제와 삼세인과 같은 진리를 모르는 모든 번뇌의 뿌리인 어리석음을 뜻한다.
바로 이 세 마리 짐승이 사람의 마음 속에 살면서 여섯 갈래를 떠돌면서 괴로움을 겪게 하는 뿌리가 된다.
그러니 괴로움과 두려움이 끝이 없는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을 없애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세 마리 짐승을 원수처럼 여기고 잘 다스려야 한다.
두 번째 동그라미 오른쪽은 세 마리 짐승의 힘에 끌려 다니면서 어둠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림인데, 이 세계는 나쁜 업과 나쁜 인연으로 맺어진 검은 업의 세계다.
동그라미 왼쪽 그림은 선지식을 만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깨닫고 아미타불의 원력과 공덕을 믿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죽을 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윤회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내용이다.
그림 오른쪽 윗그림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들이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오른손을 들어 해탈의 바른 길을 가르치고 계시는 내용이다.
왼쪽 윗그림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다.
죽을 때 바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은빛광명의 길을 타고 곧바로 극락정토에 태어남을 보여준다.
그림 가운데 있는 여섯 개 그림은 여섯 갈래의 윤회 세계를 뜻한다.
윗쪽에는 계율을 지키고 공덕을 쌓아 태어나는 천상 세계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세계가 있다.
그 아래에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가 떨어지는 굶은 귀신(아귀)의 비참한 세계가 있다.
맨 아래 가장 넓은 그림은 지옥세계의 여러 가지 괴로운 모습이다.
지옥 왼쪽에는 네 발 달린 짐승과 물고기, 새 같은 축생들의 세계가 있고,
그 위에는 샘냄과 싸움의 업보로 태어나는 아수라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갈래의 세계에 끝없이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육도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큰 길이 있다.
첫째는 자기 수행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인을 없애 열반에 이르는 성도해탈문(成道解脫門)이고, 둘째는 아미타불의 원력에 기대어 육도윤회에서 바로 벗어나는 왕생정토문(往生淨土門)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윤회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해주는 일을 으뜸으로 친다.
꿈 속에서 착한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꿈에서 깨어나는 일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는 열두 가지 인연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십이연기라 한다.
열두 가지 인연법을 또렷이 깨달아야 자기만 알고 자기만 고집하는 그릇됨에서 벗어나 나만을 내세우지 않고(무아無我),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무소유無所有) 해탈세계에 이르게 된다.
육도윤회의 여섯 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그림은 십이연기법을 상징한다.
시계바늘 도는 쪽으로 첫번째 그림은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뜻한다.
눈 먼 늙은이 그림은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삼세인과와 사성제 같은 진리의 가르침에 어두워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처음의 한 생각을 나타낸다.
두번째 그림은 행위를 뜻하는'행(行)'을 나타낸다.
짐 나르는 사람 그림은 업보가 만들어짐, 곧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집착하는 대상을 실제화하는 형성작용을 나타낸다.
세번째 그림은 분별작용인'식(識)'을 나타낸다.
나무 위의 원숭이 그림은 개체가 만들어지면 자기를 가운데 두고 분별작용을 계속하는 인식이 생겨남을 뜻한다.
네번째 그림은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맞붙는 '명색(名色)'을 나타낸다.
나룻배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그림은 정신적인 명名과 물질적인 색(色)이 결합하는 것을 뜻하는데, 명색은 식(識)을 인연으로 하여 생긴다.
다섯번째 그림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입(六入)'을 나타낸다.
창문이 여섯 개 달린 집 그림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뜻하는데, 위의 명(名)과 색(色)이 결합하면 이 감각기관이 생긴다.
여섯번째 그림은 감촉작용인 '촉(觸)'을 나타낸다.
다정한 여자와 남자 그림은 감각기관이 경계를 만나 느끼는 감촉작용을 상징한다.
일곱번째 그림은 느낌작용인 '수(受)'를 나타낸다.
눈에 화살 맞은 사람 그림은 느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즐거움과 괴로움, 그저그런 모든 느낌을 뜻한다.
여덟번째 그림은 이성을 그리는 감정인 '애(愛)'를 나타낸다.
술 취한 사람을 여자가 시중들고 있는 그림은 즐거운 느낌에 따라 즐거움의 대상을 끝없이 갈구하는 눈 먼 욕망을 상징한다.
아홉번째 그림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인 '취(取)'를 나타낸다.
과일 따는 사람 그림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바라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뜻한다.
열번째와 열한번째 그림은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유(有)'로 말미암아 생명이 태어남을 나타내는 '생(生)'을 나타낸다.
아기 낳는 여자 그림은 생명이 태어남을 상징한다.
열두번째 그림은 삶의 여러 가지 괴로움, '노사우비고뇌(老死優悲苦惱)'다.
송장 나르는 사람 그림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삶의 갖가지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십이연기법은 모든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존재하고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다.
십이연기설은 중생들이 업력에 따라 삼세에 걸쳐 끝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사실에 뿌리를 두고 열두 개로 나누어 관찰하는 법이다.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것이 십이연기의 가르침이다.
불행한 사람은 어리석은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대품반야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의 큰 죄는 어리석음이다. 불행과 괴로움은 어리석음의 갚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여 진리의 삶을 사는 일이야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죄업 참회하고
나쁜 습관 바꾸어서
이몸 이제 맑고 맑은
보살의 길 닦으리라
아침이슬 우리 인생
모든 슬픔 사라져라
사람의 삶 뜻이 없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비우고 또 맑히는 일
우리 행복 아니런가
나무아미타불
[출처] 현장스님 - 육도윤회와 육도 중생|작성자 성민
최남규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