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론 중권
19. 세 가지 질문, 대승의 서원을 일으키되, 어떠한 법도 없다
【經】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야 하며,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려고 하면, 마땅히 이런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즉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멸도(滅度)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의 경계에 들어가게 하리라.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멸도케 한 뒤에라도 한 중생도 실제로 멸도케 한 사람이 없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오래 산다는 모습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진실로 어떠한 법도 없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論】
무슨 까닭에 앞에서 세 가지 수행에 대하여 말했는데, 지금 다시 거듭 말하는가?
여기에서 어떤 것이 더 뛰어난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속마음으로 스스로 수행하면서
나는 보살이 될 것이라는 마음 남아 있다면
이것은 곧 마음에 장애가 되리니
머무르지 않는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게송의 뜻은 무엇인가?
만약 보살이 자신의 세 가지 수행에 대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
‘나는 보살의 대승에 머무른다, 나는 이와 같이 수행한다, 나는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킨다’는 따위,
보살이 이러한 분별심을 낸다면 보리행(菩提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게송에 이르기를
“속마음으로 스스로 수행하면서
‘나는 보살이 될 것이다’라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마음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떤 것들이 마음에 장애가 되는 것인가?
게송에 이르기를
“머무르지 않는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니, 경에서
“왜냐하면 수보리야, 진실로 아무 법도 없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