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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5권
[보살의 세간을 벗어나는 도]
그 때에 대허공장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세간을 벗어나는 도[出世間道]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세간을 벗어나는 도라는 것은,
6바라밀(波羅蜜)ㆍ37보리(菩提)의 법ㆍ사마타(奢摩他)ㆍ비바사나(毘婆舍那)ㆍ4섭법(攝法)ㆍ4무량심(無量心)ㆍ4선(禪)ㆍ4무색정(無色定)ㆍ5신통(神通)이 그것이니라.
그리고 선남자여, 세간이란 5온(蘊)을 이르는 것이니라.
보살이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방편으로 물질의 덧없음을 알아 보시를 행하고,
물질의 괴로움과, 물질의 나 없음과, 물질의 고요함과, 물질의 공함과,
물질의 상(相) 없음과, 물질의 원(願) 없음과, 물질의 지음 없음과,
물질의 나지 않음과, 물질의 일어나지 않음과,
물질의 인연의 일어남과, 물질의 모든 것을 멀리 여읨과,
물질의 집착 없음과, 물질의 아뢰야식(阿賴耶識) 없음과, 물질의 발기(發起)하지 않음과,
물질의 허깨비 같음과, 물질의 꿈 같음과, 물질의 아지랑이 같음과,
물 속의 달 같음과, 산골의 메아리 같음과, 그림자 같음과,
물질의 풀ㆍ나무ㆍ기와ㆍ자갈 같음을 알아서 보시를 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할 때에는
물질의 진여(眞如)를 앎으로써 곧 보시의 진여를 알고,
보시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보시를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그 덧없음을 알아서 보시를 행하고,
이와 같이 의식의 나 없음과, 의식의 고요함과, 의식의 공함과,
의식의 상(相) 없음과, 의식의 원(願)없음과, 의식의 지음 없음과,
의식의 나지 않음과, 의식의 일어남 없음과,
의식의 인연의 일어남과, 의식의 모든 것을 멀리 여읨과,
의식의 집착 없음과, 의식의 아뢰야식 없음과, 의식의 발기하지 않음과,
의식의 허깨비 같음과, 의식의 꿈 같음과, 의식의 아지랑이 같음과,
물 속의 달 같음과, 산골의 메아리 같음과, 그림자 같음과,
의식의 형상 없음을 알아서 보시를 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할 때에는
의식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보시의 진여를 알고,
보시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보시를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그 물질의 덧없음을 알아서 계율을 수행하고 내지
물질이 풀ㆍ나무ㆍ기와ㆍ자갈과 같음을 알아서 계율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계율을 수행할 때에
그 물질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계율의 진여를 알고,
계율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계율을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그 덧없음을 알아서 계율을 행하고,
이와 같이 내지 의식의 형상 없음을 알아서 계율을 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계율을 행할 때에
그 의식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계율의 진여를 알고,
계율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계율을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물질의 덧없음을 알아서 인욕ㆍ정진ㆍ선정ㆍ반야를 행하고 내지
그 물질이 풀ㆍ나무ㆍ기와ㆍ자갈과 같음을 알아서 반야를 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를 행할 때에
그 물질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반야의 진여를 알고,
반야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반야를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그 덧없음을 알아서 반야를 행하고,
이와 같이 내지 의식의 형상 없음을 알아서 반야를 행해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를 행할 때에
그 의식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반야의 진여를 알고,
반야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반야를 행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그 물질의 덧없음을 알아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신념처(身念處)를 닦으며 내지
그 물질이 풀ㆍ나무ㆍ기와ㆍ자갈과 같음을 알아서 신념처를 닦아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신념처를 닦을 때에
그 물질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몸의 진여를 알고,
몸의 진여를 앎으로써 내지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신념처를 닦음에 있어 그 몸의 수행이 진여와 함께 어긋나지 않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그 덧없음을 알아서 신념처를 닦고,
이와 같이 내지 의식의 형상 없음을 알아서 신념처를 닦아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이와 같이 신념처를 닦을 때에
그 의식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몸에 대한 생각의 진여를 알고,
몸에 대한 생각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알고,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앎으로써 곧 보리의 진여를 얻고,
보리의 진여를 얻어 앎으로써 곧 유정의 진여를 알고,
유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나의 진여를 알고,
나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다 알고 몸에 대한 생각을 닦게 되느니라.
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를 닦음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진여와 함께 어긋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그 물질의 덧없음을 앎으로써 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37보리의 법ㆍ8정도[八聖道]ㆍ사마타(奢摩他)ㆍ비바사나(毘婆舍那)ㆍ4섭법(攝法)ㆍ4무량심(無量心)ㆍ4선(禪)ㆍ4무색정(無色定)ㆍ5신통(神通)에 있어서도 다 그와 같이,
물질의 괴로움과, 물질의 나 없음과, 물질의 고요함과, 물질의 공함과,
물질의 상(相) 없음과, 물질의 원(願) 없음과, 물질의 지음 없음과,
물질의 나지 않음과, 물질의 일어나지 않음과,
물질의 인연의 일어남과, 물질의 모든 것을 멀리 여읨을 알고 내지
물질이 풀ㆍ나무ㆍ기와ㆍ자갈과 같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그 덧없음을 알아서 신통의 지혜를 이끌고, 내지
의식의 형상 없음을 알아서 신통의 지혜를 이끌어야 하느니라.
말하자면 5온(蘊)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신통의 진여를 알고,
신통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일체 법의 진여를 알고,
일체 법의 진여를 앎으로써 곧 진여가 아닌 것과, 진여의 허망하지 않음과, 진여의 차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니,
신통의 지혜를 이끄는 것도 그러하니라.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이니라.
선남자여, 어찌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이 도를 보살의 도라고 하는가?
물질의 진여를 알아 그 물질이 파괴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고,
단견(斷見]도 상견(常見)도 아니어서 인연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이 제 성품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진여를 알기 때문에 내지 그 의식이 파괴되지 않고,
단견도 상견도 아닌 바른 견해로 인연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이 제 성품이 없음을 알아서
세간의 5온을 초월하여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어느 세계에도 물들지 않기 때문에 5취(趣)에 몸을 받는 유정들을 위하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라고 하느니라.
[진여의 도]
다시 말하면, 이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는 바로 진여의 도이고 동시에 그 진여의 도는 세간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덧없는 상(相)이기 때문에 세간을 파괴하지 않으며,
괴로움의 상이고 나 없음의 상이고, 고요한 상이고 공한 상이고, 형상이 없는 상이고 원이 없는 상이고, 내지 진여 그대로의 상이기 때문에 세간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세간을 벗어나는 이 보살의 도는 바로 청정한 도이기 때문에 보살이 만약에 청정한 도에 머문다면 곧 악한 도에 헤매는 저 유정들을 위해 큰 광명을 일으키니,
이 광명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역시 세간을 벗어나는 도라고 하느니라.
이 도를 가장 수승한 도라고 하는 것은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 도를 가장 청정한 도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선하지 않은 마음을 여의기 때문이고,
이 도를 가장 뛰어난 도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의 정수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 도를 위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생사의 거친 물줄기를 건널 수 있기 때문이고,
이 도를 비교할 수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편견과 외도를 초월하기 때문이고,
이 도를 비할 바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도의 법도 이 도의 법과 같은 종류가 없기 때문이고,
이 도를 견줄 바 없는 평등한 도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부처님의 도를 다 여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 도를 안온한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마군과 원수를 다 굴복시키기 때문이고,
이 도를 걸림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뜻한 대로 신통의 지혜로써 유희하기 때문이고,
이 도를 어둠이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이 도를 바르고 평등한 도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첨곡(諂曲)이 없기 때문이고,
이 도를 올곧은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삿됨을 여의기 때문이고,
이 도를 평등한 도라고 하는 것은 유정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베풀기 때문이고,
이 도를 크나큰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유정을 포용하기 때문이고,
이 도를 널리 관대한 도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고,
이 도를 나[生]는 도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지치거나 싫증이 없기 때문이고,
이 도를 복덕의 자량(資量)이라고 하는 것은 보시바라밀다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타오르는 번뇌가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계율바라밀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두려움이 없는 도라고 하는 것은 인욕바라밀다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물러나지 않는 도라고 하는 것은 정진바라밀다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모든 경계를 벗어난 도라고 하는 것은 선정바라밀다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허공과 같은 도라고 하는 것은 지혜 바라밀이기 때문이고,
이 도를 지혜에 수순하는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이 도를 항상 만족의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선한 법을 모으기 때문이고,
이 도를 법륜(法輪)에 수순하는 도라고 하는 것은 들은 것을 잊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가 이처럼 비할 바 없이 수승하고 청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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