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4권
12. 사성제품(四聖諦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 무수 아승기겁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대신(大身)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호칭했으며, 세계의 이름은 공적(空寂)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어서 사부대중에게 미묘한 법인 4성제(聖諦)를 설하여 중생을 널리 교화함으로서 누구나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涅槃]의 경계에 이르러 멸도를 취하게 하셨다.
어떤 것이 4성제인가?
첫째는 무량(無量) 성제이니라.
보살로써 이 진리를 얻은 이는 일념 가운데 마음의 번뇌[垢]를 스스로 멸하고 다른 이의 번뇌도 멸할 수 있으며, 또한 번뇌[塵垢]의 다함 있음과 다함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둘째는 이름하여 행진(行盡) 성제라고 하느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일념 가운데 중생으로 하여금 몸ㆍ입ㆍ뜻의 행을 다 깨닫게 하여서 선(善)이거나 악(惡)이거나 모두 도(道)의 문에 나아가게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 이르게 하느니라.
셋째는 이름하여 질속(疾速) 성제라고 하느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능히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모두 부처님 도를 이루게 하여,
제한 없고 한량없어서 일컬을 수조차 없이 많은 수효가 하루 사이에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
다시 무수 아승기 찰토의 중생 무리로 하여금 각각 착한 마음을 내어서 모든 부처님에게 공경심을 일으켜 공양하게 하는데, 향과 꽃과 비단을 바치고 온갖 풍악을 울리며,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한 개의 보배양산으로 변화시켜서 그것으로 공양하니,
여러 하늘과 세상사람 위에 뛰어나며, 모두 천상자연(天上自然)의 음식ㆍ의복ㆍ침대ㆍ이부자리ㆍ병 고치는 의약을 가져와서 한 생각 동안에 모조리 능히 차리느니라.
넷째는 이름하여 평등 성제이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능히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똑같이 약간의 모습도 없는 경지에 나아가게 하여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서 열반에 들게 한다.
마치 불꽃과 같고 허깨비 같고 아지랑이같이, 세계는 공적하고 형상이 없어서 소유하여 가질 수 없으니,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지만,
중생 가운데 제도를 얻은 이가 있음을 보지 않고 다시 교화를 받은 이도 보지 않으니,
중생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중생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청정한 중생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청정한 중생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탁함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탁함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태(胎)를 받음이 있지 않음도 아니며, 태를 받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있음이 있지도 않으며, 있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나고 죽음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나고 죽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다.
이처럼 낱낱이 분별해도 있는 바가 없으니,
12인연을 아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어리석음으로부터 12인연에 이르기까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
마치 아지랑이와 같이, 세계는 얻어 가질 수 없어서 가까움도 없고 먼 것도 없다.
중생을 비록 교화했어도 교화함이 있음을 보지 않으니,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니라.
모든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관하니,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멸함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또한 모습이 있음도 보지 않고, 또한 모습이 없음도 보지 않는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모습 없는[無相]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니, 비록 부처님이 있어도 부처님이 있다는 상념이 없으며,
비록 법이 있어도 법이 있다는 상념이 없으며,
비록 비구승이 있어도 비구승이 있다는 상념이 없느니라.
이것을 일러서 이미 무상법을 얻은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러서 걸림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비유하여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국왕이 되기도 하고 전륜성왕이 되기도 하지만,
깨고 나서는 문득 꿈속에서 지은 바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마찬가지라서 여러 중생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는 것을 관하는데,
성취함이 있는 모습도 보지 않고 성취함이 없는 모습도 보지 않느니라. ”
이때 부처님께서 모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대신(大身)여래께서 법을 설하셨지만 청정하고 형상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느니라.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함부로 이러한 관(觀)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때의 대신여래가 지금의 문수사리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문득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지나간 수없는 세상에
대신여래 부처님 계셨으니
여기서 정각 이루시어
삿된 행이 없으셨네.
항상 모습 없는 법[無相法]으로
4성제(聖諦)를 분별하시고
권도(權道)를 나타내어 세계를 유행(遊行)하며
물어서 받은[諮受] 바를 나타냈네.
부처님의 도는 불가사의하고
신력(神力)은 다할 수 없으니,
교화한 중생의 무리를
다 똑같은 한 모습[一相]으로 만드네.
나는 이제 스스로 부처 이루어
삼계에서 가장 존귀하니
저에게 물들지 않고
다시는 나고 늙고 죽지 않을 것이네.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자, 한량없는 중생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모두 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