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경요집 제5권
7. 수청부(受請部)
〔여기에는 여덟 가지 연(緣)이 있음〕
7.1. 술의연(述意緣)
대개 삼보(三寶)는 평등하여 그 넓기가 허공과 같다. 원수도 없고 친한 이도 없으며, 일에는 귀하고 천한 것도 끊어지고, 오로지 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대하여 부정하지도 않아[無適無莫]곧 보시하는 이의 마음[檀心]에 응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죽이고 상(相)을 버리면 허공의 경계[空際]와 더불어 극치를 이루고, 때에 맡기고 인연을 따르면 법계(法界)와 함께 양(量)이 같아진다. 인(因)이 이미 다하지 아니했으니 과(果)도 또한 다함이 없다.
또 속인은 아끼고 재물이 넉넉치 못하여 물질을 한정지어 검약하게 보시하나니, 물질은 이미 한정되어 있고 마음 또한 국한되어 있다.
그리하여 혹은 사람을 계산해보아 덕을 가라고[選]혹은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혼탁함을 가린다[簡]. 혹은 모양에 집착하여 형상을 분별하고 혹은 얼굴을 관찰하여 추한 사람을 쫓아낸다.
이와 같이 사람에 의지하고 재물에 의지하며, 국한된 마음에 온갖 것을 기억하기 어려워서, 가이[涯]있는 복을 믿지 못하고 가이[邊]없는 보답에 자못 젖어드니,
그런 까닭에 옛날에 비사거모(毘舍佉母)가 아라한 오백 명을 따로 청했을 때 여래께서 그를 꾸짖으시며, 승려의 차례에 따라 평범한 승려 한 명을 초청하여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은 것만 못하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한극(限極)이 없으면 곧 복이 시방에 두루할 것이요, 재물에 많고 적음이 없으면 마음이 법계에 다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2. 공양연(供養緣)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보살이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에 대하여 대략 열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몸 공양이요, 둘째는 지제(支提)공양이며, 셋째는 현전(現前) 공양이 요, 넷째는 불현전(不現前) 공양이며, 다섯째는 자작(自作) 공양이요, 여섯째는 타작(他作) 공양이요, 여덟째는 승(勝) 공양이며, 아홉째는 불염오(不染汚) 공양이요, 열째는 지처도(至處道) 공양이다.
만약 보살이 여래의 색신(色身)에 대하여 공양을 베풀면
이것을 몸에 대한 공양이라고 한다.
또 만약 보살이 여래를 위하여 투파(偸婆)를 공양하거나 또는 토굴[窟]이나 집[舍]등을 공양하되, 그것이 오래된 것이거나 새로 지은 것이거나 간에 공양하면
이것을 지제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부처님의 몸과 지제를 직접 보고 공양을 베풀면
이것을 현전 공양이라 말하고,
만약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희망하는 마음을 갖추었거나 환희하는 마음을 갖추었으면
이것도 다 현전 공양이라고 한다.
한 여래에 대한 것과 같이 삼세 여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여래와 지제와 삼세 시방의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대하여 현전으로 공양하면 새것이거나 낡은 것이거나 간에
이것도 다 보살의 현전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현전이 아닌 여래와 지제이거나 또는 열반하신 뒤에 부처님의 사리로 투파를 세우되 억백천만에 이르도록 힘이 마치는데까지 많이 세우면
이것을 널리 말하여 불현전 공양이라고 말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한량없는 큰 과보를 얻으며, 항상 깨끗한 복을 거두어 한량없이 많은 큰 겁 동안 악한 갈래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최상인 보리(菩提)를 다 갖추어 만족하게 된다.
만약 보살이 현전 공양을 해도 큰 공덕을 얻고, 불현전 공양을 해도 큰 공덕을 얻으며, 현전과 불현전을 한꺼번에 공양해도 최대의 콘 공덕을 얻는다.
만약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손수 스스로 공양하되, 게으름을 피워 남을 시켜 공양하게 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자작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혼자 공양하지 않고 널리 친속(親屬)이거나 재가인이거나 출가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 함께 공양하게 하면
이것을 자타가 함께 공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조금이라도 물건을 허용할 생각이 있어서 자비한 마음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박복한 중생들에게 보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안락(安樂)을 얻게 하되, 제 것으로 하지 않으면
이것을 타작(他作) 공양이라고 말한다.
자작(自作) 공양을 한 사람은 큰 과보를 얻고 타작 공양을 한 사람도 큰 과보를 얻으며, 자작과 타작 공양을 한꺼번에 한 사람은 가장 큰 과보를 얻는다.
만약 보살이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옷과 음식과 갖가지 보배로써 온갖 공양을 하면
이것을 재물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오랜 동안 많건 적건 간에 재물을 공양하고 현전(現前)이거나 불현전이거나 간에 자작과 타작을 순박하고 깨끗한 신심(信心)으로 공양하고, 이 선근(善根)으로써 무상보리(無上菩提)에 회향(廻向)하면
이것을 승(勝)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제 손으로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공양하면서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방일(放逸)하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며,
마음이 더 럽지 않고 믿는 마음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아첨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재물을 구하지 않으며,
또 온갖 부정(不淨)한 물건 등으로 공양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염(無染) 공양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수승(殊勝)하여 더럽지 않은 재물로 여래와 지제(支提)에 대하여 공양하되,
만약 제 힘으로 얻거나 또는 남에게 구하거나 뜻대로 재물을 얻거나
또는 변화로 된 몸, 즉 둘ㆍ셋 내지 백천만억의 몸으로 다 여래에게 예배하면
그 낱낱의 몸마다 변화로 백천 개의 손을 만들고, 그 낱낱의 갖가지 꽃과 향을 여래와 지제에 대하여 공양하며,
저 일체의 몸으로 전부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찬양하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면,
이것을 뜻대로 하는 자재력의 공양[如意自在力供養]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왜냐 하면 물러나 옮겨가지 않는 자리[不退轉地]에 있는 보살은 일체 부처님의 국토에서 일찍이 장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제 힘으로 재물을 얻지 못하고 또한 남으로부터 구하지도 못하면서 공양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다른 중생과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대하여 상ㆍ중ㆍ하의 마음으로 공양하되,
보살이 그 일체 공양에서 깨끗한 믿음의 마음과 뛰어나고 절묘하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두루 따라서 기뻐하면,
이 보살은 조그만 방편으로써 커다란 공양을 일으켜 큰 보리를 거두고 나아가 일 구우(搆牛) 등을 닦을 것이니,
이것을 지처도(至處道) 공양이라고 한다.
여래는 제일가고 최상인 분이라서 앞의 재물 공양에 비하면 백 배ㆍ천 배, 나아가 산수(算數)나 비유로도 견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을 보살이 일체의 종류로 공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래(如來)ㆍ승(勝)에 대하여 공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삼보에 대하여 열 가지 공양이 있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또 보살은 여래의 처소에서 여섯 가지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른바 복밭[福田]이 최상이라는 마음이요,
은덕(恩德)이 최상이라는 마음이며,
일체 중생에 대하여 최상이라는 마음이요,
우담발화(優曇鉢花)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이며,
삼천대천세계에 홀로 제일이라는 마음이요,
세간과 출세간 법에 있어서 일체를 구족(具足)하여 이치에 의한다는 마음이다.
이 여섯 가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여 여래ㆍ법ㆍ승에 공양하면 한량없이 많은 공덕을 얻겠거늘 하물며 많이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여래의 처소에서 무엇을 여래에게 공양해야 히는가?
공양에 대략 열 가지가 있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설리라(設利羅:舍利)에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별(別) 공양이며,
셋째는 현전(現前) 공양이요,
넷째는 불현전(不現前) 공양이며,
다섯째는 자작(自作) 공양이요,
여섯째는 교타(敎他) 공양이며,
일곱째는 재경(財敬) 공양이요,
여덟째는 추대(麁大) 공양이며,
아홉째는 무염(無染) 공양이요,
열째는 정행(正行) 공양이다.”
[해석한 내용은 윗글과 거의 같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속가에 살고 있는 보살이 만약 우바새계(優婆塞戒)를 받아 지니려고 하면 먼저 차례로 여섯 방위에 공양해야 한다.
이른바 동방(東方)이란 곧 부모(父母)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ㆍ방사(房舍)ㆍ재산ㆍ보물 따위를 공양하고,
또 공경하고 예배하며 일찍 일어나 문안드리고 늦게 자며 돌보아 드리거나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면,
이 사람은 동방의 부모에게 잘 공양한 것이다.
이 부모는 다섯 가지 일로써 그 공양에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근심하고 염려하고,
둘째는 끝까지 속이지 않으며,
셋째는 재물을 희사해 주고,
넷째는 좋은 집안과 결혼시키며,
다섯째는 세상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남방(南方)이란 곧 사장(師長)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승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따위를 잘 공양하고,
또 존중하고 찬탄하며, 공경하고 예배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좋은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면,
이 사람은 남방의 사장을 잘 공양하는 것이 된다.
이 스승은 또 다섯 가지 일로써 그 공양에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빨리 가르쳐서 때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 가르쳐 주고 남겨두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하여 질투심을 내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엄한 스승과 좋은 친구에게 그를 데리고 가서 부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임종할 때 그에게 재산을 희사하는 것이다.
서방(西方)이란 곧 처자(妻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처자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ㆍ영락ㆍ복식 등 몸을 장식하는 기구를 공급하면 이 사람은 서방의 처자를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처자는 또 열네 가지 일로써 그 공양에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할 일에 대해 마음을 다해 경영하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일을 해서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할 일을 반드시 끝을 내는 것이요,
넷째는 일을 빨리 하여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항상 그를 찾아온 손님을 우러러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그의 방사(房舍)와 침구를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들 사랑하고 공경하며 마땅히 말은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하인들을 부드러운 말로 부리는 것이며,
아홉째는 재물을 잘 수호하는 것이요,
열째는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자는 것이며,
열한째는 깨끗한 집[淨舍]을 보호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그의 가르침을 잘 참고 행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그의 악한 일을 잘 덮어주는 것이요,
열넷째는 그의 병을 잘 돌보아주는 것이다.
북방이란 곧 좋은 벗[知識]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좋은 벗에 대하여 힘을 다해 그를 위하고 공경하며, 부드러운 말만 하고 예배하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북방 선지식(善知識)을 잘 공양하는 것이니라.
이 선지식에게도 또한 네 가지 일로서 그 공양에 대해 돌이켜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좋은 법을 닦도록 가르치는 것이요,
둘째는 그로 하여금 악한 법을 여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두려운 일이 있을 때에 그를 잘 구원하여 풀려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방일(放逸) 할 때에 능히 그로 하여금 방일함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하방(下方)이란 곧 노비(奴婢)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노비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하고 병들고 허약할 때에는 약을 공급하며, 꾸짖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면,
이 사람은 하방의 노비를 잘 공급하는 것이니라.
이 노비도 열 가지 일로 그것에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죄와 허물을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그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일을 알아서 하는 것이며,
셋째는 하던 일은 꼭 끝마치는 것이요,
넷째는 빨리 일을 하여 그로 하여금 때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주인이 비록 빈궁(貧窮)하더라도 끝내 버리거나 떠나가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일찍이 일어나는 것이며, 일곱째는 물건을 잘 지켜 주는 것이요,
여덟째는 작은 은혜에도 많이 보답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생각하는 것이요,
열째는 주인의 악한 일을 잘 덮어주는 것이다.
상방(上方)이란 곧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 등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방인 사문과 바라문에게 의복ㆍ음식ㆍ방사ㆍ침구와 병이 들고 약할 때 의약 등으로 공양하고
두려워할 때 잘 구원하고 배고프고 굶주리는 세상에는 음식을 잘 보시하며,
악한 일을 듣고는 잘 중지시키고 예배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상방인 사문 등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출가인(사문ㆍ바라문)도 또 다섯 가지 일로 그것에 보답해야 한다.
첫째는 그로 하여금 믿는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를 가르쳐서 지혜를 닦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를 시켜서 보시를 행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그를 가르쳐 계율을 가지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로 하여금 많이 듣게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육방(六方)을 잘 공양하면 이 사람은 재물과 목숨을 늘리고 우바새(優婆塞)의 계를 받아 지닐 수 있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공경하기 때문에 법에 공양을 올리고 법으로 스승을 삼는다. 왜냐 하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온갖 법의 실상(實相)으로써 스승을 삼기 때문이다.
[문] 부처님께서는 복덕을 구하시지 않는데 무슨 까닭에 법에 공양하시는가?
[답] 부처님께서는 한량없이 많은 겁 동안 온갖 공덕을 닦으시고 항상 온갖 선행을 행하시면서도 다만 과보는 바라지 않고 공덕에 대해서만 공경하시기 때문에 법에 공양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아나율(阿那律)장로가 미처 천안(天眼)을 증득하기 전이었는데 맹인이라서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손으로 옷을 꿰매다가 마침 바늘이 옷심을 벗어났다.
그러자 그가 곧 말하였다.
‘누가 복덕을 사랑하여 나를 위해 바늘을 바로잡아 주겠는가?’
이 때 부처님께서 그곳에 이르시어 그 비구(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복덕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너는 그 옷짚을 이리 가져오너라.’
이 비구는 부처님의 말소리임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일어나 옷을 입고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공덕이 이미 원만하신데, 왜 또 복덕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비록 공덕이 원만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공덕이 은혜를 갚는 힘임을 깊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일체 중생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게 하였으니, 그것은 이 공덕 때문이니라.’
또 그 제자를 교화시키기 위하여 말씀하셨다.
‘나도 공덕을 짓는데 너는 왜 공덕을 짓지 않느냐?’
어떤 기생집의 백 살 된 노인이 춤을 추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꾸짖어 말하였다.
‘노인께선 연세가 이미 백 살이나 되시거늘 춤은 무슨 춤입니까?’
노인이 대답하였다.
‘나도 꼭 춤을 추고 싶은 것은 아니오. 다만 자손들을 가르치고 싶어서일 뿐이오.’
부처님 또한 이와 같아서 공덕은 원만하시지만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공덕을 지으시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유모(乳母)인 대애도(大愛道)가 죽었을 때 사천왕이 상여를 보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앞에서 향로를 끌어당겨 향을 피워 공양하셨으니 그것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였다.
비록 과보를 구하지는 않지만 이로써 평등한 공양을 행한 것이니, 오직 부처님께서만 그저 부처님을 공양할 뿐, 다른 사람은 부처님의 그 공덕을 모른다.
다음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지인(智人)이라야 지인을 잘 공경하나니
지혜를 논(論)하면 지인은 기뻐한다.
지인이라야 지언을 잘 아나니
마치 뱀이라야 뱀들이 하는 말을 아는 것과 같다.”
또 『빈비사라왕작불공양경(頻毘娑羅王作佛供養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마갈국(摩竭國) 빈비(頻毘)[이곳 말로는 안색(顏色)임]사라(娑羅)[이곳 말로는 단정하다는 말임]가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세존(世尊)께 아뢰었다.
‘나는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리고 있으므로 가지고 있는 모든 자산(資産)으로 온갖 것들을 다 갖추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래와 비구 대중들에겐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를 공양하고 병들고 허약한 이에겐 의약 따위를 공양하며,
또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 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도받게 하고 세 갈래 세계를 떠나 영원토록 편안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또 『잡보장경(維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결정코 보시하되 싫어하지 말라.
첫째는 아버지요, 둘째는 어머니이며, 셋째는 부처님이요, 넷째는 제자들이며, 다섯째는 멀리서 온 사람이요, 여섯째는 멀리 가는 사람이며, 일곱째는 병이 든 사람이요, 여덟째는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은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한 끼니 음식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공양하여 다 충족(充足)시킨다 하더라도 그 음식은 또한 다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마치 그것은 샘물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 문수사리(文殊舍利)가 한 발우의 환희환(歡喜丸)으로 팔만 사천이나 되는 스님들께 공양하여 모두 충족시키고도 다하지 않은 것과 같다.
또 보살이 이 한 발우의 음식을 시방에 계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때 시방의 부처님 앞에는 음식 거리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나온다.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귀신이 사람을 한 입에 다 먹고 나서 천만 배나 나오게 하는 것과 같다.”
또 『문수사리문경(文殊舍利問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불(佛)ㆍ법(法)ㆍ승(僧)과 부모ㆍ형제에게 공양하기 위해 재물을 축적하고, 또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며 보시를 한다.
만약 이런 인연이 있으면 금ㆍ은 등 재물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이것은 죄가 되거나 허물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