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소문경론 제8권
3.7.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함
[문]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한다 함을 묻겠다.
어떠한 이치 때문에 한량없음을 말한 뒤에 다음으로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가?
[답] 방편의 힘으로써 닦았던 네 가지 한량없음의 행을 포섭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 함이니, 자기의 마음을 따라 과보를 받기 때문에 마치 네 가지 원소의 따름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에게는 두 가지의 아주 교묘하게 이롭게 하는 방편이 있음을 간략히 말한다.
외도들은 모두가 첫째가는 뜻의 진리와 교묘한 방편이 없기 때문에 한량없음을 수행하여도 애욕에 젖음을 받아서 형상세계의 과보를 이룬다.
또 성문과 벽지불승의 사람들은 열반을 취득하기 위하여 마지막이 될 선한 뿌리만을 취득하여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버리고 세속의 도리로써 하는 일의 모든 업을 버린다.
그 마음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므로 네 가지 한량없음을 사실대로 닦을 수 없고 마지막에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없으며, 다만 온갖 번뇌를 꺾어 조복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보살마하살들이라면 두 가지의 법인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을 사실대로 알 수 있으므로 중생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있음을 버리지 않고, 비록 고요함의 함이 없음을 사실대로 안다 하더라도 온갖 부처님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함이 있음에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닦은 것은 다른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하고 사실대로 자상(自相)과 동상(同相)을 알며 마음대로 자재할 수 있으나 결정코 형상 세계의 깨끗한 과보는 얻지 아니하고,
네 가지 한량없음의 행은 저 욕망의 마음에 젖음을 받지 아니하면서 마음을 따르며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 마치 네 가지 원소를 따르는 것과 같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네 가지 원소와 같은 형상으로서는 바로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니,
마치 선정하는 사람이 마음의 힘을 따라서 네 가지 원소와 자상을 버리고 여읠 수 있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함이 있음의 법 모습을 성취하는 모든 보살들은 깨끗하게 계율 지닌 공덕의 무리로서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고 마음의 힘을 따르며 과보를 성취한다 하더라도 네 가지 한량없음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이치 때문에 거룩한 이『사익범천소문(思益梵天所問)수다라』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네 가지 선정을 수행하면 욕심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 마음에 자재함을 얻음이며,
둘째 모든 선한 뿌리의 힘을 완전히 갖춤이며,
셋째 온갖 중생들을 자세히 살핌이며,
넷째 방편반야(方便般若)를 수행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방편으로 한량없음을 포섭하여 수행하면서 마음을 따라 과보 받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한량없음을 말한 뒤에 다음으로 방편을 말씀한 것이다.
[방편의 뜻]
[문] 방편이라는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방편이라는 뜻인가?
[답] 다음에 방편이라는 뜻을 말하리니,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다르게 구한다[求異]는 뜻이며,
둘째가 두 가지를 버리지 않는다[不捨二]는 뜻이다.
마음에 모든 행을 닦아 지혜로써 자세히 살핌을 방편이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다르게 구한다는 뜻은
모든 보살들이 앞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거룩한 도의 과위를 증득하기 위함도 아니고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여 세간의 마음을 버리기 위함이 아니면서도,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고 자신이 큰 보리를 취득하기 위하며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보리의 방편을 가르치기 위하고,
크게 가엾이 여김 등의 행을 깨끗이 하여 보리의 법을 취득하려 하면,
성문과 벽지불 등이 증득하게 되는 지위와 도의 공덕 등으로 다스릴 것의 법을 넘어서게 되어 보살로서 증득할 것의 거룩한 도가 앞에 나타나나니,
다르게 구한다고 하는 뜻이다.
두 가지를 버리지 않는다는 뜻은,
말하자면 보살의 마음은 세속의 도리와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온갖 함이 있는 모든 법이 모두 다 무상한 줄 실제로 보지만
중생들을 자세히 살피어 온갖 함이 있는 모든 법을 버리지 않으며 함이 있는 법을 여의지 않으며 함이 없는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와 같이 하는 보살마하살의 반야행은 물러나지 않는 원인이므로 방편이라고 말한다.
마치 거룩한 문수사리가 경전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천자야, 보살마하살의 반야 지혜는 보살마하살이 함이 있음을 행하지 않는 지혜와 함이 없음에 떨어지지 않는 지혜를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두려움이 없는 보살[無畏菩薩]이라 하느니라.
또 천자야, 만약 모든 보살이 중생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있음의 행을 버리지 않고
모든 부처님 법을 자세히 살피어 함이 없음의 행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이러한 보살마하살을 두려움이 없는 보살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마음에서 구하는 것의 이치를 따르고 마음에서 구하는 것에 알맞게 행을 성취할 수 있으면 방편이라고 하며, 또 마침내는 지혜를 완전히 갖추기 때문에 방편이라고 한다.
[문] 세속의 도리를 잘 안다 하는 이와 같은 등의 구절은, 어떠한 뜻을 말하는가?
[답] 세속의 도리를 잘 안다 함은 자상(自相)을 잘 알기 때문이며,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잘 안다 함은 동상(同相)을 잘 알기 때문이며,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 함은 자상과 동상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 다만, 세속의 도리를 잘 알고 첫째가는 뜻의 진리를 잘 안다고만 말하여도 만족하거늘,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답] 보살의 훌륭한 이치로 아는 방편을 나타내 보이려 하기 때문에 다시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고 말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외도는 실다운 반야 지혜를 멀리 여의어 오직 세상의 지혜만을 지니고 세상을 넘어서는 지혜가 없으며,
성문과 벽지불은 세간의 지혜를 버리고 다만 열반의 지혜만을 지니므로 세간의 지혜가 없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려 하여 미묘한 법을 구하기 때문에 세속의 도리 중에서나 첫째가는 뜻의 진리 중에서나 간에 방편 지혜를 닦는다.
여래께서는 보살의 훌륭한 방편 지혜를 나타내 보이려고, 그 때문에 다시 두 가지 이치를 잘 안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