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나찰소집경 하권
[고제]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온갖 행으로 고현성제(苦賢聖諦)를 관찰하셨다.
최초에 태(胎)를 받은 괴로움이 어디서 생겼기에 길이 어둠에 처하여 등불의 밝음을 보지 못하나니, 이런 까닭에 나는 것이 가장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 형상을 관찰하자, 괴로움이 생겨 견딜 수 없이 괴로움의 업이 되고, 마땅히 힘써 가리고자 하므로, 희망의 괴로움이 있어 뜻에 싫음이 없었다.
구하려고 함을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희망대로 얻음이 만족하지 않음이 괴로움이며,
약간의 방편을 일으켜 잃지 않고 보호하려 해도 점점 갈아 없어짐이 괴로움이요,
약간이나 온갖 번뇌로움이 와도 이미 저 언덕에 건너기 어렵고 안팎 사람들이 함께 다툼이 있음이 괴로움이며,
친족들이 돈과 재물을 다 흩으면 그것을 생각해 잊기 어려움도 괴로움이요,
애욕의 모든 맺힘을 여의지 못함도 괴로움이며,
욕이 가장 괴로움 되나니 그것을 없앨 수 없는 까닭이니라.
진에(瞋恚)가 괴로움이라 죄 지음을 멸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어리석음도 가장 괴로움이라 밝게 비춤이 없는 까닭이요,
교만함이 괴로움이라 뜻이 매우 치성한 까닭이며,
스스로 존대함이 괴로움이니 높고 낮은 뜻이 없음이요,
벗이 괴로움이니 마음은 나누어 여의지 못하는 까닭이며,
사랑이 가장 괴로움이니 맛에 집착해 싫음이 없으며,
간탐과 질투가 괴로움이니 마음을 열어 헤치지 못함이며,
계행이 없음이 괴로움이니 변하고 뉘우치는 까닭이요,
소견이 괴로움이니 진제(眞諦)를 보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일체의 맺힘이 있는 자기의 몸[色身]은 괴로움이요,
믿고 의지함이 없음도 괴로움이며,
과보를 구함이 괴로움이요,
모든 초목(草木)과 또 4대로 이룬 것은 함께 서로 얽매이어 모든 인연을 일으킴이요, 속의 4대도 괴로움이라 약간 변괴함이며,
모든 음(陰)으로 가짐도 괴로움이니 자연을 말미암은 까닭이요,
6입(入)도 괴로움이니 의지함을 떠나지 못함이며,
경계가 괴로움이니 바깥 빛을 부름이요,
고의 감각도 괴로움이니 몸을 태우는 까닭이며,
낙의 감각이 괴로움이니 괴로움을 인연해 나는 것이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이니 경계를 말미암아 나는 것이며,
생각[想]이 가장 괴로움이니 중생의 행으로 말미암는 까닭이요,
식(識)이 가장 괴로움이니 그것을 인연해서 나며,
늙으면 모든 기관이 야윔이며, 병이 가장 괴로움이니 4대가 따르지 않음이요,
죽음이 가장 괴로움이니 다시 다른 형상을 받음이며,
원수와 미움을 만남이 괴로움이니 마음을 함께 친근케 함이요,
하고자 함을 얻지 못함이 가장 괴로움이요,
또한 매우 괴로움이니 골자를 따서 말하자면 다섯 가지 5성음(盛陰)의 괴로움으로,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저 곳에 나아감이었다.
지옥이 괴로움이니 몸을 태우고 지짐이요,
축생이 괴로움이니 각각 서로 씹어 먹음이며,
아귀가 괴로움이니 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핍박함이요,
사람이 이 괴로움이니 가지가지로 그름을 행함이며,
하늘도 괴로움이니 복이 다하면 떨어져 저 경계를 따라 3악취에 떨어짐이요,
욕계(欲界)도 괴로움이니 사랑에 얽매임이며,
색계(色界)도 괴로움이니 색계도 또한 지혜가 없고 모두 괴로움이 되어, 이렇게 세 가지 괴로움에 핍박되어 모두 다 포섭해 가졌다.
그때 몸과 뜻으로써 행하는 까닭에 혹 한 가지 행으로써 괴로움을 지으며, 짓는 대로의 행이 모두 괴로움이 되며, 이러한 온갖 괴로움이 휴식함이 없으며, 인연이 다하지 않는지라 마땅히 색(色)이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의 소위(所爲)라고 깨달아 알라.
그리고 수다원(須陀洹)은 그 근원을 다하고,
사다함(斯陀含)은 조금 머리털을 다하지 않음이 있으나 아나함(阿那含)은 다 제거하고,
아라한(阿羅漢)에 이르면 길이 다하여 남음이 없느니라.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밝게 비추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크게 덮어 보호하심이 되셨다.
곧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백 가지 온갖 행은
항상 고뇌(苦惱)의 업을 짓고
이 색난(色難)을 품음으로써
현재에 이러한 증득이 있네.
그는 참으로 무상한지라
본래 다 공함을 알라.
자연히 법을 세운 대로
항상 스스로 깨달아 알라.
그때 어찌하여 또 이 괴로움이 생기느냐.
이른바 자기 상(相)의 경계는 다섯 가지 근(根)이 구족하나니, 만약 그 자기 상의 경계의 지혜와 서로 응하여 돌리면 매우 청정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하여 지혜와 서로 응하지 못하며,
또 날카로운 근기가 있어 어리석은 사람을 눈멀고 어둡다 하지만, 부처님과 성문(聲聞)들의 본래 지은 행은 지혜의 선근(善根)이 자기 상과 만나고 모여서, 상은 닦은 바와 같아서 고현성제를 모두 관찰하였다.
어떻게 이 생사의 괴로움을 관찰하는가?
고현성제가 있으니 모두 무상하여 굳게 가지고 버리지 않음을 알며, 모두 하나같이 이러한 마음을 일으켜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관찰하여 그는 가장 묘한지라, 괴로움에서 공함을 관찰함은 최초의 미묘함으로, 한가지로 그곳에 건넌다.
괴로움에 공함을 관찰할 때 그는 다 나누어 흩어지는 법이라 자연히 이렇게 관찰하며, 괴로움에서 내가 없음을 관찰하면 그 지혜의 믿음이 성취된다.
최초로 이런 높은 법이 있어 잘 이익되며, 자주자주 방편 등의 지혜 공덕을 구하면 희망이 없고, 삼매(三昧)의 숲에 빠짐이 없고, 바깥 티끌이 길이 다하여 또한 집착이 없었다.
생각으로써 생각하는 까닭에 티끌을 제거하고, 일체 경계의 괴로움이 없고 파괴되어 사랑이 있음을 제거하고, 또한 두려움이 없고 매우 어지러움이 없으며,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워 스스로 경계를 관찰해 거기에 광명을 나타내고 3세에서 큰 등불의 밝음을 일으켰다.
그 맺힘을 헤치고 악취(惡趣)를 제도하려고, 그 중생들을 위한 까닭에 그는 이 마음이 없고, 또한 게으르지 않아 감로 맛을 얻고 저 법을 분별하며, 한가지로 생사를 건지는 까닭에 네 가지 경계에 유전한다.
그 중생들을 밝게 비추려고 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두루 일체에 다하며, 또한 처소가 없고 전도됨이 없으며, 전도됨을 제거함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만약 괴로움이 있음을 밝힐 때
생각이 청정하기 한량이 없네.
맛이 없고 매우 곱고 밝아
사람들의 찬탄해 기림이네.
이러한 지혜는
소리와 메아리가 서로 즐겨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보면
세상 중생들을 보호함이네.
금계(禁戒)가 있음을 보면
부처님의 길이 이익됨이네.
뜻을 금강저(金剛杵)같이 잡아
일체의 공함을 분별하여서
만약 사랑의 근본을 빼내면
또한 온갖 괴로움이 없다네.
마땅히 합장하고 마음을 쉬라,
가장 훌륭해 비길 데 없네.
[부처님의 관찰]
어떤 것이 부처님의 관찰인가?
이른바 이렇게 번뇌가 없는 지혜가 있어 그는 도량(道場)을 관찰하여 처소에 또한 세력을 보고, 세상을 위한 까닭에 세상의 광명을 관찰하며, 그 중간에서 고행을 닦는 대로 모두 다 관찰하였다.
저 중생들을 자비심으로 관찰하여 편안하게 하려고 한량없이 부지런히 괴롭게 이러한 고행을 관찰하여 다른 경계에서 스스로 관찰하였다.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의 말씀하는 미묘한 법을 보면 뜻을 펴게 하고 그 쥐는 법을 관찰하였다.
만약 법의 눈이 청정하여 또한 그 법의 몸을 보면 중생의 생각이 없었다.
만약 다시 이렇게 관찰하되 또한 금계를 말씀치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