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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도의 실화
상동 성당에서 일을하고 있을때에 나보고 제주에 가서 큰외숙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선듯 대답을 못하고 있다.
그곳 제주에서 하는일이 무어냐고 물으니 가축이나 돌보고 하는일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제주 지도 상으로는 남쪽 끝 부분에 있지를 않나.
제주에는 가본일도 없고 생소한곳이라 슬며시 호기심이 난다.
가겠노라고 대답을 하고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이들이 말렸지만 그래도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곳은 마찬 가지가 아니
겠는가.! 5월초쯤에 출발을 하여 함백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역 까지와서
호남선 목포행을 타고 6시간 이상쯤 되었을때에 목포역에 도착을 했다
.
열차에서 나리니 김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목포항에서 황영호 배를타고 제주를 향해 가는데 생전처음 배를타니 한편 으로는
기분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 생각도 나고 왜그런지 슬퍼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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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왔을까 선실에서 한숨을 자는데 속이 좀 거북하여 밖으로 나오니 칠흑같은
어둠만이 깔려 있다
.
배 가장자리를 가니 파도가 심해 옷이젖을 정도로 높이 물 보라가 일어난다.
10시간정도 걸려서야 제주 항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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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도착을 하니 큰외숙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
큰 외숙과 함께 간곳은 한림 어느 민가였다.그곳에는 숙모님이랑 사촌들이 있었다.
하루를 쉬고 가는데 벌판 같기도 하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지나 거의 2시간은 족히
걸어서야 농장에 도착을 하였다 .그곳이 바로 EC돌 농장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먼곳까지 광활하게 넓다.평수로는 약20.000평이된다.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소몰아 풀먹이고 축사 청소를 하는 허드렛 일이다
.
막내로 곱게 자란 나에게는 너무도 힘에 겨운 일이었다.
그당시는 금악이라는 곳에는 지하수도 없고 수도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비만오면
상당히 바빴다.길거리에 움푹 파인곳에 물이 고여 있으면 그물을 담아다 큰 땡크에다 붇는다
.
흙탕물 이라도 며칠이 지나면 맑은 물이된다.
물이 귀한곳 이기에 아침에 세면을 하고서 그물을 버리지 않고 큰통에 받아 놨다가 축사
청소하는데 사용을 한다.
길거리 웅덩이(뎃고복구)에서 받은 물을 끓여서 식수로 사용도 한다
매일같이 하는일은 정해져 있는데 어느날부터는 변수가 생긴것이다.
닭.돼지가 병이 있는지 계속 죽어간다.
그날부터 는 죽은닭 죽은 돼지를 리어카에 싣고 저멀리 가서 구덩이를 파고 묻어 버리는 것이다.
계속 예방주사 라고 놓아주기는 하는데도 역부족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도 죽은 것들을 싣고 묻으러 가면 어제 묻은 돼지는 누가 다 가져가고
없고 빈구덩이만 남아 있다
.
EC돌 농장이 그당시 14호까지 있었는데 빈곤한 집은 굶기를 밥먹듯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그런다고 병들어 죽은 돼지를 먹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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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 집에도 식량이 넉넉지 못하여 미국에서 원조로 들여오는 사료를 얼게미체로 흔들어 내린다.
그러면 좀 굵은 옥수수 토막 밀 토막 등이 남는다
.
그것을 보리쌀과 섞어서 밥을 해먹는다. 집에 있을때는 막내라고 한줌쌀 한쪽에 넣어 흰밥을
따로 먹여 주신 어머니였는데 이곳은 전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밥이라고 해주는데 입에서는 깔깔하고 와글거려 잘못먹고있으니 작은 할머니께서 계란을 따로
주신다.닭은 많으니 알이 풍부하여 매일같이 밥대신 쌂은 계란이나 후라이를 해서 먹었지만
그것도 한 일주일 지나니 질려 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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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잠을 자려고 들어누어 숨을 쉬면 코에서는 닭의 똥 냄새가 나는것이다.
배고픔에는 무엇인들 못먹 겠느냐.....금악에는 차편이 별로 없서서 시내 한림을 한번 가려면
힘이 많이 들었다.
먹는것이 너무 부실하여 정말 괴로웠다 이사실을 어머니께서 아신다면 얼마나 애통해 하셨을거다.
채소등이 잘되어서 외숙한테 말했다.
채소와 계란을 리어카에 싣고 한림 시내에가서 팔고 오겠다고 제안을 했다.
채소와 계란을 싣고 한림까지 오는데는 큰 힘은 안들은 편이다.한라산 4부능선쯤 되는곳에서
계속 내리막길 이니 쉽게는 왔지만 그당시도 시골에서 왔다하면 그냥 거저 먹으려는 사람도 있다.
힘들여 가지고와서 팔았지만 돈은 얼마 안되어 마땅히 살만하게 없었다.
그돈으로 빨래비누 세면비누 치약을 사고서 빈 리어카를 끌고 금악을 향했다 근데 이게 왼일인가
돌아가는 길이 너무 힘이든다 빈 리어카래도 끌고 올라 가는길이니 힘이 몇배 더 든다.
겨우 도착 하여 파김치가 되어서 한숨을 자는데 팔안쪽이 따끔 한게 아닌가 얼른 일어나서 보니
상당히 큰 지내가 나의 팔 안쪽을 물은 것이다
.
지네에 물리니까 꼭 주사 맞은 기분이다. 몸속으로 무언가 쏵 퍼저나가는 느낌이 든다.
지네에 물렸다고 소리치니 촐을 베기 위하여 일꾼을 몇사서 있는데 일꾼중에 한 아주마이가
오줌을 싸서 그것으로 발라 주는것이다. 그래야 독기가 가신다고 한다
.
시간이 지나고 얼마나 되었을까 팔과 가슴이 부어 오르기 시작을 하는데 한속이 나며 숨이 가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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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목도 부어서 온몸이 나른하다.
누구인가 나를 리어카에 실고 다시 한림 병원에 도착을 하여 예방조치를 하고 나서야 깨어난것 같다.
숨쉬기도 거북하고 팔한쪽은 많이 부어서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며칠 있으면 추석도 돌아 오는데 아픔이연속 되니 부모님이 그리워 눈물만 난다.
가뜩이나 어려운 외숙에게 죄송 하기도 하구 누어 있으며 몸둘바를 몰랐다
.
운동으로 다겨진 내 체격도 이제는 형편없이 깡 말라서 볼품이 없을정도 이다.
시간은 소리없이 지나간다. 쇠약해진 몸으로 오늘도 축사청소를 하고 일이 끝나면 병사한돼지. 닭을
실어다 묻고 온다.
낫을들고 들판에 촐을 베러간다.햇살은 상당히 뜨겁다.땀을 뻘뻘흘리며 촐베기를 하는데 갑자기 손이
따끔한게 아프다. 이게무언가하고 보니 독사에게 물린것이다.왜그런지 되는일이 없이 이런사고만 연속
일어나니 삼촌에게 죄송하기도 하다.
독사에 물린데를 낫으로 손을베어서 피를 빨아내고 손목을 고무줄로 붙들어 매고 한림으로 달려갔다.
얼마를 가는데 어지럽고 내정신이 아닐정도로 머리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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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냈는지 비몽사몽 하며 한림 병원에 도착을 하여치료를 받고 침대에 누어 있으라 한다.
잠이들어 정신없이 자고나니 한밤중이었다.
간호사한테 말하니 바르는 약과먹는약을 싸주기에 받아들고 칠흙같이 어두운밤에 터벅터벅 농장으로 돌아
왔다.
잠을 자는데 몸에서는 한열과함께 식은 땀을 많이 흘리다 깊은잠이 들은것이다.
다음날오후 2~3시경에야 일어났다. 삼촌은 왼잠을 그리 오래 자느냐하며 핀잔을 하신다.
몸이안좋아서 그러는데 내생각에는 좀 야속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일하러 왔지 호강하러 온것은 아니지않나 하며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그런사고가 있구나서 부터는 몸이 정말 정상이 아닌 모양이다.힘이 너무들고.......나른 하기만 하다.
이틀만 있으면 추석이다. 그러니 부모님 생각이 더욱난다.
농장 사람들이 몇이모여서 장작을 준비하고 어데론지 가면서 같이가자 하여 따라나섰다.
큰 소한마리를 끌고 가는데 이상하게 소가 눈물이 많이 난다.
미물이라도 저 죽으러 가는것을 알았는가보다.그래서인지 자꾸만 뒤를 돌아다 보고또보며 어흥하며 소리도
질러 본다. 어느 한적한곳에서 몇사람이 어찌하더니 소를 잡은것이다.
농장 사람들이 거의다 모였는데 철엽을 하러 나왔던 것이다.소가죽을 벗겨서 여섯군데 쇠말둑을 박아 그곳
에다 소가죽을 걸고서 물을 붇고 밑에 불을 지폈다.내생각에는 불에 가죽이타서 터질것 같았는데 희얀하게도
터지지 않고 물은 펄펄 끓는것이 아닌가! 거기에다 고기를 삶아내어 여럿이 모여 앉아서 고기를 먹기시작을
한다.하루종일 놀고서야 남은 고기를 조금씩나누어 가지고 농장으로 돌아 왔다.
부실하게만 먹다가 갑자기 고기와 더불어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배속이 놀랬나보다.
설사병이나서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추석이 온건지 지나간것인지 명절에 즐겁기는 커녕 화장실 신세만 듬뿍
진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몸의건강은 급속도로 안좋아지는 것이다.
몸이 아플수록 집생각이 더욱 떠오르고 부모님도 보고 싶다.같이 뛰어놀던 친구들도 그리워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나나름대로 열심히 한고 하지만 삼촌의 눈에는 못마땅한 눈치다.
몸은 급속도로 안좋아지는데 이상하다 몸이나른하고 세상이 모두노랗케만 보인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작은 할머니에게 왜 모두가 노란색으로만 보이고 색상 구분이 안된다고 하니 할머니 걱정이 되는가보다.
가래에서는 혈기가 비치고 몸은 계속 늘어 지기만 한다.
도저히 이 상태로 이곳에 계속 있으면 꼭 죽을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삼촌의 생활도 어려운데 제대로 일도 못해드리고 마음으로는 너무 죄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나는 삼촌에게 집으로 가야 할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삼촌은 무지 섭한 표정을 짓는다.그러나 제가
더 있어봐야 더 부담만 드릴것 같아서 꼭 집으로 가서몸이 나아지면 다시오겠노라고 말씀을드렸다
할수없는지 차비를 어디서 구해주며 가라하는데 그돈 가지고는 경기도 까지 갈수없는 돈이었다.
그래도 일단 제주를 벗어나 육지에 가면 방법이 있겠지 하고 제주항구로 와서 황영호를 타고 귀향을 한다.
오는도중 진도에 들려서 오기에 진도에서 하차를 했다. 진도에 누님이 살고 있기에 백파진 진도 항에서 내렸다.
진도 읍까지 갈차비가 모자라서 매표소에서 진도 경찰서 형사 과장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전화 연결이 되어 매형 지금 백파진인데 돈이 없어 못가고 있다하니 기다리라 한다.
얼마를 기다리니 매형이 차를 가지고 오셨다 . 차를타고 누님집에 도착을 하니 누님은 내 몰골을 보고 우신다.
다음날 아침 진도 최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해보니 의사는 이지경이 되도록 무얼하고 이제 왔느냐고 한다
좀 더 늦었으면 큰일 날뻔 했단다. 누님은 이상태로 집에가면 어머니 놀라신다. 그러니 여기서 치료 하고 가라면
서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한달정도 입원 치료를 하니 시력이 정상으로 오고 몸도 많이 종아졌다.
병명은 황달이라며 폐가 많이 안좋고 체력이 약한 상태에서 제대로 먹지를 못하여 오는 병이란다.
누님에게도 죄송스럽고 이제 많이 좋아 졌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고 이야기를 하니 매형은 완전히
치료 마치고 가라한다.그러나 너무 신세를 지기에 죄송 스럽고 하여 보내달라 해서 집으로 출발해서 다음날
집에 도착을 하니 어머니 막내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느냐시며 나를 붙잡고 눈물울 흘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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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날의 서러움과 고통이 밑바침되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다
.
그러나 나는 삼촌을 원망 한번 하지않고 오늘까지도 삼촌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 한다.
내가 힘껏 도와드리지 못한것이 죄스럽기만 하다.지금은 이승을떠나셨지만 내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기에
나는 삼촌을 존경 한다.삼촌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편한히 쉬셔요._()_
나의 지난세월을 더듬어 두서없이 몇자올렸습니다. 예쁘게 보아 주세요.
現 齋. 金 柄 基.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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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제로 겪은 고생한 경험을 쓰셨군요. 지난일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의 소재가 된거지요 늦은밤에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일기를 쓰기에 모든일이 하나도 빠짐없이 쓰여지고 있는것 같습니다.일기라는 것이 실제 소중 하답니다.다녀 가심에 감사드립니다. _()_
정말 고생많이 하셨네요...하마터면 못뵐뻔 했잖아요...일기를 쭉 써오고 계신다는데 너무 존경스럽습니다~~항상 건강 하시구요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네. 감사 합니다.
모두가 힘들게 살던 시절 이야기군요,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부가 형성 되었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빈부의 격차는 있기 때문에 지금도 어려움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늦게 글을 읽고 짧은 소감의 댓글을 드립니다....남은 세상 행복하게 사시기를....
네. 따뜻한 격려의 말씀 가슴에 새기어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