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17
제9장. 천 분 부처님 항상 세상에 머물 수 있기 원하네 (願得千佛常住世)
인함印涵법사
해현은사님은 제 인생의 전환을 직접 목격하신 증인이십니다. 만약 당시에 중풍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거의 절망에 빠져있는 저를 거두어주신 은사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제가 오늘 어느 곳에 있을 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제 운명을 바꾸고 염불하여 극락으로 돌아가길 구하는 깨달음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신 스승님의 은혜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합니다.
저의 세속 이름은 장운증張運增입니다. 저의 친여동생 장운지張運芝가 1985년에 저보다 먼저 래불사 현공노화상 법좌에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제가 출가하게 된 인연은 특별합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무신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것도 믿지 않았으며, 조상의 묘소에 가서 종이를 태운 적도 없으며, 더구나 사원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찍이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한 사고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러나 저는 전혀 제 자신을 각성하지 않았으며, 고개를 돌려 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칠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1982년, 저는 사지가 마비되는 증세가 왔으며, 2년 동안 세 차례나 사지가 마비되는 증세가 와서 몸은 갈수록 나빠져 이전만 못하였으며, 세 번째 사지가 마비되는 증세가 왔을 때에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앞날이 캄캄함을 느꼈으며, 더 이상 몸과 마음이 고통으로 시달림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병의 수면제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놓고서 언제나 목숨을 끝마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통스럽게 1989년을 참고 견뎠으며, 한창 제가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어떤 한 불제자가 저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습니다. 한 권은 《아미타경백화해阿彌陀經白話解》이었고, 또 한 권은 《선재동자오십삼참善財童子五十三參》이었습니다.
《아미타경백화해》를 열일곱 번째 읽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진실로 극락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래서 불법을 공부해 극락에 태어나기를 구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자연스럽게 래불사에서 출가한 누이동생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누이동생에게 제 상황을 현공노화상님께 말씀드려주길 청하였는데, 뜻밖에도 현공께서 두말없이 명쾌하게 전신마비인 이 병든 몸을 거두어 제자로 삼으시겠다고 승낙해주셨습니다. 저는 노화상께 저는 돈도 없고, 또 일도 할 수 없으며, 단지 약간의 양식만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90년 정월 설날이 지난 후, 가족들이 저를 우선 래불사에 가서 귀의를 받도록 보냈으며, 이어서 얼마 후 곧 바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습니다. 사원에 간 그날, 저는 400근의 밀과 100근의 옥수수를 수레에 실고서 갔습니다.
래불사는 경작할 땅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매일 항상 들에 나가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제가 먹을 양식을 가지고 왔지만, 그러나 공양 시간이 되면 늘 여전히 편치 않았으며, 마음이 특히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이 밥을 저는 먹을 수가 없으며,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기왕 이곳에 온 이상, 돌아가지 말거라. 너는 한밤중에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 대전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여 네 잘못을 참회하여 용서를 구하고, 큰 원을 일으켜라. 너의 원력이 만약 커서 너의 업력을 뛰어넘을 수 있으면, 자연히 네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게다.” 시간은 벌써 오늘에 이르렀으며, 저는 여기까지 쓰고 있자니, 한 바탕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습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된 이 병든 몸을 거두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틀림없이 일찌감치 스스로 제 목숨을 끊었을 것입니다. ……
저는 스승님의 말씀을 들은 후, 매일 늦은 밤 12시경에 혼자서 대전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며 제 잘못을 참회하여 용서를 구하였으며, 불보살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가 과거에 지은 갖가지 악업을 다 털어놓았으며, 마음속으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또한 불보살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저에게 가피를 주시어 저를 100일 안에 몸을 움직여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며, 만약 100일 안에 제가 몸을 움직여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평생 동안 절대로 환속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불법에 계합하는 승려의 형상을 수립하여 일생을 부처님을 위해 지혜의 광명을 드러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또한 중생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오로지 경작에만 관심을 가질 뿐, 수확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발원하였습니다. ― 아미타불! 과연 지극한 정성이 감통感通하여 제가 이처럼 진실한 마음과 정성으로 발원하고 참회하니, 정말로 3개월이 지난 후 몸이 정상을 회복하여 들에 나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로 이미 75세의 고령의 나이가 되었지만, 바로 얼마 전 3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지붕에 올라가 일을 하였답니다!
(주)감통感通:이쪽에서 느끼는 것이 있어 저쪽에 통하는 것을 말한다. 한쪽의 행위가 상대방을 감동시켜 상응하는 반응을 불러온다는 뜻이다.
저는 2004년에 사제인 인지법사의 소개로 천불사에 갔었습니다. 당시에 저의 스승님과 사제가 직접 저와 제 여동생(여동생의 법명은 인지印芝입니다)을 천불사로 보냈습니다. 스승님께서 저에게 당부하며 말씀하시길, “이곳은 매우 가난하고 고생스러우니, 맨주먹으로 한 집안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역사가 깊고 오래된 옛 사원은 진실한 수행이 아니면, 그곳에서 머물 수 없으며, 또한 호법신이 성가시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다. 나는 자네 남매 두 사람이 진실로 닦고 진실로 행하기를 바라며, 만약 자네들이 복의 과보가 있으면, 천불사는 서서히 흥기하여 번창할 것이다.”
천불사는 청정한 도량이며, 외부의 방해가 거의 없어 청정하게 염불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낮이나 밤이나 정공법사께서 경전을 강설하시는 동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볼 때에는 하루에 12시간에서 13시간까지 보며, 매일 늘 보고 있으며 하루도 빠트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공노법사께서 강설하신 “한 권의 《무량수경》, 한 마디의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부르되, 의심하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게 하면, 틀림없이 성취한다.”(一部《無量壽經》, 一句佛號念到底, 不懷疑、不間斷、不夾雜, 決定成就)고 하신 이 말씀을 깊이 믿습니다.
저는 사원에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하는 것 이외에는 경전 강설을 듣고 염불을 합니다. 일 없이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유통되는 경전과 동영상들을 대하면 저는 모두 우선 한 번 보며, 정공노법사님께서 강설하신 것이나 혹은 노법사님께서 인가하신 것만을 인연을 맺어 유통시키고자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절대로 천불사에 유통시키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희 천불사는 언제나 반드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인광대사와 정공노법사의 가르침을 지도의 준칙으로 삼아 정토법문을 발양하여 빛나고 광대하게 하여 대대로 계속해서 전승시켜 나갈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은사님께서 왕생하시기 전에 자신의 행으로써 법을 나타내신 그 깊으신 뜻을 명심하여, 진정으로 “승가가 승가를 찬탄하는”(僧讚僧) 정신을 실천할 것이며, 결코 은사님의 세심하고 깊으신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공법사님의 법체가 편안하고 건강하시어 항상 이 세상에 머무시기를 원합니다! 온 천하의 불제자가 화목하고 단결하여 다함께 극락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께서 해주신 말씀에 따르면, 천불사가 세워진 역사가 백마사보다 훨씬 빠르다고 하십니다. 후에 인함법사님께서 사원에서 땅을 파 채소를 심다가 그때 우연히 한나라 때의 벽돌을 하나 얻었는데, 그 벽돌 위에 “영평 6년永平六年”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말하셨습니다. 지난해에 말학 역시 제 눈으로 직접 이 한나라 때의 벽돌을 보았습니다. ― 불교가 정식으로 전래된 것은 바로 한나라 명제 영평 10년(67년)입니다.
연공대사蓮公大士께서 지으신 게송에 이르길,
망심妄心이 없어야 비로소 깨달음의 길에 오를 수 있나니, (無心始可登覺路)
입이 있으면 오로지 마땅히 “아미타불”을 불러야 하리. (有口只宜念彌陀)
부처님 명호 만 마디 천 마디도 오히려 적음을 근심하고, (佛號萬千猶患少)
세상 인연의 반 마디도 이미 많음을 언짢아하네. (世緣半句已嫌多)
인함법사의 인품은 겸허하시고 신중하시어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으시며, 마음이 담담하고 욕심이 없어 명예와 이익이 없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법사의 청렴하고 공정한 기운은 금강저를 잡고 계신 위타보살에게 견줄 만하십니다! 인함법사는 사원 안에 오직 자신의 체도사剃度師이신 해현노화상님, 전계사傳戒師이신 유현노화상님, 교수사教授師이신 정공노화상님 세 분의 덕상德相만을 공양하는데 사용하는 방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이는 불제자를 위해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께서 가르치신 도리를 중하게 여기는”(尊師重道) 정신을 확실하게 실천하시는 훌륭한 본보기이십니다!
말학이 인함법사와 서로 알고 지낸 지는 햇수로 이미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사의 냉담하고 준엄하신 겉모습 속에는 실로 인자하고 후덕한 성품을 가졌던 옛날 사람들처럼 진실과 열정으로 사람들을 대하신다는 것을 깊이 잘 압니다. 인함법사는 경전강설을 듣는 일과 염불을 열심히 정진하셨을 뿐만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고 이끄는 일 역시 매우 엄격하여 빈틈이 없으십니다. 제 기억에 2000년 가을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시에 저와 인함법사 둘이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청나라 초의 대장군인 년갱요(年羹堯: 1679~1726년)의 서재에 걸려 있던 대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법사는 즐거워하면서 몸을 일으켜 종이와 붓을 찾아 그 대련의 글귀를 적어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 대련의 내용은 바로 이러합니다.
스승을 공경하여 존중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며, (不敬師尊天誅地滅)
남의 자식을 잘못 가르쳐 그르치면, 남자는 도둑이 되고 여자는 창녀가 되리라. (誤人子弟男盜女娼)
17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