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조 섭자할아버지로 부터 중시조 락자 할아버지까지 1000년에 이르는 동안 적어도 산술적으로 2에 29승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후손이 존재하였겠지만, 락자할아버지로 부터 지금 우리세대에 이르는 1000년 동안에 전국에 퍼진 천안전씨가 대략 십삼만명쯤 된다고 계산하면, 섭자선대로부터 락자중시조에 이른 1000년동안 십만명쯤 되는 전씨가 고려시대 초기에 존재했다는 가설이 나옵니다....그러면 락자 할아버지외의 전씨성을 썼던 그 많은 조상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요즘 그것이 의문입니다...
저의 추측하는 바를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왕족이나 최고귀족의 반열이 아니면 성자를 쓸 수 없었습니다...고려시대에 이르며 광종조에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응시생은 모두 성씨를 써야했으며 이때부터 본관이라는 개념이 싹트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우리 전씨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삼국시대 부터 빛나는 계유명 전씨 비문에서 보듯 우리 온전전자 성씨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우리전씨는 또한 왕건의 고려 건국에 결정적 공을 세우며 과거를 보지 않아도 관리가 될 수있는 음서의 혜택까지도 보았습니다...
락자 할아버지 자손들은 천안이라는 본을 택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도 고민할 대상이 아니었겠지요... 원래부터 환성군 할아버지께서 천안(환성)이라는 봉호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락자 할아버지외의 전씨들도 과거를 보자면 본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사는 곳이나 선대가 살았던 곳의 인연을 따라 각자 본을 정했겠지요....이렇게 해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180여개에 이르는 우리 온전전자 각 지파들이 나타납니다....각 지파들은 시조환성군 할아버지가 중요했지 과거시험 응시 외에는 본이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치 않았겠지요....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가승의 형태로 몇권의 보첩이 내려오다가 혼란기에 모두 멸실하였으며 중간선대를 잃어버리는 슬픈일을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 전씨들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삼한의 모든 성씨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천안전씨들은 그래도 빛나는 삼국시대의 위상이 있었기에 1세 섭자 할아버지와 2세 호자 익자 할아버지를 도시조로 삼을 수있는 저력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거의 모든 성씨들은 자기파의 시조를 고려 중기 이후로 부터 중시조를 삼으며 도시조를 그럴듯한 중국의 유명성씨에 붙이고 가공의 인물을 내세우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만들어 내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우리 천안파도 3세 할아버지 부터 28세 할아버지까지의 계통을 잃어버리는 참으로 애석한 일을 겪게 되었지요...조선조에 우리 전씨들은 전주이씨의 조선건국에 반하는 정치적 위상을 지녔기에 참으로 형극의 길로 내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중앙 정치에서 사라졌고 가문은 제대로 형체를 보전하는 것도 힘들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중앙정치무대에 대하여 한맺힌 유전자를 간직하며 시골훈장으로, 더러는 묫자리를 봐주는 지관으로 , 또는 약초를 다리는 민중 의원으로, 호구지책을 삼으며 절치부심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모순의 응결체가 전봉준 장군의 등장과 영도력으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이런 세월을 지내다가 일제가 강점하면서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칩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우리 전씨들은 일제의 주민등록법 시행에 따라 각자 본을 등록해야 했으며 그러자면 각자 선대부터 가계도를 그려봐야하는, 지금까지는 덮어놓았던 문제들이 터져나오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것입니다.이것은 쉽게 살던 곳을 따라서 정할 수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힘을 가진 어느 지파에서 전국의 모든 전씨를 자기 지파에 그려넣는 모험을 감행하였고 정확히 중간 선대를 모르고 살던 군소 지파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 분파도에 자기파를 합류시켰을 것입니다.우리 천안파는 단호히 그런 부당한 제안을 거부하였고 이것이 어느 힘있는 파와 지금까지 화합을 못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짜피 정선파도 중간 선대를 멸실하기는 마찬가지였고 , 천안이라는 지명과 정선이라는 지명에서 천안파가 실질적 명분과 당위성에서 대종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겠지요....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했습니다...일제시대였기 때문이지요... 친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선파를 위주로 하는 18개본이 주민등록 되었고 우리천안파는 독자적인 대동보를 전국에 걸쳐 제작하였습니다...천안 풍세에 있는 환성군 단소를 정선파에서는 이문동에 다시 만들고 그들만의 리그를 운영하게 되었으며,소위 전씨중앙종친회란 단체를 조직하여 대종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사실을 우리 천안파가 알아도 모르는 체하고 또 실제로 모르는 종인들이 많아질수록 전씨 중앙종친회에 흡수되어 빛나는 천안전씨의 위상이 흔들릴 것으로 우려됩니다...하루 빨리 천안전씨 대종회를 활성화하여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아름다운 마음씨들을 다함께 가져봄이 어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