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강순애
시간을 공유하다
『쫄쫄이 내 강아지』(이민혜 글, 김민준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
어릴 때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있었다. 거의 십 년 동안 함께 살았던 털이 부슬부슬한 똥개였다. 처음 오던 날은 어렴풋하지만 우리 삼남매가 이름을 지어 주려고 심사숙고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당시 최고 유행이었던 화장지 광고에 등장하는 ‘뽀삐’가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뽀삐’는 몸집은 작았지만 집을 잘 지키는 똘똘한 개였다.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가족을 잘 따라서 우리는 뽀삐를 무척 아꼈다. 겨울이 되면 뽀삐 집에 이불도 덮어 주고 맛있는 간식이 생기면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면서 동물과의 교감도 따뜻하고 소중할 수 있음을 배워 가던 나날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리 집 강아지 뽀삐와 함께 보낸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이야기를 만났다.
초등학생 한현이는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오는 길에 길 잃은 개 한 마리를 만난다. 개는 몹시 굶주려 보였고 마음 약한 한현이는 하루만 개를 돌본다는 약속을 하고 집에 데려 온다. 하루만 머물 개에게 ‘쫄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를 잘 돌보겠다는 한현이의 서약으로 쫄쫄이가 한현이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한현이는 쫄쫄이를 다른 개들처럼 훈련시키고 싶어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쫄쫄이의 편의를 봐 주기 위해 노력한다. 헤엄치기 연습도 배변 훈련도 쫄쫄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한다.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쫄쫄이가 좋아하는 산책을 시켜주는 일에도 열심이다. 컴퓨터를 독차지하는 누나와 항상 누나 편인 아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쫄쫄이 옆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떠돌이 쫄쫄이는 인간을 사랑하고 작은 생명도 밟지 않도록 일러 주시던 엄마를 사고로 잃었다. 그 뒤 산으로 숨어들어 외로운 날을 보냈다. 원래 누군가의 개가 되어 자유를 잃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다가오는 겨울의 굶주림과 추위가 두려웠다. 그때 작은 아이 한 명이 쫄쫄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쫄쫄이는 아이를 길들이듯 다가서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뒤를 따른다. 드디어 한현이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 쫄쫄이는 아이에게 ‘꼬맹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가족을 관찰하여 그 습성을 파악하고 사랑 받는 행동도 해 나간다. 단순히 편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하여 들어온 집이었고 인간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무뎌져 간다.
이야기는 같은 사건을 소년의 시점과 쫄쫄이의 시점에서 풀어 나간다.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그들의 동상이몽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름의 폭이 줄어든다. 서서히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한현이는 쫄쫄이를, 쫄쫄이는 한현이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 나눈 시간의 힘이자 서로에 대한 마음의 힘이다. 엄마를 잃은 슬픔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상처받았던 쫄쫄이가 다정한 ‘꼬맹이’와 함께 지내면서 “어쩌면 우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225쪽)라고 생각하게 되니 그들이 공유한 시간의 힘이 대단하다.
한현이와 쫄쫄이는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함께한 시간 덕분에 서로의 습성을 이해하고 있다. 쫄쫄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탐탁치 않아했던 아빠도 쫄쫄이와 함께 하며 마음을 열어 간다. 쫄쫄이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 주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쫄쫄이를 무시하는 친구들 앞에서 쫄쫄이의 장점을 말하며 변호해주 는 한현이의 모습과 불량 학생들에게 나쁜 일을 당할 위기에 처한 한현이를 용감하게 구해 주는 쫄쫄이의 모습을 보면 같은 언어로 대화하면서도 실제로는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 세상이 오히려 더 삭막해 보일 정도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공유하지 못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오해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현이와 쫄쫄이의 시간은 초등학생이던 한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동물의 시간은 인간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쫄쫄이가 힘없이 가족들의 곁을 떠날 때까지 서로 특별히 무언가를 해 주지 않더라도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들은 많지만 이 이야기의 미덕은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데에서 나아가 동물의 시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동물에게 느끼는 감정의 설명에는 익숙해 있지만 산속 절에서 부처의 미소를 보고 묘한 안식을 얻으며 “부처의 얼굴을 보며 나는 엄마를 떠올리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꼬맹이 생각도 났다.”(63쪽)고 독백하는 개 쫄쫄이의 감성을 묘사하는 부분은 신선하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한현이는 쫄쫄이를 길들여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쫄쫄이가 한 수 위인 것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난다. 이처럼 이야기의 화자를 변화시키는 전개 방법이 두 주인공 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을 더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좋은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 소년과 개의 사소한 일상을 사소하지 않게 풀어 나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의 감동과 더불어 독자에게 마음속 기억들을 꺼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한현이와 쫄쫄이가 함께 보낸 일상처럼 우리 가족과 뽀삐가 함께 지냈던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뽀삐는 출산도 몇 번 했는데 그때마다 서로 다른 색과 무늬를 가진 아가들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동생들과 나는 서로의 강아지를 정해 놓고 각별히 더 신경을 써 주기도 했다. 사진을 찍을 때면 뽀삐를 안고 찍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뽀삐도 표정이 있었다. 함께 지낸 지 오래 되니 뽀삐가 슬픈지 기쁜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우리 집 강아지 뽀삐의 마지막은 가족 누구도 보지 못했다. 개가 한 집에 너무 오래 살면 좋지 않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인지 죽음을 앞둔 개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서 그랬던 것인지, 부모님은 다른 집에 뽀삐를 줘 버렸다. 가족같이 지내던 뽀삐가 사라지고 나서 한동안 허전함과 궁금증을 참기가 힘들었다. ‘뽀삐는 어디로 갔을까?’,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을까?’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맹세로 개고기는 입에 대 본 적이 없다. 개고기 찬반 논쟁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역사를 가진 생명과 생명 간의 의리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은 서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여기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줄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고 추천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을 공유했던 그들과의 기억을 꺼내 보시기를…….
강순애
초등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어린이와 문학> 서평방에서 좋은 분들과 글쓰기를 배우면서 새롭고 소중한 경험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