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진작가의 책가방
돌이 새가 되는 그 순간
『돌이 아직 새였을 때』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감영진 옮김, 시공사 펴냄, 2006년)
여러모로 사는 게 팍팍한 때이다. 마음도 그러하고 주머니도 그러하다. 책 판매에 따라 여러 그래프가 움직이는 동네에 사는 이들에게도 사는 일이 거칠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래도 소소하게 사랑하면서 허술하게 실수하고 또 웃고 서로 격려하면서 버텨내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런 일상의 연결고리를 여느 사람들보다 엮어내기 참으로 힘든 이들이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다. 나는 장애인 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에 후원금을 조금씩 내는 후원자인데 그곳에서 만나는 많은 사례들을 볼 때면 소설과 영화 속의 어떤 불행도 다 하찮아보인다. 독자나 관객으로 바라보는 소설과 영화 속 불행은 우리에게 고작 2-3시간 정도만 견디면 되는 불행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평생동안의 불멸의 노동을 감내해야된다. 신체적 장애도 물론 그러하거니와 지적 장애인 부모들의 고통을 비장애인은 예상할 수도 없다. 장애인 자녀를 둔 경우,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 사연을 들어보면 갈피갈피 이해되면서도 애간장이 아파온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장애인을 만나는 일이 있듯이 동화 속에서도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읽었던 동화 속 장애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바로 페카이다.
돌 속에 숨은 새, 돌에서 나온 새
나는 얼마 전 내 한 달치 용돈을 다 털어서 (한 달치 생활비를 털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돌새 조각을 하나 구입했다.
페이스북에 간혹 작품을 올리는 조작가가 있는데 그 분이 얼룩무늬가 있는 돌을 이용해 새를 조각했다고 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페카가 생각났다. 그래서 서슴없이 구매 의사를 밝히고 가격을 타진하고 냉큼 입금해버렸다. 이틀 후 그 돌새는 우리집으로 날아왔고 난 늘 책으로 복장이 터지려 했던 책꽂이 한 칸을 비우고 돌새를 앉혔다. 페카가 아니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솜뭉치를 뜯어서 새 머리 위에 매달아주었다. 페카는 특별한 아이였다.
내게는 ‘돌이 새였다.’고 생각하는 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애 이름은 페카였다.
『돌이 아직 새였을 때』(시공사, 2006),7쪽
『돌이 아직 새였을 때』,그 책의 첫 두 문장은 그렇게 시작된다. 난 동생이 셋이나 있었고 (지금은 둘 뿐이다) 윤회사상이라는 말도 배웠고 문학 언저리를 배회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돌이 새였는지는 정말 몰랐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돌은 오래 전 모래였거나 용암이었거나 아니면 진흙같은 것이 엄청난 압력을 오랜 시간 견디어 된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한 번도 의심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페카의 그 말에 나의 돌철학은 후딱 바뀌어버렸다.
돌은 새였던 것이다. 너무 날아다녀서 지치고 힘든 새는 지금 잠시 돌로 변해서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돌이 언젠가 다시 새로 변해서 날아갈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 책에서 페카를 만난 후 나는 늘 돌멩이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넌 종달새였니? 혹시 저어새? 아니면 펠리칸?’
나는 새를 연구하여 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권오준 작가를 알고 있다. 권오준 작가가 책에서 여러 새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려줄 때마다 나는 그 새를 어떤 돌에 짝지어주면 좋을지 궁리하게 되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인생관을 바꾸거나 가치관을 세우는 그런 사람이 정말 아니다. 페카에게 반했던 모양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니까.
페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있는 상태였고 머리가 어깨에 삐딱하게 붙어 있어 자연분만이 불가능해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태어나서 2년간 어린이 궁전병원에서 여러 번 수술도 받고 살아야했던 페카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동생이었다. 황제인데다가 궁전에서 살다온 동생이었으니까. 동생이 태어났지만 집에 오지않자 페카의 누나는 엄마에게 아기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 엄마는 대답했다.
“그냥 올챙이 같았지.” (7쪽)
맙소사. 장애가 있게 태어난 아들에게 올챙이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라니. 건강한 아기라도 그렇게 말하기 어려울 텐데 페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올챙이 같다고 설명했다. 아빠는 또 어땠는가. 어린이궁전서는 곧잘 걷던 페카가 집에 와서는 걷지 않고 기어다녔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고양이와 경쟁하며 먹던 페카가 어느날 고기조각이 목에 걸려 하마트면 죽을 뻔하다 살아난다. 그 충격으로 페카는 걷기 시작했다. 그 때 아빠는 이렇게 소리쳤다.
“아이고. 우리 작은 원숭이가 드디어 뒷발로 일어섰구나!”(13쪽)
원숭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놀랍게도 페카네 가족은 페카를 불쌍히 여기거나 거추장스럽게 여기지 않고 온전히 사랑스러운 아이로 받아들였다. 페카는 사랑의 화신이기도 하였다. 페카는 누구든 사랑하였다.
“난 숲을 사랑해. 난 자작나무를 사랑해. 전나무랑 소나무도 사랑해. 그 나무들은 향이 좋 으니까. 그리고 나는 꽃도 사랑해. 꽃은 빨갛고 , 파랗고, 노랗고, 알록달록하니까. 풀은 초 록이라서 사랑하고 버섯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어서 사랑해.”(14쪽)
이런 사랑스런 말을 뇌까리는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사회생활이 어려운 페카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모두 페카를 걱정했다. 집에서와는 사뭇 다른 관계가 생겼고 반응도 매우 달랐다. 이른바 왕따가 시작되었지만 페카는 그것의 심각성도 알아채지 못했다. 페카는 이상한 말을 계속 했고 모습도 특이해서 아이들은 페카를 계속 괴롭혔다. 무언가 배우고자 학교에 갔지만 학교는 페카에게 슬픔만을 주었다. 눈 목 어깨 수술을 받고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지만 페카는 결국 선생님에게 ‘돌이 새가되면 다시 올게요’라는 편지를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형제들이 갖고 있는 책이 궁금해져서 다시 학교에 다녔지만 누군가 밀어서 우물에 빠지는 어려움도 겪는다. 어떻게 되어도 페카는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달랐다. 도덕개념도 달랐다. 자기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아무도 동의할 수 없는 규칙이었다. 수영을 배우지 못하고 대신 돌던지기를 배웠다. 돌을 던지면서 새가 되어 날아가기를 바랬다. 빚 때문에 집을 팔게된 페카 아버지는 핀란드를 떠나 캐나다로 이민가려고 한다.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캐나다에서 벌어질 모든 일을 상상했다. 하지만 페카가 백혈병 판정을 받고 그 계획은 다 취소 되고 가족은 작은 집을 새로 구하고 농장을 시작한다. 페카는 자기가 곧 죽을거라고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녔지만 금방 죽지않아 친구가 언제 죽냐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 죽을 거 같아.”(95쪽)
하지만 페카는 백혈병이 아니었다는게 나중에 밝혀졌다. 오진을 했던 의사는 페카네 집에 임신한 암소를 선물하여 젖과 송아지를 얻도록 해준다. 심지어 가족들은 의사에게 화도 안 냈다. 돌팔이 의사라고 놀리기나했다.
그 엄청난 상황에서 페카의 가족들은 페카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할머니와 헤어지지 않게 되어 기뻐하고 여러 동물을 키우게 되어 즐거워한다. 그리고 송아지를 낳은 엄마소처럼 엄마도 얼마 후 페카 동생을 낳게 된다. 기르던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구워먹게 되자 아이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먹는 고기의 정체를 심각하게 여기게 된다. 엉뚱하게도 페카는 축제날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아 다치게된다. 뇌진탕으로 쓰러진 페카는 그 돌이 새가 되어 자기에게 날아왔다고 믿었다. 페카는 그 후 몇 년을 더 살고 죽었다. 가족들은 무덤 위에 작은 돌을 얹었다. 그 돌이 새가 되어 날아가면 페카가 타고 가야되니까.
가족이라는 큰 배
페카는 음악가였고 시인이었다. 유머를 아는 익살꾸러기였고 이야기를 잘 하는 재담꾼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페카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페카라는 특별한 아이를 한 배에 태우고 조심스레 항해한 페카 가족의 이야기였다. 사랑한다는 건, 책임진다는 건, 돌본다는 건, 성장한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걸 함께 할 가족이 있다면 그 어려운 일은 짐이 아니고 꽃다발이 되는 것이다.
이 원고를 마무리하려니 어느 새 날이 밝아 새들이 우짖는다. 저 새들은 언제 돌이 되려나.
임정진 – 서울서 태어나 잡지사 기자, 사보기자, 어린이방송 구성작가 등으로 일하며 글 쓰는 일을 계속 해왔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로 일하며 동화쓰기를 하고 있다.
첫댓글 돌새입니다
정말 이쁜 새네요~ 저 돌이 새가 되어 날아갈 때는 저에게 와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