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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26일 일요일 맑음.
키프로스는 레바논에 비해 날씨가 참 좋다. 비, 바람,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다. 아침 식사는 누룽지를 끓이고 소시지와 버터로 했다. 작은 방이지만 불편함 없이 잘 잤다. 짐을 정리했다. 주인장이 없으니 열쇄가 걱정이다. 열쇄는 방에 놓고 나왔다. 숙소를 나서니 광장에 세워진 나사로 기념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보인다. 멋지다. 아침이라서 인지 도로에는 사람은 없고 햇살만 가득하다. 어제 까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상하다. 바다가 나온다. 아침 바다는 너무 싱싱해서 추워 보인다.
하얀색 빌딩들이 눈부시다. 동양인들이 해변의 무대에서 행사를 준비한다. 중국인인줄 알았는데 국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다. 아마도 구정행사를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제 25일이 우리나라도 설날이었구나. 구정인줄도 모르고 지냈구나. 구정을 보낼 아이들과 손자들이 생각난다. 걷다보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시간표가 붙어있다. 요일별로 시간별로, 도시별로 다르다. 주로 커다란 도시인 라르나카, 니코시아, 리마솔, 파포스를 왕복하는 시간표다.
어제 탔던 425번 버스도 도착했다. 아마도 여기를 들리는 것 같다. 정류장에는 작은 표지판이 있는데 Bus Stop, Karaolis Kiosk(간이 건조물). Karaolis라는 말이 궁금했다. 찾아보니 사람 이름이다. 카라올리스(KARAOLIS)는 독립 운동가였다. 키프로스는 수십 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다. 재무부 건물 앞에 있는 동상을 보면 영국의 지배하에 항거한 투사 중 한명을 기념한다. 이 투사의 이름은 카라올리스(1933~1956), 다만 그때만 해도 완전 독립국을 세우자기보다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국인 그리스에 합치자는 것이 아이디어였단다.
그래서 이동상은 정작 키프로스 국기는 없고 그리스 국기만 걸려있다. 이 투사는 투쟁 조직에서 영국의 간첩역할을 하던 사람을 찾아내 임의로 처단했다. 23세 나이에 영국의 키프로스 식민 당국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까뮈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탄원서를 내서 구명활동을 했지만 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뜻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터 시티 버스는 주로 초록색이다. 리마솔로 가는 초록색 버스가 먼저 왔다.
그 다음에 우리가 탈 니코시아 행 버스는 하얀색이다. 오전 9시에 출발한 우리 버스는 약 1시간을 걸려 니코시아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 터미널 같이 생겼는데 매표소는 보이지 않고 버스 타는 곳만 있다.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주로 인도인을 비롯한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터미널 입구에는 작은 흉상도 하나 보이는데 누구의 동상인지 잘 모르겠다. 터미널을 향해 모인 사람들이 찬양을 하고 있다. 인도인들 같다.
9명 정도의 청년 여자들이 모여 드럼과 템버린 그리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같다. 예수 믿는 인도사람들 반가웠다. 숙소를 찾아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다. 골목길을 간다. 좁은 인도라 한사람씩 줄 지어 걸어간다. 걷고 있는 이 길이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다. 니코시아는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의 수도로 인구 약 35만 명의 도시이다. 그리스 어로는 레프코시아, 터키어로는 레프코샤로 발음한다. 도심 중심의 원형 성벽은 독립 이전부터 키프로스의 중심이었다.
1974년 터키계 주민 보호 명목으로 분단되었지만 남. 북 키프로스가 공히 수도로 정하고 있다. 레프코시아(Lefkosia)는 그리스나 터키어로 똑 같이 니코시아(Nicosia)이다. 니코시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Bronze Age : 2500 BC)부터란다. 고대에는 이곳을 '레드라'(Ledra)로 불렀으며, '니코시아'는 비잔틴 어인 '레프코시아'(Lefkosia)가 중세 때 잘못 전해져 붙여진 이름이다. 니코시아는 330~1191년에 비잔틴 인들이 지배하다가 1192~1489년에는 뤼지냥가(家)의 왕들이 차지했으며 1489~1571년에는 베네치아, 1571~1878년에는 투르크, 다시 1878~1960년에 영국이 통치하는 등 여러 세력들에게 지배당했다.
그래서 니코시아는 키프로스 역사의 흥망성쇠와 동·서방 양쪽에서 받은 영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래된 도시다. 북쪽 키레니아 산맥과 남쪽 트로도스 산맥 사이에 있는 메사오리아 평원 중앙의 페디오스 강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해발 150m쯤 된다. 이곳은 키프로스 교회의 대주교가 있는 지역인데 그 교회는 자치독립교회로 자기 지역 대주교와 주교들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BC 7세기에 왕국이었던 니코시아는 4세기부터 주교관구가 되고 10세기 이후 정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성벽을 두른 요새는 처음 뤼지냥가의 왕들이 건설한 것을 후에 베네치아 인들이 둘레 5㎞로 축소 개축한 것이다. 니코시아는 도로사정이 좋아서 키프로스 섬의 다른 주요도시들과 연결되어 있다. 숙소를 찾았다. Kipros Accomodation. 좀 허술해 보이는 숙소다. 1층에서 키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간다. 주인장의 기념품들이 실내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국경을 건너 북쪽의 니코시아를 둘러보고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면 키레니아(Girne)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국경출입국 관리소가 있는 Ledra Street Crossing Point로 걸어간다. 숙소에서 가까웠다. 300m 정도 골목길을 가면된다. 국경 경계는 커다란 드럼통을 쌓아서 막아놓은 모습이 허술하고 거칠어 보였다. 키프로스에서 북 키프로스로 들어가는 국경 검문소다. 마을 가운데 평범한 골목길에 민감한 국경 검문소가 있다. 무장경비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표소 같은 부스(Booth) 창문에 "여권 검사(Pasaport Kontrol)"라는 표지가 국경 표시의 전부지만 삼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불법입국과 밀수 엄금"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서 있어 행동거지가 공연히 고분고분해진다. 트집을 잡아 입국을 거부할 수 있단다. 오른편 건물 벽에는 "레프코시아, 최후의 분단 수도"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오른편 깃대 뒤의 흰 부스가 남 키프로스 검문소이다. 골목길에서 남과 북의 국경선을 보았다. 골목의 국경 검문소 앞 광장에는 기념물도 있다. 타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PEACE’라는 글씨가 벽에 붙어있고 그 앞에 빈 의자가 있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여권을 제출하고 출국을 체크한다.
여권검사를 한 후 돌려받고 출국, 다시 북 키프로스 사무실에서 입국 신고를 한다. 그저 여권 검사만으로 이루어진다. 잠깐 동안에 우리는 북 키프로스에 들어왔다. 크게 다른 모습은 없다. 북 키프로스(North Cyprus) 상가 거리다. 사람과 물건으로 남. 북을 구분할 수는 없으나 북(北)이라는 선입관은 이곳을 쓸쓸하게 느끼게 한다. 터키의 지배 아래, 독립국인 "북 키프로스"지만 국경을 통과하고 나면 터키 본토 같은 느낌도 든다. 아이들 소꿉놀이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왕래가 자유롭다.
달라지는 것은 터키국기와 북키프로스 국기 둘이 보일 뿐이다. 골목길을 가다가 처음 만난 것은 Büyük Han이라는 캬라반 사라이다. 아나톨리아 한 건축 양식으로 축조된 역사적인 빌딩인데 지금은 카페와 식당 등 쇼핑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1572 년 키프로스 최초의 오토만 주지사 인 Muzaffer Pasha가 지은 것인데 여관이다.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여관 중 하나란다. 모양이 서로 닮아 있고 중앙에 작은 회교 사원이 있는 68 개의 직사각형 방으로 구성된 Büyük Han은 아나톨리아의 오스만 시대 바자 비즈니스 센터의 구조를 갖고 있다.
영국 지배 때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나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키프로스 고유의 모든 골동품, 수공예품 및 기타 미술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관광 정보 센터도 있다. 소규모 공연과 문화 활동이 열리는 광장으로 정통 터키 커피와 현지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찾아간 곳이 전 주교의 저택(Former Bishop's Palace)이었다는 Kumarcılar Han이다. 이도 캬라반 사라이다. 입구 광장에는 레스토랑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골목을 돌아서 성소피아 성당을 찾아갔다. 이 도시의 종교적·정치적 변화를 말없이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를 의미하는 성소피아 성당이다. 대주교 유 스투 르게 드 몬타이구 (Eustorge de Montaigu) 대주교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중세 프랑스 건축물의 훌륭한 본보기다. 3 중 구조로, 왕, 선지자, 사도 및 감독이 묘사되었다. 이 성당은 예루살렘의 루시건왕(Luzinian)들의 통치 기간 동안 키프로스 왕의 대관식 교회로 사용되었다.
또한 1310 년에 기사단 재판을 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성당은 1208년에 짓기 시작해 1326년에 완성했으나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한 뒤, 1571년 키프로스의 주요 이슬람교 사원(Selimiye Camii)으로 바뀌었다. 1954년에는 다시 셀림 사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키프로스를 정복한 술탄 셀림을 기념하였다. 건물 자체는 정문과 외관 자체에 수많은 고딕 양식의 요소가 보이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다. 지금은 모스크로 사용 중이다. 종교적 이슬람 시설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내부를 보고 싶어 하는 신자와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모스크의 내부는 매우 넓고, 매우 고급스러운 오리엔탈 카펫으로 깔려 있으며, 2500 명이 동시에 예배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왼쪽과 오른쪽에 기념비적 인 콜로네이드(주랑柱廊)가 있으며, 기독교 교회를 연상시킨다. 키프로스 섬에서 일어났던 격동적인 역사를 생각나게 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소였다. 성당을 나왔다. 주변에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길을 걷다가 로터리(Atatürk Myd 아타튀르크 광장)를 만났다.
중앙에 기둥 하나가 서있다. 베네치아 기둥(오벨리스크)이란다. 베네치아에 의해 1550년에 세워진 것이다. 바닥에는 6개의 이탈리아 부족의 엠블럼(문장)이 있었단다. 오스만 시대에 사라예누(Sarayönü) 모스크 안뜰에서 가져온 기둥이란다. 이전에는 성 마가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 모습이 있는 기둥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광장 서쪽에 있는 정부 청사는 1900년대 초에 영국에 의해 건축되었다. 동쪽을 향해서 분수가 있다. 영국 총독 관저로 사용되었는데 광장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왕위 선언과 관련이 있는 건물이다.
길 오른편에는 작은 건물이 보이는데 박물관(Dr. Fazıl Küçük Müzesi)이란다. 의사 바질 퀴쿡의 집이다. 1925년에 지어졌는데 그의 가족이 수년간 살았던 노란 돌로 지어진 집이다. 1층은 병원으로 2층은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금요일은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백성의 지도자 였다고 한다. 2014년 3월 14일 집은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Girne Street다. 바로 이어져 또 박물관(Mevlevi Tekke Museum)이 보인다. 둥근 지붕 여러개가 이어져보이는 오래된 집이다.
문이 닫혀있다. 터키에서 보았던 무용 벨리 댄스에 관한 민속자료가 있는 것 같다. 키레니아 게이트(Girne Kapısı)가 나온다. 베네치아 시대에 지어진 성채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그 중 하다. 북부 키프로스 공화국의 경계 안에 있다. 키레 니아 게이트 (Kyrenia Gate)에는 1821 년 오토만 (Ottomans)이 수리 한 성채가 세워졌다. 그 목적은 도시에 올 수있는 공격으로부터 보호 방어하는 것이다. 문을 지키는 경비원은 호 로즈 알리 (Hroz Ali)였으며 평생 문을 떠나지 않았으며 121 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Kyrenia Gate 옆에는 1963 년 10 월 29 일에 만들어진 Ataturk 동상이 있다. Kyrenia Gate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가 북부 키프러스를 관광하는 출발지로 사용되고 있다. 1567년에 베네치아의 군인이자 건축가인 프란체스카 바바로((Fransesca Barbaro)에 의해 건축되었단다. 그 후 파괴되었다가 1821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아타튀르크 동상이 2개나 보인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키레니아로 가기로 했다. 미니 버스가 대기해 있다. 북 키프로스에서는 니코시아를 LEFKOSA로 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남과 북이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표현하며 살고 있음이 생각났다. 차표를 끊었다. 두당 15터키 리라(TL)다. 우리는 터키 리라가 없어서 유로로 계산을 했다. 왕복은 3유로, 편도는 2유로였다. 우리는 왕복으로 표를 끊었다. 차는 북을 향해 달려간다. 처음 동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돌려 북으로 간다. 금방 도심을 벗어나 황량한 들판을 간다. 들판 가운데 사거리가 나온다. 가운데 로터리가 있고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자이레 서클이라고 부른다. 국가적 투쟁과 해방 기념비란다.
이 로터리가 북쪽으로 키레니아, 동쪽으로 파마구스타, 서쪽으로 귀젤유르트로 나누어 지는 지점이다. 로터리를 벗어나자 들판에 어울리지 않게 지어진 극동 대학교(Near East University) 건물이 멀리 보인다. 좁은 오솔길을 걸어나오는 젊은이가 보인다. 아마도 대학생 인 것 같다. 달리는 차량 앞에는 나무 없는 황량한 산이 나타난다. 산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터키 국기와 키프로스 국기가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엄청 클 것 같다. 저 국기를 산 중 턱에 그린다고 엄청 힘들었겠다.
아마도 돌로 그려서 색깔을 입힌 것 같다. 산을 넘어간다. 키레니아 산맥(Kyrenia Mountains)을 넘어간다. 북 키프로스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키레니아(Kyrenia)는 북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키레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북쪽 해안과 나란히 160 km 를 뻗어있는 키레니아 산맥을 넘어야만 한다. 키레니아 산맥 중턱에는 남쪽에서 북키프로스로 들어서면 곧 바라다 보이는 거대한 터키 국기의 이슬람의 초생달과 별 그리고 북 키프로스의 국기를 등지고 간다.
방대한 크기의 홍보시설을 설치한 터키계 북 키프로스인들이 그동안 받아온 박해에 대한 반발의 크기인 것 같이 보인다. 키레니아 산맥은 최고봉 1024 m 에서 740 m 고지들의 연봉이다. 내려가는 도로를 벗어나자 바로 키레니아다. 터키어로는 기르네(Girne)로 불린다. 우리도 그냥 기르네라고 불렀다. 우리가 내린 정류장을 중심으로 항구쪽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고 항구를 벗어나 바다에서 멀어지는 시내 쪽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시가지가 펼쳐진다. 항구쪽을 중심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항구 한쪽에 우뚝 솟아있는 성채가 보인다. 여기가 키레니아 성채인 것 같다. 바로 키레니아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성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건물 옥상이 보인다. 카페가 있는 마당이다. 물 담배와 음료수를 마시는 젊은이들이 앉아있다. 시원하게 성채가 내려다 보여 좋았다. 항구를 향해서 걸어간다. 도심에는 시계탑 건물이 제일 높아 보인다. 현대적인 거리 모습을 지나간다. 그늘에는 커다란 개 세 마리가 늘어지게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나무 숲이 있는 작은 공원에는 둥근 유적이 하나 보인다. 시청 방향으로 걷다가 항구 쪽으로 내려간다. 골목에 독서를 하는 모양의 동상을 만났다. 아내가 함께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좀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어부 동상이 나타난다. 함께 사진을 또 찍었다. 드디어 항구가 나왔다. 배들이 산만하게 정박해 있다. 항구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 그리고 기념물 가게들이 항구를 감싸고 있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모두 관광객인것 같다. 천천히 항구를 둘러본다. 길게 이어지는 방파제를 걷는 사람들을 따라간다. 바다와 만난다.
바다와 항구와 커다란 성채가 어루러져 멋진 풍경이다.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 까지 보인다. 천천히 방파제 끝 까지 걸어간다. 점심시간이 된 것 같다. 준비해 간 사과를 꺼내서 방파제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잠시 사과를 먹었다. 분위기가 좋다. 성채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냥 여기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항구를 벗어나 골목길을 걷다가 아주 오래되고 허름한 작은 교회(Chrysopolitissa Church)를 만났다. 작은 십자가가 교회임을 알려준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된 벽 조각 장식품에 백향목 열매 모양이 보인다. 포도나무 잎 장식도 보인다.
레바논에서 백향목 솔방울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구분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오래된 나무 대문은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다. 만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 앞을 지나간다. 자세히 보니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내용이다. 작은 식당에 음식 그림이 보인다. 터키 음식들이다. 케밥(Kebabs)은 꼬치 구이를 접시에 담아 놓은 것이고 스와르마는 둘둘 말아 손에 들고 먹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Doner이라고도 불렀다. 우리는 그냥 모두를 캐밥이라고 부르며 다닌다. 작은 공원과 거리에는 레몬 나무도 보이고 오렌지 나무도 보인다.
가끔 석류 나무도 있어 보기 좋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성채가 내려다 보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언덕에 올라서서 바다와 함께 있는 성채를 본다.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언덕에 서서 내려다 보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제는 돌아간다. 이번에는 조금 큰 25인승 버스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금방 니코시아 기르네 문 앞에 도착했다. 성벽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배가 고프다. 식당을 찾아들어갔다. 제법 크고 깨끗한 식당이다. 글을 모르니 그림을 보고 주문을 했다.
커다란 접시에 담긴 고기와 야채를 주문했다. 음료수는 아이란이 나온다. 거기에 새콤하고 매콤한 고추절임이 나와서 아주 잘 먹었다. 이제 다시 남과 북의 국경을 향해 걷는다. 기둥이 있는 로터리를 지나가는데 걷는이들이 모두 남으로 향한다. 환전소가 보인다. 유로는 6500리라, 달러는 5900리라, 영국 파운드는 7700이라고 적혀 있다. 환전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갖고 있는 유로를 사용하는 것 같다. 물담배 그림이 보이는데 SHISHA라고 불리는 것 같다. 국경(PASAPORT KONTROL)에 도착했다.
먼저 북쪽의 사무실에서 출국 확인을 받고 조금 걸어 남쪽의 사무실에서 입국 확인을 받는다. 다시 니코시아로 온 것이다. PEACE라는 글씨 앞에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글씨같이 평화로운 부부로 살기를 바래본다. 골목길을 걸어 숙소에 잠시 들었다. 모기 향이 있어 반가웠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늦은 오후 시간은 니코시아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전에 찬송소리가 들려 잠시 들어갔던 인도 펀잡이 교회를 지나간다. 예배 처소가 제법 많이 보인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몰려와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거리에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엄청 많다. 이곳에 일하러 와서 쉬는 날이라 모두 시내로 나와 친구들을 만나고 쇼핑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란다. 주말에만 있는 풍경이란다. 우리나라에서 보듯이 아시아 마켓도 있다. 우리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그 앞에 성채를 끼고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키프로스 박물관(The Cyprus Museum)을 찾았다. 고고학 박물관이다. 키프러스 박물관은 1857~1901년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박물관에는 도자기, 귀금속, 조각품, 주화, 청동제품 등, 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 그레코-로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를 망라하는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부터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하다. 문이 닫혀있다. 건물 앞만 구경하고 또 걸어간다. 길 건너편에 오페라 하우스(Nicosia Municipal Theatre) 건물이 보이는데 여기도 닫혀있다. 옆에는 동상이 하나 있고 공원으로 이어진다.
좀더 걸어가니 파포스 게이트(Paphos Gate)가 있는 로터리가 나온다. 여기에도 젊은이의 동상이 있다. 저항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작은 깡통과 철조망으로 엉켜있는 국경선이 있어 더 가지 못하고 돌아선다. 커다란 교회가 보인다. 천주교 성당(Holy Cross Catholic Church)이다.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니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미사 중이다. 교회는 큰데 사람은 적구나. 이상하게도 이 성당은 북키프로스 영역에 있는데 입장은 남키프로스에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파마구스타 게이트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볼거리들을 찾으며 간다.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팔각형의 성채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우리가 만난 게이트는 북쪽의 기르네와 방금 지난 파포스 게이트다. 성곽 안에는 구도시가 들어서 있고 성곽의 모양은 암석 절단용 원형 톱날을 닮았다. 성곽 주변은 물이 담겨있지 않은 해자 부분이다. 이 성벽을 베네티안 성벽(Venetian Walls)이라고 한다. 베니스가 키프로스 섬을 지배한 것은 1489~1571 어간이었고 베니스 인들이 터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성벽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1567년부터였다.
그러나 아름답고 견고한 성벽도 1571년에 쳐들어오는 터키의 입성을 저지하지 못했다. 성내로 진입하는 출입구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3개의 출입구가 가장 중요한 문이다. 파마마구스타 문(Famagusta Gate)은 현재는 전시실,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입구의 통로였던 공간은 상당히 넓어 훌륭한 전시실과 이벤트 장소로 활용되고 있단다. 파마구스타 문을 향해 걸어간다. 관공서 건물인 것 같은 아담한 건물을 만났다. 키프로스 국기와 그리스, 그리고 유로 국기가 걸려있다.
작은 모스크(Bayraktar Mosque)를 만났다. 아담한 모스크가 잘 가꾸어진 정원 안에 있다.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가 있고 꽃들도 잘 자라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걸어가는데 커다란 축구장이 나온다. 잔디가 잘 깔려 있다. 유적터가 나온다. 좀 더 걸어가니 기념물(The Liberty Monument)이 나온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닌데 하얀 대리석 조형물에 사람들이 많이 조각되어있다.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있었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 같다.
이 독립 기념비(Liberty Monument)는 1960년 영국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지붕 위에서 두 명의 병사가 도르레의 쇠사슬을 당기면 감옥의 철창문이 올려지고 감옥 속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자유를 찾는다는 내용인 것 같다. 파마구스타 문까지 가기에는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주변에 있는 볼거리를 둘러 보기로 했다. 길을 건너니 수도교(水道橋 Nicosia old aqueduct)가 보인다. 청년 서너 명이 사진을 찍고 있다. 작고 낮은 수도교인데 최근에 보수된 느낌이다.
안으로 더 들어가니 대주교 궁전(Archibishop's Palace)이 있다. 아주 멋진 건물이다. 1960년. 대주교의 궁전은 신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니코시아의 중심에 위치한다. 키프로스 교회 당국의 본부다. 키프로스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여드는 방문객들이 깊은 관심과 존경을 받는 중요하고 거룩한 곳이다. 궁전 앞 광장에는 대주교 Makarios III의 하얀 대리석상이 있다. 초대 대통령을 지낸 Makarios III 대주교 (1913-1977)는 위대한 성직자, 위대한 정치인, 키프로스 애국자였다.
마카리오스 주교가 이용하던 전용차가 대통령 궁 앞뜰 한편에 전시되어 있다. 번호판에는 AK(Archbishop Kypros) 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키프로스의 대주교라는 의미이다. 메르세데스 600과 링컨 컨티넨탈이다. 주변에는 박물관이 여러개 있다. St. John's Cathedral를 중심으로 Byzantine Museum, The National Struggle Museum, Cyprus Folk Art Museum 그리고 작은 미술관과 그리스 국기가 달려있는 고등학교 건물이 있는데 역사가 오래되 보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사람들도 사라지고 쓸쓸한 거리가 되었다.
서둘러 숙소 방향으로 향했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구시가지 중심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상가가 이어지는 화려한 거리다. 사람들도 많고 카페, 식당 등 불 밝힌 가게들이 이어진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인도와 동남아시아 젊은 사람들이다. 슈퍼에 들러 소고기를 샀다. 5유로를 주문했는데 많다. 밤 거리를 걷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있다.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하루 더 여기에 머물 것이고 모레 찾아갈 파포스의 호텔을 찾아서 예약을 했다. 많이 걸은 날이다.
1월 26일 경비- 숙박비 37.4 버스비 14, 캐밥 아이란 6, 소고기 5.5
계 62.9유로*1350=84,915원
누계3,13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