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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16일 토요일, 맑음.
*걷기-여섯째 날
*에스떼야(Estella)에서 로스 아르꼬스(Los Arcos)까지.
*이동거리 : 21.5km.
*누적거리 : 138km.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출발 전에 발가락에 골고루 듬뿍 니베아 크림을 발라주는 것이다. 원래는 얼굴에 바르려고 가지고 간 것인데, 발에 물집이 생겨서 아프게 되어 걷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함께 묶고 있던 순례자분이 바셀린을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알려 주셨다. 바세린은 없고 가지고 있던 니베아 크림을 바르게 된 것이다. 그런 후 발가락 양말을 신고 출발한다. 결과가 아주 좋아 발 이 점점 호전되는 것 같다. 통증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침 7시 출발이다. 서늘한 아침이지만 걷기에 아주 좋다. 속이 비어 더욱 몸이 가벼운 것 같다. 마틴 광장에서 왼쪽으로 돌아 골목길을 간다. 함께 출발한 동료들이 산 페드로 교회를 올라가보고 싶다고 해서 잠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정원을 보고 내려와 걸어간다.
골목길을 벗어나는 가 싶더니 계속 마을이 이어진다. 일찍 카페(Bar)를 만났다. 일단 먹기로 했다. 들어가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우유를 탄 커피 라떼와 빵은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커피에 with milk라고 주문하면 따듯한 커피라테를 준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부터는 커피를 자주, 매일 마시게 된 것 같다. 잠시 앉아서 아침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행복한 시간이다. 산티아고 666km라는 빛바랜 스티커가 보인다. 마을에는 사람 형상에 별이 들어있는 조형물을 세워두었다.
여기가 아예기(AYEGUY)마을이다. 산초 가르세스 4세의 양도로 이라체 수도원에 소속된 중세 교회의 영지였던 아예기는, 이웃한 에스떼야의 도시화에 밀려나지 않고 전원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근처에 에스떼야가 있고 몬떼후라, 이라체 수도원 등이 있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다. 지도에는 로스 아르꼬스 20.6km라고 씌어있다. 성당을 지나간다. 담배 가게에 붙어있는 전광판에는 13℃를 알려준다. 왼편에는 산이고 잡목 숲길을 간다.
예쁜 집이 나타난다. 건물 벽을 아름답게 장식해 놓았다. 십자가 모양, 순례자들, 병도 붙어있다. 나무 형상을 중심으로 크고 특이하게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이라체 포도주 창고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맛 좋은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한 잔의 포도주는 힘든 길을 걷는 순례자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준다.
금주가인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 포도주의 샘 (Fuente del Vino)에 도착했다. 수도원을 나오다 보면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한 수도꼭지가 나온다.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왼쪽 수도꼭지에서는 물(AGUA)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보통 수도와 다를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머지 수도꼭지에서는 포도주(VINO)가 나온다. 까미노를 대표하는 이 수도꼭지는 보데가스 이라체라는 포도주 제조업체가 만들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온 순례자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 잔의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다. 네모난 돌 위에 새겨져 있는 문구처럼 산티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한 사람은 마시지 못했단다. 우리는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패트병에 담아가기도 했다. 오늘 구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고 장소다. 건너편에는 커다란 성당(Monastery of Santa Maria de Irache)이 있다.
산 베르문도의 사진과 설명이 붙어있다. 깔끔한 주택을 지나간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17.9km, Azquete 4.3km 표지판을 만났다. 색깔과 문양이 유태인 냄새가 나는 표지판도 만났다. 마을길을 걷는다. 학교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있다.
그네도 정다워 보인다.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캠핑장에는 각 나라 언어가 적혀 있다. 영어의 Welcome, 우리말의 ‘어서 오세요’ 가 눈에 들어온다. 병풍 같은 하얀색 바위산이 멋지다. 날씨는 좋다. 공기는 맑고 햇살이 가득하고 바람은 솔솔 이다.
하늘 청청, 공기 상큼, 보리밭과 유채 밭은 구릉에 가득하다. 커다란 나무로 터널을 이룬 숲을 간다. 황토 들판 길을 올라간다. 삼각형 모양의 산이 멀리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삼각형 산 있는 곳이 몬 하르딘이다. 오르막에 있는 마을 성당이 보인다.
아스케타(Azqueta)마을 진입 언덕 위에서 농경지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 아스케타에서는 , 평온함과 조용함을 느낄 수 있고 로끼스 산, 우르바사 산, 몬떼후라 산, 몬하르딘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스케타와 인접해있는 푸엔떼 데 라 뻬냐(Fuente de La Pena)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 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스케타에서 순례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친절한 빠블리또(Pablito)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손수 만든 개암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선물해준다는데, 만날 수 없었다. 산 뻬드로 아뽀스똘 성당 (Iglesia de San Pedro Apostol)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중세의 성당 건물을 16세기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바꾸어 재건축 했다.
카페(Bar)에 잠시 들렀다. 사람들이 많아 그냥 돌아 나온다. 아르꼬스(Los Arcos) 13.4km, 몬하르딘(Monjardin)1.5km라는 이정표도 보인다. 오르락 내리락 휘어진 길을 걷는다. 오른쪽에 몬하르딘 산(해발 650m)이 가깝게 다가온다.
뜨거운 태양에 우산을 꺼내 쓴다. 돌담을 돌아 간다. 흰색 봄꽃이 가득하다. 몬하르덴 산 정상에 바위와 성채가 보인다. S자 오름길이다. 펼쳐진 농지는 포도밭과 밀밭, 유채 밭이다. 양탄자를 펼쳐놓은 것 같다.
포도 나무가 심겨진 언덕 아래 와이너리 건물이 보인다. 샘물이 있는 건물이 길가에 있다. 무어인의 샘 (Fuente de los Moros)이란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으로 들어오기 전 까미노 위에 있는 13세기 풍의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진 샘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로 들어서기 전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은, 몬하르딘 산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조용한 마을이며 산 정상에 산 에스떼반 성의 폐허가 남아 있다.
나바라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이 성을 점령했었으나 이슬람의 왕 바누 까시에게 빼앗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브로 강의 비옥한 분지를 차지하기 위한 레콩키스타가 시작되었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운동, 再征服運動, 국토회복운동)는 8세기초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무어인들)로부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벌인 일련의 전투. 운동을 말한다.
9세기에 지어진 몬하르딘 성 (Castillo de Monjardín)은 10세기엔 데이오 빰쁠로나 왕조의 요새로 10세기에 산초 가르세스가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요새이다. 산 에스떼반 데 데이오 성(Castillo San Esteban de Deyo)으로도 부르는 이 성은 14세기에 보수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산 에스테반 성에는 십자가의 팔과 양치기 팔의 전설이 전해진다. 산 에스떼반 성에서 이슬람인들을 정복했던 전투가 일어났던 날 새벽, 나바라의 왕 산초 가르세스 1세에게 아름다운 십자가가 나타났다고 한다.
왕은 전투가 어떻게 될지 확신이 없었고 혹시 이슬람교도들에게 이 십자가를 빼앗길까 봐 십자가를 숨겨놓았는데, 전투가 끝난 후 왕은 십자가를 다시 찾지 못했다. 십자가는 그 후 한 목동이 염소가 가시나무 앞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까지 잊혀 있었다.
목동은 해로운 짐승이 숨어 있는 줄 알고 가시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돌을 던졌는데 자기가 던진 돌에 아름다운 십자가의 한쪽 팔이 부서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목동이 절규하며 “십자가에 돌을 던지기 전에 제 팔을 말라붙게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라고 하자, 목동의 팔이 말라붙어버렸다고 한다. 그 후 십자가를 다른 장소로 옮겼으나 십자가는 계속해서 처음의 가시나무 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불리는 비야마요르 성당을 짓게 되었고 신앙심 돈독한 목동의 팔은 회복되었다. 샤를마뉴와 죽은 기사들의 전설도 있다. 나바로의 장군 푸레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샤를마뉴는 하나님께 부하 중 누가 죽게 될 것인가를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이 샤를마뉴의 기사 150명의 갑옷에 빨간 십자가를 표시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샤를마뉴는 이 기사들을 쉬게 하고 다른 기사들과 푸레를 물리치고 돌아왔으나 이미 그 150명의 기사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 (Iglesia de San Andres Apostol)을 만났다.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은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신랑(身廊, Nave, 네이브) 또는 중랑(中廊)은 교회(성당) 건축에서 중앙 회랑에 해당하는 중심부로서 교회 내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넓은 부분이다. 보통 긴 의자가 설치되어 예배자를 위한 공간이다. 신랑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반원형 후진이 있다.
신랑의 천정은 아치 모양 돔으로 덮여 있고, 반원주의 기둥 장식은 양식화된 식물무늬가 새겨져 있다. 포도 잎 같다. 또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과 아치, 아름다운 기둥 장식과 더불어 성모자상, 기사들의 싸움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거대한 탑은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이다. 성당 안에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행진용 대형 십자가가 은으로 싸인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다. 이 십자가는 나바라의 로마네스크 양식 금은 세공 작품 중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이란다.
마을에서 만난 알베르게는 깨끗하고 예쁜 외관을 갖고 있다. 입구에는 여러개의 조개가 매달려 있다. 알베르게 카페에 들어가 쥬스 한 잔을 마셨다. Pan=Bread, Fruta=Fruit, Embutido=Sausage라고 그림과 함께 익혔다.
새싹이 막 나온 나무에 작은 새가 앉아있다. 버스 정류장 표시에는 아직도 나바라 주라는 표시가 있다. 산 아래 마을, 카미노 순례길 표시가 있다. 평화로운 마을이다. 밀밭 풍경이 이어진다. 교회를 지난다. 마을을 나서니 직선 차길이 보인다.
미루나무 가로수 신작로 길을 걷다보니 고목나무 숲 길로 이어진다. 언덕은 붉은색 포도나무 언덕이다. 시골길을 또 간다. 언덕에는 창고 같은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다. 입구만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창고를 파 놓은 것 같다.
갈대가 흔들리는 넓은 밀밭이다. 예쁘다. 오른쪽에는 키푸러스 나무가 줄지어 있다. 아름답고 햇살 가득한 농로길이다. Picauren 지역이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9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언덕을 오르내린다.
초록바탕에 노란색 들판 거기에 파란 하늘이 환상적이다. 흰구름도 예쁘다. 직선길을 걷는다. 순레자가 많이 보인다. 아름다운 시골길이 게속 이어지는데 발은 통증이 계속 전해진다. 포도밭에는 허물어진 유적이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다.
가도 가도, 오르고 내리며, 이리돌고 저리 돌아도 끝이 없다. 창고 같은 유적 건물도 심심하지 않게 나타난다. 이름모를 흰색 꽃들도 만난다. 시멘트 포장 도로가 시작되는 곳에 Bun Camino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5.7km 란다.
아직도 한 시간은 더 걸어야한다. 초록 사이의 노랑 들판은 칼라풀하게 만든다. 기역자로 꺽어지는 예쁜 길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풍경 끝에는 돌산과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순례자들이 입고 가던 겉옷은 배낭에 매달려간다.
등에 맨 배낭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오솔길을 오르니 돌산이 보이고 밀밭에는 바람이 파도를 만든다. 작은 포도밭도 나타난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2.8km다. 벤치가 있는 소나무 숲 그늘에서 잠시 쉰다. 잔디위에 앉아서 커피를 끓인다.
구수한 커피가 힘을 돋게 한다. 구릉 언덕을 넘어간다. 완만하니 그림같은 길이다. 올리브 농장도 나타나는데 올리브 나무 아래에는 노란색 키 낮은 꽃들이 가득 피어있어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다. 언덕을 올라서니 마을이 보인다.
이 언덕이 염소 고개란다. 내리막 길이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마을이다. 파란 하늘 아래 건초더미가 쌓여있다. 마을 입구 카페에는 Los Arcos 간판이 보인다. 햇살 가득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알베르게 숙소(La Fuente Casa de Austria)를 찾기는 쉽다.
작은 마을이다. 뜨거움만 가득한 숙소다. 요금은 12유로다. 예루살렘 3,580km, 로마 1,746km, 산티아고 640km 등 거리가 표시되어있다. ‘반가워요’라는 한국말도 씌어있다. 짐을 올려놓고 동네 구경을 나섰다. 로스 아르꼬스는 조그만 농업 도시다.
옛날부터 까스띠야와 나바라 왕국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현명한 왕 산초가 발데곤 전투 후에 로마 시대 마을이 남아 있던 곳에 로스 아르꼬스를 건설했다.
도시가 건설되고 왕은 마을 사람들의 용기를 치하하여 활이 그려진 그림을 하사하며 이 마을을 아르꼬스(Arcos; 활 모양의)라고 불렀다. 그 후 프랑크 왕국의 상인이나 환전상 등 유대인이 이곳에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2,3층으로 석재와 벽돌로 만들어진 집에 살았다.
이 집들은 모두 발코니가 있으며 문장이 새겨져 있고 난간이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골목길을 걸어가니 끝에 성당 광장이 나온다.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이 크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는 변화가 느껴지면서 조화를 이루는 성당이다. 십자가 평면의 성당은 그리스와 로마식 신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6세기에 보수되어, 성당의 일부 요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반종교개혁으로 내부의 장식이 변화되었으며 나바라 왕국이 가지는 바로크 양식의 풍성함과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외부에는 거대한 쿠폴라와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아름다운 르네상스 풍의 탑이 있다.
팔각형의 이 탑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가장 높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탑 중 하나다. 성당의 내부를 장식한 벽화들은 부르고스의 출신의 크리스토발 곤살레스의 작품인데 꼬르도바 가죽가공을 차용하여 나무와 은 위에 벽화를 그렸다.
일 년에 한 번 볕을 쬐는 성모상도 있다. 산따 마리아 성당의 아름다운 복도 한가운데에는 그늘에서 보관중인 성모상이 있다. 이 성모상은 6월 15일에만 햇빛에 내놓는다고 한다. 광장에는 햇살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앉아있다.
까스띠야 문 (Puerta de Castilla)은 산타 마리아 성당 옆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졌고 1739년 펠리페 5세에 의해 보수되었다. 로스 아르꼬스를 나설때는 이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문을 나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알베르게도 있고 학교 건물도 보인다. 순례자를 위한 샘도 있다. 작은 공원에는 석상들이 여러개 보인다. 산초 4세(1067년)의 석상도 보인다. 순례자 야고보의 석상도 찾아볼 수 있다. 플라타너스 나무기둥이 견고해 보인다.
다시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간다. 회랑을 갖고 있는 오래된 건물이 길다. 벽으로 둘러싸인 ‘조가비 문’은 마을 안의 유대인 구역으로 통했다. 지금은 무너져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단다.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깎인 돌 산이 동쪽 끝에 있다.
걸어서 올라가 보니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TV 안테가가 집집마다 지붕에 세워져 있다. 건너편 언덕 위 산길이 힘들어 보인다. 숙소에서 소고기 파티가 열렸다. 동네 슈퍼에 있는 소고기를 전부 사왔단다. 무식하게 구워서 소금과 먹는데 맛있다.
잠시 머물다가 어스름한 저녁에 다시 나왔다. 시청사가 있는 코스 광장(Plaza del Coso)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손에 종이 한 장식을 들고 있다. 빙고 축제를 하고 있다. 시끄럽다. 푸드 트럭에서 츄러스를 하나 사 먹었다.(2.5유로) 뿌려준 설탕이 달고 맛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