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 氷魚
임윤식
누구에게나 꿈은 달콤하고 아름답다
엄마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세상을,
아빠는 고래가 되어
바다를 주름잡는 꿈을 꾼다
자식들은?
머나 먼 걸리버 나라에서
공주를 꿈꾸는 딸
아들은 로빈후드가 되어
백마 타고 웹 속을 달린다
춘천 호반의 겨울
얼음 속 동화나라는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다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헤매는 빙어 가족
그들의 꿈은 오직 한끼 밥상이다
엄마의 여전한 잔소리
쉿,
낚싯밥을 조심할 것
조장 鳥葬
임윤식
발가벗겨진 채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가지 끝에 매달려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붉은 감 몇알
한평생 삶이 사리처럼 영롱하다
제물로 바쳐지는 마지막 육신
새들이 모여든다
시신을 잘게 자르는 배화교 사제처럼
익숙하게 살붙이를 쪼아댄다
몸은 그렇게 새들의 먹이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또 다른 세상으로 옮기는 사자使者들의 의식
엄숙하고
진지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섬
임윤식
어느덧 항구에 닿았구나
닻을 내려야겠다
숨가빴던 뱃길
바다 위 안개 자욱하다
구름 위로 떠다니는 그림자
꿈이었던가
다가올 듯 다가오지않고
말없이 고개 끄덕이며
손 흔들어보이기만 하는
물결에 밀려 점점 멀어져 가는
작은 쪽배 하나
<산문>
잔아박물관에서 초가을의 시심(詩心)에 취하다
오세영 시인 초청, 시 콘서트 ‘소통과 공감’
글/임윤식
옷깃에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스며드는 9월 마지막 일요일. 경기도 양평 소재 잔아문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인 오세영 교수를 초청, ‘소통과 공감’을 주제로 뜻깊은 가을맞이 시 낭송회가 열렸다.
오세영 시인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서울대 인문대 교수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국문학자이기도 하다. 만해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셨고,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도 받으셨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 소설가 김용만 씨가 사비로 건립한 잔아문학박물관은 ‘문학’과 ‘테라코타’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이다. '테라코타(Terracotta)'란 '점토(terra)를 구운(cotta) 것'의 뜻으로, 벽돌, 기와, 토관, 기물, 소상 등을 점토로 성형(成形)하여 초벌구이한 것이다.
박물관 경내에 들어서면 야외정원 및 전시실 곳곳에 보기에도 정말 귀엽고 앙증맞은 '테라코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테라코타 작품들은 김용만 소설가의 부인이며, 시인, 조형예술가인 여순희 작가의 작품들이다. 박물관 자체가 김용만 소설가와 여순희 작가의 문학적, 조형예술적 공동산물인 셈이다.
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글은 인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다. 한국문학, 세계문학, 아동문학 등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은 물론, 해외 대문호들의 작품과 삶을 감상할 수 있다. 희귀 문예지, 육필원고, 대문호들의 테라코타 흉상,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잔아문학박물관에서는 ‘문학을 그리다’, ‘문학을 만들다’, ‘테라코타 교실’ 등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잔아문학박물관의 넓은 야외 잔디마당에 무대를 설치, 지역 문인, 화가, 음악인 등과 함께 시 낭송, 노래, 기타 앙상블의 클래식 한 마당, 색소폰 연주, 시화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엮은 한 판 ‘문화난장(文化亂場)’이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진선 양평군수, 강금덕 서종면장,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환경공학자이면서 작곡가 · 성악가인 이기영 호서대 명예교수, 이승하 중앙대 교수, (전)중앙일보 문화부장인 이경철 문학평론가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한국낭송문예협회 회장인 장충열 시인이 사회를 맡았다.
오세영 시인은 이날 특히 지난 2018년 8월 25일 금강산 제 21차 이산가족상봉장에서 북에서 내려온 이종여동생에게 써 준 ‘그때 너는 네 살’이라는 시를 낭독, 참석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너는 4살, 나는 8살.
우리는 그때 외갓집 마당가에 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헤어졌지.
네 초롱초롳 빛나던 눈동자에 어리던
푸른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네 볼우물에 감돌던 그 천진스런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지.
곧 전쟁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우리는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생사를 모른 채 이처럼
70년을 헤어져 살아야만 했구나.
예뻤던 내 여동생 종주야.
이제 너는 일흔 둘,
나는 일흔 하고도 여섯.
몸들은 이미 늙었다마는 아직도
네 눈빛에 어리던 푸른 하늘과
네 볼우물에 일던 그 귀여운 미소는
여전하구나.
종주야. 내 사랑하는 동생아,
이제 우리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우리 외가 집 마당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는 그 끔찍한 민족의 시련을
겪어선 안 된다.
그때 너는 4살, 나는 8살.
소설가이면서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용만 잔아박물관장은 오세영 시인의 시에 관하여 “나는 오세영의 시세계를 엿보면서 안개처럼 야울거리는 슬픔의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낭만주의의 꽃은 비극성이다. 슬픔은 비움(空)과 자유의 산물이다. 비움과 자유의 토양에서 자란 슬픔이어야 진정한 슬픔이다. 채움(滿)에서는 자유가 억압을 받아 슬픔이 움틀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런 쟁취해야 될 자유가 아니다. 허무, 고독, 절망 같은 실존적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우러난 비극적인 자유, 그냥 ‘던져진’ 진공상태의 자유이다. 오세영도 ‘스스로 존재를 허무에 기투할 수 있는 인간’을 완전한 자유인이라고 말했지만, 망망한 사막에 홀로 버려진 그 독존의 허허한 절대자유에서는 슬픔 말고 향유할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슬픔은 감정의 외화가 아니라 감정의 객관화현상이다. 온전한 비움의 진공상태에서 자연발생된 슬픔, 그 슬픔의 절대가치는 ‘나를 절망시켜달라’고 외치는 미적 자학 뿐이다”라고 풀이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성우협회 성우강사인 석원희 시인의 자작시 ‘수국의 부탁’을 비롯, 심연수, 노진희, 소영민, 김미영 등 지역문인들의 자작시 낭송과 함께, 오세영 시인의 시 ‘아아, 훈민정음’(낭송 유경옥, 위경숙), ‘대한민국 2022년’(낭송 정기만, 문명숙), ‘첫눈 내리면‘ (낭송 서희진, 김정순), ’꿈꾸는 병‘(낭송 김진희, 이경섭), ‘히말라야를 넘다가’(낭송 장제은, 박선휴), ‘9월’(낭송 이병국) 등 낭송가들의 멋진 시낭송이 이어졌다.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오세영 시 ‘9월’ 전문
특히 진행순서 중 수입초 3학년 박벼리 어린이의 시낭송은 관중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의외의 백미였다. 박벼리는 ‘저녁놀’ 이라는 자작시를 낭송, 관중들의 찬사와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박벼리의 낭송이 끝나자 김용만 관장은 무대에 직접 나와 박벼리 어린이를 미래 노벨문학상이 기대되는 꿈나무라고 소개, 관중들의 큰 박수갈채를 끌어내기도 하였다.
아빠랑 둘만 걷는 산책길
노을이 너무 예쁘다
구깃구깃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캠프 갔던 언니
돌아오면
이불 속에서 보여줘야지
*박벼리 시 ‘저녁놀’ 전문
KBS 라디오 일일연속극 원작소설이기도 한 김용만 장편소설 ‘능수엄마’와, 한 묶음의 ‘떡·과일’ 선물로 돌아오는 길 역시 푸짐했다.
*임윤식 프로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시와 창작> 작가회 회장,서초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현) 월간 시사종합지 <오늘의 한국> 회장
(현) 한국사진작가협회 홍보위원
서초문학상 수상
시집 <나무도 뜨거운 가슴은 있다> 외
lgysy@naver.com
첫댓글 원고 늦어 미안합니다.
마감도 지켜 주시고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